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보 드 바비에르

 



1.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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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이에른의 이자보
(Isabeau de Bavière)
'''출생'''
1370년
'''사망'''
1435년 9월 24일 (64-65세)
파리
'''장례식'''
1435년 10월
생 드니 대성당
'''배우자'''
샤를 6세 (1385년 결혼 / 1422년 사망)
'''자녀'''
이사벨, 잔, 마리, 미셸, 루이, 장, 카트린, 샤를 7세
'''아버지'''
슈테판 3세
'''어머니'''
타데아 비스콘티
'''형제'''
루트비히 7세
1385년 샤를 6세와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다. 신혼 직후에는 평온했으나, 남편 샤를 6세가 점점 정신분열 증세를 보임에 따라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다. 왕이 실성하여 돌아다니다가 시종을 4명이나 죽이는 등 광기를 보이고, 왕비마저 침실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이 국정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질환이 심각해지자 1408년에 왕비 이자보가 섭정위원회를 주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소문이 돌았고[1] 권력욕에 따라 야합을 일삼았기 때문에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1420년에는 영국과 트루아 조약을 체결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국왕이 하나임을 시인했다. 영국 왕 헨리 5세가 카트린(샤를 6세와 이자보의 딸)과 반드시 혼인한다는 조건으로, 헨리 5세를 프랑스의 섭정으로 임명하고 샤를 6세가 사망하면 그가 프랑스 국왕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자보의 아들인 도팽 샤를의 상속권은 박탈당했다.
굴욕적인 조약이 체결된 지 2년 만에 영국 왕 헨리 5세는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영아를 상속자로 남긴 채 사망했고, 프랑스 국왕 샤를 6세 역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와 영국을 다스리기 위해 2명의 섭정이 임명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인이 된 영국 왕 헨리 5세의 형제이자 어린 헨리 6세의 후견인이기도 했다.
이자보 왕비는 이런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다음 파리의 마레 지역에 있는 생-폴(Saint-Paul) 저택으로 은퇴하였고, 만인의 경멸 속에서 64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줄곧 거기서 살았다.
잉글랜드에게 잔 다르크를 죽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잔 다르크의 실제 어머니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오를레앙공과의 불륜으로 잔 다르크를 낳았는데 부르고뉴파가 아기를 죽이려고 하자 빼돌려서 농민의 집으로 보냈다는 막장드라마 같은 내용인데, 당연히 근거가 부족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
'프랑스는 한 여인에 의해 망하고, 한 여인에 의해 구원받는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전자의 여인은 이자보를 가리키고 후자의 여인은 잔 다르크를 가리킨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희곡에서는 잔 다르크와 샤를 7세를 적대시하는 역할로 나온다.


2. 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 The Legend of Jeanne d'Arc의 등장인물


이자보 드 바비에르(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 문서 참조

[1] 그래서인지 아들인 샤를 7세는 샤를 6세와의 아들이 아니라 이자보가 불륜으로 낳은 사생아라서 정통성이 없다는 소문에 시달려, 잔 다르크의 도움이 있을 때까지 정식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전하는 초상화를 보면 샤를 7세가 샤를 6세와 아주 판박이라서, 반대파의 모함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