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1. 개요
Noblesse oblige[1]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의 프랑스어 표현이다. 이 표현은 프랑스의 작가 겸 정치가인, 레비 공작 피에르 가스통 마르크(Pierre Marc Gaston de Lévis. 1764-1830)가 <격률과 교훈>(Maximes et réflexions sur différents sujets)(1808)이라는 책에서 처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주로 사회 지도층 혹은 상류층이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모범을 보이는 행위를 표현할 때, 혹은 그 의무를 어기는 이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는 사실상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라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 사실상 뒤늦게 한국에서만 유명해지고 널리 쓰이게 된 특이한 경우이다. 심지어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여러 대륙의 동, 서양 외국인들도 프랑스인을 포함해서 그 말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로는 심계천하(心系天下)[2] 등이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종묘사직이라는 단어에 대응시켰다.
2. 변명
세상은 넓고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어느 나라든 사회부조리는 다 있기 마련이다.
2.1. 포퓰리즘 관점의 비판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이유로 이 단어의 사용이나 그에 입각한 일체의 개념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인, 기업가의 아들이나 서민 김모씨의 아들이나 똑같이 병역법 앞에 동등하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는 대상인데 왜 전자의 것을 더 가치를 부여해주냐는 식. 선민사상적인 느낌도 있고, 부자가 되어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식의 성공지향적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백인의 의무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악용된 사례다.
또한 위에 언급한 실용적인 이유에서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비판도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자체가 기득권 계급과 그렇지 않은 위치의 계급 격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시민 사회에서 의무와 권리는 항상 똑같이 다니게 되므로, 기득권층의 이런 의무는 결국 그들이 기득권을 가지는 것을 합리화시키고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흔한 좋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보좌파들이 본질적으로 싫어하는 개념이다. 다른 면에서 자유지상주의나 자본가,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우파들도 극히 싫어하는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 계급을 대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개념이며[3] 귀족이 없(던)는 국가에서는 '사회 지도층'들의 의무로서 강조된다.[4] 그러나 실질적으로 상류층의 부담을 늘리는 정책에 상류층이 기꺼이 동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일부 유명 부자들의 기부 행위로서 실천되는 정도이다.
거기다 포퓰리즘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거지 생활에서 출발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심히 일한 사람은 자수성가해서 대기업의 사장이 되고,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은 그대로 계속 거지가 되었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상으로 그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선행을 베풀라고 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리고 한 가난한 사람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한 부자가 도와주어서 자수성가했다고 쳐도, 이 사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안해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윗사람이 책임 의식을 가지며 밑사람에게 잘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는 하나, 밑에 있는 사람이나 민중이 꼭 옳다는 말이 없다라는 말이 동서양 막론하고 다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부자들의 선처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오히려 나중에 자수성가할 사람들을 못 오게 법으로 막는다거나, 민중들이 "민중이 천심이다!"라고 이 말을 계속 악용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기도 하는데 사실상 이러면 영국병과 같이 나라의 경제와 국가의 기강을 흐트러뜨리기 쉽게 만드는 등의 "모든 인간이 평등하듯이 선과 악도 위아래 사람 구분이 없다."라는 상황이 과거에서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의도는 좋지만 모든 이들에게 베풀면 안된다. 사회에서도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듯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도와주고 싶고 보답하고픈 마음이 생기지만,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높은 직위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일도 바쁘고 그만큼 자수성가해서 올랐는데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알 수도 없고 무조건 남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조건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하류층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윗사람들이 도와주는 목적으로 해야지, 퍼주는 목적으로 상하층류 사람들이 그런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2.2. 개인 사유재산의 중요성
아무리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받은 혜택이 있다고 쳐도, 그 집안에 태어난 순간 그 재산은 그 사람의 것인 것이다. 만약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사유재산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재산권은 애초에 왜 존재하는가? 사회에 불공평함이 존재하는 것과 재분배의 의무를 부자들이 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는 사람들에게 돈이 많다고 해서 유니세프에 100만원을 당장 기부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권한으로, 사회적 계약조차도 맺지 않은 제 3자가 단순히 돈이 많다는 이유로 더 많은 공헌을 강요하는 것인가? 개인의 재산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쓰도록 강탈해 가는 것만큼 큰 죄악도 없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은 재분배와 평등이라는 허울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재산권의 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글에서 말하는 재산권은 합법적이고 정당성있는 재산권을 말한다. 한국 재벌이나 정치인들이 비판받는 것이 서류위조,뇌물수수,탈세,횡령,투기,착취 형식으로 재산증식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당연하지만 불법적으로 재산증식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정당하게 벌어들이는 재산은 보호받아야한다.
2.3. 사회적 의무가 애초에 존재하는가?
