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문의 변
玄武門之變
당나라에서 626년에 이세민이 두 형제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사건. 이세민이 '정관의 치'라는 대업을 이루었는데도 '찬탈자 패륜아'로 불리게 된 중국사의 대사건.
617년 들어 수양제의 지나친 폭정에 지친 백성들에 의해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연은 이 시기 일어난 수많은 반란군 지도자 중 하나로 자신의 세력을 강하게 키워 장안을 침공해 수 공제를 옹립하고 뒤이어 폐위시키더니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당나라를 건국하였다. 이때가 618년 6월 18일이었다.[1]
이연은 장남 이건성을 황태자로 책봉하였으나 차남 이세민이 건국 이후 발생하는 수많은 반란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건덕, 왕세충 등 각지의 여러 군웅들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우며 두각을 드러내었고 이는 장남 이건성에게 위협이 되었다.
장남 이건성과 차남 이세민 사이에 흐르던 경계심은 차기 황제 자리를 둔 권력 다툼이 발생하며 대대적으로 표면화되었고, 4남 이원길은 이건성에게 가담[2] , 이세민을 상대로 암살을 시도하고 이건성은 사람을 보내 나예로부터 유주의 돌격 기병을 징발하고 여러 방을 붙여 동궁의 장수들을 보충하며 군사를 모음과 동시에 이원길과 합심하여 이세민을 정치적으로 마구 공격하였다.
돌궐이 당나라에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는 일이 발생하자, 이세민은 아버지 당 고조의 명을 받들어 또다시 공훈을 세움으로써 불리해진 상황을 막아냈다. 그러나 626년 들어 두 형제의 공격이 더욱 심해지며 이건성이 이세민을 짐주로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이세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울지경덕을 회유했으나 실패하자 울지경덕을 참소해 옥에 가두고 급기야 죽이려 들자 이세민이 빠르게 손을 써 이를 막는 일까지 발생하였다.[3]
고사렴, 후군집, 울지경덕 등이 이세민에게 이건성, 이원길 두 형제를 죽일 것을 권하자 [4] 이세민은 울지경덕, 장손무기를 보내고 방현령, 두여회가 도사의 복장을 입고 장손무기와 함께 들어가면서 울지경덕은 다른 길로 도착했으며, 이세민은 이건성, 이원길이 후궁들과 음란한 짓을 했다고 상주해서 그들을 국문하게 하면서 장손무기 등을 인솔해 현무문에 군사를 숨겼다.
이건성의 부하인 장첩여가 몰래 이세민이 올린 표문에 담긴 뜻을 알아차려 이건성에게 전했으며, 이건성이 이원길과 모의해서 이원길은 병을 핑계로 대고 나가지 않다가 형세를 관망하라고 했지만 이건성이 들어가기로 결정하면서 대명궁 현무문으로 갔다. 이건성, 이원길이 임호전에 도착하면서 변고가 있는 것을 깨닫고 도망가자 이세민은 그들을 쫓아서 불렀으며, 이원길이 화살을 당기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이세민이 활을 쏴서 이건성을 죽였다.
울지경덕이 7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도착해서 좌우에서 이원길을 화살로 쏘아 말에서 떨어뜨렸으며, 이세민이 말을 놓쳐 숲 속에 들어가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져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라 이원길이 도착해 활을 빼앗아 그를 눌렀다. 그러나 울지경덕이 달려와 질책하자 이원길은 걸어서 무덕전으로 가려다가 울지경덕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이건성, 이원길 두 형제와 그 아들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동궁과 제왕부의 군사들도 모두 해산되었으며, 이건성과 이원길의 남은 가족들은 황실 호적에서 모두 파여 쫓겨났다. 이세민은 아버지 당고조를 알현해 새롭게 황태자 자리에 올라 사실상 당나라의 전권을 손아귀에 넣고 훗날 당태종으로 즉위하였다.
여담으로 위징은 이전부터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한 인물이었는데, 현무문의 변 이후 이세민은 오히려 위징을 중용했다.
이후 이세민이 당의 2대 황제가 되어 정관의 치를 이루지만, 가정사로 보면 아버지를 내치고 형제를 죽이고 자신이 죽인 동생의 부인을 후궁으로 삼고 열 살 남짓한 조카들을 모조리 죽이는 등, 갖가지 패륜을 저지르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이후 후계문제까지 발생하여[5] 자식들 중 그나마 멀쩡한 이치를 후계를 세우는 등[6] , 정치를 잘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당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영화 라스트 템테이션과 드라마 연개소문 59회에서 바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그런데 실제 현무문의 변 당시 이건성은 38세, 이세민은 29세, 이원길은 24세였는데,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이보다 앞선 수 양제와 이밀의 죽음 이후에 연기자를 청년에서 장년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배역 인물의 실제 나이와 배우의 나이의 격차가 심하게 나버렸다. 그래도 국뽕 넘치는 이 드라마에서 그놈의 고구려 타령이 배제된 장면인데다가 당태종 역의 서인석의 카리스마로 나름 명장면이 나왔다.
