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푹코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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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응우옌씨 정권(광남국)의 제 8대 국왕. 본명은 응우옌푹코앗(阮福濶, 완복활), 다른 이름은 응우옌푹히에우(阮福曉, 완복효). 생전 광남을 통치할 땐 무왕(武王)이란 존호로 불렸고 사후 손자 응우옌푹아인이 떠이선 왕조를 멸하고 응우옌 왕조를 건국하자 세종무황제(世宗武皇帝)로 추존되었다.
2. 생애
전왕인 숙종의 장자로 처음엔 효정후(曉正侯)에 봉해졌다가 1738년 부왕이 죽자 즉위했다.
1747년 캄보디아에 내전이 일어났고 승리한 앙통이 1748년 캄보디아 국왕으로 즉위했는데 응우옌푹코앗은 캄보디아가 혼란스러운 상황임을 알게되자 캄보디아의 또다른 왕자 앙치를 지원해 캄보디아의 수도 우동(ឧដុង្)을 점령하자 앙통은 하띠엔[1] 의 도독 막티엔투에게 영토 할양을 제시하기까지 했다.[2]
1757년 캄보디아의 왕 우타이 2세[3] 가 자신의 즉위에 도움을 주었다는 명분 하에 삭장, 다영 및 7개 성을 하띠엔의 도독 막티엔투에게 바쳤고 이로써 응우옌푹코앗 시기에 광남은 현재의 베트남 영토를 완성했다.
그 외에 응우옌푹코앗은 향략과 여색을 탐했으며 징세를 크게 걷어 광남 백성들의 불만을 샀다. 이는 사후 1777년에 일어나는 떠이선 농민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1765년 사망했다. 본래 세자였던 응우옌푹하오[4] 가 죽었기 때문에 16번째 아들인 응우옌푹투언이 뒤를 이어 즉위했다.
3. 사후 추존
본래 시호는 건강위단신의성유인자예지효무왕(乾剛威斷神毅聖猷仁慈睿智孝武王)이다. 제후왕의 예로 추시된 시호로 묘호가 없었고 시호가 왕(王)으로 끝났으며 능호도 없었다.
이후 손자 응우옌푹아인이 응우옌 왕조를 건국한 후인, 1806년 황제의 예로 묘호 세종(世宗), 시호 건강위단신의성유인자예지효무황제(乾剛威斷神毅聖猷仁慈睿智孝武皇帝), 능호 장태릉(長泰陵)으로 추존했다.
4. 참고 항목
[1] 광남의 번국이다.[2] 다만 안동은 앙치에게 패하고 시암으로 도망갔다고 한다.[3] 전대 왕이 사망 후 다시 캄보디아는 내전기에 처했고 우타이 2세는 막티엔투에게 귀순하여 그의 양자가 되었다.[4] 효선왕(孝宣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