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영

 

1. 독립 운동가 이석영
2. 전 중소기업청장
4. 대한민국의 천문학자


1. 독립 운동가 이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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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이석영(李石榮, 1855년 ~ 1934년)
본관 : 경주(慶州)
활동 분야 : 독립 운동가
주요 수상 : 건국 훈장 애국장(1991년)
호 : 영석(潁石)
독립 운동가. 본관은 경주. 백사·이항복(李恒福)의 10세손이며 이유승(李裕承)의 6형제 중 둘째 아들로서 조선 말기의 개화파 문신 귤산 이유원(李裕元, 1814년 ∼ 1888년)[1]에게 입양되어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임하려(林下廬)에서 살았다. 21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례원소경을 거쳐 종2품 가선대부에 까지 오른다. 1910년 가장 먼저 독립 운동에 뛰어든 동생인 우당 이회영(李會榮, 1867년 ~ 1932년)의 권유로 가곡리의 모든 땅과 재산을 처분하여 형 건영(健榮, 1853년 ~ 1940년), 동생 철영(喆榮, 1863년 ~ 1925년) 회영(會榮), 시영(始榮, 1869년 ~ 1953년) 호영(1875년 ~ 1933년) 등 6형제와 그의 가족들은 1910년 12월 30일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이주를 하였다. 당시 6형제가 가지고 간 돈은 엽전 26가마였으며 그중 이석영은 가곡리의 소유 전답 6,000석 토지를 매각하여 현금 40만원(당시 쌀 1석은 3원이었음)을 내어놓아 가장 많은 액수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타 매체를 통해 6형제가 삼한 갑족으로 대대로 갑부 집으로 아는데 실제로 방송에서 나오는 남양주 땅은 죄다 이석영이 양자로 들어간 이유원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이유원은 흥선대원군 시절 유명한 부호였는데 집권 초기에 정치 자금을 제공한걸로도 유명하다. 당시 기준으로 이석영은 조선의 부호 순위 4위라고. 경기일보에 따르면 이석영이 물려받은 액수는 현재가치로 1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석영이 유별나게 부자고 나머지 형제의 부도 대단해서, 명동성당 주변이 6형제 집안의 땅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비싼 동네인 서울 도심의 땅들을 형제끼리 나눠가지고 있었다는 말. ㅎㄷㄷ... 그리고 그러한 땅들과 재산을 모두 처분해 독립 운동을 위해 쓴 것도 더더욱 놀랍다.
6형제는 제일 먼저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국내에서 모여든 청년들에게 구국의 이념과 항일 정신을 고취시켜 조국 광복의 중견 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신흥 강습소를 개소하였다. 이것이 바로 신흥 무관 학교의 전신이다. 1911년 4월 제1기 졸업생을 배출하니 변영태, 성준용, 김련 등 40명이다.
신흥 강습소의 본관과 사옥을 준공하고, 1913년 신흥 중학교로 개칭하고 군사반을 두었다. 1919년 중학교를 폐지하고 신흥 무관 학교[2]로 개칭하니 1920년 폐교 때까지 10년간 2,1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청산리 대첩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때 이석영의 큰 아들 이규준(李圭俊)은 항일 독립 운동가가 일제의 회유로 변절하여 독립 운동 진영에 피해를 주는 자들을 체포 암살하는 ‘다물단’의 단장으로 활동하던 중 북경에서 암살되었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는데, 우선 큰 아들 이규준은 독립 운동을 하였고 여러 업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독립 운동가 박용만을 암살하여 일제에게 회유당해 변절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문헌 기록상에는 이미 박용만이 암살당하기 1년전에 병사한 것으로 적혀있다. 박용만이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이라 자세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석영의 차남 이규서는 논란이 있는 형과는 달리.... 이놈은 진짜 일제에게 회유당해 변절해서 자신의 숙부인 이회영을 밀고해서 죽게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주장이 엇갈리는 형과는 달리 이쪽은 경주 이씨의 수치로 남게 되었다. 이회영 사후, 밀고 사실이 발각되어 독립 운동가들에 의해 끌려가 처형되었다.
신흥 무관 학교의 실질적 설립자 이석영은 가난에 지쳐 두부 비지로 연명하다가 굶어서 별세하였다.[3] 화도읍 가곡리에 이석영이 살던 이하려의 터에는 노거수 은행나무만 서 있으며, 원찰인 보광사(普光寺)가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 「남양주100년사」 남양주 문화원(임병규) 2003년, 독립 운동사(국가 보훈처)

