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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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흥행
3. 사건사고
4. 기타
5. 뒷이야기
6. 내용


1. 개요


현대에는 보통 트랙터를 이용하여 농사를 짓기 때문에 보기 드문, 로 농사를 짓는 시골 할아버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원래 모 지상파에 방영하기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였다고 한다.
영어권 개봉 시 제목은 Old Partner. 제목의 워낭은 마소의 목에 거는 방울을 가리키는 단어로, 영어권의 카우벨과 그 역할이 같다.

2. 흥행


2009년 1월 15일에 개봉했으며 다큐멘터리에 독립영화라는 조건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흥행을 기록했다. 통합전산망 집계 총 관객 '''2,953,076명.''' 현재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닌것 같겠지만 2009년 당시엔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A급 연기파 스타로 불리는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들도 이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입소문으로 퍼질 뿐이었지만 CGV같은 대형 상영관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개봉 초기에 CGV에 걸리지도 않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SNS도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고 영화 관람객 자체가 적었던 10년 전에 이 관객을 낸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어르신들이 오랜만에 영화관에 나오는 일도 많았다.
이전까지 독립영화 관객수 최다기록은 아일랜드의 음악영화 원스가 가지고 있었다. 총 관객 수는 225,000명, 그러니까 거의 10배 이상의 초월적인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한 셈이다.

3. 사건사고


개봉 직후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는데 사람들이 '''"이런 촌구석에 어르신을 방치하는 불효자!!"''' 라면서 출연하신 노인분들 중 한분의 아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 출연하신 어르신께서는, 영화 개봉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진 바람에 오히려 평화롭던 일상이 깨질 정도였다고 표현하셨다. 덕분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서명운동으로 노부부를 더는 괴롭히지 말라고 외쳤다.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할머니 잔소리고 2번째가 워낭소리 감독인 이충렬이라고 일갈했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싫어할 수도 있다. 저 관광객 문제는 2차 문제. 촬영하면서 얼마나 사생활에 피해를 입었을까 생각해 보자. 일상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카메라에 익숙해지기 힘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했으니…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유사한 성격의 문제는 영화 집으로...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4. 기타


최원균의 집 옆에 작품에 출연한 소의 무덤이 있으며 청춘불패 출연진들이 거기 가서 추모하기도 했다.
참고로 촬영지가 촬영지인 만큼 등장인물들이 모두 진하디진한 경상도말을 구사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한글 자막(...)이 달려 있다. 그런데 이 자막이 군데군데 틀린 부분이 있다(...) 뜻이 아예 오역되진 않았지만, 경상도 사람 입장에서는 자막 보고 "저게 저 뉘앙스가 아인데" 싶은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미국의 영화제에 상영되었고 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미국 관객들도 눈물을 흘렸다는 후기가 이 영화내용을 담은 책에 실렸다.
그런데 정작 농촌 출신 어르신들에게는 무덤덤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본 한 시골 출신 할머니는 '''"웬 소새끼만 나오는 걸 보고… 영화 볼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걸 사 먹지…"''' 물론 재미있게 보는 노인들도 적지는 않았다.
<워낭소리>는 순제작비가 8,500만 원이며 극장에서만 190억 7,439만 8,900원의 매출을 올렸다. 마케팅 비용 포함해도 2억 원으로 '''수익률 9,500%'''의 기적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수익 분배로 인한 다툼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 대신 엄청난 수익률에 대한 상업적인 관심만이 나타나는 씁쓸한 결과를 보여 줬다.
<워낭소리> 다음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3번째로 관객이 많이 본 영화는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를 다룬 <울지마 톤즈>로 약 44만 5천 관객이다. 그 다음 4위가 똥파리[1]이며 그 밖에 10만 관객을 넘기는 영화는 거의 없다.[2] 독립 저예산 영화 특성상 관객 1만 넘기기도 어려운 판국에 이 영화가 대박을 거두었다고 독립영화 개봉관이 늘어나지도 않고, 극장은 여전히 외면하는 판국에 이런 1편의 성공으로 저런 발언하는 게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이기 때문.
그리고 2014년 독립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3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워낭소리 흥행을 깼다. 둘 다 똑같이 노인을 상대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5. 뒷이야기