중국 드라마 진왕 이세민은 이세민이 황위에 오르는 과정을 다루는 만큼 마지막으로 다룰 중요한 사건... 이긴 했는데 이세민이 위정에게서 이건성과 이원길이 현무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현무문으로 간 뒤에 비장한 영상미와 함께 현무문이 열리는 씬만 나오고 이건성, 이원길과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생략된 채 바로 이세민이 당 태종으로 즉위하는 장면으로 넘어가서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 원래 내용을 그대로 나오면 주인공의 이미지가 손상을 피할 수가 없어서, 극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중요한 장면을 생략한 보기 드문 진행이다.
1984년 홍콩 TVB에서 방영했던 퓨전 사극 '결전현무문'도 이사건을 다루었다. 198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옹미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의 2003년 영화 황산벌에서 연개소문이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의 지도자가 참석한 국제 회의 장면에서 '''"짐이 천자가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니라."'''라고 엄숙하게 선언하는 당 고종을 보고 연개소문이 고깝게 생각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
1. 상세
당나라에서 626년에 이세민이 두 형제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사건. 이세민이 '정관의 치'라는 대업을 이루었는데도 '찬탈자 패륜아'로 불리게 된 중국사의 대사건.
617년 들어 수양제의 지나친 폭정에 지친 백성들에 의해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연은 이 시기 일어난 수많은 반란군 지도자 중 하나로 자신의 세력을 강하게 키워 장안을 침공해 수 공제를 옹립하고 뒤이어 폐위시키더니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당나라를 건국하였다. 이때가 618년 6월 18일이었다.[1]
이연은 장남 이건성을 황태자로 책봉하였으나 차남 이세민이 건국 이후 발생하는 수많은 반란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건덕, 왕세충 등 각지의 여러 군웅들을 평정하는 큰 공을 세우며 두각을 드러내었고 이는 장남 이건성에게 위협이 되었다.
장남 이건성과 차남 이세민 사이에 흐르던 경계심은 차기 황제 자리를 둔 권력 다툼이 발생하며 대대적으로 표면화되었고, 4남 이원길은 이건성에게 가담[2] , 이세민을 상대로 암살을 시도하고 이건성은 사람을 보내 나예로부터 유주의 돌격 기병을 징발하고 여러 방을 붙여 동궁의 장수들을 보충하며 군사를 모음과 동시에 이원길과 합심하여 이세민을 정치적으로 마구 공격하였다.
돌궐이 당나라에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는 일이 발생하자, 이세민은 아버지 당 고조의 명을 받들어 또다시 공훈을 세움으로써 불리해진 상황을 막아냈다. 그러나 626년 들어 두 형제의 공격이 더욱 심해지며 이건성이 이세민을 짐주로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이세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울지경덕을 회유했으나 실패하자 울지경덕을 참소해 옥에 가두고 급기야 죽이려 들자 이세민이 빠르게 손을 써 이를 막는 일까지 발생하였다.[3]
2. 과정
고사렴, 후군집, 울지경덕 등이 이세민에게 이건성, 이원길 두 형제를 죽일 것을 권하자 [4] 이세민은 울지경덕, 장손무기를 보내고 방현령, 두여회가 도사의 복장을 입고 장손무기와 함께 들어가면서 울지경덕은 다른 길로 도착했으며, 이세민은 이건성, 이원길이 후궁들과 음란한 짓을 했다고 상주해서 그들을 국문하게 하면서 장손무기 등을 인솔해 현무문에 군사를 숨겼다.
이건성의 부하인 장첩여가 몰래 이세민이 올린 표문에 담긴 뜻을 알아차려 이건성에게 전했으며, 이건성이 이원길과 모의해서 이원길은 병을 핑계로 대고 나가지 않다가 형세를 관망하라고 했지만 이건성이 들어가기로 결정하면서 대명궁 현무문으로 갔다. 이건성, 이원길이 임호전에 도착하면서 변고가 있는 것을 깨닫고 도망가자 이세민은 그들을 쫓아서 불렀으며, 이원길이 화살을 당기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이세민이 활을 쏴서 이건성을 죽였다.
울지경덕이 7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도착해서 좌우에서 이원길을 화살로 쏘아 말에서 떨어뜨렸으며, 이세민이 말을 놓쳐 숲 속에 들어가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져서 일어날 수 없는 상태라 이원길이 도착해 활을 빼앗아 그를 눌렀다. 그러나 울지경덕이 달려와 질책하자 이원길은 걸어서 무덕전으로 가려다가 울지경덕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3. 결과
이건성, 이원길 두 형제와 그 아들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동궁과 제왕부의 군사들도 모두 해산되었으며, 이건성과 이원길의 남은 가족들은 황실 호적에서 모두 파여 쫓겨났다. 이세민은 아버지 당고조를 알현해 새롭게 황태자 자리에 올라 사실상 당나라의 전권을 손아귀에 넣고 훗날 당태종으로 즉위하였다.
