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아베 신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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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 ((구) 야마구치 1구)'''
'''제39대'''
[46]
오가와 마코토
하야시 요시로
가와무라 다케오

'''제40대
아베 신조'''
하야시 요시로
가와무라 다케오
고가 다카아키

''선거제도 개편''
'''일본 중의원 (야마구치 4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8대
아베 신조'''

''현직''



'''일본국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安倍晋三 | Abe Shinzō
'''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출생'''
1954년 9월 21일 (70세)
도쿄도 신주쿠구
'''재임기간'''
제90대 내각총리대신
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제96대 내각총리대신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3일
제97대 내각총리대신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0월 31일
제98대 내각총리대신
2017년 11월 1일 ~ 2020년 9월 16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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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본적'''
야마구치현 나가토시[47]
'''부모'''
아버지 아베 신타로, 어머니 아베 요코
'''형제자매'''
형 아베 히로노부[48]
남동생 기시 노부오[49]
'''배우자'''
아베 아키에
'''친인척'''
조부 아베 간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학력'''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 / 학사)[50][51]
'''신체'''
175cm
'''정당'''

'''지역구'''
야마구치 4구
'''의원 선수'''
'''9''' (중)
'''의원 대수'''
40, 41, 42, 43, 44, 45, 46, 47, 48
'''약력'''
고베 제강 직원
아베 신타로 비서관
중의원 의원
제31대 자유민주당 청년국장
내각관방부장관 정무담당
제38대 자유민주당 간사장
제72대 내각관방장관
제21·25대 자유민주당 총재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

1. 개요
3. 정책 방향
3.1.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
3.2. 외교 정책: 강한 친미 - 친 서방 노선
3.2.1. 한일관계: 광복 이래 역대 최악
3.2.1.1. 관련 문서
3.3. 군사 정책: 대규모 군비 증강과 평화헌법 무력화
3.4. 외국인 노동자 수용 정책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저서
8. 여담
8.1. 한국계 도래인 후손 설
8.2. 개인 성향
8.2.1. 다혈질
8.2.2. 前 지한파
8.2.4. 영어 실력
8.2.5. 활발한 SNS 활용
8.3. 역대 최장기 집권과 6연속 선거 압승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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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정치인.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전후 세대 출신의 첫 번째 총리이자 전후 최연소 총리[1]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한 총리'''[2] 기록을 보유한 인물. 또한,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총리이자 레이와 시대의 첫 총리이기도 하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첫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제1차 아베 내각). 그러나 지나치게 빨랐던[3][4] 정치적 성공 탓인지 여러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권위가 실추된 데다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 단 1년 만에 사퇴하면서 단명 총리로 남았다.[5]
하지만 이후 자유민주당 출신의 후임 총리들도 1년 이하의 임기로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고, 민주당 총리들 역시 단명 내각을 이끌며 3년 만에 지지율이 급전직하하였다. 결국 2012년 12월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의 승리로 정권 교체에 성공, 총리에 복귀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다(제2차 아베 내각). 2년 뒤인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5년 뒤인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다수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였다(제3, 4차 아베 내각).
정치 측면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임기 종료 이후 약 7년간 회전문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했던 일본 내각제를 탄탄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안정시킨 인물이다.[6][7] 경제 측면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을 실시하여, 일본의 경제를 상당 수준 활성화하는 데 '''성공'''[8]하였다.
외교 측면에서 아베는 미국에게, 러시아, 중국, 북한을 위시한 반 서방 세력 견제의 매우 중요한 '''조력자'''[9]로 인식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아베독트린이 국제 사회에서 별 잡음없이 통과된 데에는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한국과 중국에서는 아베 신조의 그릇된 역사관을 이유로 들어 양국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판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과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를 강행하기도 했다.[10] 이후에도 계속 공물 봉납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주변국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11][12] 실제로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의 회원이다.
또한, 국방 및 군사적 측면에서는 '''일본의 재 무장 및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신 냉전 구도의 당사자인 중국은 당연히 이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동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를 일본 군국주의 발흥의 전조 증상이라며 비판에 가세하는 중이다. G7 서방국가들의 ‘요구’와 일본내 우익의 '요구'에 응하여[13] 진행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경기가 나아져 매년 늘어난 GDP와 세수액 및 예산을 비교해 본다면 비록 매년 증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1%대 군사비를 지출하는 일본은 오히려 한국(GDP 대비 2.6%)이나 중국(GDP 대비 2.0%[14])과 비교하였을 때 양호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볼 수 있다.[15]

2. 생애




3. 정책 방향



3.1. 경제 정책: 아베노믹스



'''“아베노믹스의 성과는 영국마거릿 대처, 미국로널드 레이건이 일군 성취와 비견될만하다.”'''