사회적 의무로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제공해 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아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적 의무"를 자세히 보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들은 일을 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물건을 판매하거나, 혹은 일자리를 창출해 줌으로써 이미 사회와의 기브앤테이크 관계가 충족되었다. 만약 어떤 대기업 사장이 일자리를 100개 더 만들어 주었다면 중산층 100명이 더 노동을 해 주는 대가로 사장은 충분한 월급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다면 둘은 이 이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주고 받는 계약이 끝났는데, 왜 사회가 무언가를 더 요구하냐는 말이다. 보편적 질서에 기인해 생겨난 관계에 플러스 알파가 더 붙어서는 안된다. [5] 국가가 복지를 비롯한 정책에 쓰는 재원들의 대부분은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이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6] 흔한 인식과는 차이가 있는 셈. 만약 편법없이 세금을 냈다면 그곳에서 사회적 의무는 끝난 것이지, 과연 법전에도 없는 도덕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7]
2.4. 애초에 외국 상류층들도 부패한건 다름이 없다
물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외면한채 그 나라가 그 나라라는 비아냥은 잘못 됐지만 많은 한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선진국들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엄청나게 더러운 이야기들이 많다.
예를 들자면 영국만 해도 여러 추문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는 철면피스럽게 빈민기금에다 궁전 난방할 비용을 달라고 징징댄 사실이 폭로되었고, 윌리엄 왕세손은 집 수리에 450만 파운드(한화로 78억 원)를 써서 비난을 받고 구설수에 올랐다. #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국민들을 등쳐먹고 애인이랑 코끼리 사냥이나 하다가 엉덩이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이 폭로되어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결국 퇴위해야 했다. 후임으로 즉위한 현 국왕 펠리페 6세의 매형은 수뢰와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는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곤욕을 치루었다. 이 문제는 후계자인 왕자들도 마찬가지라 크나큰 스캔들거리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전 여왕 베아트릭스는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던 클라우스 폰 암스베르크와 결혼해서 네덜란드인들의 엄청난 분노를 샀다가 빌럼 알렉산더르를 낳고 나서야 여론이 해소되었다. 1980년에는 율리아나 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대관식 준비 겸 초호화로 궁전을 개축하려 했다가 집 없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의 분노와 폭동을 유발하기도 했다. # 현 국왕의 왕비인 막시마 소레기에타도 아르헨티나에서 독재자에게 아부했던 호르헤 소레기에타가 아버지라서 하마터면 네덜란드-아르헨티나 간 관계가 험악해질 뻔했고, 네덜란드 내에서조차 비판하는 여론이 있다.
위 사례들을 보면 이들이 결코 순수한 애국자이자 진정한 상류층인 것만은 아니고 비도덕적인 행태도 자주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유럽 왕실이 정말 모범적인 엘리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걸 보여준 좋은 예시.
사실 자세히 보면 혼란기에 사고 친 왕족들도 많다. 국왕 경력이 있던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친나치'''적인 성향이 있어 2차 대전 기간 동안 바하마 총독으로 쫓겨났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왕족들은 전쟁을 일으키는데 동조했고, 전쟁이 패전으로 끝나자 다시는 왕좌에 복귀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유럽의 왕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잘 실천한 게 아니라 비교적 잘 실천한 왕족만이 살아남은 것이며, 아무리 이전까지 잘했다고 해도 국민 사정도 나쁜데 깽판을 쳤다가 왕실의 위상과 존재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스페인의 예로만 봐도 분명하다. 영국의 예를 봐도 분명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위층이 가진 도덕적 의식이 선행된 게 아니라 고위층들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고, 그것이 의무화되어 도덕적 의식으로 정착한 사례에 더 가깝다. 한 마디로 적당히 '우리가 잘해주면 쟤들이 우리를 위협하진 않겠지'가 기본 사상이다. 그리고 애초에 왕족은 '''병역 의무'''가 주어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 각종 의전에 대한 급부다.
3. 대한민국
'''있었으면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게 정의라는 사람이 존재할리 만무하다.'''
