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다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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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슈팅 게임 및 퍼즐 게임 스코어러. 주로 슈팅 게임과 퍼즐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하지만 본인의 인터뷰나 해당 스코어러에 대한 소문을 보면 슈팅이랑 퍼즐만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풀네임은 LAOS-長田仙人이며 주로 새기는 이니셜은 OSD. 선인이라는 명칭은 자칭이 아니며 단골 오락실에 같이 다니던 다른 사람이 붙여준 것이 스코어 네임화한 듯하다.
시코쿠 고치현 출신으로 2005년 이후로는 잘 활동하지 않지만 한창 활동할 시절에는 유세미처럼 슈팅게임의 신으로 불렸다. 실제로 아리카에서도 「'''동쪽의 유세미, 서쪽의 선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슈팅게임신 중의 한 명」이라 소개했을 정도. 후술하겠지만 슈팅게임의 신답게 회피력과 스코어 올리는 속도가 경악스럽다. 플레이 스타일은 나이토나 유세미처럼 철저한 패턴화 지향이 아닌 과감하게 들이대면서 피하는 스타일. 그렇다고 아예 패턴화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좀 위험하더라도 피할 수 있고 패턴 실행에도 문제가 안 생긴다 싶으면 기합회피하는 성향이다. 또한 느린 기체를 선호하는 듯한 성향을 보이는 두 사람과 달리 빠른 기체를 선호하는 편. 그리고 횡스크롤보다 종스크롤 슈팅게임을 주로 즐기는 편이다. 플레이 스타일도 상반되지만 외모도 평범하게 생긴 유세미나 좀 통통하지만 그럭저럭 훈남인 나이토와 달리 일본에서도 못생겼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제법 눈에 띄며 국내에서도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혐짤'''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다. 나이 차도 꽤 나는 편. 나이 많은 사람부터 나열하면 나이토, 오사다, 유세미 순.[1]
스코어러서의 재능도 출중하지만 인터뷰나 현지인의 평에 따르면 굉장한 근성 가이인 것 같다. 별로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플레이할 정도. 그리고 게임할 때는 직장 나가서 일하듯 자연스러운 기분으로 한다는데 이게 게임하면서 잘 빡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지는 불명확. 만약 그렇다면 선인이라는 닉네임이 아주 잘 어울릴 듯하다. 나이토나 유세미 같은 톱플레이어들조차 게임하다 빡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인내력의 소유자인 듯.[2]
결국에는 선인도 인간은 인간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좌절시킨 게임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슈팅 게임으로는 발트릭[3] 이 있으며 슈팅게임으로는 발트릭 이외에도 더 있는 모양이며 굳이 슈팅이 아니더라도 도중에 좌절한 게임들은 많은 모양이다.
데뷔 시기는 상당히 이른 편으로 처음 접한 게임은 갤럭시안이라고 한다. 사실 그 전에도 슈팅게임을 했었다고 하나 본인이 무슨 게임인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튼 위 발언도 그렇고 실제로 1943 改나 도균[4] 같은 게임에도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상당히 경력이 오래된 슈터인 듯하다. 게메스트 같은 잡지에서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 시기를 데뷔시기로 본다면 87년경이다. 구극 타이거에서 이름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록과 명성을 가지고 있는 탑스코어러 치고는 영상이 정말 희귀한 편이다. 게메스트에서 내놓은 도돈파치 공략 비디오와 도돈파치 대왕생 PS2판 특전 DVD 외엔 잘 알려진 영상이 없을 정도. 아래는 이 두 영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게메스트에서 발매한 도돈파치 비디오의 경우 오사다 선인은 A타입과 B타입을 담당하였는데 A타입 6.03억(잔2, 1주 1.6억), B타입 4.77억(잔2, 1주 1.8억, 2-3에서 1미스)이다. B타입의 경우 2-3에서 미스가 안 났다면 충분히 6억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2-3에서 미스가 난 것이 치명타나 마찬가지.[8] 실제로도 A, B타입 모두 이 비디오가 발매되기 전에 6.3억 가량 내고 종료.[9] 1주 1.8억은 나이토보다 먼저 도달한 듯하다.[10] 아쉬운 것은 거기서 1주 점수의 상승이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 도돈파치 관련 소문이 있는데 게메스트에 실린 그의 기록 중에는 히바치를 노미스 노봄으로 잡은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잔기6으로 올클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볼 때 이전에 미스가 난 모양. 하치전 이전에 미스가 나면 점수 손해가 큰 게임의 특성과 A타입 비디오의 경이적인 내용과 회피력을 볼때 최후반부중 히바치전 이전에 난 미스일 가능성이 크다.