그리고 감독 이충렬은 이후 사기를 당해 많은 돈을 날려 <매미소리>라는 후속편 다큐멘터리 기획이 죄다 엎어졌다. 게다가, 이 <워낭소리> 제작자와 수익금 분배를 두고 소송을 제기 중인 데다가 2011년 6월 뇌종양 판정까지 받았다. 관련 기사 그리고 <워낭소리>를 제작한 것을 몹시 후회한다고 한다.
2013년 10월 1일, 최원균 할아버지가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누렁이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오지랖 넓은 일부 관객들에게 불효자라고 욕을 먹었던 최원균 할아버지의 아들은 셋째아들이자 서울힐튼호텔의 요리사 최종섭씨였으며, 2014년 고향으로 귀농하여 부농이 되었다고 한다.[3]. 그 외에 장남 최영두는 서양화가, 4남 최명진은 트로트가수다[4]. 딸 최순영은 귀농다큐 살어리랏다에서 동생 최종섭과 함께 출연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2019년 6월 18일, 이삼순 할머니가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2019년 7월, 촬영지가 화재로 창고 1개만 빼고 전부 불탔다. 그리고 한 달이 넘도록 방치되고 있었다. 아들 최씨는 건축가와 후배 등이 불탄 집을 테마공원으로 만들어 워낭소리의 흔적을 보존할 계획이라고 하며 봉화군도 화재 폐기물 처리 등 지원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기사
이충렬 감독은 투병 이후 2013년부터 매미소리라는 극 영화 제작을 추진하였고 2016년 크랭크인 예정이었다가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어 '매미소리'를 2019년 9월 대본 리딩을 마치고 촬영을 시작했다.

6. 내용



등장인물은 40년을 산 늙은 소 "누렁이"(1967∼2008)[5]와 팔순 노인 최원균 씨와 이삼순 씨 부부. 물론 다큐멘터리니까 본인 역. 40년을 동고동락하며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온 소와 인간이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1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중간에 자식들의 계속된 권유로 한번 소를 팔려고 하지만[6], '''너무 나이가 들고 고생한 탓에 빼빼 말라서''' 아무도 안 샀다.[7]
누렁이의 체력 부담을 덜기 위해 새 소를 한 마리 사기도 했는데 요즘 세상에 일소가 있을 리 없어 육우를 들여온지라 '''말을 잘 안 들었고 자꾸 늙은 소를 괴롭혀서''' 관객들에게 욕을 먹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새끼를 밴 상태여서 낳고 기르는데 시간 보내느라 일은 늙은 소가 다 하고 축사에 틀어박혀서 놀고 먹었다(...). 그래도 송아지와 헤어지면서 우는 장면은 찡하다. 감독의 후일담에 의하면 이 젊은 소는 어느 정도 길들여져서 할아버지의 수레를 끌게 되었는데 너무 빨라서 할아버지가 적응을 못 하셨다고.
시작부터 소가 늙었던지라 아팠는데, 결국 1년 뒤에 너무 나이가 들어 쓰러진 채로 일어나지 못하다가 하늘나라로 갔으며 그 뒤에는 소가 일하던 밭 한가운데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1] 똥파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똥파리는 독립영화일 뿐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다. 다만 독립영화 문서에서도 <워낭소리>나 <똥파리>를 저예산 독립영화 범위에 같이 넣고 있다.[2] 종교성 영화 제외. 교회 같은 곳에서 장기간 개봉하기 때문이다. 울지마 톤즈 같은 경우엔 일반 극장 상영 관객 수로만 2위로 인정받은 것이다.[3] 인간의 조건 시즌 3에서 최현석이 이를 거론했다.[4] 청춘불패 시즌1 20회에 나왔다.[5] 소의 평균 수명은 보통 15년에서 20년 사이이므로 평균 수명의 2배, 사람으로 치면 160살 이상을 산 셈이니 대단히 장수한 셈이다. 참고로 기록된 가장 장수한 소는 1993년 48세로 사망한 아일랜드의 빅 베르타란 암소였다.[6] 사실 팔기 싫어서 일부러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7] 측은하게 여긴 상인들이 웃돈을 주고 팔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