대한민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상류층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제강점기, 6.25 전쟁과 5.16 군사정변 후 군사 독재를 겪는 등 혼란스러운 근현대사를 거친 한국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대부분 흙수저에서 시작한 특권층과 부와 권력을 합법적으로 세습한 금수저들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책임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위 주장이 나쁜 것을 모두 일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고, 조선시대 유교 이념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시선도 있으나 이는 전혀 잘못된 주장이다. 유교 이념은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중국과 조선 등 유교 사회에서 상위 계층을 사대부, 군주의 지향점을 군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적어도 원론적으로 이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들과 온전한 의미의 양반 사대부들은 경연과 죽을 때까지 하는 공부 및 수양을 통해 자신들이 먼저 유교의 4서 5경을 깨우치고 성리학적으로 심성을 맑게 닦아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 그에 따라 백성들을 교화할 자격을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8] 향약만 봐도 조선의 지배계층이 얼마나 아래계층을 의식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 사회를 양천제 위주로 보는 학자들은 양반 역시 양인이므로 적어도 15세기에서 16세기 초반까지는 양반들이 양인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보고 있다. 고급 관료들의 자제들 중 소수는 특수병[9] 으로 복무했다. 또한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란기에 전 재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하거나 환란기 정세에 뛰어드는 이들은 대부분 지역 유지나 양반층이었다. 임진왜란 때도 그러하였으며, 구한말의 최익현 등 의병장들 또한 대부분이 이름난 양반 실력가들이었다. 이시영, 이회영 가문은 당시 조선의 손 꼽히는 역대급 부잣집이자 명문이었으면서도 전재산을 쏟아부어 간도에 독립운동기지를 지었으며, 독립운동을 하다 6형제 중 다섯이 고문사, 객사, 아사했다. 이전 버전의 주장 같이 유교적 전통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더 말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영국 귀족의 전쟁 수행과 같은 상무정신을 기반으로 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있었다. 신라가 바로 그것으로, 삼국사기 열전들을 보면 삼국시대 신라 귀족층은 대대적으로 전투에 참여해 수많은 희생을 낳았으며, 화랑도의 임전무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장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 권장되는 일이었고, 실제로 수많은 신라 귀족층이 전투에 투신해 죽었다. 김유신 본인 역시도 젊은 시절 고구려와의 낭비성 전투에서 자살 돌격에 가까운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었고, 나이가 70에 달한 시기에도 젊은 장수들 대신 고구려 수도 앞까지 접근하는 위험한 작전을 자원해 나서기도 했다. 신라 문화에서 귀족층은 모범을 보여야 했기에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이 당군과의 전투에서 살아 돌아오자[10] 김유신은 문무왕에게 아들을 참할 것을 청했고 의절했으며, 문무왕이 죄를 면하게 하였으나 끝끝내 용서하지 않아 김유신 사후 매소성 전투에서 김원술이 치욕을 되갚았음에도 김유신의 부인이자 김원술의 어머니 또한 끝내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기에 김원술은 관직을 버리고 세상을 비관하며 살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귀족층이 병사보다 먼저 나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신라의 특기할 만한 사회 분위기는 역사학자들의 신라의 삼국통일의 원동력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바람직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신라 장군 아들이 황산벌에서 사기를 올리기 위해 죽은 사례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만 하다. 그리고 어느 성웅께서도 모두가 질 것이라고 생각한 바다에서 대장선에 타서 직접 전투하며 적들을 격퇴한 바 있다.
사회 상류층이 국란이나 전란이었을 때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유명한 경주 최 부자집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평시에도 고귀한 의무와 덕행을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스스로 실천한 가문은 적지 않았다. 임술농민봉기와 동학 농민 운동 등 사회가 혼란한 시기에도 이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양반들의 저택들은 농민군이나 심지어 초적들까지도 그들의 덕행을 알았기에 보호했고[11] 오늘날까지 몇몇 유서 깊은 종갓집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근현대에도 기득권층 중에서도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유일한''' 박사, 김용환, 언급한 이회영, 전형필 처럼 훌륭한 인물도 있고, 최근에야 선행들이 알려진 함태호 명예회장도 있다. 백범 김구의 자손들 역시 대대로 대한민국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12] 언급한 최부자집 가문의 최준 선생도 가문의 거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었으며, 광복 후에도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13] 을 세워 민족의 교육에 기여하였다.[14]
따라서 서양 중심 또는 현대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상과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한국 역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소수나마 분명히 존재하므로 성급한 일반화는 삼가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대중 매체가 민중사관을 기반으로 하여 현세의 기득권에 대한 비판을 역사를 통해 은유하려 하는 노력이 이러한 일반화를 가중 시킨 면이 있다.
