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마 고리키

 


'''일본 중의원 (도쿄 13구)'''
'''제41~42대'''
가모시타 이치로

'''제43대
조지마 마사미쓰'''[1]

'''제44대'''
가모시타 이치로
'''일본 중의원 (가나가와 10구)'''
'''제42~44대'''
다나카 가즈노리

'''제45대
조지마 고리키'''

'''제46~48대'''
다나카 가즈노리
'''일본 제16대 재무대신
(じょう(じま(こう(りき
조지마 고리키
'''
'''본명'''
조지마 마사미쓰[2] ((じょう(じま(まさ(みつ)
'''출생'''
1947년 1월 1일 (77세)
후쿠오카현 야나가와시
'''학력'''
라사르 고등학교
도쿄대학 농학부 축산수의학과 졸업
'''신체'''
181cm, 77kg
'''의원
선수
'''
'''4''' (중)
'''의원
대수
'''
41[3], 42[4], 43[5], 45[6]
'''지역구'''
도쿄 13구가나가와 10구
'''현직'''
무직
'''약력'''
아지노모토 노동조합 위원장
식품산업노동조합협의회 의장
도쿄도 제13구 중의원
가나가와현 제10구 중의원
민주당 정책조사회장 대리
민주당 간사장 대리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재무대신
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3. 소속 정당
4. 기타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 생애 및 정치 활동


후쿠오카현 야나가와시 출생. 라사르 고등학교[7], 도쿄대학 농학부 축산수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아지노모토에 입사해 중앙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아지노모토 노동조합 위원장, 식품산업노동조합협의회[8] 의장 등을 지냈다. 또한 이 당시 오자와 이치로를 강사로 초청해 공부 모임을 주도하는 등 오자와와 가깝게 지냈다.
이후 오자와가 당수로 있던 신진당에 합류해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쿄 권역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다. 신진당 해산 이후에는 민간 노동조합 중심의 노조 연맹인 ‘전일본노동총동맹’이 후원하는 민사당계 의원들과 ‘신당우애’에 합류한다. 신당우애가 민주당과 합당한 이후에는 민주당 소속이 된다.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도쿄도 제13구에 출마하나 자민당의 가모시타 이치로에 밀려 지역구 당선에 실패하고 석패율 구제로 당선되었다. 이후 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 재출마해 가모시타를 꺾고 당선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2년 뒤인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가모시타에게 밀려 낙선한다.
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이름을 '''‘마사미쓰(正光)’'''에서 '''‘고리키(光力)’'''로 개명한다. 개명 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를 바꿔 가나가와현 제10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원내에 복귀한다. 이후 민주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다가 아즈미 준의 후임으로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재무대신을 맡는다. 하지만 재무대신에 올랐던 시기가 2012년 10월, 다시 말해 민주당 정권 말기였으며 재무대신이 된지 불과 2개월 뒤에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2개월 만에 재무대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했으며, 소속 당인 민주당도 의석수가 두 자리수로 줄어드는 참패를 기록해 정권을 자민당에 교체당하면서 '''민주당 정권의 마지막 재무대신'''이 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인 입헌민주당이나 국민민주당이 정권을 되찾기 전까지는 민주당 정권의 마지막 재무대신이라는 점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낙선했으며, 이후 더 이상의 정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정계 은퇴인 셈.
2018년 욱일대중장을 수여받았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축사를 해주었으며, 고등학교 후배 이와야 다케시, 다마키 유이치로, 에다노 유키오, 기시다 후미오가 축하해주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6 - 1997
정계 입문

1998
창당

1998 - 2016
합당

2016 - 2018
당명 변경
국민민주당 당적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불명이다.

4. 기타


  • 부흥대신 이마무라 마사히로와 비슷한 점이 많은데, 둘 다 태어난 연도가 1947년이고[9], 규슈 지방에서 태어났으며[10], 도쿄대학 출신[11]이다.
  • 태어나고 이틀 뒤에 하야시 모토오가 태어났다.
[1]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낙선 전까지는 ‘조지마 마사미쓰’로 활동했다.[2]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낙선 이후 개명했다.[3] 도쿄 권역 비례대표.[4] 도쿄 권역 비례대표(석패율제)[5] 도쿄도 제13구.[6] 가나가와현 제10구.[7]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사립 남자 고등학교. 전직 문부과학대신 나카야마 나리아키와 전직 방위대신 이와야 다케시가 이곳 출신.[8] 현재의 일본 식품관련산업노동조합 총연합회.[9] 조지마는 1월 1일, 이마무라는 1월 5일 출생으로 4일 차이다.[10] 이마무라는 사가현, 조지마는 후쿠오카현이다.[11] 이마무라는 법학부, 조지마는 농학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