조너선 가너, 모건 스탠리아시아 전략분석가 출처

무제한적 양적완화와 정부지출, 구조개혁이라는 소위 3개의 화살을 정책기조로 삼고 있다. 아베의 취임과 동시에 G7 국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실시하기 시작해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게 거세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양적완화와 정부지출의 목표는 기업들의 낙수효과와 소비심리 회복이다. 구조개혁이란 '1억총활약사회'[16]라는 기치아래 여성노인의 노동을 장려하고, 기간산업 민영화와 고용시장의 유연화를 촉진시키고, 기업규제를 개혁해서 일본을 더 활기차게 만들고, 이민 완화를 통해 90년대부터 일본의 골칫거리인 저출산 고령화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image]
일본 닛케이 지수는 아베가 본격적으로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자 하루에 3~4%가 넘는 급상승세를 펼쳐 5년 4개월만에 15,000선을 돌파했다. 2015년 이후로는 거의 18000선 부근에서 안정을 찾았고, 2016 후반기부터 2017년 중반기에는 19000대 후반에서 20000사이를 오르내리는 중으로 경기가 많이 호전되었으며 엔/달러 환율 역시 111엔대로 상당히 안정적이다. 2021년 2월 14일 현재 버블 붕괴 이후 30년 만에 30000선을 돌파했다.
사족으로 통화 정책은 그 연구를 가장 활발히 하던 1980년대에도 국가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정책으로서는 연구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미국에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경기 부양책으로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기술 개발의 정부 보조 등을 약속하는 와중에 이러한 조세 정책만으로는 자본이 제대로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비판을 받자(Timing Problem), 보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통화 정책이 부상한 것이다.
또한 경제와 친서방 행보를 동시에 잡는 정책의 일환으로 당초 일본은 미국이 권유하는 TPP(다자간 FTA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가 여부를 놓고 저울질했다. 그러나 당시 내각이 민주당인 데다가 농가의 타격을 우려한 만큼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자민당의 반대가 많아 소극적이었으나 아베는 높은 인기를 기반으로 TPP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2013년 4월 TPP 참가국들의 참가 협상 승인을 받았고 # 미국은 자국 의회에 정식으로 일본의 TPP 협상 참여를 통보하였다. # 이것으로 한국의 FTA 행보(특히 한미 FTA)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TPP가 성사되면 일본의 국내 총생산은 0.66%(3조 2,000억엔)이 증가할 것이고, TPP 참여국 가운데 미일만으로 90%의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환태평양 경제권의 리더로 재도약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수치조차 보수적인 예측으로 피터 페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니혼 게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TPPA 참여는 일본 경제 생산성을 높여줄 것"이라며 GDP를 10조 엔(약 98조 원) 정도 늘리는 효과가 있으리라 추산했는데 이것은 일본 정부의 예측치 3조 2천억 엔의 3배를 넘는 수치다. # 또한 일본의 갈라파고스화가 된 시장과 규제를 TPP 참여로 단숨에 글로벌 규격에 맞추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TPP에서 미국을 빼낸 도널드 트럼프 당선 전까지의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트럼프는 다자무역협정은 물론 힐러리 클린턴버락 오바마가 협상한 모든 대외협정에 대해 부정적인데, TPP는 여기에 모두 해당되었으니 불가피한 결과였다. 아베는 트럼프의 당선소식을 듣자마자 뉴욕 트럼프타워로 황금 골프채를 들고 달려가는 정성을 보이면서까지 TPP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트럼프의 마음을 돌리는데 실패했다. 어쨌건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고 해외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 시장개방까지 해가면서 TPP-11로 밀어붙였지만 참여국 중 일본이 가장 큰 시장이 되어버렸다. 즉, 일본은 미국과의 FTA 효과도 못누리고 졸지에 다른 10개국으로부터는 무역적자만 볼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버린 것. 혹여 미국이 향후 다시 TPP에 복귀한다하더라도 위와 같은 희망섞인 전망을 재현하기엔 어려워보인다.
특히 아베노믹스가 좋게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존재한다. 왜냐면 이런 식의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는 언젠가는 장기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특히 현재의 일본 경제는 구조적으로 국채 금리 상승에 취약한 상황이다. 이미 국채 자체가 GDP의 2배를 훌쩍 넘어간 지 오래이기 때문에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이 영영 마이너스 금리를 못 빠져나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비록 아베 임기 동안 소비세를 인상하는 법안이 일본민주당 정권 시절의 여당 의원들에 의해 통과되긴 했지만, 아베 내각 들어서 소비세를 증세하는 것도 논란이 많은데, 양적완화와 정부지출이 하는 것과 정 반대의 디플레이션, 소비침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베 2차 내각에서도 소비세를 8%로 증세를 하면서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상쇄하는 부작용이 일어나 두 차례 추가 인상일정을 연기하고 말았다. 2013년, 2%의 성장률을 이뤄내며 기분좋은 출발을 하던 아베 노믹스는 8%로 소비세 인상을 강행하면서 상당히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2013년 당시만해도 일본이 곧 3% 성장도 가능하다는 꿈 같은 관측도 나왔었지만 소비세 인상 이후 성장률이 다시 하회하면서 말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린 것.
사실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도 소비세를 인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일본의 높은 재정지출과 함께 국가 신용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국채 금리가 상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 급박한 이유는 심각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막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반응은 소비세를 증세하는 것과 빚을 갚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대부분인데, 일본이 빚갚는답시고 소비세를 1990년대부터 당시 3%에서 현재 8%로 5%포인트 올렸으나 부채는 GDP대비 50%대에서 200%로 증가해 무려 4배가 됐기 때문.
아베노믹스가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승부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양적완화가 핵심정책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새로운 기조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일본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아베 2기 내각의 정책의 성공여부가 일본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17]
일단 2019년 연말에 현행 소비세 8%에서 10%로 증세하기로 거듭 확정한 상황이다. 또한 2019년 4월부터 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시작했다.

3.2. 외교 정책: 강한 친미 - 친 서방 노선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강한 친 미국 노선'''과 '''반중[18], 반북''' 정책. 이는 일본 자민당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우파인 자민당은 친미 성향이며, 좌파인 야당들은 일반적으로 친중, 친한 노선을 띠고 있기 때문. 따라서 아베와 자민당 정부는 중공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3.2.1. 한일관계: 광복 이래 역대 최악



아베 내각 시절 대한민국일본의 관계는 한반도일본으로부터 해방 된 이래 정치적으로 '''가장 험악한 관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거의 경우엔 미국동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패권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 중재를 시도 하였으나, 일본이 대한민국 대법원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경제제재를 가하자 한국의 문재인 정권이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내 들면서[19] 미국이 일본과 외교적 보조를 맞추는 듯한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아베 2차 집권 시기엔 아베가 정치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한국을 때리면, 한국도 명분도 받았겠다 거기에 거세게 맞대응 하며 정치적 이익을 챙겨가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반복되면서 당시의 한일 관계는 광복 이후 역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20] 미국의 입장에서도 현재 중국을 대상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한미일 공조 관계가 상당히 중요함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여타 미국 대통령과 달리 한일 중재에 힘을 쓰지 않고 있다. 9월 16일부로 8년만에 총리가 다른 인물로 바뀌었고 바이든이 차기 미 대통령이 될 전망인 2020년 말부터, - 한일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잘 지켜보자.

3.2.1.1. 관련 문서


3.3. 군사 정책: 대규모 군비 증강과 평화헌법 무력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강력한 지지 하에서, 전후 일본이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지해왔던 노선을 폐기하고,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반 서방 세계 국가들에 대한 억지력과 공격력을 키우는 대규모 군비 증강 정책이 아베 내각 기간 내내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동아시아의 과거 일본제국에 의한 전쟁 피해국이었던 한국, 북한, 중국 등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G7을 포함한 서방 국가의 지지를 확보한 일본은 이러한 저항을 가볍게 쌩까고 해군력과 공군력을 급속도로 키우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국방 예산은 아베의 취임 시기인 2012년 4조 7억 에서, 2019년 5조 3천억 으로 증가했으며,[21] 2018년엔 다른 국가들의 해병대에 해당되는 수륙기동단을 창설했다.[22] 거기다 사실상의 항공모함에 해당하는 이즈모급 함선을 2척 건조했고 F-35를 100대 이상, 구축함급인 30FFM도 20여 척 이상 추가 주문해놓은 상태다.
또한 평화헌법에서 집단적 자위권 부분을 개정하는데 성공했으며 순수 공격용 무기인 JASSMJSM 공대지 순항미사일 도입에 사실상 지대지 탄도미사일에 해당되는 도서 방위용 고속 활공탄까지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자체적으로 초음속 대지 순항미사일까지 개발하여 배치할 계획으로 이미 예산 증편을 완료했으니 평화헌법이 사실상 무력화시킨게 아니냐는 여론이 많다.