물론 과거에 그러했다 치더라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남들을 말 잘 듣는 가축 취급하면서 그야말로 개돼지만도 못한 심성을 가진 금수저가 숱하게 존재하는 게 현실인데, 가장 심각했던 사례라면 역시 IMF 사태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 기부된 금붙이들을 처리하겠다고 나섰던 대기업 및 재벌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형편이 어려웠던 이들조차 결혼반지나 돌반지 등 그야말로 평생 가져가야 할 보물이나 가보들마저 앞장서서 기부했는데, 정작 이 보물들을 처리하겠다고 나선 대기업 및 재벌들은 이 기부 물품들을 해외에 저렴하게 팔아버리고 바로 비싸게 구매하는 방식으로 부가세 포탈에 이용했다. 당연하지만 안 그래도 외화가 부족해서 파산이나 다름없었던 당시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서까지 자기 배를 불리는 행위였으며, 까놓고 말해 나라 팔아먹는 짓이었다. 기업들 때문에 국가가 망하게 생긴 것을 국민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되살리려 했는데, 국가를 망하게 만든 원흉들은 반성하고 죄를 청하기는커녕 도리어 사람들의 선의를 악용하여 국가를 침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제 배를 불렸으니... (확률은 낮지만) 훗날 언젠가 제2의 IMF 사태가 터졌을 때 그들이 또 다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인다면 열에 아홉은 참여는커녕 쌍욕을 퍼부을 것이다. 이유는 기사 참조.
3.1. 해외 사례의 선택적 보도와 현실간의 괴리
사실 위의 2.5번 문단에서도 이미 나온 사실이나, 실제적인 상황과 체감하는 상황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로 인해 일단 논란이 생기면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기사가 쓰여지고 점점 부풀려지고 확산되지만, 정정 보도는 잘 하지 않고 대중의 뇌리에 남지도 않는 반면 '''선행에 관한 기사는 별로 쓰이지 않고 이슈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국내에 들어오는 상당수의 해외 기사는 독자 취재보다는 그 국가의 기사에서도 특히 화제가 되는 기사를 바탕으로 쓰여지는데 국내에까지 전달될 정도로 이슈가 된 선행 관련 기사는 '''그 나라에서도 드물기 때문에''' 화제가 된 것이고, 국내에도 조회수가 높게 나오니 기사로 쓰여진 것이다.
반면 논란이 되는 해외 기사는 국내에 기사를 써도 비교적 화제가 되지 않으니 실제로 일어난 사건 대비 국내까지 알려지는 비율이 선행 관련 기사보다 낮다. 실제로 한국발의 그런 선행류 기사들, 예를 들면 최근 입법된 김영란법 같은 소식이 중국에 들어가자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을 본받자는 둥 우리와 똑같은 반응을 이어갔다. # 100번의 성공보다는 1번의 실패가, 100번의 실패보다는 1번의 성공이 기억에 남고 회자되는 것과 같은 '''선택적 의식'''이다.
또한 해외 역시 선행과 악행의 상대치가 국내와 비슷하다 해도 나라도 많고 사람도 많으니 선행이 일어난 절대치는 국내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 특정 국가의 선행이 어느 정도라고 인식하고 기억하기보다는 막연히 뭉뚱그려서 해외에는 선행이 많이 일어난다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해외 뉴스를 보면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해 살기 좋다고 느끼게 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행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층의 책임의 이행''' 문제다. 일례로 기업 과세 등의 예를 보면 미국의 경우 워렌 버핏 등의 부자들이 부자세를 증세하자고 주장하고, 또 트럼프가 환경부담금을 부담 않겠다고 했으나 지방 자치단체, 기업들은 그래도 환경부담금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4. 예시
4.1. 칼레의 시민
[image]
<칼레의 시민> - 오귀스트 로댕 작.[15][16]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히는 이 일화는 백년 전쟁 시기에 배경을 두고 있다. 영국과 오랜 시간 맞서 싸우던 프랑스의 칼레 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에드워드 3세는 사절단에게 "모든 칼레 시민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에 그동안 저항한 죄를 물어 6명의 대표를 처형하겠다."는 말을 전한다. 전 시민이 살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6명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의견이 분분하던 가운데, 도시의 최고 부호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자신이 죽겠다고 나섰고, 그 모습을 본 많은 칼레의 고위층들이 스스로 죽음을 자청하여 그 중 6명이 뽑혀 나왔다. 교수대에서 사형 당하기 직전, 이들은 오랜 세월 임신을 하지 못했었던 영국 왕비가 임신에 성공해 왕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청하면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전설은 특히 19세기의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차원에서 활용되어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그 카이저에 의해 '칼레의 시민'이란 희곡으로 쓰여지기도 했으며, 칼레 시청은 조각가 로댕을 압박하여 같은 이름의 동상을 제작하게도 했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사실은 칼레의 시민 이야기의 유래는 중세 극작가 Jean Froissart의 허구에 의한 것이며, 역사적 사료들 중에는 칼레의 여섯 시민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등 역사적 사실이 아닌 창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또, 칼레의 시민 이야기가 이 표현의 기원이 된 것도 아니다. 'Noblesse oblige' 라는 표현은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희곡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ee)'에서 처음 등장한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언급되는 등, 즉 고대 로마 시절부터 쭉 존재했었던 개념이 통일된 표현으로 정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2. 영국 왕실
일반적으로 영국 왕실과 귀족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시에 귀족들이 자원하는 모습으로 많이 나타나는데, 아예 왕실 내부 규율에 왕실과 왕실에 속한 귀족들은 죄다 자체적으로 징병검사 후에 예외 없이 장교로 군대에 징집을 시키기로 규정되어있다.[17][18] 이 의무는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귀족 자제들이 주로 가는 영국 최고 명문사학 중 하나인 이튼칼리지 출신으로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5,619명이 참전해 1,157명이 전사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4,690명이 참전해서 748명이 전사했다. # 오죽하면 대영제국의 몰락의 원인 중 하나가 이렇게 엘리트 계층이 원체 많이 죽어서라거나, 전후 작위 수여가 다른 시기보다 많았던 것이 이때 '''대가 끊긴''' 귀족 집안이 너무 많아서[19] 그 벌충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해군사관학교 출신[20] 으로 장교 출신인 찰스 왕세자[21] 와 그의 동생인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 당시 헬리콥터 파일럿으로 참전했으며[22] ,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 왕세손도 육사를 나와 육해공을 모두 순시하고 공군 헬기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엘리자베스 2세가 왕실 전속 부관으로 불러들었으며, 말썽 피우고 다니는 해리 왕자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다. 물론 호위 병력으로 SAS가 줄줄이 따라다녔지만, 국방부는 '''"부대원들이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발표[23] 했다고 한다.
