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중권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유중권
柳重權'''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63년 11월 2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원동면 지령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color=#fff> '''사망'''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아우내장터
<color=#fff> '''종교'''
감리회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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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유중권은 1863년 11월 2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원동면 지령리(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감리회 신자로, 1911년 사재(私財)를 털어 천안에 흥호학교(興湖學校)를 세웠다.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조인원·유관순과 함께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명이 운집한 아우내 장터는 삽시간에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했다. 군중이 일본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고 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까지 합세하여 총검을 휘둘러댔다.
이때 유중권은 일본 경찰이 발포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유중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3. 가족 관계


  • 유중무(1875~1956): 유중권의 동생. 1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장터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형이 피살되자 격분하여 형의 시신을 둘러매고 주재소로 달려가 헌병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유관순(1902~1920): 유중권의 딸. 1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체포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옥사했다. 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 유우석#s-2(1899~1968): 유중권의 아들. 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체포된 뒤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3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다니던 도중 조국수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구금되었으며, 1927년에는 원산청년회를 조직하여 또 일본제국 경찰에 잡혀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구형받는 등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1934년 양양군, 강릉에서 설악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