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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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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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충청북도 단양군
'''원시조'''
사문명 (姒文命)
'''시조'''
우현 (禹玄)
'''집성촌'''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대구광역시 달서구 · 달성군
경상남도 창녕군 장마면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원읍
황해도 연백군 · 신천군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인구'''
191,287명(2015년)
1. 개요
2. 역사
3. 족보의 역사
4. 해당 성씨를 가진 유명인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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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청북도 단양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본관은 단양 단본으로, 정말 '''이론적으로 족보만 따지면''' 모든 우 씨는 결국 하나의 혈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정말 그럴 확률은 한없이 낮다.
인구는 2015년 기준 194,713명이며, 집성촌은 경북권[1]에 많다. 수도권에서는 화성시 정남면, 매송면, 장안면과 파주시 탄현면, 법원읍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특히 파주시 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해서 신성교통, 제일여객, 신성석유, 신성가스 등 석유 및 버스운송 분야를 단양 우씨 문중이 꽉 쥐고 있다.
로마자 표기는 '''Woo'''가 대부분이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U가 되는데, 이는 달랑 한 글자에 불과해서 우장춘 박사 외의 용례가 거의 없다.
현대의 인물들은 대부분 시조 27~34세손에 포진되어 있으며 대동항렬이 있긴 하나, 각 파에 배정된 항렬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2].

2. 역사


시조 우현(禹玄)은 중국 하나라 우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우현이 고려 때 우리나라에 와서 단양에서 살면서 1014년(고려 현종 5) 진사로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호장을 지내고 문하시중 평창사에 추증되었다. 그의 10세손 우현보가 고려 공양왕 때 '''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였다.
우씨(禹氏)는 '''중국 계통'''으로 '''하나라(夏) 우왕(禹王)의 후예(後裔)'''라 전한다. 그러나 문헌(文獻)의 실전(失傳)으로 선계(先系)는 상고(詳考)할 수 없다. 우리 나라 우씨(禹氏)의 연원(淵源)은 우현(禹玄)이 고려 초 중국에서 건너와 단양(丹陽)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부터이다. 우현(禹玄)은 정조 호장(正朝戶長)을 지냈고,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追贈)되었다. 그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현(玄)의 10세손 우현보(禹玄寶)가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우현(禹玄)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단양(丹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송사 고려전(宋史高麗傳)에 의하면 그 당시 고려인으로서 송나라에 귀화하여 고관이 되어 이름을 날린 이도 있었지만 송나라 사람으로서 사절혹은 상전을 따라 고려에 귀화하여 조정에서 벼슬한 사람은 더욱 많았다고 한다.
문헌(文獻)에는 단양 외에도 예안·영천·강주 등 4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세거지(世居地)에 불과하며 현재는 단양 우씨(丹陽禹氏) 단일 본으로 전해진다.

3. 족보의 역사


  • 역동 서원과 우씨 세보
퇴계 이황의 학인(學人) 중 우성전(禹性傳)이 있었다. 퇴계는 우성전(禹性傳)에게 서원을 짓고 역동 우탁(易東 禹倬)을 모시라고 권했다. 그래서 안동(安東)에 역동서원(易東書院)이 생겼다. 역동 서원은 사액 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600년(조선 선조 33) 처음 세보(世譜)가 만들어졌다.
  • 본관의 통일
역동 서원이 사액되어 조세 감면이 이루어지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단양을 본관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탁의 후손임을 자처했다. 고려사에 존재하는 이름 중에 세보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 기록에 남은 가장 오래된 우씨
남자는 만성통보 등에 의하면 남북조시대 상주 자사(常州刺史) 우만성(禹万城)이고, 여자는 만성통보략 명인편을 보면 주(周), 제나라(齊國)의 우씨(禹氏)다.
  • 우씨의 기원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
만성통보략 명인편(萬姓統譜略 明人編)에 의하면, "우씨(禹氏)는 본(本)이 롱서(隴西)고 우음(羽音)이며 즉(卽) 하우씨(夏禹氏)의 후(后)이다." 를 볼 때 왕비 씨족의 성씨이거나 하우씨에게 사성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하우(夏禹)씨의 후손 하후(夏侯)씨
씨성과 보첩(譜牒)에 대한 변증설 주석에서 "우(禹) 임금의 후예가 하(夏)씨로 되었는데, 기간공(杞簡公)의 아우 타(佗)가 노(魯)로 망명하여 후작(侯爵)을 받았으므로 다시 하후(夏侯)씨가 생기게 되고, (陳) 나라의 후예가 식(息)씨로 되었는데, 식 공자(息公子) 변(邊)이 대부(大夫)의 작위를 받았으므로 다시 식부(息夫)씨가 생기게 된 유를 말한다."를 볼 때 하(夏)가 망한 후 사(姒)씨의 후손 중 일부가 하(夏)씨를 만들고 훗날 타(佗)가 하후(夏侯)씨를 받은 후 하후(夏侯)씨가 생긴 걸 알 수 있다. 우(禹)씨는 하우씨의 후손이라는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고 만성통보략 명인편(萬姓統譜略 明人編)의 기록이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4. 해당 성씨를 가진 유명인 일람



[1] 대표적으로 우병우(봉화군 출신), 우규민, 우동균(대구광역시 출신). 단양군은 경상북도와 인접해 있다.[2] 가령 화성의 한 문희공파 집성촌은 시조 27세손이 주로 "永"자 항렬를 쓰고 시조 28세손이 주로 "根"자 항렬을 쓰는데(시조 29세손부터는 문희공파 대동항렬 그대로 載/東 - 30세손 九/允 순으로 내려간다.), 실제로는 꽤 높은 항렬대이나 대동항렬로는 시조 40, 41세손이라는 까마득히 낮은 항렬의 항렬자다 보니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13세손은 대략 '''400여년 후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