대왕생 특전 DVD의 경우 촬영 당시 2-2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보스에서 쓰고 먹으라고 남겨둔 봄을 '내가 노봄으로 해보겠다' 이러면서 낼름 먹고는 1차 형태를 노하이퍼 노봄으로 다 피해버린 것이 유명하다. 지금이야 세월이 많이 지나 피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지만 당시로선 정말 미친 짓이었다. 이 DVD에 대해선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국내에서 받아들여지는 3명이 파트 나눠서 플레이어를 적절하게 교체해가면서 찍었다는 견해, 다른 하나는 패턴 자체는 3명이 만들었고 3명 모두 제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실플레이는 오사다 선인 혼자 했다는 견해인데 아리카 측에서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인터뷰를 해서 이런 견해가 나온 듯하다. 하지만 미하라에 의하면 NAL 50%, 선인 30%, TAC 20% 정도 담당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전자가 명백한 정설인 셈. 누가 어디를 담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일본에선 2-2 백호, 오마케의 히바치전에서 50초 버티기 및 또 하나의 18억 올클은 선인, 본편의 히바치 부분은 NAL이 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안 좋은 일화가 있는데 프로기어의 폭풍을 보고 '예상 외의 저난이도. 의지가 없어졌다' 이랬다가 폭풍같이 까이기도 하였다. 냉정하게 보면 염장질이지만 한편으로 역시 일반인과는 스케일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부분.
여담으로 대왕생 초기에 개최된 스코어 트라이얼[11] 에서 당시 대세인 레이저 강화와 B타입을 고르지 않고 A-EX를 골라 2, 3위보다 3억 이상 높은 11.8억으로 1위를 했다(첫 클리어 전에 달성했으며 첫 클리어 기록보다 4억 가량이나 높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 스코어 트라이얼에는 ISO나 이마키치 같은 수퍼 플레이어들도 참가했다는 것이며[12] 거기다 당시 또다른 신이었던(지금도 신이지만) 유세미조차 이 사람에게 스코어로 밀려서 전일을 못 먹을 정도로 정말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고 있었다.[13] 다만 클리어 후에 이 사람이 12억을 낸 지 얼마 후(비디오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으나 친분이 있는 스코어러들에게만 뿌린 듯)에는 유세미가 이 사람을 따라잡게 된다.
2005년 초 이후로 슈팅계에선 이름이 보이지 않다가 2007년 하순에 무찌무찌포크를 하고 있다는 게 확인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드디어 부활인가 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다시 잠적[14] 이후 2010년을 넘어 지금까지 이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 나이가 나이니만큼 예전만큼 게임을 안하는 듯하며 2ch 쪽에선 취직 때문에 접었다는 말이 돌았다.
이외에도 왓쇼이와 같은 이벤트에도 모습을 안 드러내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은퇴한 듯하며 2010년 기준 40을 바라보는 나이[15] 니 만큼 복귀 가능성도 거진 없어보인다.
스페셜 DVD의 경우엔 오사다의 플레이를 베이스로 하여 제작되었으며(인터뷰 내용 중에서 ''''오사다 군의 플레이를 보면서 의논을 한다'''' 는 언급이 있다) 이 플레이 이후 NAL이 패턴을 정리해주고 이렇게 해보자고 하면서 실제로 시도도 하는 등 사실상 오사다 선인의 패턴이 기본 베이스가 되었다. 역할을 나누면 NAL이 공략 담당, 오사다는 DVD 담당, TAC은 차이점을 비교하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미하라의 말에 따르면 마침 당시 유세미와 대왕생의 전일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던 오사다 선인의 스케줄이 비어서 일을 부탁할 수 있었다고 하며 이에 따라 도쿄에 온 뒤에는 격리된 방 안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끝없이 플레이했다고 한다.
또한 이 스페셜 DVD 작업에는 수록에만 몇 개월이나 걸렸고 그동안 클리어 횟수가 약 20회 안팎일 정도로 힘들게 제작되었다.