군 복무를 위해 훈련을 받던 왕자들은 "아 내가 옛날에 그 왕자를 발로 뻥뻥 차고 다녔지!" 라고 말하고 싶었던 선임들 때문에 하나같이 훈련소에서 신나게 굴렀다고 한다(...) 일례로 해군사관학교 교장이 지나가다 한쪽 구석에서 생도였던 왕자가 훌쩍거리길래 왜 우냐고 물어보니까 ''''선임들한테 갈굼당해서'''' 라고 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실제로 해군사관학교에 재학했던 에드워드 8세는 '''찰스 1세의 사형장면을 재현하기 위해서 동급생들이 창문 틀에 목을 걸어놨고''', 조지 6세는 해먹에 묶여있어서 지나가던 교사가 구해줬다고 한다.
[image]
엘리자베스 2세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차량 정비 장교''' 보직[24] 으로 돌아다닌 건 꽤 유명하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여왕은 1926년생으로 나치독일의 영국 공격이 한창이던 1941년에는 겨우 15세였다. 당연히 실질적으로 참전했다기보다는 전시에 왕실도 대중들과 함께 고통 분담을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게다가 영국의 귀족들은 봉건제하에서 귀족들에게 부과된 병력 동원의 의무가 완전히 사라진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소 피트가 추진한 세제 개편을 별 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바로 '''귀족들이 가진 부동산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소득세'''.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토지 보유를 대가로 부과된 병력 동원의 의무가 사라진 귀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려는 시도가 좌절되면서 악화된 프랑스 정부의 재정 상태였고, 아시아 대륙의 귀족들이 하나같이 보유한 재산에 대해서 과세받는 것을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점에서[25] 영국 귀족들은 엄청난 결단을 한 것. 다만 영국 귀족들이 정말 백성을 끔찍히 아껴서 이를 실천했다기보다는 프랑스 혁명 비슷한 민중 혁명을 예방하거나, 나폴레옹의 유럽 제패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의 양보라고 봐야 타당하다. [26]
고인이 된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지뢰 제거 운동 등 반전 운동에 앞장서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녔다. 이 점 때문에 그녀의 죽음이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리는 무기 상인들의 테러라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하였다.
4.3. 미국 상류층
비단 귀족만이 아닌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등의 부유층들도 자선사업 활동을 벌이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한다. 미국의 상류층들은 기부를 사회적 의무이자 '''또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본다. 즉, "사회에서 이득을 봤으니 당연히 그 부를 돌려줘야 하며, 이는 우리 회사의 이미지를 좋게 심어주어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는 더욱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철저한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접근한다. 미국은 자선사업이 아니라 기부를 통해서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데, 그 절세율이 상당하기 때문에 미국의 부자들이 기부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자들이 세금 내기 대신 기부를 통해 기업 및 개인의 이미지 개선 및 인지도 상승을 꾀하고, 미국 정부는 반대급부적으로 사회 환원이 되니 결과적으로는 상부상조인 셈.