2. 전 중소기업청장



3. 서랍 속의 어드벤처


서랍 속의 어드벤처의 주인공.
1997년에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었던 여학생으로, 교복을 입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가 깨어났더니 다른 세계였다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사실 그것은 마법의 신 위즈나그프가 '다른 세계의 존재'를 소환했는데 그녀가 걸렸던 것. 다만 전투력 제로라서[4] 싸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적편에 해당하는 지하 세계 최종 보스인 '공포의 대왕'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다른 세계의 존재'밖에 없다는 이유로 존중받고 있는 것 같다.
생긴 건 '발바닥 미는 돌마냥 뻗대게 생겼다'(...)는 언급이 있었고, '아주 잘 꾸몄을 때' 기준으로 지나가던 사람 100명 중 하나쯤은 시간 있느냐고 물어볼 만한 수준이 된다는 것 같다.
자기 중심적이고 드센 성격이기에,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딱히 생각 없는 타입은 아니지만 다른 세상에 건너온 뒤로는 다른 파티원들이 다 알아서 생각하고 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굳이 본인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5].
성격 좋고 미인인 음대생 언니와 비교당하며 부모에게도 푸대접을 받고 자란 듯. "내가 없어지면 부모님은 잠깐 걱정해도 곧 잊어버리겠지만 언니가 없어지면 당장 화병으로 드러누울 것"이라거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전혀 당연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언니와의 관계'가 작중에서 제대로 언급될 거라는 복선을 깔아놓았지만 무기한 연중되었으므로 알 길이 없다.
'거짓말을 털어놓음으로서 가벼워지는 마음'을 원동력으로 나는 환수 에오에스틴에게 거짓말했던 것 한 가지를 말해준 뒤 대가로 들은 한 가지 '사실'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라는 무시무시한 일을 알았으나 이 역시도 이제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파티의 리더이자 최연장자인 렌토 아사이와는 사이가 좋고(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 실질적 리더인 키리에 그라티오스를 포함, 다른 파티멤버와도 그리 나쁜 관계가 아니지만 하프엘프 도적 하프와는 유독 사이가 나쁘다. 우연히 입수한 인큐버스 '바둑이'(…)를 키웠으나 3권에서 헤어졌다.
이후 페어리의 정원에서 본의 아니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만 생각 끝에 스스로의 의지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한다.
그녀는 자신이 우리 세계의 하프(현악기가 아니라 이 소설의 캐릭터 하프)라는 것을 키리에로부터 들어서 이면 세계로 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6]. 그러므로 석영이 원래 세계에 있으면 아흔 살을 넘기지 못하는 이상 불행하게 살다 죽을 뿐이니 아예 이면 세계로 건너가 '거울에 비친다'는 전제 조건을 깨뜨림으로서 다른 미래를 잡으려 한 것. 또 그녀는 가족과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으므로 가족에 대한 미련도 별로 없었다.
덧붙여 그녀는 '이면 세계의 자신'인 하프를 매개로 한 랜덤 뽑기로 소환된지라 그나마 특별한 구석이라곤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거 하나 밖에 없다. 작품이 더 연재되었다면 3권 시점에서 손에 넣은 엘프의 갑주[7] 같은 특수템이라도 더 얻었을지도 모르지만 연재 중단된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

4. 대한민국의 천문학자


출생
1966년 1월 20일
소속
연세 대학교(교수)
학력
예일 대학교 대학원 천체 물리 박사
경력
연세 대학교 이과 대학 천문 우주학과 교수

연세 대학교 자외선 우주 망원 연구단 연구 교수

2001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

1998년 연세 대학교 자외선 우주 망원 연구단 연구 교수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천체물리학자. 수많은 외국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은하 형성 연구의 전문가로 우주를 알아감에 대한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한다.
한국에서 사이언스지에 논문 기재수가 가장 많은 과학자 10인 중 하나다.
최근 저서로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사이언스북스)를 출간했다.


[1] 영의정을 지냄[2] 참고로 신흥 무관 학교의 후신이 되는 학교가 지금도 존재하는데, 바로 오늘날의 경희대학교다. 물론 지금의 경희대는 옛날의 신흥 무관 학교와는 달리, 군사 관련 학과가 일절 없는 보통의 종합대학이다.[3] 상하이 빈민가를 돌다가 별세[4] 석영 체력으로는 여성용으로 가볍게 만든 검도 들 수 없다는 언급이 있다.[5] 그래서 잠시 원래 세상에 돌아가서 필요에 따라 석영 스스로 추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키리에가 좀 놀라기도 했다.[6] 이면 세계의 같은 존재들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비슷한 삶을 살게 되는데, 하프는 과거 위즈나그프 슬하에서 꽤 거칠고 불행하게 살았고, 아흔 넘겨서 간신히 파양되어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상태이기 때문.[7] 금속제는 아니고 천 비슷한 재질로 뒤집어써서 입고 옆이 트인 원피스 비슷한 모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