3.4. 외국인 노동자 수용 정책


아베 정권 하에서 일본 내의 외국인 노동자[23]는 2018년 기준 138만명으로, 그가 집권하기 이전에 비해 2배가 되었다. 2018년 10월, 2025년까지 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법안을 승인했으며,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2019년 4월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이제 일본은 저임금 단순노동직도 5년간 노동자 자격으로 일할 수 있으며, 기술직 노동자의 경우 가족 동반이 가능하고 사실상 무제한으로 비자를 연장할 수 있는데다 영주권도 취득 가능하다. 또한 일본어 능력시험 요건도 대폭 완화한다. 아베는 이것이 '이민정책'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였으나 동시에 '일본의 문화를 외국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한다'고 하며 다문화 이민정책을 추진함을 시인하였다.
물론 자민당 주요 지지층인 보수계에서 격렬한 반대가 터져나오고 있으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반의 일본국민들이 이민개방을 용납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등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중에서도 일본제일당만이 극렬 반대할 뿐, 나머지 일본 유신회 등 우익성향 정당들은 모두 찬성이며, 입헌민주당 등 리버럴 계열 야당은 내국인의 임금감소 등 다소 우려는 있으나, 만약 유럽식 이민제도를 확립하고 외국인에게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할 변화라는 입장이다.
이로써 아베는 일본에 첫 대규모 외국인 이민을 결단한 총리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 인구의 28%가 노인이고 젊은이들은 힘든 직종은 기피하고 있어 농어촌이나 지방 중소기업들은 이미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이 잇따르고, 저출산노령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이민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국내외의 회의론자들은 아베가 한 일은 체류자격을 세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 하에 오랫동안 들어온 사실상의 노동자들을 이제서야 노동자라고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의 거류외국인 비율도 예전부터 참 말이 많은데, 의도적으로 불법체류자 숫자를 축소해서 발표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 다만 이것도 한국 입장에서는 위기가 올 전망인데, '''한일 무역 분쟁이 촉발되면서 현재로서는 일본의 현재 사실상 유일한 실질적 통상 이민제도이자 취업이민 제도'''인 5년 이상 합법체류를 통한 취업 종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시 영주권이 발급되는 이민제도가 차질을 빚게 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더군다나 아베와 측근들 측에서 꺼내들 순차적인 잠정적 카드로 이미 발표가 된 지라 더더욱 대한민국 국내의 일본 취업 희망자들에겐 크나큰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4. 비판과 논란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2 -
정계 입문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지역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3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야마구치 1구

'''97,647 (24.2%)'''
'''당선 (1위)'''
'''초선'''[24]
1996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야마구치 4구
'''93,459 (54.3%)'''
'''재선'''
2000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1,835 (71.7%)'''
'''3선'''
200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40,347 (79.7%)'''
'''4선'''
2005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37,701 (73.6%)'''
'''5선'''
2009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1,365 (64.3%)'''
'''6선'''
2012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18,696 (78.2%)'''
'''7선'''
2014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0,829 (76.3%)'''
'''8선'''[25]
2017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4,825 (72.6%)'''
'''9선'''[26]

7. 저서


  • 아베 신조 대론집: 일본을 이야기한다(安倍晋三対論集 日本を語る) (2006년 4월 출간.)
  • 새로운 나라로 아름다운 나라로 완전판(新しい国へ 美しい国へ 完全版) (2013년 1월 출간.)
3권 모두 2016년 기준 국내에는 번역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한국에도 아베 신조에 대한 내용을 담은 최신 도서는 많다. 예를 들면 한동안 꽤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이란 책이라든가, 참고로 이 책은 아베 신조의 출생부터 지금 일본 정치의 최정점인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을 서술한 책이다. 아베 신조라는 인물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 수 있는 책이지만 작가의 성향이나 시각이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 상당 부분 비판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책이 완성된 시기에서 보여지는 아베 신조의 행적과 현재의 행적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의 반영이 누락된 부분은 감안하여야 한다.

8. 여담


  • か행(카키쿠케코) 발음이 좋지 않은 편이다. 2012년 자민당 광고 사실 아베의 발음은 전체적으로 부정확하고 새는 경향이 강해서 알아먹기 힘든 편. 대학 일본어 수업에서 아베의 스피칭은 최고의 난적으로 꼽힌다.
  • 친일 성향 언론인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과 친분이 깊다. 이미 오래 전(2005년 간사장 시절)부터 서로 면식과 인터뷰를 한 경험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3년 집무실에서 인터뷰(녹음)도 했다. 조갑제 닷컴의 기사. 여하간 양국 관계가 나쁜 상황에서 한 아베 재취임 이래 한국언론 최초의 인터뷰다.
  • 그의 행보 때문인지 히틀러 분장을 당해 까이기도 했다.
  •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 태생의 코미디언 존 올리버에게 까인 적이 있다.

