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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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2. 생애
1910년 1월 1일, 경기도 개성시 출생이다. 유년 시절인 9세가 되던 해에 배우 및 가수로 활동하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18세에 취성좌(聚星座)라는 악단에서 '황성옛터'를 불렀고, 1932년에 음반을 발표해 5만장을 판매했다. 당시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5만장은 엄청난 양이었다.
1932년에 연희전문학교의 재학생이었던 배동필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친가에서 심하게 반대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급기야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고, 친가가 결혼을 허가해 슬하에 2남 7녀를 두게 되었다. 결혼조건으로 연예계에서 은퇴했고, 이후로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써 삶을 살며 배동필과 해로했다.
그래도 남편 배동필이 공장을 운영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유있는 삶을 산 것으로 보였지만, 1950년 6.25 전쟁으로 한동안 가세가 기울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1960년대까지는 "가정주부로 지내고 있다"는 식의 근황이 나오곤 했지만, 노년기가 되면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남편 배동필이 나이가 들어서 은퇴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애리수 본인과 가족들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유로 TV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 요청을 지속적으로 거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부터는 전문가들도 이애리수가 작고한 줄로 알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자식들도 "어머니가 직접 '과거에 가수 활동을 했다'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가수였던 줄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2]
이후로 안산시로 이주하며 큰아들과 함께 살았고, 한복을 입고 산책을 하곤 해서 동네 주민들에게 '한복 할머니'로 알려진 듯하지만, 이애리수가 가수 활동한지 너무 오래된 탓에 눈치를 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9년에 경기도 고양시 소재 요양병원에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생존 발견 1년 뒤인 2009년, 100세를 1년 앞두고 작고했다.
3. 대표곡
- 황성옛터 - '황성의 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메리의 노래
4. 여담
- 본명이 이보전(李普全)으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