담당 플레이어는 위에서 나와있다시피 각각 오사다 선인, NAL, Clover-TAC 이 3명 모두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5명밖에 없다고 하던 대왕생의 올 클리어러들이며 특히 오사다의 경우엔 유세미와 전일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던 관계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사실상 최고의 드림팀을 짜서 제작된 영상이며 이런 3명이서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하였으니 당연히 최고급의 완성도를 가진 채 나오게 되었고 이 DVD는 대왕생 유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플레이는 각자 3명이서 담당 구간을 정하여 그에 맞게 플레이어를 교체해 가면서 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이 특전 DVD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유세미조차 이 영상이 발매될 때까지 이 영상을 넘어설 수 없었고 이 DVD를 넘어서기까지는 약 1년이나 걸렸다고 하며 또한 흑판의 전일인 HFD는 이 DVD로 인해서 흑판의 스코어링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패턴의 제작 역시 이 DVD를 참고하였다.
최종 스코어는 1,893,459,930(18.9억)(2-5 보스전까지 노미스 노봄/히바치 앞까진 노미스/최종 2미스 ALL).
1. 개요
일본의 슈팅 게임 및 퍼즐 게임 스코어러. 주로 슈팅 게임과 퍼즐 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하지만 본인의 인터뷰나 해당 스코어러에 대한 소문을 보면 슈팅이랑 퍼즐만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풀네임은 LAOS-長田仙人이며 주로 새기는 이니셜은 OSD. 선인이라는 명칭은 자칭이 아니며 단골 오락실에 같이 다니던 다른 사람이 붙여준 것이 스코어 네임화한 듯하다.
시코쿠 고치현 출신으로 2005년 이후로는 잘 활동하지 않지만 한창 활동할 시절에는 유세미처럼 슈팅게임의 신으로 불렸다. 실제로 아리카에서도 「'''동쪽의 유세미, 서쪽의 선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슈팅게임신 중의 한 명」이라 소개했을 정도. 후술하겠지만 슈팅게임의 신답게 회피력과 스코어 올리는 속도가 경악스럽다. 플레이 스타일은 나이토나 유세미처럼 철저한 패턴화 지향이 아닌 과감하게 들이대면서 피하는 스타일. 그렇다고 아예 패턴화를 안하는 건 아니지만 좀 위험하더라도 피할 수 있고 패턴 실행에도 문제가 안 생긴다 싶으면 기합회피하는 성향이다. 또한 느린 기체를 선호하는 듯한 성향을 보이는 두 사람과 달리 빠른 기체를 선호하는 편. 그리고 횡스크롤보다 종스크롤 슈팅게임을 주로 즐기는 편이다. 플레이 스타일도 상반되지만 외모도 평범하게 생긴 유세미나 좀 통통하지만 그럭저럭 훈남인 나이토와 달리 일본에서도 못생겼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제법 눈에 띄며 국내에서도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혐짤'''이라 표현한 사람이 있다. 나이 차도 꽤 나는 편. 나이 많은 사람부터 나열하면 나이토, 오사다, 유세미 순.[1]
스코어러서의 재능도 출중하지만 인터뷰나 현지인의 평에 따르면 굉장한 근성 가이인 것 같다. 별로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플레이할 정도. 그리고 게임할 때는 직장 나가서 일하듯 자연스러운 기분으로 한다는데 이게 게임하면서 잘 빡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지는 불명확. 만약 그렇다면 선인이라는 닉네임이 아주 잘 어울릴 듯하다. 나이토나 유세미 같은 톱플레이어들조차 게임하다 빡치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인내력의 소유자인 듯.[2]
결국에는 선인도 인간은 인간인지 인터뷰에서 자신을 좌절시킨 게임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슈팅 게임으로는 발트릭[3] 이 있으며 슈팅게임으로는 발트릭 이외에도 더 있는 모양이며 굳이 슈팅이 아니더라도 도중에 좌절한 게임들은 많은 모양이다.
데뷔 시기는 상당히 이른 편으로 처음 접한 게임은 갤럭시안이라고 한다. 사실 그 전에도 슈팅게임을 했었다고 하나 본인이 무슨 게임인지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아무튼 위 발언도 그렇고 실제로 1943 改나 도균[4] 같은 게임에도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상당히 경력이 오래된 슈터인 듯하다. 게메스트 같은 잡지에서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 시기를 데뷔시기로 본다면 87년경이다. 구극 타이거에서 이름이 보였다고 한다.
