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 Cathédrale royale de Saint-Denis
라틴어 : Basilica cathedralis Sancti Dionysii
영어 : Cathedral Basilica of Saint Denis
스페인어 : Basílica de Saint-Denis
독일어 : Kathedrale von Saint-Denis
이탈리아어 : Basilica di Saint-De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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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완공 상상도.
| 오늘날의 모습. 왼쪽 탑은 세우지 못했다.
|
1. 개요
프랑스 파리 북부 교외의 생 드니에 있는
성당.
2. 상세
생 드니 성당은
가톨릭 성인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 성 디오니시오)를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성당이며,
프랑스어의 '드니'라는 이름은 디오니시오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성 디오니시오는 초기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로마 제국에 의해 지금의
파리[1] 몽마르트르[2] 지명의 의미부터가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언덕에서
순교했다는 사람이다. 전설에 따르면
참수형을 당하였으나 바로 죽지 않고, 자신의 잘라진 머리를 들고 근처의 분수에서 씻은 뒤 북쪽으로 6,000보를 더 걸어가, 카튜라라고 하는 신심이 두터운 늙은 여성 신자에게 자신의 머리를 건네주고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후에 그곳에 그를 기리는 생 드니 성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3] 참고로 이 '생 드니'가 영어식으로 변형된 이름이 바로 시드니이다.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다룬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 이름을 가졌는데, 이 인물의 행보를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이름.
이런 이유로,
스페인에서 묻혔기에 스페인의 국민 성인이 된
대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성 디오니시오(생 드니)는 파리와 프랑스의
수호성인이 되어 프랑스의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공경하는 성인 중 하나가 되었다. 파리 시내의 성당이나 종교적 색채의 작품에서 잘린 목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성인이 보인다면 십중팔구 생 드니의 모습일 것이다.
수도원을 비롯한 건물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66년에
대성당이 되면서 생 드니 주교좌가 설치되었다. 12세기 초 생 드니 수도원의 수도원장이었던 쉬제르(Suger)는 이전까지 나타났던 건축 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으로 성당을 짓고자 했고, 그 결과물로 완성된 교회의 건축 양식을 가리켜
라틴어로 오푸스 모데르눔(opus modernum), '''현대 양식'''이라고 했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낯설게 받아들여진 이 양식에는
고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런 이유로 생 드니 대성당은 고딕 양식 성당의 시발점으로 간주되고 있다.
10세기 이래 800년 동안
프랑스의 역대 국왕과 왕비들이 안장된 왕실 묘지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프랑스 혁명 당시 무방비 상태로 대성당에 있던 왕실 가족의 유해들은 군중들에 의해 석관에서 꺼내져 온갖 방법으로 훼손된 것도 모자라 성당 인근에 파놓은 두 곳의 구덩이에 던저져 그 위에 생석회가 뿌려지면서 같이 매몰되고, 같이 묻혀있던 보물들이 도굴꾼들에 거의 도굴당하는 등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가
왕정복고 후
루이 18세 때 수습되었다.
3. 무덤
3.1. 국왕 및 국왕과 합장된 배우자
왕조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메로베우스 왕조
| 클로비스 1세
| 465
| 511
|
|
힐데베르트 1세
| 496
| 558.12.13
|
아레군트
| 515
| 561
| 클로타르 1세의 왕비
|
프레데군트
| ?