역대 일본의 수상들 중 TV 토크쇼, 예능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출연했다. 유튜브에서만 뒤져봐도 2012년 2차 내각 이후 최소한 10회 이상 TV 토크쇼, 예능 등에 출연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사진은 2016년 5월 1일 일요 아침 예능 방송인 와이도나쇼(버라이어티 성격의 시사 프로)에 출연한 모습.# 현 정권에서 보육원에 대한 정책 방향을 비롯해 인터넷에서의 비방이나 국회에서의 야유에 대한 생각, 그 밖에 음주와 관련된 에피소드 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하였다. 음주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과거 고베 제강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대장염으로 인해 전혀 음주를 하지 못했지만 야유회에는 참여했는데, 바로 운전수 역할이었다는 얘기.
  • 2015년에 정치자금 모금액 상위 20명 가운데 17명이 자민당 의원이며, 전체 6위를 차지했다.#
  • 2017년 2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할 때 트럼프가 손을 세게 잡고 악수를 했는데 악수가 끝난 후 아베의 표정이 뭔가 웃겨서 짤방으로 쓰이고 있다.문제의 악수
  • 중요한 선거 전날 모든 유세를 마치고 한국식당에 가서 불고기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단골 식당인 가레아(可禮亜)는 코리아를 발음대로 한자로 적은 것이며, 딱히 비싼 식당도 아닌 저렴한 불고기 전문점이다. 내부는 한국식 병풍과 하회탈, 조선 백자, 궤짝 등으로 꾸며놓아 누가봐도 한국식당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극우 인사들로부터 종종 비난을 받기도 했다.#
  • 2017년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려있을 무렵, 아베는 총리 관저에 자주 머물렀는데 MBC에서 제작한 드라마 제5공화국을 시청하였다.
  • 역대 최장 수준의 재임 기간을 보내고 있었던 탓에, 아베 내각의 주요 각료들도, 역대 최장기 재임 기록들을 함께 경신했다.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을 맡고 있던 스가 요시히데, 재무대신과 부총리를 맡고 있던 아소 다로 전 총리는 각각 역대 최장기 재임 관방장관최장기 재임 부총리 겸 재무대신이다. 보스이자 총리인 아베가 최장기 집권하였으니 어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물론 나머지 각료들은 내각 개조 혹은, 중의원 해산을 통한 차기 내각 성립 때 물갈이 되었다.
  • 그가 총리로 재임하던 시기에 대한민국에선 노무현, 이명박[27],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차례로 집권했고,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버락 후세인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례로 집권했다. 워낙 오랜 기간 총리로 집권했기 때문.
  • 2차 이후의 아베 내각은 극단적인 남고여저의 지지율 양상을 보인다.(10% 이상) 관련 기사 재미있는 부분은, 처음 집권했던 2006년, 2007년의 1차 내각 시절엔 패턴이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아베는 전후 출신의 첫 수상이자 전후 최연소에,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귀공자 타입의 이미지가 강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더 높았다고 한다.(10% 이상) 그러나 2012년 재집권한 2차 내각 이후에는 1차 내각 시절의 신선미가 사라지고 노련한(노회한 ) 정치인의 이미지가 생긴 데다 정치 성향마저 극우화 되면서, 혹시라도 아베가 밀어붙이는 개헌이 실현되면 자신들의 자녀 세대가 조상들처럼 전쟁의 참상 속에서 희생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자식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 세대 즉, 30-50대 여성의 계층에서 지지율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된다.
  • 또한 2012년 이후의 2차 내각은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층에서 지지율이 두드러지게 높다. 관련 기사 이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양적완화를 기반으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2030 세대의 경제 상황이 상당히 좋아졌고, 2011년 중국에게 GDP를 추월당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 타이틀을 빼앗긴 이후 자신감을 잃었던 일본에게 ‘강한 일본’을 슬로건으로 외치며 군비를 강화하고 세계적인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아베 내각과 자민당의 노선에 대해 젊은 세대가 열광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 보수 정당이자 정권인 자민당과 아베 내각이 젊은 세대로 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여러모로 상당히 이례적이며 신기한 부분이다. 주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등)과는 정반대의 패턴이기 때문.
  • 제87-89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와는 정치적 사제 관계이다. 아베 신조가 제90대 내각총리대신(제1차 아베 내각)으로 처음 취임했던 2006년에 직전 내각이었던 고이즈미 정권에서 관방장관을 맡았으며, 그 당시의 총리 지명 역시 현직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원자력을 중요시하는 아베 신조와 탈원전을 주장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관계는 현재 그닥 좋지 않다. 고이즈미의 임기가 시작된 2001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약 20여 년의 기간 중, 이 정치적 사제 관계인 두 사람의 임기는 거의 2/3[28]에 육박한다. 즉 21세기의 일본은 고이즈미와 아베가 이끌어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 2006년 연말에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기자: 총리한테 '올해의 한 글자'라고 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아베: 올해는 제게...'변화'(変化)의 한해였을까요.
>기자: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아베: 그건...'책임'(責任)이겠죠.
  • 놀랍게도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이다. 자기 저서에서 전신인 산케이 스왈로즈 시절부터 응원했다고 써놨고 방송에서도 여러차례 야쿠르트 빠심을 드러낸다. 또한 스왈로즈 빠라면 당연하게도 골수 안티 교진이다. 나가시마 시게오, 마쓰이 히데키국민영예상 시상식에서도 이 둘에게 "난 안티 교진이라서 이들에게 주는 게 못마땅하네"라고 할 정도니(.....)[29]
  • 한국의 정치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아베 자신은 화려한 상석에, 상대는 민무늬 하석에 앉히며[30] 한국에 대한 의전 차별을 언론에 보이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문재인 정부 수립 시기에 일본에 보낸 특사 회담 사진을 두고 한국 인터넷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는데 2018년 3월 13일 서훈 국정원장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는 아베와 서훈 국정원장 둘 다 동일한 의자에 앉았었고#[31] SBS가 아베 접견을 전수조사한 결과 어느 정도 패턴은 있지만 그건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그걸로 의전 차별이란건 한국 언론의 호들갑이란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8.1. 한국계 도래인 후손 설




<조건>
  • 토론 관리 방침의 신뢰성 판단 기준 7순위 이상의 근거자료 위주로 서술하고, 그 외 한국계 도래인 설에 대한 주관적 의견은 최소화하여 서술한다.
  • 사토 에이사쿠와 아베 신타로, 아베 신조가 공개 석상에서 한국계 도래인인지 아닌지를 직접 발언한 내용이 없음을 서술한다.
  • 사토, 아베 가문이 도래인 후손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일본 내 역사학적 기록이 확인되지 않음을 서술한다.

