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용택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우용택은 1868년 9월 14일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생김새가 우람하고 풍채가 매우 좋았으며, 의기가 당당한데다 거리낌이 없어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한다. 어느 해 서울로 상경한 그는 박제순을 찾아가 주머니에서 돈 한 푼을 내어놓으며 말했다.
박제순이 어이없어하며 꾸짖었다."대감, 벼슬 1돈 어치만 파시오."
그러자 우용택이 고함을 질렀다."천하에 고얀 놈. 네가 참봉 주제에 감히 한 나라의 재상을 능멸하려 함이냐?"
"네놈들이 벼슬 팔아먹는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 소리냐? 내 돈은 돈이 아니냐, 왜 팔지 않는 것이냐? 1돈짜리 벼슬이 없으면 내가 못사는 거지. 나는 이것밖에 없으니 그럼 간다!"
그러고는 횅하니 가버렸다고 한다.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을 벌인 뒤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하여 하천항해권을 탈취하는 등 침략정책을 강화하자, 강원형 등의 동지들과 이러한 침략행위를 규탄하는 공개장을 각국 공사관에 발송하였다. 또한 일제가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조직하여 매국행위에 내세우자 일진회를 규탄했으며, 1905년 5월 여중용, 이병구(李秉九), 지우석(池禹錫) 등과 밀의하여 일본공사관 폭파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탐지되어 체포되어 일본 헌병대에서 고초를 겪다가 7월 24일에 풀려났다.
이 시기 외무대신 이하영이 일본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의 어로권을 넘기고 일본 헌병대에 한성의 치안권을 넘기더니, 급기야 내륙 하천의 항해권마저 일본에 넘겨줬다. 이에 격노한 그는 이하영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1905년 8월21일, 아침부터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외부대신 이하영은 찜통더위 속에 관복을 걸치며 입궐 준비를 서둘렀다. 이하영이 입궐 준비를 끝냈을 때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초라한 행색의 경상도 선비가 찾아왔다. 선비는 ‘경상도 의성 땅에 사는 우용택’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곤 대뜸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우용택은 그 직후 이하영의 옆구리를 차고 뺨을 후려갈겼다. 이하영은 황급히 하인들을 불러 겨우 봉변에서 벗어났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또다시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며칠간 고초를 겪다 풀려났다.“네가 동래 천무(賤巫)로 대신까지 되었으면 나라에 갚음이 있어야지 나라를 팔다 못해 하천까지 팔아먹느냐. 장차 또 무엇을 팔 테냐? 저 역적을 죽여라.”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는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대한협회(大韓協會)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일병합 후에는 해평면장이 되었는데, 군청에서는 원할한 지방업무를 보기위해 지방 유지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시로 군에 들어오라는 명령조의 공문을 보낸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일제 관원들이 큰 일이 있으면 우용택 씨를 방문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청에서 특별히 논의할 중요한 일이 있으니 꼭 참석해 달라고 하면서 일종의 협조공문을 보냈다. 그 내용은 '해평 면장은 아무개 일로 군청으로 모일 모시까지 출두하시오.’라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군청에서 공문으로 보내왔으니 면장의 직책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가야되지 않겠느냐”하고 염려하자, 우용택은 “정 그렇다면 그럼 내 한번 들어 가보지” 하면서 군청을 방문하였다.
그는 군청 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고 머리만 안쪽으로 내민채 다음과 같이 외쳤다.
즉, 출두(出頭)하라고 하였으니 머리만 내민다는 것이었다.“해평 면장 우용택 출두하였소!”
또 조선총독부에서 각 지방에 충신, 효자, 열녀를 보고하라는 공문이 왔었다. 이때 우용택은 보고하기를, 충신은 이완용, 효자는 장승원(張承遠)[1] 열녀는 해평 장터 김선낭(金仙娘, 기생)이라고 추천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해평면장에서 면직되었다. 그 후 경북 선산군에서 은거하다가 1943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우용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칠곡의 친일 부호. 광복회원에게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