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미
1. 전조의 인물
王彌
(? ~ 311)
전조의 인물. 왕기(王頎)의 손자.
동래 사람으로 집안 대대로 2천석의 관직을 가졌고 학술, 용기, 지략을 가져 말타고 활 쏘기를 잘해 청주 사람들은 그를 비표(飛豹)라고 불렀으며, 젊어서 유연과는 친구로 지냈다.
306년 3월에 현의 현령 유백근이 반란을 일으켜 현공이라 자칭하자 왕미는 그를 따르면서 장사에 임명되었으며, 왕준이 장수를 파견해 유백근을 토벌하자 도망가서 장굉산에 들어가 도적떼가 되었다. 307년 2월에 청주와 서주 두 주를 노략질하고 스스로 정동대장군이라 칭하면서 2천석 벼슬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해 죽였으며, 동해왕 사마월이 공령거 국선을 동래태수로 삼아 공격하게 했지만 왕미가 국선을 공격해 죽였다.
영청주자사 구순의 공격에 패하자 사자를 보내 유연에게 귀부해 진동대장군, 청서이주목, 도독연해제군사에 임명되었고 308년에 도망해 흩어졌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군사가 다시 크게 떨쳤으며, 제장을 나누어 파견해 청주, 서주, 연주, 예주 등을 공략했고 4월 13일에 허창으로 들어갔다. 5월에 환원관으로 들어가 진나라의 군사를 격파했으며, 19일에 낙양에 도착해 진양문에 주둔했다가 북궁순이 용사 100여 명을 모집해 진지를 돌격하자 대패했다.
22일에 건춘문에 불을 질러 동쪽으로 갔고 왕연이 좌위장군 왕병을 파견해 추격하고 칠리간에서 싸웠다가 패배했으며, 달아나서 황하를 건너 왕상과 지관에서 평양으로 갔다. 유연이 시중 겸 어사대부를 파견해 영접하자 사예교위, 시중, 특진의 직책을 받았으며, 9월에 석륵과 함께 업성을 공격했다.
309년에 시중, 도독청서연예형양육주제군사, 정동대장군, 청주목으로 임명되었다가 초왕 유총과 함께 호관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겨울 10월에 유연의 명으로 초왕 유총, 시안왕 유요, 여음왕 유경과 함께 정예 기병 5만명을 인솔해 낙양을 공격했다. 14일에 관군장군 호연랑이 사마월의 참군인 손순이 호연랑을 죽이고 평진장군인 안양애왕 유려를 익사하게 하자 유총에게 평양으로 돌아갔다가 군량을 가지고 다시 공격하자고 권했지만 유총이 머물기를 요청해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선우수지의 진언에 따라 유연이 유총 등을 돌아오게 하자 낙양에서 철수했으며, 11월 20일에 남쪽으로 나아가자 유민들이 성읍에 불지르고 2천석 녹봉의 관리와 장리들을 죽이는 등 호응을 받았다. 12월에 왕미는 좌장사 조억을 안동장군의 업무를 수행하게 해 동쪽으로 가서 청주를 공략하게 하고 그의 집안 사람들을 영접하겠다고 표문을 올려 유연에게 허락받았다.
310년에 3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석륵을 만나 서주, 예주, 연주를 침입했으며, 겨울 10월에 하내왕 유찬, 시안왕 유요와 함께 무리 4만명을 인솔해 낙양을 공격했다. 311년 6월 5일에 낙양의 선양문에 이르렀고 유요가 자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낙양에 들어간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했는데, 왕미는 유요에게 낙양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낙양을 도읍지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요가 이를 채용하지 않자 유요와 틈이 벌어지게 되자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항관에 주둔했으며, 전(前) 사예교위 유돈이 동쪽으로 가서 청주를 점거해 천하의 형세를 관망하라고 권유하자 그 말을 따르기로 한다. 석륵과 겉으로는 친했지만 속으로는 서로 시기해 유돈이 석륵을 도모하라고 하자 편지를 써서 유돈에게 조억을 부르게 했다가 석륵을 초청해 함께 청주로 가자고 했는데, 유돈을 석륵에게 보냈다가 유돈이 석륵에게 죽임을 당했다.
왕미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고 장수인 서막, 고량 등이 군사들을 이끌고 떠나자 왕미는 점차 세력이 쇠퇴했으며, 왕미는 석륵이 구희를 붙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싫어했지만 편지로 축하했다. 석륵은 유민인 진오와 봉관에서 싸우고 있는 상태였고 왕미도 유서와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석륵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자 석륵이 구원해서 유서를 격파했다.
겨을 10월에 석륵이 왕미를 초청해 기오에서 연회를 열었으며, 왕미는 연회에 참석하려고 했다. 그러자 장사 장숭이 왕미에게 가지 말도록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가 왕미는 연회에 가서 술에 취할 때 살해되었으며, 왕미가 이끌던 무리들은 석륵이 모두 병합했다.
그의 사촌 동생으로는 전조에서 평북대장군을 지낸 왕상(王桑)이 있다.
2. 유송의 인물
3. 고려의 인물
고려의 인물로 개성 왕씨의 중시조. 왕건의 12대손[1] .
왕건의 12대손으로 왕씨들이 모두 몰살 당하자 왕미는 자신의 어머니의 성씨인 윤씨로 바꾸고 동생 왕홍과 함께 도망쳐 충주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후 별 탈없이 살고 있었는데 이웃들과 놀다가 성씨가 윤씨가 아닌 왕씨로 밝혀지자 태종 이방원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왕미는 이때 마침 이방원의 꿈에 태조 왕건이 꿈에 나와 왕씨들을 함부로 죽인다고 질책하자 이방원은 이것에 크게 뉘우쳐 왕미는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 부터 태조 왕건의 후예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고 왕미 또한 볼 탈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