  • 보수 성향 정치인임에도 뜻 밖에 한국계라는 떡밥이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보통 넷 우익들의 한국계 드립은 하토야마 유키오간 나오토같이 진보 성향의 정치인에 치는 경우가 많지만, 아베 신조는 우파 성향임에도 한국계설이 나돈다. 대표적으로 참의원 선거 때 파칭코 업계[32]에게 5천만 엔의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파칭코나 야쿠자 정치 자금설은 어느 정치인에게나 흔하니 비방성 루머로만 그쳤지만 한국계 떡밥을 결정적으로 불지핀 것은 아베 신조 1차 내각이 나온 2006년 9월 주간 아사히가 아베가에서 40년간 가정부로 일해온 구보 우메와의 인터뷰에서였다.
  • 2006년 주간 아사히는 10월6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아베 신조 연구-가정부가 본 아베.기시3대'라는 제목으로 아베 총리 가문의 내력을 특집 보도하였고 한국 언론에서도 이를 인용해 보도하였다.
>기시와 아베 가문에서 가정부로 40여년을 지냈던 구보 우메(80)는 슈칸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부친 아베 전 외상이 고백한 집안 내력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구보는 "파파(아베 전 외상)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게는 말해줬다"면서 "(아베 전 외상 사망 직후) 입관될 때 이 사람의 골격을 보면서 정말 일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로 잰 듯이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완전히 한국(인)의 체형이다. (아베 전 외상) 스스로도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
>그는 또 "(정치인으로서 주변에서) 인기가 높았으며 따라서 좀더 건강하게 활동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북한 문제도 해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전 외상의 죽음은 나라의 손해였다"면서 애석해했다.
>
>이 잡지는 아베 전 외상은 생전에 아베가(家)의 기원은 10세기쯤까지 한반도 북쪽에서 중국 대륙에 걸쳐 존재했던 발해국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에서의 아베가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고 보도했다.
>
>아베가의 기원에 대해 구보는 "아베가의 본류는 아오모리현이다. 아베 전 외상이 조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지금의 북한이 아니라 그 북쪽과 길림성 아래쪽에 있었던 발해"라면서 "11세기 헤이안(平安) 시대의 무장이었던 아베가 지금 아베가의 선조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도 아베 총리를 끔찍히 아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구보는 아베 총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쿄의 기시 전 총리의 자택에서 가정부로 지냈으며, 지금은 따로 나와 도쿄에서 살고 있다.아베 일본 총리 부친, "나는 조선인이다''
  • 아베 신조의 한국계 집안 설은 외가 쪽에서도 나왔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33]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 총리와[34] 심수관 14대의[35] 대화에서다.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2006년에 발간한 책 <슬픈 열도-영원한 이방인 사백년의 기록>의 내용에서, 임진왜란 직후인 1598년 일본에 끌려간 도공으로 일본의 도자기 종가를 이루게 된 심수관(沈壽官) 가문의 14대 후손을 인터뷰하는 과정 중 1964년부터 72년까지 일본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75)가 죽기 1년 전 자신을 찾아와 사토 집안도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계임을 직접 고백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14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가문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임을 추정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964~1972년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에게서다. 지금도 그의 거실에는 사토 전 총리가 써준 휘호가 걸려 있다. ‘묵이식지(默而識之)’라는 글씨 곁에 ‘심수관 선생에게, 갑인년 봄 에이사쿠’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갑인년은 1974년을 뜻한다. # #
  •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심수관 14대는 같은 얘기를 한다.
>14대는 사토 전 총리가 이 휘호를 써준 날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사토 전 총리는 차를 대접받은 뒤 “좋은 차였습니다”고 인사하고는 “수관 씨, 몇 대째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14대입니다”라고 하니 “저는 좀 더 짧을 겁니다. 당신네는 게이초(慶長·1596~1615년) 때 왔는데 우리 선조는 그 뒤에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붓과 벼루를 청해 글씨를 써줬다는 것이다. 묵이식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이다.
>
>이에 대해 14대는 “그 말의 진위를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사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는 예로부터 조선반도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라 가능한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현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친동생이다. 1975년 세상을 떴다.#
  • 이와 관련해 사토 에이사쿠와 아베 신타로, 아베 신조는 생전에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집안이 한국계 도래인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직접 발언한 적은 없다.
  • 2006년 주간 아사히가 구보 우메의 증언에 대해서 보도한 이후 아베 신조가 공식 기자회견 등 공개 석상에서 주간 아사히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 긍정을 하거나 부정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아베 신조가 주간 아사히의 보도 내용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 현존하는 일본 내 사료(史料) 중에서 사토와 아베 가문의 시조가 도래인이라고 기록된 사료가 발견된 적은 없다.

8.2. 개인 성향



8.2.1. 다혈질



불편한 질문을 받자, 방송용 이어폰을 뽑아버리고 자기 할 말을 일방적으로 이어갔다.
또,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굉장히 모욕적인 야유를 하기로 유명하다. 발언하는 야당에게 '에~?'라면서 비웃는 표정으로 비꼬거나영상 입헌민주당 의원에게 '''공산당!'''하고 소리친다던가, 공문서를 들고 나와 질의하는 의원에게 '''니가 만든 것 아니냐'''라고 하던가, 쓰지모토 기요미 의원의 질의에 '''의미없는 질문이야'''* 등등...영상
이러한 괴팍한 성격은 측근인 세코 히로시게가 지적할 정도로 일본 관저 내에서도 유명한 걸로 보인다. 영상

8.2.2. 前 지한파


나라가 다르면 역사나 문화도 다르다. 양국 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서 그것들을 전부 일일이 연관 짓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서로 다름은 다름으로 해서 존중하는 것도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일본과 중국은 서로의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수뇌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과도 마찬가지이다.일한 양국은 지금 하루 1만 명 이상이 왕래하는 중요한 관계이다. 일본은 오랜 기간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흡수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에서 한류 붐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나는 일한 관계에 관해서 낙관적이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과 법의 지배라고 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로 일한관계의 기초가 아닌가. 우리들은 과거에 대해서 겸허하고 예의바르고 미래지향으로 마주보는 한 반드시 양국의 관계는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EPA(경제협력협정)의 체결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 p. 157, '''2006년 7월''' - ##

2006년에 쓴 책을 보면 알듯이 예전에는 정치 성향과 다르게 한일협력을 중시하였다.

8.2.3. 일본 총리 관저 입주 거부


일본 총리의 집무실인 일본 총리 관저에는 총리가 숙식을 하는 장소가 있지만 아베는 총리가 된 지 5년이 지나도록 시부야에 있는 사택에서 총리 관저로 매일매일 출퇴근을 하고 있다. 아베 신조가 비교적 젊었던 시절인 '''제1차 아베 내각 때에는 총리관저에 입주했다'''. 이로 인해 민주당 등 야당에서 "안보 위기 의식이 없다"고 태클을 걸었지만 아베는 "총리 생활과 사생활을 구분하고 싶다"고 대답했다.[36]
총리 취임 뒤로 총리 관저에 들어가질 않아서 총리 관저의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실제로 일본 총리 관저에서 1932년 5.15 사건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비롯해 여러 명이 피살된 이후로 이곳에서 전직 총리들이 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있었다고.[37] 일본 국회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자 아베 총리는 "귀신 때문에 관저에 안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소문은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편으로 6월 1일 요미우리 TV 방송에서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관저에서 귀신의 다리를 봤다"는 이야기를 해서 "귀신 때문에 못 들어가냐"는 소문은 식을 기미가 없다. 아베 신조 1기 내각 때 총리관저에 입주했다가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참패하고 불명예 퇴진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2기 이후로 아베가 총리관저 대신 사택에서 출퇴근한다는 설이 있다.

