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야 다케시
1. 개요
일본의 정치인으로, 2018년부터 2019년 9월까지 아베 신조 내각의 방위상을 맡았다. 출생지인 벳푸시가 속한 오이타현 제3구의 8선 중의원이다.
2. 상세
1957년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인 이와야 케이는 오이타현의회 의원이었다. 라사르 고등학교[1] 를 거쳐 와세다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졸업 이후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의 비서로 입문했다. 1987년 오이타현의회 의원으로 본격적인 선출직 정치인 생활을 시작한다. 1990년 제 39회 중의원 총선거에 보수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다. 이후 두 번의 낙선을 겪었으나 2000년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오이타현 제3구 중의원에 당선되며 의회로 복귀한다. 이후 내리 당선되었고, 2019년 현재는 8선 의원이다. 일본 중의원 중 파벌은 아소파로 분류되며, 2006년에는 아소 다로 외무성의 부관 격인 외무성 부상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 전 방위상 오노데라 이쓰노리의 뒤를 이어 2018년에 아베 내각의 방위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재임 기간 중 2018년 12월 중순에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이 일어났고 한국군이 일본 해상자위대를 위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국방부의 연이은 증거 제출 및 일본측 증거 제출 요구에도 불구하고 잘못은 일본 해상자위대가 아닌 한국군 탓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23일 이후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한다며 갈등을 봉합하려 했다. #. 자민당 내 강경론자들과 일본 내에서 이 당시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 재반론 없이 갈등은 끝났다. 2019년 6월 1일에는 제18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비공식 회담을 갖기도 하였다. 여기서 초계기 갈등이 봉합되진 못했으나 대화의지 및 교류정상화 의지가 다시 확인되었다고 한다.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 통제 지속 및 백색국가 한국 제외 등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가 파기되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수 강경화 되어가는 아베 신조 내각에서 대한민국에 유화적인 사람 중 한명이었으나, 2019년 9월 11일 개각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내각에서 낙마하였다. 방위대신의 후임으로는 고노 다로 전임 외무상이 지명되었다.
3. 여담
-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 이후 기념사진에서 웃었다고 자민당 내에서 높은 강도의 비판과 사퇴 요구도 받았다.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기분 좋게 한다는 게 제 좌우명'이라고 해명했다가 더 욕 먹었다. #
- 구글 번역기로 그의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왠지 돌집 이순신이 뜬다.# 岩屋가 동굴 혹은 암굴이라는 뜻이 있어서 돌집으로 번역되는 것은 이해가 가나 이순신은 당췌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