2. 주요 기록들
- 암드 폴리스 배트라이더 B버전 2900만 오버 (실점수 29,263,970 (2926만))
점수도 점수지만 기체조합부터가 환상이다.[5] 그리고 2004년에 달성된 이래 무려 6년간 경신되지 않다가(심지어는 본인에 의해서도) 근래 들어 근소한 차로 경신. 참고로 1년만 버텨도 장기집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걸 감안하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가 짐작할 수 있다.[6]
- 도돈파치 대왕생 최초클리어
유세미와 같은 날(2002년 8월 3일) 격파. 점수는 오사다의 승리 (758,154,900pts)였으며 굳이 이 둘에게도 순위를 메기는 쪽에선 오사다가 먼저 클리어했다고 한다. 다만 자세한 자료가 없으므로 일단은 동시격파로 적어둔다.
그리고 대왕생 초회 전일이기도 하다. 이 양반은 거주지 때문인지 게임의 입하가 늦어 출발이 늦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게임에선 다행히 초회 전일을 달성하였다.
- 도균 4주차 클리어
4주까지만 클리어한 것도 5주차 진입시 진행이 불가능한 버그 때문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4주차 영상(4-1 초반부에서 게임 오버)을 보면 적들이 극초반부터 매우 까칠하게 나오는데 이걸 뚫어냈다는 것을 봐도 이 사람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덤으로 이 사람 때문에 도균은 진출면 집계마저 중지크리. 스코어 집계는 어이없이 발견된 영구 패턴 덕에 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의미는 없지만 5주차 돌입 당시 기록한 점수는 60,790,950점. 이 플레이를 찍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4주차 클리어 영상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다.
- 돈파치 5900만 오버
목표는 6천만이었으나 코멘트에 의하면 2주에서 삽질을 했는지 아깝게 실패하고 최종적으로는 전기체 전일마저 빼앗긴다. 그 후 획기적인 패턴이 나왔는지 WTN에 의해 큰 폭으로 경신되어있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 따지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여담으로 당시 또 하나의 괴물이었던 나이토는 무슨 사정인지 4400만까지만 내고 종료를 선언. 경악스러운 것은 이게 고작 두 달 동안 파서 낸 점수라는 것. 오사다는 이 기록을 한 달 후에 바로 갈아버렸고(아쉽게도 B타입 점수가 약간 상승해버려서 전일은 그 다음달에 먹었다) 그 후로도 달마다 몇 백만점씩 쑥쑥 올려가며 독보적인 포스를 내뿜는다. 나이토가 접지 않았더라면 이 양반과의 대결이 상당히 볼 만 했을 것이다.
- 1944 2704만
이 사람이 찍은 2400만 오버 영상이 존재하는 듯하나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 1943 改 1인플레이 부문 580만 오버
600만을 내고 싶다고 했으나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간 사람이 없다.
이 외에도 게임천국에서는 피구(타임어택) 부문에서 단기간 전일을 먹은 적이 있으며 전일은 못 먹었지만 달인왕 2주 클리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이상도 가능한지는 불명. 배틀 백레이드 언리미티드 버전과 브레이브 블레이드, 도돈파치2도 플레이했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퍼즐 쪽으로는 상하이 계열 게임들과 수퍼 퍼즐 파이터, 뿌요뿌요 피버, 레인보우 아일랜드 엑스트라 버전, 무시히메타마 등의 게임에서 이름이 확인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7]3. 이야기거리
하지만 이런 엄청난 기록과 명성을 가지고 있는 탑스코어러 치고는 영상이 정말 희귀한 편이다. 게메스트에서 내놓은 도돈파치 공략 비디오와 도돈파치 대왕생 PS2판 특전 DVD 외엔 잘 알려진 영상이 없을 정도. 아래는 이 두 영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게메스트에서 발매한 도돈파치 비디오의 경우 오사다 선인은 A타입과 B타입을 담당하였는데 A타입 6.03억(잔2, 1주 1.6억), B타입 4.77억(잔2, 1주 1.8억, 2-3에서 1미스)이다. B타입의 경우 2-3에서 미스가 안 났다면 충분히 6억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2-3에서 미스가 난 것이 치명타나 마찬가지.[8] 실제로도 A, B타입 모두 이 비디오가 발매되기 전에 6.3억 가량 내고 종료.[9] 1주 1.8억은 나이토보다 먼저 도달한 듯하다.[10] 아쉬운 것은 거기서 1주 점수의 상승이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 도돈파치 관련 소문이 있는데 게메스트에 실린 그의 기록 중에는 히바치를 노미스 노봄으로 잡은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잔기6으로 올클한 기록이 없는 것을 볼 때 이전에 미스가 난 모양. 하치전 이전에 미스가 나면 점수 손해가 큰 게임의 특성과 A타입 비디오의 경이적인 내용과 회피력을 볼때 최후반부중 히바치전 이전에 난 미스일 가능성이 크다.
