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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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중 한명으로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이다. 키가 크고 씩씩하며 활을 잘 쏘아 세종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무과 출신이나 첨지중추원사, 경원도호부사, 경원절제사, 의주 목사, 평안좌도절제사, 판강계도호부사 등을 두루 거쳐 세조가 즉위한 뒤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는데, 지극히 청렴한 성품 탓에 고위 관직을 지냈으면서도 초가집에서 살았으며 때로는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박팽년 등이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초청해 연회를 여는 날 유응부와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등을 별운검[1]으로 선정해 그 자리에서 세조를 시해하고 단종을 다시 옹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한명회에 의해 세조가 별운검을 취소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유응부는 그래도 계획대로 하고자 했지만 성삼문과 박팽년 등이 거사를 뒤로 미루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시행되지 않았는데, 이에 함께 모의했던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에게 고함으로써 계획이 발각되었다.
결국 다른 사육신과 함께 고문을 받았는데, 남효온의 육신전에는 달궈진 쇠로 몸을 지지는데도 얼굴 빛이 변하지 않았을 뿐더러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고 형리에게 호통을 치거나 입만 산 서생들과 같이 계획을 짜면 안 된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더라[2]고 한탄하는 등 패기 넘치는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1] 2품 이상의 무관이 검을 차고 국왕을 호위하던 임시직.[2] 연회장에서 그대로 세조를 시해했어야 하는데 성삼문 등이 굳이 말리는 바람에 일이 이리 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