8.2.4. 영어 실력


일본인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영어를 잘한다. 외신에선 "일본인들은 보통 영어 못하는데 잘한다"가 기본적 견해다. 물론 일본식 억양, 발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일본인에 비하면 영어 구사력이 좋은 편. 사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공부한 적이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첫번째 총리 역임 당시에는 외국관광객에게 환영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일본 관광청의 "요코소 재팬(Yokoso Japan)"의 일환이다. 요코소 재팬, 2014년 다보스 연설

8.2.5. 활발한 SNS 활용


페이스북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치인으로 하루 평균 1.8개의 페북 소식을 올린다고. '인터넷 재상'이라고 불릴 만큼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데 늘 휴대하는 태블릿 PC로 전직 관료, 현직 야당 의원, 한국 그 자체 등을 심하게 까내리면서 호평과 혹평을 함께 받는다. # 참 문제 많은 행태지만 일본의 보수와 젊은 세대들은 열광한다고. 특히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아베는 "폭거다. 점령하는 쪽이 도발적 행동을 하면 몰상식하다"는 글을 올렸고 반나절 만에 2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여하간 일본에선 대단히 보기 드문 유형인 인터넷 활동이라, 분명 대중적 인기를 끄는 총리다.
요즘에는 페이스북보다는 주로 트위터를 통해 외교 정상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정책 홍보 글도 올리고 있다. 2019년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8.2.6. 영화


소문난 영화광이다. 연평균 50회 이상 영화관에 방문하여 영화를 본다. 거의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영화를 보는데, 공휴일을 이용하거나 공휴일이 없으면 수요일 저녁에 영화를 본다. 일본인들은 영화관에 잘 방문하지 않아 1인당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1회를 간신히 넘어 1.5회 정도 된다. 한국은 같은 지표에서 4.1회. 아베 신조는 전 세계 국가원수급 정치인 레벨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를 많이 본다. 실제로 일반인 수준에서도 '''연평균 영화관 관람 50회면 이미 영화 관람 상위 0.1% 안에 들어가는 중증 영화광'''이다.[38]2018년 12월 31일은 부인과 이런 야심한 밤에 바나나라니 사랑스러운 실화(こんな夜更けにバナナかよ 愛しき実話)라는 영화를 보고, 2019년 1월 1일 새해 시작을 보헤미안 랩소디와 함께한 것도 아베의 영화광적인 성격이 드러난 면모이다. 일본의 영화관 표값이 2D 일반 영화도 1,800엔에서 2,000엔 정도 하는 것을 보면 영화에 대한 지출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도호시네마이온시네마 두 군데를 이용 중이며, 둘 다 VIP 등급이 있는 것으로(정확한 등급은 불명) 알려져 있다.
아베의 영화 성향은 저예산 독립영화부터 외국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다양한 편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잘 안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신조와 사이가 안 좋은 소노 시온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작품도 아베 신조가 보고 나서 가끔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본에 개봉한 한국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의 영화광적 면모 때문에 일본 영화계에 대한 여러 지원책을 내놨고, 그 중 하나가 쿨 재팬 사업이었다. 그러나 일본 영화 시장 규모가 20억 달러 선에서 정체되는 등 커지질 못하니[39] 아베 신조 본인도 안타깝다고 2018년 10월 국회 질의에 답변한 바 있다. 이때 아베는 '''"일본인들이 영화를 더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일본 영화든 외국 영화든 여러 국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에 대해선 입다물고 외면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다루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란이 되자 아베 신조 총리가 늦게서야 축전을 보냈으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거절했다고 한다.