대왕생 특전 DVD의 경우 촬영 당시 2-2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보스에서 쓰고 먹으라고 남겨둔 봄을 '내가 노봄으로 해보겠다' 이러면서 낼름 먹고는 1차 형태를 노하이퍼 노봄으로 다 피해버린 것이 유명하다. 지금이야 세월이 많이 지나 피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지만 당시로선 정말 미친 짓이었다. 이 DVD에 대해선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국내에서 받아들여지는 3명이 파트 나눠서 플레이어를 적절하게 교체해가면서 찍었다는 견해, 다른 하나는 패턴 자체는 3명이 만들었고 3명 모두 제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실플레이는 오사다 선인 혼자 했다는 견해인데 아리카 측에서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인터뷰를 해서 이런 견해가 나온 듯하다. 하지만 미하라에 의하면 NAL 50%, 선인 30%, TAC 20% 정도 담당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전자가 명백한 정설인 셈. 누가 어디를 담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일본에선 2-2 백호, 오마케의 히바치전에서 50초 버티기 및 또 하나의 18억 올클은 선인, 본편의 히바치 부분은 NAL이 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안 좋은 일화가 있는데 프로기어의 폭풍을 보고 '예상 외의 저난이도. 의지가 없어졌다' 이랬다가 폭풍같이 까이기도 하였다. 냉정하게 보면 염장질이지만 한편으로 역시 일반인과는 스케일이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부분.
여담으로 대왕생 초기에 개최된 스코어 트라이얼[11] 에서 당시 대세인 레이저 강화와 B타입을 고르지 않고 A-EX를 골라 2, 3위보다 3억 이상 높은 11.8억으로 1위를 했다(첫 클리어 전에 달성했으며 첫 클리어 기록보다 4억 가량이나 높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 스코어 트라이얼에는 ISO나 이마키치 같은 수퍼 플레이어들도 참가했다는 것이며[12] 거기다 당시 또다른 신이었던(지금도 신이지만) 유세미조차 이 사람에게 스코어로 밀려서 전일을 못 먹을 정도로 정말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고 있었다.[13] 다만 클리어 후에 이 사람이 12억을 낸 지 얼마 후(비디오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으나 친분이 있는 스코어러들에게만 뿌린 듯)에는 유세미가 이 사람을 따라잡게 된다.
2005년 초 이후로 슈팅계에선 이름이 보이지 않다가 2007년 하순에 무찌무찌포크를 하고 있다는 게 확인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드디어 부활인가 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 다시 잠적[14] 이후 2010년을 넘어 지금까지 이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 나이가 나이니만큼 예전만큼 게임을 안하는 듯하며 2ch 쪽에선 취직 때문에 접었다는 말이 돌았다.
이외에도 왓쇼이와 같은 이벤트에도 모습을 안 드러내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은퇴한 듯하며 2010년 기준 40을 바라보는 나이[15] 니 만큼 복귀 가능성도 거진 없어보인다.
3.1. 도돈파치 대왕생 스페셜 DVD
스페셜 DVD의 경우엔 오사다의 플레이를 베이스로 하여 제작되었으며(인터뷰 내용 중에서 ''''오사다 군의 플레이를 보면서 의논을 한다'''' 는 언급이 있다) 이 플레이 이후 NAL이 패턴을 정리해주고 이렇게 해보자고 하면서 실제로 시도도 하는 등 사실상 오사다 선인의 패턴이 기본 베이스가 되었다. 역할을 나누면 NAL이 공략 담당, 오사다는 DVD 담당, TAC은 차이점을 비교하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미하라의 말에 따르면 마침 당시 유세미와 대왕생의 전일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던 오사다 선인의 스케줄이 비어서 일을 부탁할 수 있었다고 하며 이에 따라 도쿄에 온 뒤에는 격리된 방 안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끝없이 플레이했다고 한다.
또한 이 스페셜 DVD 작업에는 수록에만 몇 개월이나 걸렸고 그동안 클리어 횟수가 약 20회 안팎일 정도로 힘들게 제작되었다.
