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장편
1. 개요
諭將篇. 조선 제7대 왕인 세조가 1462년(세조 8)에 저술한 한국의 병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어제유장(御製諭將), 유장삼편(鍮將三篇)이라고도 부른다.
1462년에 저술된 한국의 병법서로, 당시 왕이었던 세조가 직접 집필하였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병법대지와 함께 유장병법대지(諭將兵法大旨)라 칭하기도 한다.
1462년에 세조가 처음 저술한 후 자신의 신하인 신숙주에게 사람들이 보기 쉽게 주를 달아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재위 9년(1463년) 10월 2일(정해)에 신숙주와 최항이 주해를 마치자 세조가 두 사람을 화위당에서 인견하고, 술과 표리(表裏)를 하사했다고 한다.
유장삼편은 크게 희유제장편(戱諭諸將篇), 삼하편(三何篇), 수로편(修勞篇)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희유제장편(戱諭諸將篇)은, 당시 장군들이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실태를 아주 적나라하게 지적했는데 세조의 평소 언어 습관을 살필 수 있을 정도로 냉소적인 것이 특징이다.
1400년대 중반에 국왕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의 병서로 당시 우리나라의 군사이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군사들을 다스릴 때 일일이 귀에다 대고 명(命)할 수 없기 때문에, 형명(形名)의 분수를 받들어 나아가고 물러남과 합치고 흩어짐을 미리 정하고, 싸움에 임할 때 한 가지 형세만을 항상 고수할 수 없기 때문에 변칙을 내어 새로운 명령을 기별해 통하고, 기회를 틈타 정도를 쓰거나 기계(奇計)를 쓰는 것이다. 만약 산천이 가로막혀 있으면 꿰뚫어보기 어렵고 100리 길에 군진이 잇달으면 말을 통기하기 어려우므로, 한 부대가 적의 공격을 받을지라도 일제히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때문에 병법을 아는 자는 고개를 숙이며 적합한 장수에게 군율을 맡기는데, 한나라 고조가 바로 그러한 제왕이었다. 반면에 병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군신을 믿지 못해 여러 군사들을 움켜쥐고 직접 다스리는데, 수나라 양제가 바로 그러한 제왕이었다. 병법가의 대요는 이것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마음으로 국가의 대계를 체득해서 사졸의 마음과 힘을 얻어 위기에 임해 적변을 제어하고 사방에서 승리를 얻는 방법과 같은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병법에 달려 있지 않다. 그렇기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경들은 모두 나라의 준재이고 지금 시대에 임금의 지우를 받은 자들이지만, 나라가 태평해 군사의 일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행군하면 하루 걸릴 길을 열흘이 걸려도 이르지 못하고, 진법을 강론하면 통하지 못하며, 포위하려 하면 장사진으로 다투어 내려오고, 진법을 사열하면 명령을 아래에서 받는다. 게다가 말 머리를 이끌고 관청에 나오면 병이 많고 집에 있으면 술에서 깨어나지 않으니, 지극히 안타까운 사람으로서 경들 만한 자들이 없다고 하겠다. 내 말이라 하여 황공하다 하지 말고 그저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나와 더불어 천록을 함께 누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공적으로 스스로 보답을 받는 것이다. 위의 말을 여러 장수에게 농담 삼아 일깨워주라.[1]
- 유장편 희유제장설 서문 중, (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