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
呂氏春秋
진(통일왕조)의 재상이자 뛰어난 상인이었던 여불위가 자신과 진나라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전국의 논객과 식객 3천여 명을 모아 저술 및 편찬한 책. 기원전 239년, 즉 진시황 8년에 집필되었다.
당시 여불위는 제나라의 맹상군 등을 본받아 각지의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진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또 진나라의 통치 체제를 다지기 위해 이 책을 지었으며, 완성된 뒤 그 책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담은 책이라고 자부하며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에게 천금(千金)을 주겠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고사성어 일자천금(一字千金)의 유래.[1]
총 20권 160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권은 12권의 기(紀), 8권의 람(覽), 6권의 론(論)으로 분류되며, 이들은 각각 지침서 모음집, 보고서 모음집, 그리고 논문집에 해당된다. 기, 람, 론의 배열 순서가 따로 전해지지 않아 후대의 학자들의 논란을 야기하고 있으나[2] , 상당수의 학자들은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책의 요지가 실린 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기는 각 권의 제목을 계절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12개의 권을 3권씩 묶어 4묶음으로 만들고 각각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이라고 이름 짓고, 각 묶음의 3권씩들에 각각 맹(孟), 중(仲), 계(季)[3] 라는 이름을 붙여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배열되게 하였다.
람과 론은 각각 팔방관람(八方観覧), 육합론의(六合論議)라고도 불리며, 제자백가의 주장과 일화를 재편집하고, 정치, 천문, 지리, 경제, 공업 등 각종 지식을 다루는 권들로 특히 도가를 가장 많이 다룬다.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들을 여불위의 시각을 토대로 억지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아 모순적 서술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으나, 모든 사상들의 장점을 군주의 통치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일관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존재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자면 군(君)과 사(士), 즉 국가 통치의 정점에 있는 군주와 자신의 능력을 정치에 보태는 신하들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올바른 위치에서 행해야 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반고#s-2는 여씨춘추가 초기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제자백가 사상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하나의 새로운 학설을 형성하므로 한서 예문지(藝文志)에서 여씨춘추를 잡가(雜家)[5] 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도가 사상을 근본으로 한 점이 돋보이기 때문에 신(新)도가로 분류할 수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또한 여불위 생전에 이미 진나라에 법가를 토대로 한 율령과 사회규범이 존재하였는데 여불위가 굳이 학자들을 모아 새로이 사상을 만들어 내려고 한 걸 보아 그가 진나라의 전제왕권체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1. 개요
진(통일왕조)의 재상이자 뛰어난 상인이었던 여불위가 자신과 진나라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전국의 논객과 식객 3천여 명을 모아 저술 및 편찬한 책. 기원전 239년, 즉 진시황 8년에 집필되었다.
당시 여불위는 제나라의 맹상군 등을 본받아 각지의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진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또 진나라의 통치 체제를 다지기 위해 이 책을 지었으며, 완성된 뒤 그 책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담은 책이라고 자부하며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에게 천금(千金)을 주겠다!"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고사성어 일자천금(一字千金)의 유래.[1]
2. 구성
총 20권 160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권은 12권의 기(紀), 8권의 람(覽), 6권의 론(論)으로 분류되며, 이들은 각각 지침서 모음집, 보고서 모음집, 그리고 논문집에 해당된다. 기, 람, 론의 배열 순서가 따로 전해지지 않아 후대의 학자들의 논란을 야기하고 있으나[2] , 상당수의 학자들은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책의 요지가 실린 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기는 각 권의 제목을 계절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12개의 권을 3권씩 묶어 4묶음으로 만들고 각각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이라고 이름 짓고, 각 묶음의 3권씩들에 각각 맹(孟), 중(仲), 계(季)[3] 라는 이름을 붙여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배열되게 하였다.
- 맹춘(孟春) - 생명의 탄생과 양육에 대한 옛 선인의 지혜
- 중춘(仲春) - 위와 동일
- 계춘(季春) - 위와 동일
- 맹하(孟夏) - 교육법과 배움의 자세, 훌륭한 임금과 스승의 자세
- 중하(仲夏) - 음악의 유래나 원리, 이치에 따르는 좋은 음악의 예, 정치와 음악의 관계[4]
- 계하(季夏) - 위와 동일
- 맹추(孟秋) - 전쟁할 때 명분의 중요성, 강력한 군대의 요건, 무력으로 질서를 유지한 사례
- 중추(仲秋) - 위와 동일
- 계추(季秋) - 현인 열전
- 맹동(孟冬) - 상례 등 죽음 관련 내용
- 중동(仲冬) - 충신과 성군의 모습
- 계동(季冬) - 지난 일년 간의 베풂에 보답하기 위해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할 것
람과 론은 각각 팔방관람(八方観覧), 육합론의(六合論議)라고도 불리며, 제자백가의 주장과 일화를 재편집하고, 정치, 천문, 지리, 경제, 공업 등 각종 지식을 다루는 권들로 특히 도가를 가장 많이 다룬다.
3. 특징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들을 여불위의 시각을 토대로 억지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아 모순적 서술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으나, 모든 사상들의 장점을 군주의 통치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일관적이고 현실적인 목표가 존재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자면 군(君)과 사(士), 즉 국가 통치의 정점에 있는 군주와 자신의 능력을 정치에 보태는 신하들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올바른 위치에서 행해야 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4. 후대의 평가
반고#s-2는 여씨춘추가 초기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제자백가 사상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하나의 새로운 학설을 형성하므로 한서 예문지(藝文志)에서 여씨춘추를 잡가(雜家)[5] 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도가 사상을 근본으로 한 점이 돋보이기 때문에 신(新)도가로 분류할 수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또한 여불위 생전에 이미 진나라에 법가를 토대로 한 율령과 사회규범이 존재하였는데 여불위가 굳이 학자들을 모아 새로이 사상을 만들어 내려고 한 걸 보아 그가 진나라의 전제왕권체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1] 그러나 후한 말의 문학자 고유(高誘)는 사람들이 여씨춘추에서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없었던 건 여씨춘추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여불위가 높으신 분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라고 깠다(...). 실제로도 단순 오타나 잘못된 지식으로 인한 오류가 제법 있다.[2] 일례로 사마천은 람-론-기의 순서대로 배열된다고 주장했고, 후한 말의 문학자 고유(高誘)는 기-람-론의 순서라고 주장하였다.[3]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계절을 분류하는 방법 중 사계절을 다시 셋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이 맹중계이다. 맹은 계절이 시작된 한 달, 중은 맹 이후 계절이 지속되는 한 달, 그리고 계는 계절이 끝나가고 다른 계절이 오는 한 달이다. [4] 당시 음악은 민간의 여론을 조정에 고할 때, 조정의 권위를 드러내는 제사를 할 때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5] 제자백가의 이론과 주장을 절충, 집대성, 해설하는 학파로, 전국시대에 제자백가 간 교류와 이론 체계화로 사상의 종합이 일어나며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