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1. 개요
2. 상세
3. 사망자 신원 확인
4. 이후
5. 사고 후 책임 소재 논란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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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7일, 충청북도 청주시[1] 우암동에 위치한 우암상가아파트가 붕괴되어 7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
사건 자체는 아직 취임식 전, 즉 노태우 정부 때의 일이지만 김영삼이 당선인 신분이라 사고 공화국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 상세


1993년 1월 7일 새벽 1시 10분경 우암상가아파트 화재가 발생하여 LPG가스가 폭발, 그 충격으로 붕괴되었다. 화재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무리한 설계 및 자금난으로 인해 3차례의 무리한 설계변경과 4층과 옥탑의 증축으로 기초공사에 대한 건물의 하중문제, 굵고 푸석한 황색 자갈 등의 불량 골재의 사용과 낮은 압축강도, 일부철근이 제대로 배근되지 않은 문제, 콘크리트 내에서 나무 조각 등의 이물질 다량 발견 등의 불량시공이 문제였다.
사고 당일 새벽 0시 40분, 지하상가에서 누전으로 추측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진압작업을 벌였으나 불길이 1층으로 번졌다. 새벽 1시경 불길이 2층으로 점차 번져나갔고 주민들은 4층 옥상으로 대피하였다. 이 중 일부 상인들은 물건을 꺼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새벽 2시경 화재는 거의 진압되어갔지만 1층에서 녹은 비닐관을 통해 LPG가스가 새어나왔고 불길이 누설 가스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시 10분, 누설가스가 LPG 가스통 10개를 연쇄폭발시켜 그 충격으로 건물 전체가 내려앉았다.
이 사고로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들, 지하로 내려갔던 상인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실종자 1명을 포함해 28명이 사망하였고 부상자도 48명에 이르렀다.참조 또한 점포 50여개와 2층 ~ 4층의 아파트 건물 전체가 붕괴되어 9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하고 35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3. 사망자 신원 확인


청주 우암상가아파트(당시 주상복합) 붕괴 후 사망자 수습 후 장례를 치르던 도중 고재인(20, 가동 501호)씨로 확인돼 대전 화장장에서 화장된 시신이 사실은 고씨가 아니라 그동안 실종으로 처리되었던 이상선(17, 가동 201호) 군으로 확인되었던 사건으로 이후 신원 확인이 되지 않던 사체 1구가 고씨로 확인된 해프닝이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유가족이 시신 확인에 있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치아로만 사망자를 확인해서 발생했던 일이며, 이후 시신에서 발견된 유품으로 인해 화장된 시신이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하고 오열하였다.

4.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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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2년 5개월 만인 1995년 6월 1일 지하 1층, 지상 8층의 평화상가아파트라는 주상복합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5. 사고 후 책임 소재 논란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부실시공 및 관리 감독 부실로 사고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시 당국보다 소방관들이 연일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몇몇 소방관은 이 일을 계기로 사직하였다. 소방관들은 건물 붕괴가 자신들 책임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12일 후 내무부에서는 이원종 충북지사[2]나기정 청주시장에게 경고 조치하고, 보사환경국장은 직위해제한 데 비해 충북 도 소방본부장과 청주소방서장, 청주소방서방호과장에게는 중징계 및 지방직 전직, 직위해제 등의 징계를 내렸다. #

6. 기타


구조활동을 하던 장현철 소방관은 당시 폐허 더미에 덮혀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소방서를 떠나지 않고 재활하여 10년간 내근 후 2005년부터 현장 활동을 재개했다.

7. 관련 문서


  • 로넌 포인트: 이쪽도 가스폭발로 붕괴가 일어난 건물이지만, 부실공사가 실질적인 원인이다.

[1] 현재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이지만 사건 발생시에는 그냥 청주시였다. 청주시에 일반구인 상당구흥덕구가 설치된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이후 우암동은 2014년 6월까지는 상당구였다가 청주-청원 통합과 동시에 청원구로 바뀐다.[2] 이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서울특별시장으로 영전하고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또 터지면서 경질되어 짐을 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