| 597
| 힐페리히 1세의 왕비
|
다고베르트 1세
| 603
| 639.1.19
|
|
클로비스 2세
| 635
| 657.11.27
|
|
카롤루스 왕조
| 카롤루스 마르텔
| 686.8.23
| 741.10.22
| 피핀 3세의 아버지
|
피핀 3세
| 714
| 768.9.24
|
|
레온의 베르트라다
| 726
| 783.6.12
| 피핀 3세의 왕비
|
카를로만 1세
| 751.6.28
| 771.12.4
|
|
샤를 2세
| 823.6.13
| 877.10.6
| 서프랑크 국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
|
오를레앙의 에르망투르드
| 823.9.27
| 869.10.6
| 카를 2세의 왕비
|
샤를로망 2세
| 866
| 884.12.12
| 서프랑크 국왕
|
카페 왕조
| 로베르 2세
| 972.3.27
| 1031.7.20
|
|
아를의 콘스탄스
| 986
| 1034.7.25
| 로베르 2세의 세 번째 왕비
|
앙리 1세
| 1008.5.4
| 1060.8.4
|
|
루이 6세
| 1081.12.1
| 1137.8.1
|
|
루이 7세
| 1120
| 1180.9.18
|
|
카스티야의 콘스탄스
| 1141
| 1160.10.4
| 루이 7세의 두 번째 왕비
|
필리프 2세
| 1165.8.21
| 1223.7.14
|
|
카를로 1세
| 1226.3.21
| 1285.1.7
| 양 시칠리아 국왕, 심장 안치
|
필리프 3세
| 1245.4.30
| 1295.10.5
|
|
아라곤의 이사벨라
| 1247
| 1271.1.28
| 필리프 3세의 첫 번째 왕비
|
필리프 4세
| 1268.4/6
| 1314.11.29
|
|
뤼지냥 왕조
| 레오 5세
| 1342
| 1393.11.29
|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국왕
|
발루아 왕조
| 루이 12세
| 1462.6.27
| 1515.1.1
| 발루아-오를레앙 왕조
|
프랑수아 1세
| 1494.9.12
| 1547.5.31
| 발루아-앙굴렘 왕조
|
앙리 2세
| 1519.3.31
| 1559.7.10
|
|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
| 1519.4.13
| 1589.1.5
| 앙리 2세의 왕비
|
프랑수아 2세
| 1544.1.19
| 1560.12.5
|
|
샤를 9세
| 1550.6.27
| 1574.5.30
|
|
앙리 3세
| 1551.9.19
| 1589.8.2
| 심장 안치
|
부르봉 왕조
| 앙리 4세
| 1553.12.13
| 1610.5.14
|
|
루이 13세
| 1601.9.27
| 1643.5.14
|
|
루이 14세
| 1638.9.5
| 1715.9.1
|
|
루이 15세
| 1710.2.15
| 1774.5.10
|
|
루이 16세
| 1754.8.23
| 1793.1.21
|
|
마리 앙투아네트
| 1755.11.2
| 1793.10.16
| 루이 16세의 왕비
|
루이 17세
| 1785.3.27
| 1795.6.8
| 명목상 국왕, 심장 안치[4] 그의 유해는 안타깝게도 수습할 길이 없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
루이 18세
| 1755.11.17
| 1824.9.16
|
|
3.2. 왕족 및 귀족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앙리 4세 일가'''
|
오를레앙 공 니콜라 앙리
| 1607.4.13
| 1611.11.17
| 앙리 4세의 차남
|
오를레앙 공 가스통
| 1608.4.25
| 1660.2.2
| 앙리 4세의 3남
|
몽팡시에 여공작 마리 드 부르봉
| 1605.10.15
| 1627.6.4
| 가스통의 첫 번째 아내
|
로렌의 마르그리트
| 1615.7.22
| 1672.4.13
| 가스통의 두 번째 아내
|
몽팡시에 여공작 안 마리 루이즈
| 1627.5.29
| 1693.4.3
| 가스통과 마리의 딸
|
발루아 공작 장 가스통
| 1650.8.17
| 1652.8.10
| 가스통과 마르그리트의 아들
|
오를레앙의 마리 안
| 1652.11.9
| 1656.8.17
| 가스통과 마르그리트의 딸
|
프랑스의 헨리에타 마리아
| 1609.11.25
| 1669.9.10
| 앙리 4세의 딸, 찰스 1세의 왕비
|
'''루이 13세 일가'''
|
오를레앙 공 필리프 1세
| 1640.9.21
| 1701.6.8
| 루이 13세의 아들
|
오를레앙 공작부인 헨리에타 앤
| 1644.6.16
| 1670.6.30
| 찰스 1세의 딸, 필리프 1세의 첫 번째 아내
|
팔츠의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 1652.5.27
| 1722.12.8
| 필리프 1세의 두 번째 아내
|
'''루이 14세 일가'''
|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
| 1638.9.10
| 1683.7.30
| 루이 14세의 왕비
|
그랑 도팽 루이
| 1661.11.1
| 1711.4.14
|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장남
|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
| 1660.11.28
| 1690.4.20
| 그랑 도팽 루이의 아내
|
안 엘리자베트 공주
| 1662.11.18
| 1662.12.30
|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장녀