여담으로 위징은 이전부터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한 인물이었는데, 현무문의 변 이후 이세민은 오히려 위징을 중용했다.
이후 이세민이 당의 2대 황제가 되어 정관의 치를 이루지만, 가정사로 보면 아버지를 내치고 형제를 죽이고 자신이 죽인 동생의 부인을 후궁으로 삼고 열 살 남짓한 조카들을 모조리 죽이는 등, 갖가지 패륜을 저지르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이후 후계문제까지 발생하여[5] 자식들 중 그나마 멀쩡한 이치를 후계를 세우는 등[6] , 정치를 잘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당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
4. 창작물에서
영화 라스트 템테이션과 드라마 연개소문 59회에서 바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그런데 실제 현무문의 변 당시 이건성은 38세, 이세민은 29세, 이원길은 24세였는데,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이보다 앞선 수 양제와 이밀의 죽음 이후에 연기자를 청년에서 장년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배역 인물의 실제 나이와 배우의 나이의 격차가 심하게 나버렸다. 그래도 국뽕 넘치는 이 드라마에서 그놈의 고구려 타령이 배제된 장면인데다가 당태종 역의 서인석의 카리스마로 나름 명장면이 나왔다.
중국 드라마 진왕 이세민은 이세민이 황위에 오르는 과정을 다루는 만큼 마지막으로 다룰 중요한 사건... 이긴 했는데 이세민이 위정에게서 이건성과 이원길이 현무문에 있다는 말을 듣고 현무문으로 간 뒤에 비장한 영상미와 함께 현무문이 열리는 씬만 나오고 이건성, 이원길과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생략된 채 바로 이세민이 당 태종으로 즉위하는 장면으로 넘어가서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 원래 내용을 그대로 나오면 주인공의 이미지가 손상을 피할 수가 없어서, 극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중요한 장면을 생략한 보기 드문 진행이다.
1984년 홍콩 TVB에서 방영했던 퓨전 사극 '결전현무문'도 이사건을 다루었다. 1985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옹미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의 2003년 영화 황산벌에서 연개소문이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의 지도자가 참석한 국제 회의 장면에서 '''"짐이 천자가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니라."'''라고 엄숙하게 선언하는 당 고종을 보고 연개소문이 고깝게 생각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
연개소문: '''보라우. 니 아바이 당태종이가 형제들 쳐 죽이고 황제 된 것도 하늘이 정해준 질서네?''' (김춘추가 정권의 철학적 정통성을 거론하자) 정통성? 기래. 내레 쿠데타[7]
일으켜서 정권 잡았다, 와? 김춘추 너레 반쪽짜리 왕족 주제에 김유신이랑 짝짜꿍해서리 정권 잡디 않았서? 의자왕, 니 아바이도 서자디?[8] 여기 정통성 있는 놈이래 누구래 있어야?! '''전쟁은 정통성 없는 것들이, 정통성 세우려고 하는 기야!'''[9]
[1] 수공제는 몇 개월 뒤 이연의 아들 이세민에게 살해당했다.[2] 당고조 이연은 정실 황후인 태목황후 두씨와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이 중 3남인 이현패(李玄霸)는 당나라 개창 이전에 이미 사망했던 터라(15세의 나이로 요절, 사후 위회왕(衛懷王)으로 추존됨.) 실질적으로는 3남 1녀나 마찬가지였다.[3] 울지경덕은 이세민이 황제에 오르자 우무후 대장군에 임명되었다.[4] 이건성, 이원길의 참소는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였다. 방현령, 두여회 등은 이건성의 견제를 받아 진왕부에 출입조차 못할 정도로 진왕부에는 장손무기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5] 맏아들 이승건은 미친 놈인 데다가 남색을 탐했고 총애하던 남첩을 아버지 태종이 죽였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고 차남 이태는 머리는 좋았지만 엄청나게 비대했던 데다가 성정이 잔학해서 역시나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6] 몸이 허약하고 비교적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황제위에 올라도 자기 형들을 죽일 일은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7] 쿠데타(Coup d'État)는 불어이기 때문에 고증 오류이지만 영화의 희화화된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인 만큼 적당히 넘어가 주자.[8] 무왕의 출신이 불확실한 것을 반영한 대사인 듯.[9] 그러자 의자왕이 옳다쿠나 하고 끼어들었다가 김춘추와 관산성 전투 이래 백제와 신라의 역사를 두고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며, 보다 못한 당고종이 끼어들어 하는 말이 '강대국이 까라면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