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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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제39대 군주이자, 제6대 왕. 월왕 주구의 아들. 월왕 제구의 아버지. 그 또한 아들인 태자 제구에게 살해당했다. 달리 월왕 불광(不光)이라고도 전해진다.
2. 생애
월왕 예 7년(기원전 404년), 월왕 예는 강성한 월나라의 힘을 믿고 제(齊)나라를 쳤다. 당시 증(繒)나라는 제나라만 믿고 월나라를 경시했다. 월왕 예는 거기에 분노해 증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월왕 예 20년(기원전 391년), 제나라 상국 전화(田和)는 제강공을 외딴 섬으로 보내버리고 자신이 제나라를 먹어버렸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왕 예는 거기에 간섭하기 위해 출동했다.[4] 그러나 전화가 신중히 대처하는 바람에 월왕 예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월왕 예 25년(기원전 386년), 주안왕은 전씨를 제나라의 후작에 봉했다.[5] 한편 날로 강성해져 가는 초나라와 복수를 노리는 옛 오나라 귀족들의 자손들이 두려워 중원의 일에 간여하지 못했다.[6]
월왕 예 33년(기원전 378년), 수도를 낭야(琅琊)에서 고소 땅으로 옮겼다.[7]
월왕 예 36년(기원전 375년), 동생인 공자 예(豫)가 왕위를 계승하고자 3명의 왕자를 살해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월왕 예에게 태자 제구를 제거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월왕 예는 거절했다. 7월 태자 제구는 그 일로 두려움을 느끼고 공자 예를 치고자 궁을 포위했다. 그 중에 월왕 예가 살해당했다. 그리고 월왕 제구가 즉위했다.
[1] 여씨춘추(呂氏春秋) 심기(審己)편의 기록.[2] 옹(翁)이라 하기도 한다.[3] 이것을 전씨 제나라의 약자인 전제(田齊)라 한다. 제 강공의 제나라는 강성(姜姓) 제나라의 준말로 강제(姜齊)라고 한다.[4] 이유는 중원의 패권의 재확인 즉 월나라가 패자국임을 재확인하려 한 탓이다.[5] 즉 제나라는 2개가 생긴 셈이다. 이 당시 제 강공은 죽지 않았으므로(기원전 379년 사망.) 전제와 강제 2개가 있었다.[6] 초나라의 득세와 월나라가 제나라 원정에 실패하자 이들이 일어난 것이다.[7] 중원에서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