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구니오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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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법무대신'''
'''제77대'''
나가세 진엔

'''제78-79대
하토야마 구니오'''

'''제80대'''
야스오카 오키하루
-
'''일본 중의원 (도쿄 2구)'''
''선거제도 개편''

'''제41대[10]
하토야마 구니오'''

'''제41대'''
나카야마 요시카츠
-
'''일본 중의원 (후쿠오카 6구)'''
'''제43대'''
고가 잇세이

'''제44~47대[11]
하토야마 구니오'''

'''제47~48대'''
하토야마 지로

'''일본 제10대 총무대신'''
'''일본 제78~79대 법무대신'''
'''(はと(やま(くに(
하토야마 구니오'''
'''출생'''
1948년 9월 13일
도쿄도
'''사망'''
2016년 6월 21일 (향년 68세)
도쿄도
'''국적'''
[image] 일본국
'''학력'''
도쿄대학 법학부 졸업
'''직업'''
정치인
'''가족'''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
아버지 하토야마 이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1]
배우자 에미리[2]
장남 타로[3], 차남 지로[4], 장녀
'''정당'''

'''의원 선수'''
'''13''' (중)
'''의원 대수'''
34, 36, 37, 38, 39, 40, 41, 42, 43[A], 44, 45, 46, 47
'''지역구'''
도쿄 2구도쿄 권역 비례대표 → 후쿠오카 6구
'''약력'''
다나카 가쿠에이 비서
중의원
문부대신
노동대신
법무대신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3. 소속 정당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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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하토야마 이치로의 손자이자 하토야마 유키오의 동생이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가쿠슈인 초등과, 중등과, 도쿄 교육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일찍부터 정치인을 지망해 미국 유학 이후 다나카 가쿠에이 밑에서 비서로 근무했다.[5]
1976년 제3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신자유클럽의 추천을 받아 구 도쿄도 제8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낙선했으나, 8개월 만에 다시 열린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1978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고, 1991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에서 문부 대신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93년에 자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한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이시바 시게루 등과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으며, 하타 쓰토무 내각에서 노동대신을 역임했다. 이후 신진당에 참여하나, 1996년에 탈당해 형 유키오와 함께 민주당을 창당하고 부대표로 취임한다. 그러나 민정당과의 합당 등 당의 노선을 두고 형제 간의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다시 탈당해(...) 1999년, 무소속으로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나 이시하라 신타로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6] 이후 2000년에 자민당으로 복당했다.[7] 이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쿄 권역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된다.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당시 민주당 대표 간 나오토의 지역구인 도쿄도 제18구에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때 구니오는 “저런 사람이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라면서 유세했는데, 재밌는 건 정작 본인이 간 나오토가 대표로 있는 민주당의 창당 멤버였다는 점이다(...). 결과는 2위로 지역구에서는 낙선했으나 석패율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05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외할아버지인 이시바시 쇼지로[8]의 출신지인 구루메시가 속한 후쿠오카현 제6구로 지역구를 바꿔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아소 다로을 지지했다. 2007년에는 아베 신조 1차 내각과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법무대신을 역임했다. 2008년 마스다 히로야의 뒤를 이어 아소 다로 내각에서는 총무대신을 역임했다. 후임은 사토 쓰토무. 이후 2010년 경에 자민당을 다시 탈당했는데, 그와 가까웠던 이와야 다케시가와이 가쓰유키는 잔류했었다.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자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이후 다시 자민당을 복당하였으며,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자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6월 21일, 십이지장궤양으로 도쿄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망 이후 지역구인 후쿠오카현 제6구는 차남인 하토야마 지로가 물려받았다.
무덤은 도쿄 고코쿠지역 바로 앞의 고코쿠지(護国寺)로, 산조 사네토미의 무덤 바로 옆이다. 이외에도 오쿠마 시게노부, 야마가타 아리토모, 도이하라 겐지도 이 절에 묻혀 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6 - 1978
정계 입문

1978 - 1993
입당

1993 - 1994
탈당
자유개혁연합
1994
창당

1994 - 1996
합당

1996
탈당

1996 - 1998
창당

1998 - 1999
합당[9]

1999 - 200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00 - 2010
복당

2010 - 2012
탈당

2012 - 2016
복당

4. 기타


  • 2009년 SMAP의 멤버 쿠사나기 츠요시가 밖에서 옷 벗고 돌아다녔던 사건 당시 어느 인터뷰에서 "대단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왜 그런 자를 이미지 캐릭터로 선택했는가. 부끄럽고, 최악의 인간이다.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해서 욕 먹은 적이 있었다.
  • 2010년 2월의 경 구니오가 "우리 형은 항상 어머니한테 부하한테 나눠줄 돈이랑, 부하 키우는 돈이 필요하다면서 돈 받고 있었다"(...)고 형한테 불리한 발언을 했고, 이걸 요사노 가오루가 캐치해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헤이세이의 탈세왕'이라고 규정하면서 구석까지 몰아갔었다.
  • 요리가 취미였어서 그의 비서들은 하토야마가 주는 식사를 먹었다고 한다. 또한 어릴 때부터 나비를 좋아해 많이 채취했었다.
  • 이와야 다케시 전 방위대신이 와세다대학 졸업 후 구니오의 비서로 활동했다고 한다. 요시카와 다카모리 전 농림수산대신도 니혼대학 졸업 후 그의 비서였다.
  • 가와이 가쓰유키가 하토야마의 살아생전 측근이었다. 다무라 노리히사 전 후생노동대신도 그의 파벌에 소속되어 있었다.


[1] 민주당 대표, 제93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그 사람 맞다. 즉, 형제가 서로 당이 달랐다는 뜻.[2] 전직 탤런트로 결혼 전 이름은 타카미 에미리다. 라이더 걸즈로 출연한 바가 있다.[3] 전 도쿄도의회 의원[4] 오카와시 시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후쿠오카현 제6구 중의원이다.[A] 석패율 비례대표[5] 반대로 형인 유키오는 처음부터 정치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정치에 뜻이 없던 형이 훗날 총리가 되지만, 구니오는 총리직에 오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6] 여담으로 당시 3위가 마스조에 요이치였다.[7] 이에 대해 일각에선 자민당으로 복당하기 위해 도쿄도지사에 출마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8] 브리지스톤 창업자.[9] 민정당, 민주개혁연합, 신당우애와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