영회황후 왕씨
靈懷皇后 王氏
(? ~ 181년)
1. 개요
후한 영제의 후궁, 헌제의 어머니, 할아버지는 왕포(王苞), 아버지는 왕장, 오빠는 왕빈. 조국 사람.
본명은 왕영(王榮)[1] , 통칭은 왕미인(王美人)[2] , 시호는 영회황후(靈懷皇后).
생전에는 후궁 직위였지만 아들 헌제가 즉위하고나서 황후로 추존되었다.
2. 정사
영제의 후궁으로 자태와 얼굴이 후덕하면서 총명하고 영리해 재주와 지혜가 있었다. 글을 쓰고 회계를 할 수 있었고 양갓집의 딸이면서 관상이 법도에 알맞다고 해서 궁중에 선발되었다.
영사황후 하씨가 궁으로 선발되어 들어오고 180년에 황후가 되었는데, 영사황후는 성품이 억세고 투기가 심해 후궁들 중에서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이 없어 왕미인도 영사황후를 두려워했다.
181년에 왕영은 아이를 잉태했고 영사황후를 두려워해 약을 먹어 아기를 없애려 했는데, 태가 이미 자리를 잡아 움직이지 않았다. 몇 차례나 아이가 해를 지고 가는 꿈을 꾸었고 황자 유협을 낳았다. 결국 영사황후에게 짐독으로 살해당했고 이 때문에 영제가 영사황후를 폐위하려다가 여러 환관들의 만류로 그만두고 왕미인이 낳은 유협은 효인황후 동씨가 길렀다.
영제는 유협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것을 불쌍히 여기면서 왕영을 사모해 추덕부, 영의송을 지었다. 헌제는 즉위하고나서 모친 왕영을 영회황후(靈懷皇后)[3] 로 추존하고 문소릉(영제의 무덤)에 다시 장사지냈고 왕영의 오빠 왕빈을 후하게 대우했다.
3. 미디어 믹스
[image]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짤막하게 등장하여 하태후에 의해 살해되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