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대 28장

 

'''雲臺二十八將'''
1. 개요
2. 운대 28장의 서열


1. 개요


후한 광무제를 따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던 28명의 사람을 가리킨다. 왕망신나라 때문에 단절된 한나라를 다시 중흥시켰다고 하여 '중흥 28장(中興二十八將)'이라고도 한다. 여기서의 운대란 남궁에 있었던 전각의 명칭으로, 여기에 이들의 화상을 걸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붙였다. 후한이 건국되는 데 기여한 '건국공신'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광무제 당대에는 없었고, 명제가 전대의 공신들을 기억하고자 이들의 초상을 그리도록 하여 운대에 걸어두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28명 이외에도 왕상(王常), 이통(李通), 두융(竇融), 탁무(卓茂)도 들어가서 모두 32명이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후한서>에 열전이 있다.
명장으로 유명한 복파장군 마원은 운대 28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광무제의 며느리이자 명제의 황후인 명덕황후 마씨가 딸이라서 사후 국구/외척의 신분이 되었기도 했고, 마황후가 공신들이 득세할 것을 염려해 황제에게 부탁했기 때문.[1]

2. 운대 28장의 서열



1. 태부 고밀후 등우(太傅高密侯鄧禹)[2][3]
2. 대사마 광평후 오한(大司馬廣平侯吳漢)
3. 좌장군 교동후 가복(左將軍膠東侯賈復)[4]
4. 건위대장군 호치후 경엄(建威大將軍好畤侯耿弇)[5]
5. 집금오 옹노후 구순(執金吾雍奴侯寇恂)
6. 정남대장군 무양후 잠팽(征南大將軍舞陽侯岑彭)
7. 정서대장군 양하후 풍이(征西大將軍陽夏侯馮異)
8. 건의대장군 격후 주우(建義大將軍鬲侯朱祐)[6]
9. 정로장군 영양후 제준(征虜將軍潁陽侯祭遵)
10. 표기대장군 역양후 경단(驃騎大將軍櫟陽侯景丹)
11. 호아대장군 안평후 개연(虎牙大將軍安平侯蓋延)
12. 위위 안성후 조기(衛尉安成侯銚期)[7]
13. 동군태수 동광후 경순(東郡太守東光侯耿純)
14. 성문교위 낭릉후 장궁(城門校尉朗陵侯臧宮)
15. 포로장군 양허후 마무(捕虜將軍楊虛侯馬武)
16. 표기장군 신후 유륭(驃騎將軍慎侯劉隆)
17. 중산태수 전초후 마성(中山太守全椒侯馬成)
18. 하남윤 부성후 왕량(河南尹阜成侯王梁)
19. 낭야태수 축아후 진준(琅邪太守祝阿侯陳俊)
20. 표기대장군 참거후 두무(驃騎大將軍參蘧侯杜茂)
21. 적노장군 곤양후 부준(積弩將軍昆陽侯傅俊)
22. 좌조 합비후 견심(左曹合肥侯堅鐔)
23. 상곡태수 회양후 왕패(上谷太守淮(陽)[陵]侯王霸)
24. 신도태수 아릉후 임광(信都太守阿陵侯任光)
25. 예장태수 중수후 이충(豫章太守中水侯李忠)
26. 우장군 괴리후 만수(右將軍槐里侯萬脩)
27. 태상 영수후 비동(太常靈壽侯邳彤)
28. 효기장군 창성후 유식(驍騎將軍昌成侯劉植)
횡야대장군 산조후 왕상(橫野大將軍山桑侯王常)
대사공 고시후 이통(大司空固始侯李通)
대사공 안풍후 두융(大司空安豐侯竇融)
태부 선덕후 탁무(太傅宣德侯卓茂)

[1] 마원 사후에, 마원에게 원한을 품은 자들이 모함했다. 이 때문에 작위가 잠깐 추탈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작용혔다고 보는 견해 또한 있다.[2] 서열 1위다.[3] 등우의 먼 후손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등지가 있다.[4] "가부"라고 부르기도 한다.[5] "경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6] "제호"라고 부르기도 한다.[7] "요기"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