하지만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해외 부자들이 거액의 기부를 하며 자선 재단을 만드는 것 또한 내막을 들춰보면 록펠러, 카네기 시절부터 유서 깊은 상속세 회피를 위한 탈세 방법의 일환이자 일종의 위선이라는 비판 또한 존재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임스 밴 플리트(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전사했다. 제임스 밴 플리트의 아들은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인민군의 대공포에 격추돼서 전사했다. 밴플리트의 아들의 사망 일화는 한국군 장성들의 일대기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밴플리트는 다음날 위험이 따르는 수색 작전은 중지해달라고 의연한 태도로 말했다. 심지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존 아이젠하워는 아버지에게 "만일 포로로 잡히면 자결하겠다"면서 생떼를 써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였지만, 현직 대통령이자 2차대전 원수의 아들이 잡히면 골치 아파지니까 군 상층부에서 일부러 후방으로만 돌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상층부에서 강제한 것이므로 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후방에서 일하는 것도 의무를 다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제임스 스튜어트도 전쟁에 참가하여 지옥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자기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27]
4.4. 이오시프 스탈린
대숙청과 독재로 유명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의외로 이런 면이 있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스탈린의 맏아들 야코프는 바로 입대하여 참전했고, 작은아들 바실리는 공군 장교로 복무중이었다. 야코프는 중위로 복무하던 중 1941년 가을의 키에프 포위전에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 잡힌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와의 포로 교환 협상을 제의했으나, 스탈린은 ''정 그러면 모든 소련군 포로들을 데려와서 독일군 포로들과 교환하자. 수많은 소련인들이 자기 자식을 전쟁터에 보냈는데 내 아들 하나만 뺄 수 없다"는 말로 응수했다.[28] 야콥은 결국 수용소에서 죽었는데, 탈출을 시도하다 죽었다고 하였으나 현재 조사 결과는 자살에 가깝다. 경비병에게 "날 쏴라"라고 소리치자 경비병이 멈추라고 하면서 총을 겨누었고, 전기철조망에 걸어가서 전기철조망을 잡은 상황에서 경비병이 총을 쏘았다. 사인도 쇼크사.
작은 아들 바실리도 IL-2 파일럿으로 폭격임무에 26번 출격했고, [29] 그 공적으로 20대에 장성까지 출세했다.
4.5. 마오쩌둥의 가족들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은 북한에 파병한다는 소식을 듣자 참전을 자원했고, 펑더화이 사령부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참전했다.[30] 하지만 미공군의 폭격이 있을 때 전사했다. 마오쩌둥은 아들이 참전할 때에도 "주석의 아들이 참전하지 않으면 누가 전쟁터에 나가겠는가"라는 말을 했고,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전쟁터에 나가면 전사할 수도 있는 법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펑더화이가 아들의 죽음을 3개월 후에 알렸고, 마오쩌둥은 그 말을 듣고 "어쨌든 그놈은 마오쩌둥의 아들이니까.."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전몰 중국군이 북한 땅에 묻혔는데, 마오쩌둥은 "내 아들도 전우들과 함께 묻혀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해를 중국에 송환하지 않고 북한 땅에 묻었다. #
4.6. 오토 폰 비스마르크
프로이센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차남과 삼남이 참전했다. 차남 헤르베르트와 삼남 빌헬름이 기병장교로 참전했다. 빌헬름은 큰 부상을 입었으나 살아남았다.
4.7.
취소선인 것은 그가 진짜 황제가 아니라 자칭 황제이기 때문이지만 노턴 1세는 자기 스스로 칭한 가짜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매우 충실했다. 백인이 흑인인 자신의 노예를 채찍으로 때리려 하자 때리지 못하게 막은 후 "이 자는 짐의 백성이니라!"라고 말하며 때리지 못하게 했고,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자 주기도문을 외워가면서 추방하지 못하게 막았다. 비록 가짜 황제이지만 진짜 황제의 의무를 다했다. 이 덕에 사람들은 그가 객사했을 때 황제 호칭을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4.8. 김만덕
조선 후기 제주도의 유명한 여성 거상으로, 엄밀히 말하면 천민 출신이었기에 '귀족'은 아니었으나, 상업을 통해 자수성가하여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한 케이스이다.
1795년 제주도에 태풍이 불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재산을 제주도 관가에 기부했다. 이 소식이 정조에게도 전해지자, 정조는 그녀를 일종의 명예관직인 의녀반수에 봉하고 상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사후 유언을 통해 양아들의 기초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제주도 빈민들에게 기부했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만덕할망[31] 등으로 높여 불린다.
4.9. 이회영 일가
조선 10대 부자 가문이었던 이회영 가문은 경술국치 이후 전재산을 처분하고[32]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만주 한인촌 건설에도 이바지했으며 신흥무관학교 설립, 독립군 양성에도 힘썼다. 그러나 10년도 되지 않아 자금이 모두 떨어져 궁핍한 생활을 겪었고, 결국 6형제 중 5명이 광복 이전에 사망한다.[33]
5. 기타 관련된 것
참고로 비만도를 나타내는 BMI도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근간으로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BMI는 과학계나 의료계가 아니라 보험업계에서 만든 수치인데, 1895년에 메트로폴리탄(현.메트라이프생명보험)에서 고객의 나이, 키, 체중 등을 작성한 신장체중표를 만들었고, 정상 체중을 넘는 사람에게 할증을 부과하도록 만든 것이다.
