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고려)
王毅
(? ~ ?)
1. 개요
고려의 인물. 왕자지의 아들로 본관은 해주다.
2. 생애
인종 4년(1126) 2월 척준신, 척순 등이 궁에서 피살되자 직접 성을 넘어서 이자겸과 척준경 등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앞서 중랑장 지호가 내직기두 학문의 부탁으로 이 소식을 전했고 내시낭중 왕의까지 직접 와서 급보를 전하니 이자겸 등은 당황해 재추를 비롯한 관료들을 사저에 소집한다. 5월에 이자겸이 진압된 뒤에는 이자겸의 당파[1] 였기 때문에 여러 문벌귀족들과 함께 수령으로 좌천된다.
고려사 김부식 열전에 따르면 이후 인종 13년(1135) 묘청의 난 때 서경 진압군의 일원으로 김부식을 따른다. 여전히 낭중의 벼슬에 있던 왕의는 진숙, 합문지후 전용과 함께 전군(前軍)을 지휘한다.
금석문에 따르면 상서공부원외랑, 시(試)병부낭중 등을 역임했다.
3. 가족관계
- 부: 왕자지
- 모: 황려군부인 김씨
- 본인: 왕의
- 처: 이천 서씨
[1] 누이 왕씨가 이자겸의 아들과 결혼했기 때문에 인척관계에 있었다. 때문에 부친이 척준경과 아무리 가까웠더라도 이자겸의 무리와 함께 처벌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