|
마리 안 공주
| 1664.11.16
| 1664.12.26
|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차녀
|
마리 테레즈 공주
| 1667.1.2
| 1672.3.1
|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3녀
|
앙주 공작 필리프 샤를
| 1668.8.5
| 1671.7.10
|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차남
|
앙주 공작 루이 프랑수아
| 1672.6.14
| 1672.11.4
|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3남
|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
| 1647.8.2
| 1723.12.23
| 필리프 1세와 엘리자베트 샤를로트의 차남
|
프티 도팽 루이
| 1682.10.16
| 1712.2.18
| 그랑 도팽 루이와 마리아 안나의 장남
|
사보이의 마리 아델라이드
| 1685.12.6
| 1712.2.12
| 프티 도팽 루이의 아내
|
브르타뉴 공작 루이
| 1704.6.25
| 1705.4.13
| 프티 도팽 루이와 마리 아델라이드의 장남
|
브르타뉴 공작 루이
| 1707.1.8
| 1712.3.8
| 프티 도팽 루이와 마리 아델라이드의 차남
|
베리 공작 샤를
| 1686.7.31
| 1714.5.5
| 프티 도팽 루이와 마리아 안나의 3남
|
베리 공작부인 마리 루이즈
| 1695.8.20
| 1719.7.21
| 샤를의 아내
|
성명 미상
| 1711.7.21
| 1711.7.21
| 샤를과 마리 루이즈의 장녀
|
알랑송 공작 샤를
| 1713.3.26
| 1713.4.16
| 샤를과 마리 루이즈의 외아들
|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트
| 1714.6.16
| 1714.6.17
| 샤를과 마리 루이즈의 차녀
|
'''루이 15세 일가'''
|
마리 레슈친스카
| 1703.6.23
| 1768.6.24
| 루이 15세의 왕비
|
파르마 공작부인 엘리사베타
| 1727.8.14
| 1759.12.6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장녀
|
앙리에트 공주
| 1727.8.14
| 1752.2.10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차녀
|
마리 루이즈 공주
| 1728.7.28
| 1733.2.19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3녀
|
루이 페르디낭 왕세자
| 1729.9.4
| 1765.12.20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장남
|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라파엘라
| 1726.6.11
| 1746.7.22
| 루이 페르디낭의 첫 번째 아내
|
작센의 마리아 요제파
| 1731.11.4
| 1767.3.13
| 루이 페르디낭의 두 번째 아내
|
앙주 공작 필리프
| 1730.8.30
| 1733.4.17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차남
|
마리 아델라이드 공주
| 1732.3.23
| 1800.2.27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4녀
|
빅투아르 공주
| 1733.5.11
| 1799.6.7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5녀
|
소피 공주
| 1734.7.17
| 1782.3.3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6녀
|
루이즈 마리 공주
| 1737.7.15
| 1787.12.23
|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의 7녀
|
'''루이 16세 일가'''
|
루이 조제프 왕세자
| 1781.10.22
| 1789.6.4
|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장남
|
소피 엘렌 베아트리스 공주
| 1786.7.9
| 1787.6.19
|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차녀
|
'''귀족'''
|
알퐁스 드 브리엔
| 1227
| 1270.8.25
|
|
베르트랑 뒤 게클랭
| 1320
| 1370.7.13
| 백년전쟁 때 활약한 장군
|
장 파스토레
| 1328
| 1405
|
|
루이 드 상세르
| 1341/1342
| 1402.2.6
|
|
기욤 드 샤스텔
|
|
|
|
아르노 길렘 드 바바산
| 1360
| 1431
|
|
피에르 드 보케르
|
|
|
|
가스파르 4세 드 콜리니
| 1620.6.9
| 1649.2.9
|
|
장 프랑수아 드 곤디
| 1584
| 1654.3.21
|
|
튀렌 자작 앙리 드 라 투르 도베르뉴
| 1611.9.11
| 1675.7.27
| 혁명기에 파리 앵발리드로 이장[5] 30년 전쟁, 프롱드의 난, 네덜란드와 전쟁에서 활약한 프랑스 역사상 6명 밖에 없는 대원수의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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