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크롱카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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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삶
2.1. 초년
2.2. 역사적 보도 :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보도
2.3. 역사적인 순간들을 보도하다
2.4. 은퇴
3. 업적


1. 개요


Walter Cronkite.
1916년 11월 4일 ~ 2009년 7월 17일
미국뉴스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의 뒤를 이은 CBS의 전설이다. 보통 뉴스 진행자를 일컫는 '앵커'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이 분 덕분이다.[1] 클로징 멘트 "And that's the way it is."도 유명하다.[2]

2. 삶



2.1. 초년


1916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대학교에 다닐 때 지역 신문사에 들어가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을 중퇴한 뒤에는 아나운서로 일하다가 UP통신에 들어가 제2차 세계대전을 보도하면서 유명해졌다. 그 뒤 에드워드 머로의 눈에 들어 1950년에 CBS에 입사했다. 원래는 한국전쟁때 종군기자로 파견되기로 했었고, 파견전 시청자에게 한국전쟁의 현상황과 한반도에 대해 미리 설명하는 방송을 했었다. 그런데 이 방송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고[3], 월터크롱카이트는 종군기자 파견을 포기하고 앵커로 발탁된다. 짧은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취재하면서 '앵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여러 프로그램과 스포츠 중계를 맡으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그리고 드디어 1962년 4월에 CBS 이브닝 뉴스 진행자에 오른다.

2.2. 역사적 보도 :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보도



From Dallas, Texas, the flash, apparently official: "President Kennedy died at 1 p.m. Central Standard Time." 2 o'clock Eastern Standard Time, some 38 minutes ago.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전달된 공식적인 속보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38분 전인 중부 시간 오후 1시, 동부 시간으로 오후 2시에 사망했습니다.

크롱카이트는 미국 역사의 격동기에 뉴스 진행자로 있으면서 역사적인 순간들을 많이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보도가 있다. 크롱카이트가 진행자 자리에 오른 지 2년도 안 되어, 1963년 11월 22일에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 주에서 피격당했다. 당시 늘 자신의 데스크에 앉아 점심을 먹던 크롱카이트는 이 속보를 접하게 된다. CBS는 속보가 전해지자마자 정규방송을 중단했고, 크롱카이트가 속보 진행을 맡았다. 처음에는 음성만 전달했으나 이후 계속 속보가 도착하면서 결국 동부시간 오후 2시부터 크롱카이트가 영상 뉴스 진행을 맡았다. 크롱카이트는 현지와 연결하면서 실시간으로 도착하는 소식을 상세히 전달했다.[4] 사태는 점점 급박해졌고, 결국 동부 시간으로 오후 2시 38분, 공식적인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크롱카이트는 안경을 벗고 감정을 억누르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후 크롱카이트는 쉬지 않으며 용의자 리 하비 오즈월드의 체포 및 사망, 케네디의 장례식을 보도했고, 그의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다.

2.3. 역사적인 순간들을 보도하다


이 외에 크롱카이트가 보도한 역사적인 순간들은 다음과 같다.
  • 베트남 전쟁 보도 : 크롱카이트는 1968년에 직접 베트남으로 날아가 베트남의 현실을 담았고, 그 해 2월 27일 방송에서 전쟁이 왜 일어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리포트 기사를 방영했다. 또, 평소 원칙을 깨고 논평을 했다.
  •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 로버트 케네디 암살과 폭력으로 얼룩진 민주당 전당대회[5]
  •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6][7]
  • 워터게이트 사건 : 정부의 노골적 방해에도 불구하고 1년 6개월 간 사건을 조사해 결국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 닉슨 대통령의 사임
  •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사망 : 수신호까지 취해가면서 사망 소식을 보도했다.
  • 이란 인질 사태

그의 주요 보도들을 담은 영상이다.

2.4. 은퇴


크롱카이트는 1980년에 은퇴할 것을 선언했고, 1981년 3월 6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진행자 자리를 댄 래더(Dan Rather)[8]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 이후에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고, 사회운동도 많이 했다. 2009년 심혈관 질환으로 92세로 숨을 거두었다. 사망 당일 아들 칩은 부친의 사인에 대해 "노인성 치매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3. 업적


크롱카이트는 '''대통령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최대한 객관적인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뉴스 진행자의 전형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다룬 지식채널e 영상이다.
[1] 드물게 뉴스 진행자를 크롱카이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2]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이 멘트를 패러디하기도 했다.[3] 크롱카이트는 당시 사진과 짧은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와서 시청자에게 알기쉽게 설명했다.[4] 이 때 현지에 나가 있던 사람이 나중에 크롱카이트의 뒤를 이어 진행자가 되는 댄 래더이다.[5]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댄 래더(후에 이브닝뉴스 앵커자리를 물려받는다.)가 밀쳐지자 사적인 감정을 담아 말을 하기도 했다.[6] 크롱카이트는 미국의 우주 계획에 관심이 많았으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도 보도 당시 안도하며 "Whew, Boy!"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우주 경쟁부터 우주왕복선 시대까지, NASA의 한 시대가 모두 그의 목소리를 통해 기록되었던 셈. NASA에서도 거의 웬만한 우주비행사에 준하는 공로상들을 안겨줬다. NASA의 아폴로 시절을 다룬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가상의 방송국에 근무하는 가상의 앵커 에멧 시본이 등장하는데, 가공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크롱카이트라는 평을 받았다. [7] 달에 착륙하는 순간 크롱카이트가 안경을 벗는 장면은 영화 아폴로 13호에도 등장했다. [8] 댄 래더는 이후 2004년까지 진행자를 맡았다. 둘이서 42년을 해먹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