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길
1. 개요
李元吉
(603 ~ 626)
당나라의 인물. 당고조 이연의 넷째 아들. 이연의 정실 황후인 태목황후 두씨와의 사이에서 난 4남 1녀 중 막내이다.
2. 생애
그는 몹시도 잔혹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생긴 것도 추하게 생겼다고 하고, 부하들을 두 패로 갈라 진검을 주고 막싸움을 시키는가 하면, 자기에게 충고하는 유모를 부하를 시켜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이렇게 과실이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으며, 아버지 이연이 황제가 되면서 그 역시 618년 6월 7일에 제왕(齊王)에 봉해졌다. 병주총관을 지내다가 619년에 병주의 부로들에게 넌지시 암시해 대궐에 가서 자기를 머물게 해달라고 요청하게 했지만 3월 15일에 다시 병주총관이 되었다.
621년에 왕세충을 토벌하는 것에 참전해 4월 15일에 양공경, 선웅신을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했으며, 왕세충이 토벌된 후에는 사공이 되었다. 622년에 유무주를 토벌하는 것에도 참전했고 도중에 겨울 10월에 영군대장군, 병주대총관이 되었으며, 11월 22일에 군사를 파견해서 유십선을 위주에서 격파했다.
이원길은 말을 타고 삭을 잘 다룬다고 자부했는데, 울지경덕이 삭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승부했지만 울지경덕에게 패하자 겉으로는 탄복하면서 속으로는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원길은 이건성을 도와 이세민을 여러 차례 참소했고 이세민을 죽이기 위해 진왕부의 장수들을 설득하려다가 실패해 장사를 보내 울지경덕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했으며, 울지경덕을 참소해 죽게 하려다가 이세민의 간청으로 죽음을 면했다.
624년에 호군 우문보를 시켜 이세민을 암살하려다가 이건성이 중지시켰으며, 7월 12일에 당고조의 명으로 이세민과 함께 빈주로 나아가 돌궐을 막으러 갔다가 돌아와서 625년 11월 13일에 시중, 626년 2월 1일에 사도가 되었다. 626년에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을 일으키면서 태자 이건성과 함께 살해당했다. 그의 다섯 아들인 양군왕(梁郡王) 이승업(李承業), 어양왕(漁陽王) 이승난(李承鸞), 보안왕(普安王) 이승장(李承獎), 강하왕(江夏王) 이승유(李承裕), 의양왕(義陽王) 이승도(李承度)는 모조리 살해되었으며[1] 황실의 호적에서도 파이게 되었다. 시호는 처음에는 해릉군왕(海陵郡王)이었으나 후에 소척왕(巢刺王)으로 변경되었다. 훗날 이세민의 14남 조왕(曹王) 이명(李明)이 그의 양자로 입적되었다.[2]
'''한마디로 라인 잘못 타서 신세를 망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