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북위)

 

'''북위 추존 황제
孝宣皇帝 | 효선황제'''
<colbgcolor=#DC143C>'''묘호'''
없음
'''시호'''
효선황제(孝宣皇帝)
''''''
원(元)
''''''
소(劭)
''''''
자눌(子訥)
'''생몰 기간'''
? ~ 528년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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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북위의 황족으로 자는 자눌(子訥). 헌문제 탁발홍의 손자이자, 팽성왕 원협(元勰)의 아들이다. 모친은 팽성왕비 이씨로 효장제와는 동복형제가 된다.

2. 생애


원소는 팽성왕 원협이 죽고 부친의 작위를 계승하였다. 효명제 즉위 초에, 양나라무제 소연이 군대를 보내 북위의 변경을 침범하자, 원소는 표문을 올려 곡식 5천 곡과 명주 6백 필, 팽성국의 관리 2백 명을 바치며 군용으로 충당하고자 했으나, 당시 태후였던 호태후는 원소의 뜻을 가납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원소는 북위에서 종정소경으로 제수되었고, 사지절, 산기상시, 평동장군, 청주 자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제주의 유균(劉均)과 방경(房頃) 등이 반란을 일으켰고, 양나라의 군대가 유균과 방경의 반란에 맞춰 국경을 침입하자, 원소는 빈번히 이들을 막아냈다.
523년 육진의 난이 일어나면서 이주영이 두각을 나타낸다. 호태후는 육진의 난 과정에서 덕행을 잃었고, 원소는 이때부터 두 마음을 품기 시작한다. 528년, 이주영이 호태후와 효명제의 태자를 살해하고 효명제의 종숙인 원자유를 옹립하니, 이가 북위의 효장제이다. 효장제가 즉위하고 원소는 무상왕(無上王)으로 높여졌다가, 이주영이 하음의 변을 일으키면서 이때 살해된다. 사후 원소는 무상황으로 높여졌다가, 529년 효선황제(孝宣皇帝)로 추시되었다.

3. 가족 관계


원소는 두 아들로 원소(元韶)와 원습(元襲)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