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노미야 덴노
1. 개요
일본의 추존 덴노로, 40대 덴무 덴노와 41대 지토 덴노의 차남이다. 후에 43대 겐메이 덴노와 결혼하여 42대 몬무 덴노와 44대 겐쇼 덴노를 자식으로 가지게 된다. 생전에는 쿠사카베 황자(草壁皇子)로 불리었다.
위에서 가족이 다 덴노라는 걸로 유추할 수 있지만, 이 양반의 가족 관계가 참 거시기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삼촌이고, 그의 아내인 겐메이 덴노는 어머니의 이복 누이이자 이종 사촌인 아헤 공주이다(...).
그의 사후 53대 덴노인 준나 덴노에 의해 오카노미야 덴노로 덴노로서 추존되었고, 오카미야 천황이나 나가오카 천황으로도 불렸다.
2. 생애
쿠사카베 왕자는 662년에 태어났다. 672년, 진신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오쓰 왕자를 포함한 다른 형제들과 함께 부모와 동행했다. 673년 3월 23일, 덴무 덴노는 아스카 기요하라노미야 황실 저택에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이로 인해 쿠사카베 왕자는 679년 요시노 조약의 사실상 후계자가 되어 681년 2월에 왕세자가 되었다.
686년 8월, 그와 그의 어머니인 지토 덴노는 중병에 걸린 덴무 덴노으로부터 주권권을 위임받았고, 그 후 9월에 덴무 덴노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달인 10월에 오쓰 왕자는 반란혐의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지토 덴노는 오쓰 왕자가 처형된 직후 쿠사카베 왕자가 왕좌에 오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쓰 왕자의 황제 처형에 대한 그의 젊음과 반감은 그의 억운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
689년 5월 10일, 그는 왕좌에 오르지 못하고 27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후 53대 준나 덴노에 의해 덴노로 추존된다.
3. 사후
가족들이 모두 천황인 관계로, 그의 후손은 나라 시대의 텐무 천황으로부터 황실선의 주요 지점으로 문화와 정치의 보유자가 되었다. 그러나 744년 그의 증손자인 아사카 왕자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남성 혈육은 단절되었다.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설이 있다. 증손자인 가와츠구 히카미는 후와 공주와 조카인 시오야키 왕자의 아들인 히카미 가와츠구와 함께 반란혐의로 추방되었다. 그 후, 간무 덴노이 죽은 후, 그들은 용서받고 교토로 돌아왔다. 그러나 812년 이즈성의 주지사인 이즈노카미로 임명된 후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증손자인 오사베 왕자는 후와 황실의 언니이자 덴지 덴노의 딸인 이노에 황세의 아들이자 시라카베노 오키미의 아들로, 덴지 덴노와 덴무 덴노의 합병의 상징으로 왕세자로 정식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오사베 왕자는 후지와라노 요시쓰구와 후지와라노 모모카와 형제의 계획에 사로잡혀 왕세자의 투자를 반대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코닌 덴노에게 저주를 퍼부은 혐의로 서민들에게 강등되었고, 그 후 그와 그의 어머니는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오사베 황실의 언니였던 사카히토 공주는 간무 덴노의 부인이 되어 아사하라 공주를 낳았지만, 아사하라 공주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혈육이 단절되었다. 844년, 귀족에서 주체로 강등된 황실 중, 미네오 왕자는 "타카시나노 마히토"라는 성을 부여받아 다카시나 가문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나 미네오의 손자 다카시나노 모로나오가 입양된 아이이기 때문에 그의 가족 라인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