BMI 수치가 만들어졌던 1895년 당시는 비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인 데다가, 이때 당시의 비만은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 BMI를 이용해 정상체중을 넘어가는 사람에게 할증을 부과하려고 했던 것은 당시 부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6. 매체에서
6.1. 아머드 코어 시리즈
아머드 코어4, 아머드 코어 for Answer에서 등장하는 넥스트.
로젠탈의 소수 정예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 로젠탈 내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전력이다.
어셈블리는 4,fa 두 작품에서 거의 동일하며 TYPE-HOGIRE 프레임에 3연장 레이저 캐논을 장착한 형태이다.
AC4에서는 티저 무비에 등장해 도심의 노멀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으로 활약을 했다. 본편에서는 단두대로의 행진 미션에서 오메르 사이언스 소속 링크스인 미도 아우리엘과 같이 등장하여 미션에서 주인공을 도와 싸우는데, 처참하게 밀린다. 하드 모드에서는 미션 시작 전에 이미 격파된 상황.
ACfA에서는 아르테리아 카펄스 방어에서 아군으로, 아르테리아 카펄스 공격 미션에서 적으로 등장하는데 꽤나 잘 싸워준다.[34] 실제로 오더 매치에서 붙어보면 중거리에서 라이플로 견제하다가 일정거리로 좁히면 날개 레이저포[35] 와 라이플 연동사격/양 날개 레이저 사격을 하고 지근거리에선 블레이드로 공격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디자인은 멋있으나, 플레이어가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EN이 너무 후달린다는 단점이 있다. 제너레이터를 바꾸거나, EN 계열 튠을 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
ACfA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어셈을 그대로 하면 중량초과(...)라는 안습함을 보인다. 그렇기에 미션에서 등장하면 한 쪽 날개를 떼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히도 1.30 이후로는 날개포가 강화되어 그럭저럭 할 만한 정도... 지만 역시 쓰긴 어렵다. 날개포를 믿고 기동력을 포기하느냐, 날개포를 버리고 기동력을 얻느냐의 문제.
링크스는 AC4에서는 레온하르트, ACfA에서는 제럴드 젠들린. 링크스가 바뀜에 따라 포 엔서 버전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라이플이 다른 것으로 바뀐 상태. 포 앤서 버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제작자는 레온하르트인데, 이때문에 fA 시점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됐으나 설정집에서 고인을 기리기 위해 레온하르트의 이름을 붙여놨다고 언급되면서 사망 확정. 단두대로의 행진 미션에서 레이레너드 진영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전사한것이 공식설정으로 보인다.
날개포의 간지와 포스와 위력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파괴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009년 8월 코토부키야에서 프라모델로 5200엔에 발매되었다. 근데 하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날개포가 하얀색 통짜 사출로 나온 것에 많은 이들이 분개하고 있다.
6.2. 마블 코믹스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는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로부터 물려받은 일류 군수기업 스타크 인더스트리 재벌인 데다가 본인의 능력이 어마어마한데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 슈트를 개발해 입고 싸운다. 검소하거나 겸손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많은 상황에서 대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프로페서 엑스는 자신의 재력을 뮤턴트를 육성, 발굴하고 그들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좋은 곳에 쓸 수 있도록 사용한다.
초강대국 와칸다는 왕인 블랙 팬서부터가 직접 최전방에서 싸워야 한다.
토르도 원작 북유럽 신화와 마찬가지로 직접 무기를 들고 싸운다.
6.3. DC 코믹스
브루스 웨인은 명문가인 웨인 가문의 아버지 토머스 웨인의 아들이지만, 고담을 지키기 위해 밤에는 배트맨으로 분장하여 싸운다.