8.3. 역대 최장기 집권과 6연속 선거 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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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2019년 11월 20일을 기준으로 가쓰라 다로의 2,886일 기록을 경신[41]하며 '''총리 직책이 창설된 메이지 유신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한 총리가 됐다.''' 아베의 외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갖고 있었던 '''연속 재임일 수 기록'''도 2020년 8월 24일을 기준으로 넘어섰다.
2차 내각이 성립된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시작으로,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내리 압승'''하였다. 이는 일본 내각 130년 역사 이래 유례가 없는 놀라운 연승 기록이다. 이는 아베 내각의 경제적 성과와 더불어 정치적(개헌 추진과 군비 증강 정책), 외교적(강력한 친미, 친서방 정책) 스탠스를 국민들이 크게 지지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를 단순히 자민당 장기집권의 연장선 덕분이다 라고 치부하기엔 꽤나 어마어마한 결과이다. 당장 아베의 1차 내각 이후 2009년에 압도적인 민주당 정권 교체가 있었고, 그 이전의 자민당 독주 시대에도, 단일 내각이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어떤 내각이 장기간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정치를 지속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그렇게 성공적인 정책을 펼쳤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 독주하는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견제 심리로 인해 선거에서 연승을 거두는 것은 상당히 힘들기 때문. 물론 2차 아베 내각 이후의 연승은 민주당 정권 시절의 심각했던 실정을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일본 국민들의 심리에 의한 반대 급부 성격이 짙은 것도 부인하긴 힘들지만.
1차 아베 내각의 직전 내각총리대신이자 아베 신조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역시 선거의 제왕 소리를 들을 정도의 높은 인기를 누렸던 수상이지만, 2018년을 지나는 현 시점에서는 이미 그 수준을 능가했다고 볼 수 있을만큼 많은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고이즈미는 2004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참패(49석/121석)했다. 아베도 2007년 참의원 선거 참패(37석/121석)해서 가려졌지 고이즈미도 2004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수상직에서 짤릴뻔했다. 2005년 우정 해산(중의원)이라는 도박이 대박이 터졌기에(중의원 2/3 장악) 2004년 참의원 선거 참패를 덮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베가 2차 내각 들어서는 참의원 선거도 싹쓸이 중이라 더 무서운 것.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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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TV에서 발표한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연령별 투표 성향. 당 이름은 왼쪽부터 자민당, 공명당, 희망의 당, 일본 유신회, 입헌민주당, 일본 공산당이다.
일본에서 아베 수상의 장기집권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계층은 바로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다. 그 이유는 아베노믹스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위시한 여러 중산층 위주의 경제정책이 크게 성공했고, 이에 대한 최대 수혜자가 10~20대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연 150만 명씩 은퇴하는 데 반해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은 70만 명 수준인 상황이라 일자리가 넘쳐나 아베의 장기집권에 득이 되는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베 정권은 연금 수령 연령을 상향하고 노인 복지 규모를 축소하는 등 비록 증세에는 적극적이나 노인층 부양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이고, 당연히 젊은 계층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42]
일본 야당의 상황도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야당들은 현실 정치와 경제 상황과 괴리되어 '반대를 위한 반대' 또는 이상적인 정치 이념을 주장하는 등, 집권당인 자민당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일본의 국제적 위상 회복, 불황 탈출 등 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점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자민당과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아베 총리는 방송 출연, SNS 이용 등을 통해 젊은 층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런 것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당 안팍의 정치적 경쟁자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즉, 문제가 많긴 하지만, 능력은 좋다는 게 대략적인 평.[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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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0일 교도통신의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아베 신조를 적극 지지하는 연령대가 '''20대''', 반대하는 연령대는 60대 이상인 것으로 나왔다. 아베 신조의 경제 정책 자체가 일본의 20대를 타겟으로 하였고 저출산 고령화때문에 20대 일자리가 넘쳐나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베는 아소 다로2017년에 고령층을 상대로 한 '''언제까지 살아있을 셈이냐'''는 말까지 할 정도로 '''노인층들한테는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대거 축소'''하고 있다. '''노인층한테 돌아갈 세금을 20대한테 쏟아붓는 것'''이 아베 정부의 아베노믹스 재정정책이다.[44] 노인 복지를 늘리고 노인의 단기 일자리에 상당한 일자리 재정을 쏟아붓는 현 문재인 정권의 한국과는 정 반대의 노선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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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일본 NHK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여기서도 '''20대의 아베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대 남성의 아베 지지율은 무려 73%이였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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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9월, 1차 내각총리대신 취임 당시 52세. 메이지 유신 이후의 모든 총리들로 범위를 넓힌다면 3위인데,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가 최연소 총리이다. 그리고 2번째 최연소 총리는 고노에 후미마로(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전범 재판 직전에 자살한 인물)다.[2]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일본의 입헌군주정이 시작되었고, 1885년 내각제가 시행되면서 일본 내각총리대신 직책도 창설되었다. 통산 '''3,188일''' 간을 재임하며 '''역대 최장수 집권 총리'''와 '''역대 최장 연속 재임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역대 최장수 집권 총리 기록은 약 '''110여 년(...) 만에 경신'''된 것이다. 기존 최고 기록은 가쓰라 다로 전 총리의 2,822일.[3] 3선 의원이었던 2003년(당시 49세)에 자민당 '''간사장'''(당 대표이자 정부 수반인 총리를 제외하고, '''자민당의 실질적 최고위 직책'''이다. 전임 간사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 내 최고 원로급 의원들 혹은 곧 총리 취임이 유력한 실력자들이 맡았던 자리였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기시 노부스케의 딸이자 아베 신조의 모친인 요코 여사가 자신의 아들이 젊은 나이에 간사장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신조는 남편(신타로)보다 열네 살이나 젊은 나이에 간사장이 되었다. 출세의 계단을 지나치게 빨리 올라가는 게 걱정이다.”'''라고 말했을 정도. 관련 기사)으로 발탁되었고, 5선 의원이던 2006년에 총리가 된다. 일본 정치 역사상 보기 드문 초고속 출세 사례.[4] 이렇게 초고속으로 간사장과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납북 일본인 문제에서의 활약상'''이었다. 아베 신조는 1990년대부터 대북 '''강경론'''을 주도해 왔고, 2002년 9월의 북일정상회담 당시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이 북한에서 일시 귀국 형태로 일본에 돌아갔을 때 회담을 성사시켰던 대북 유화론자들의 납치 피해자 반환 주장을 저지하고, 북한과의 약속을 파기해 납치자들의 영구 귀국을 관철하는 일련의 정치적 활약상을 통해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을 포함한 일본 국민들로부터 일거에 폭발적인 정치적 인기를 얻었다. 아베 신조와 납북자 문제에 관한 스토리 스토리 2 그 인기를 감안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3선 의원에 불과한 그를 자민당 간사장에 중용했고, 약 3년 뒤인 5선 의원 시절 1차 내각의 수반이 된 것이다.[5] 2017년 아내 아베 아키에가 한국 동아일보와 나눈 인터뷰에 의하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이 무렵으로 지목했다. 당시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괴로웠다고 회고했다.[6] 여담으로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일본 언론들은 대통령제의 단점을 까는 기사를 많이 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회전문 총리 시기에는 내각제의 단점을 까며 일본도 실권자인 총리에게 강력한 권력을 쥐어줘야 국정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며 대통령제를 도입해야 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했다.