담당 플레이어는 위에서 나와있다시피 각각 오사다 선인, NAL, Clover-TAC 이 3명 모두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5명밖에 없다고 하던 대왕생의 올 클리어러들이며 특히 오사다의 경우엔 유세미와 전일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던 관계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사실상 최고의 드림팀을 짜서 제작된 영상이며 이런 3명이서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하였으니 당연히 최고급의 완성도를 가진 채 나오게 되었고 이 DVD는 대왕생 유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플레이는 각자 3명이서 담당 구간을 정하여 그에 맞게 플레이어를 교체해 가면서 제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이 특전 DVD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유세미조차 이 영상이 발매될 때까지 이 영상을 넘어설 수 없었고 이 DVD를 넘어서기까지는 약 1년이나 걸렸다고 하며 또한 흑판의 전일인 HFD는 이 DVD로 인해서 흑판의 스코어링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패턴의 제작 역시 이 DVD를 참고하였다.
최종 스코어는 1,893,459,930(18.9억)(2-5 보스전까지 노미스 노봄/히바치 앞까진 노미스/최종 2미스 ALL).
[1] 나이토와 오사다는 데뷔 시기와 나이가 별 차이 안 난다.[2] 나이토는 슈팅게임을 하다보면 어느샌가 '젠장!' 이라고 외치면서 빡친다고 하며 유세미는 대왕생을 하다 히바치전이 안 풀리자 돌려차기로 레버를 꺾어버린 일이 있다.[3] NMK가 제작하고 쟈레코가 1986년에 발매한 런앤건 종스크롤 슈팅게임인데 총 4스테이지 이지만 1스테이지부터 토 나올 정도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전멸폭탄은 없고 점프 긴급회피 외엔 위기 대처 방법이 없으며 느린 기체에 피탄 판정도 큰 데다 탄막슈팅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대량 탄막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유도탄 등을 쏟아내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하다.[4] 토아플랜을 가장 좋아하는 개발사로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5] 카펫, 마리아, 플라잉 바론.[6] 실감이 잘 안오겠지만, 이 게임에는 고랭크화에 따른 보스의 파괴가능 오브젝트의 방출량을 늘리는 불리기가 있다. 즉 상시 고랭크상태에서 싸워나가야하는 압박을 받는데, 고랭크에 의한 극한의 불리기 TAS영상을 보면 이게 얼마나 정신나간 짓인지 짐작 가능하다. 물론 해당 영상만큼 노골적으로 랭크를 뻥튀기시키진 않았겠지만, 좀 해봤다는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이거에 맞먹는 고랭크상태를 유지하며 플레이하니 오랫동안 갱신자가 안나왔지라는 반응을 보인다.[7] 일단 오사다 선인 본인은 자기가 본 만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글에서 자신을 B급 슈터 겸 C급 퍼즐러라 말한다. B급, C급에서 알 수 있듯 진지하게 받아들일 건 못 된다.[8] 이 비디오의 경우 게메스트 측에서 컨디션도 안 좋은데 기간은 빠듯하게 주고 영상은 두 개씩이나 찍으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일단 B타입 점수가 A타입 영상이나 그의 개인 기록과 비교해서 꽤 낮은 걸 보면 적어도 수록 시간이 빠듯했다는 건 사실일지도...[9] 이 영상이 발매된 시기는 98년 4월.[10] 당시 나이토의 기록은 최종점수는 더 높았지만 1주는 1.65억 정도였다. 그리고 몇 달 후 1주 2억을 내는데 성공.[11] 상품으로 흑판의 프로토 타입격인 기판을 받았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흑판과 비슷하나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는 듯. 흑판과의 구분을 위해 이쪽은 선인판, 선인 버전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도돈파치 청판과 마찬가지로 일반 오락실에서 가동한 적이 있는 듯하다.[12] ISO는 B-L로 8.16억을 내서 3위를 기록. 2위는 8.46억의 KWS라는 사람이다. 국내의 동방 스코어러와는 이니셜 빼고 관계가 없다. 여담으로 흑판 초기 랭킹을 보면 1위인 선인만 A-EX이고 나머지는 다 B-L인 실로 아름다운(?)광경을 볼 수 있다.[13] 트라이얼에도 참가했는지는 불명.[14] 당시 기록은 234,683,190(2.34억, 2-5), 기체는 핑크.[15] 2003년 7월 9일 당시 30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