[1] 오블리제가 아니다. 그러나 편의상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다.[2] 높으신 분들이 세상을 걱정한다는 뜻. 중국 한정 초고가 브랜드인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의 유래도 이 사자성어이다.[3] 영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4] 중도보수나 기독교 보수 세력의 구호로서 흔히 쓰인다. 한국에서도 새누리당 계열의 인사들이 자주 내세우는 주장이다.[5] 하지만 이 주장은 완전하지 않다. 보편적 질서와 '이미 정산된' 사회와의 관계 외에, 추가로 사회가 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를 들어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정상급 축구선수, 예를 들어 박지성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태어났더라도 공을 발로 매우 뛰어나게 다루는 재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그 재능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이 전쟁인 과거 남아메리카의 어느 부족에서의 박지성은 아무런 부각도 받지 못하고, 명성도 부도 얻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사회에서 받은 환경 덕분에 그는 부와 명예를 얻었고, 그는 이것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기에 의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6] 소득 상위 5% 남짓이 부담하는 소득세의 비율이 전체 중 7할이 넘는다.[7] 이는 국가가 막대한 세금을.들여 기업을 돕는 관계라면 사회적 의무가 적용된다. 단순히 돈이 많으니 내라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 준다는 식이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8] 중인과 상민 및 천인들을 대할 때는 지배층으로서 떵떵거리면서 사대부 자신들이 유교 덕목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유교(특히 성리학) 위주 국가 체제를 유지할 생각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9] 고위 관료들의 자제들로 편성한 충순위, 충의위 등 부대가 오위 내에 편성되어 있었다.[10] 이마저도 마지막에 적진에 뛰어들어 죽으려 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이 말고삐를 빼앗아 쥐며 말린 탓이었다.[11] 대표적으로 안중근의 아버지인 안태훈이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시절의 김구를 보호한 사례가 있다. 더군다나 당시 안태훈은 아들 안중근과 더불어 민병대를 이끌고 동학 농민군과 맞서던 중이었다.[12] 김신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한 후손도 있긴 하다.[13] 현재의 대구대학교와 다르다.[14] 안타깝게도 대구대학은 나중에 결과적으로 박정희 손에 들어가게 된다.[15] 왼쪽부터 차례대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 장 데르(Jean d'Aire),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과 자끄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형제, 쟝 드 피엔느(Jean de Fiennes), 앙드리유 당드르(Andrieus D'Andres).[16] 일반적인 위인상이 영웅적인 모습으로 미화되어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우울, 공포, 내적갈등 등 심리 묘사가 세밀하여 수작으로 평가된다.[17] 상대적으로 안전한 직책으로 배정받았다고 까는 사람도 있지만, 전시에 전방이라면 장교든 보병이든 다 위험하다. 또 어느 나라든 장교가 복무기간이 더 길기 때문에 까일 정도는 아닌 듯. 무엇보다도 최하 직책에 있는 병사로 입대하면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이 가시방석일 것이다.[18] 1차대전 당시에는 영국군 경우 중, 소위 등 초급 장교 사망률이 제일 높았다.[19] 영화 킹스맨 시리즈에 나오는 단체 킹스맨이 이렇게 대가 끊긴 집안의 돈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설정이다.[20] 영국은 사관학교의 체제가 정규 4년제 대학인 한국이나 미국의 사관학교와는 좀 다르다. 최소 요구 학력이 고졸이며, 교육 기간은 10개월이다. 즉 생도 과정이 아니라 후보생 과정이며, 그렇다고 학사 학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입학 조건에서 필수는 아니지만 대개의 생도들이 정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 들어오고, 복무 중인 현역병들도 꽤 들어온다.[21] 불륜으로 대차게 원성을 사서 그렇지 사실 찰스도 군대도 갔다오고 자선 활동도 활발히 하는 등 왕족으로서의 다른 면모는 흠 잡을 데가 딱히 없다.[22]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승인을 요청하는 마거릿 대처 총리를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하며 승인을 했다고 한다.[23] 사실 영국 언론들은 왕자의 안전이나 부대원들을 위해서 이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에서 보도해버렸다고. [24] 하지만 실제 보직은 영국군 명예사단장이었다.[25] 일례로는 흥선대원군이 양반들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서 어떤 반발을 감수했는지 생각해 보면 된다.[26] 그런데 그마저도 부담하기 싫어서 나라 말아먹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대단한 것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이라고 마냥 폄하할 일은 아니다.[27] 종전 후 제임스 스튜어트는 미 예비 공군 준장까지 오른다. [28] 사실 부자간의 정을 떠나서 일개 중위와 원수를 교환하는 것 자체가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29] 딱히 많다고는 볼 수 없으나, 독소전 초기에는 독일 공군이 압도적 우세에 있었기 떄문에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것은 틀림없다.[30] 다만 참전할 때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펑더화이 등 극소수만 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었다.[31] 할망은 할머니라는 뜻 외에도, 제주어에서 여성을 칭하는 존칭으로도 쓰인다.[32] 현 시세로 약 '''600억원''' 정도였다.[33] 유일하게 생존한 이회영의 동생이었던 이시영은 광복 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직을 수행했다.[34] 어디까지나 FA의 시스템상의 이점을 꽤 많이 받은 편.[35] 놀랍게도 이걸 사용한다! 대다수 유저들은 이걸 스태빌라이저 취급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