[7] 아베 총리가 대단한 점은 자민당 내 강력한 정치력을 갖춘 총리직 경쟁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정치파벌(아소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니카이 도시히로 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아베 신조는 자신의 정치 파벌이 없는 대신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 파에 소속되어 있다. 무서운 것은 원래 호소다 파의 전신(前身)은 마치무라 파였는데, 자신에게 대항하던 전 파벌 회장인 마치무라 노부유키를 부회장으로 몰아내고 바짓사장격인 호소다 히로유키를 회장에 앉히고 호소다 파로 개창시킨 것이다. 이로써 거대 정치 파벌을 운영하는데서 오는 주변의 견제나 반발을 완화시키고 있는 셈이다.[8] 일본의 주가 지수닛케이 225는 취임 초와 비교핬을 때 무려 2.1배 이상 상승했다.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된 1991년 이래 가장 높은 기록인 24,0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실업률, 전 세대의 유효 구인 배율, GDP 수치 등 대부분의 경제 지표들은 아베 내각 기간 동안 줄줄이 신기록을 경신했다. 아베 내각의 2030 세대 지지율이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관련 기사[9] 역대 일본 총리들 중 고이즈미 준이치로,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더불어 친미 성향이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고이즈미, 나카소네 총리가 집권할 당시는 미국이 사실상 유일한 세계 초강대국 시절이었던 것에 반해, 아베 신조의 2차 내각 이후는 미국과 서방 세계의 패권이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 국가에게 위협 받았던 시점이므로, 일본의 현직 총리인 아베 신조가 서구 세계 입장에선 훨씬 더 고마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당장 아베의 2차 내각 직전의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미국 대신, 중국 중심의 외교 스탠스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 이는 미국의 입장에선 상당한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10]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재호, 프레시안, 2013-12-26.[11] 아베 "야스쿠니 못 가서 미안하다"… 4년째 대리참배·시주, 김수혜, 조선일보, 2017-08-16[12] 아베,야스쿠니신사에 총리명의 공물 봉납, 박석원, 한국일보, 2017-10-17[13] 이전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일본이 군대를 가질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들에게 안보를 의존하는 짠돌이 행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불만은 21세기 들어 급격히 팽창하는 중국과 미국의 연이은 파병 실패로 인한 군축을 계기로 폭발했다.[14] 중국 정부의 대외 발표 수치로 신뢰하기는 어렵다.[15] 물론 한국은 사병의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지 않는 징집제를 유지 중이므로 수평적인 비교가 될 수는 없겠지만.[16] 이 발언은 '1억 총옥쇄'라는 말과 어감이 상당히 비슷하여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전시체제를 연상시키는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17] 물론 그리스처럼 문자 그대로 파산할 가능성은 낮다. 일단 일본의 엄청난 해외자산이 있다. 일본은 90년대부터 해외자산보유액 세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으며 2017년 기준으로 이 해외자산 팔아서 외채를 다 갚아도 2.6조 달러가량이 남는다. 국가 파산의 주원인인 외채만 따지면 초우량 순채권국인 셈이다. 세계에서 이게 가능한 나라가 없는데, 그 이유는 해외자산 보유고와 내국인 국채비율이 많기 때문이지만 더 큰 이유는 낮은 금리다. 빚이 원금에서 더 늘지는 않는 것이다. 즉, 일본은 금리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부채 위기가 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며, 그때가서 그걸 막아보려다가는 화폐가치가 대폭락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오게 될 가능성이 있다.[18] 경제적으로는 미중 무역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어느 정도 중국과도 협력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정치-외교-군사적으론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진출을 막기 위해 # 포위망을 설정하는 국가들(미국, 베트남, 필리핀, 대만, 인도 등..)과 철저하게 협조하는 중이다.[19] 지소미아는 내용상 미국에게도 중요한 협정으로, 한국이 일본과의 불편해진 관계를, 미국에게도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써 표현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불쾌하게 생각 할 수도 있다.[20] 흔히 문재인 정부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도 아베 정권과는 계속 대립하는 관계였다.[21] 한국은 동시기 2012년에 34조 원, 2019년에 47조 원으로 크게 뒤처진다.[22] 이게 심각한 포인트인 이유는 해병대라는 조직의 속성을 안다면 이해할 수 있는데, 어떤 국가든지 간에 해병대는 상륙과 점령을 주 목적으로 하는 공격적인 속성의 군사 조직으로, 애초에 전수 방위 및 군사 전력 보유를 금지한 일본의 평화헌법에 전면으로 위배되는 형태의 조직이기 때문. 더 위험한 부분은 이 수륙기동대의 창설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23] 일본의 '외국인노동자'는 고급기술직이 대부분이었으며 저임금 단순노동직의 경우 주로 '기능실습생'이라는 제도로 후진국에서 많이 들어왔는데, 명목상으로는 일본에서 선진기술을 5년 동안 배워서 모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나 사실상의 노동자로, 저임금 혹사논란과 이들의 불법체류, 범죄문제가 심각하다.[24]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25] 2차 내각 (2012~2014)[26] 3차 내각 (2014~2017)[27] 박근혜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에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했고, 박근혜가 당선인이 된 이후 취임했다. 다만 공식적으론 이명박의 임기 시절이므로 이명박과도 동시기의 임기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28] 2001년 4월 ~ 2007년 9월, 2012년 12월 ~ 2019년 현재[29] 물론 진지하게 정색하면서 얘기한 건 아니고 농담조로.[30] 의자의 종류는 같은데 의자의 높낮이를 다르게 배치했던 적이 있다. 물론 아베의 의자가 좀 더 높도록.[31] 방일한 한국 정치계 인사가 일본 총리와 같은 의자에 앉은 것 자체는 처음이 아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방일 당시 정 의장에게도 낮은 민무늬 의자를 내놓았지만 정 의장의 항의를 받고 자신의 의자를 똑같이 낮은 의자로 바꾸었던 적이 있다.[32] 파칭코 업계는 재일교포가 꽉 잡고 있다.[33]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가 반전파 친한파였던 반면에 기시 노부스케는 도조 히데키를 지지했던 주전파이자 A급 전범 용의자로 구속수사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바 있다. 아베 신조는 어릴 적 외가에서 길러져 친가보다는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고 기시 외조부를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34] 둘다 친형제로서 성은 사토였으나 두 집안의 양자로 오가며 성이 달라진 것.[35]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도공 심당길의 14대 손인 도자기 장인 집안이다.[36] 백악관 항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집무실과 주거공간이 결합된 공간에서 몇 년간 살아야 한다는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당히 고된 일임을 알 수 있다.[37] 하타 쓰토무 전 총리는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귀신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38] 1년이 약 52주니까 거의 매주 한편씩 영화를 꾸준히 챙겨보는 셈이다.[39] 한국 영화 시장에서 한국인들은 1인당 연평균 4.1회 정도를 본다. 한국 수준으로 봐서 1인당 연평균 4회 정도 본다고 하면 일본 영화 시장 규모는 단숨에 60억 달러 선으로 급등하여 미국+캐나다인 북미 영화 시장, 중국 영화 시장에 이어서 압도적인 세계 3위가 된다.[40] 아베 신조 아래부터 차례로 가쓰라 다로, 사토 에이사쿠, 이토 히로부미, 요시다 시게루[41] 무려 '''110여 년''' 만의 기록 갱신이다.[42] 여담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파들의 20대 지지율이 높은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부를 축적만 할 뿐 소비를 하지 않으며, 노인 복지비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는 노인층에 대한 적대심리가 대단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43] 사실 민주당 집권시절에 대한 일본의 평은 최악이다. (엔고방치 및 대침체 대처 부실로 인한 경제추락,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 중국에게 당하기만 하면서 미국에게는 버림받는 외교..) 입헌민주당이 창당되자마자 치룬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44] 거기다 현 20대가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경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무렵에 태어난 세대라는 점 때문에 이들의 아베를 향한 지지는 상당한 편이다.[45] 그런데 주의해야할 건 어디까지나 투표 의사가 있는 유권자 가운데서 70%가 넘는것이다. 일본인의 50~60%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으로 집계되는 만큼 이들은 투표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저연령대로 가면 갈수록 더 투표율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 젊은 세대의 압도적 지지에도 막상 선거에서 득표수가 그만큼 나오지는 않는 것이 이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