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image]
이중톈(易中天).[1] 역중천.
1. 소개
중국의 중문학자, 역사학자이자 저술가. 우한대학에서 중국 고대문학을 전공하였으며, 1981년 졸업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샤먼대학(廈門大學, 하문대학) 중문과 교수이다. 문학 뿐만 아니라 예술, 미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있다.
흔히 이중톈을 전문 역사학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영문위키나 뉴스에서도 그렇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중톈은 중문학 학위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 '''역사학 학위는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학위는 1978년 우한대 중문학과 고대문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1981년 졸업 후 '''문학석사 학위[3] 를 받은것이며 이 이상의 학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중톈이 공인된 학술집단으로부터 획득한 역사학 학위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그가 현대의 '전문 역사학자'라는 증거가 되진 못한다. 그는 역사학 전문이 아닌 중문과 교수로 책이나 강의도 학계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되는 부분이 아니라 대중에게 팔아먹기 좋은 소재들이라서 엄밀히 말해 역사학에선 전문 역사학자라 보긴 어렵다.
다만 이중톈을 'historian'이나 '사학자'가 아닌 '중문학자'로 서술하고 있는 기사나 매체는 찾아봐도 거의 없다. 해외 기사는 물론이고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기사에서 이중톈을 가리키는 표현은 "저술가" 아니면 "역사학자" 인 만큼 그의 인지도는 본업인 중문학이 아니라 역사학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국영방송인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에서 방송된 백가강단(百家講壇)에서 2005년에 초한지, 2006년에 삼국지 강의를 하면서 스타로 부상했다. 특히 삼국지 강의 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데, 강의 내용을 2권의 책[4] 으로 내서 600만부 가까이 팔렸다.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 ''''이중톈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명성을 얻고, 이후 그의 책이 번역되면서 삼국지 등이 인기가 많은 한국 내에서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꽤 될 정도의 유명인사가 되는데 성공한다.
이후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006년 인세수입만 2000만 위안(약20억원)에 달할 정도라 한다.[5][6]
국내에서는 CHING에서 삼국지강의를 방송하고 있다.
2. 비판
그러나 몇몇 부분에선 사료의 취사선택이 심한거 아니냐는 평가도 있으며 특정 역사 인물을 지나치게 옹호하고 다른 인물들을 깎아내린다는 평가도 있다. 또 CCTV에서 강하게 밀어줘서 오늘날 같은 명성을 얻었기에 중국 정부에서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기 위해 밀어주는 어용학자라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저서인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 당나라를 세계적인 초강대국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 당나라는 동아시아에서 강대국이었으나 초강대국은 아니었다.
삼국지연의라는 틀을 벗어나 대중에게 정사 삼국지를 보급시킨 선두주자이기도 하지만 이때문에 무분별한 정사드립을 치는 위빠, 조조빠, 촉까, 유비까, 제갈량까들[7] 이 늘어났다고 촉빠들에게 만악의 근원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이중톈 본인의 주장들은 이처럼 극단적이진 않다. 다만 그런식의 주장으로 인기를 끌려는 혐의는 꽤 있다. 한국에 와서도 유비군 제1의 책사는 손님이자 벗인 제갈량이 아니라 방통이라는 둥, 기자들의 먹잇감이 될 만 한 떡밥을 잘 던지는 편이다. # 무엇보다 학자로서 이중톈이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지엽적인 삼국지 인물론 따위가 아니라 '''정치적 방향성에 학문(특히 인문학)이 귀속되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병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일 것이다. 애시당초 겨우 문학석사 학위로 지방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였다가 공용방송에서 밀어준 때문에 현재와 같은 대접을 받는 인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진짜 역사학자들은 '사이비' 취급하기도 한다.
이중톈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이상한 엘리트 선민주의 의식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보면 알겠지만 군중은 자신보다 열등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본인도 그 우매함에 포함될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또 그는 조위를 찬양하는데 급급해 민간에 퍼진 촉한정통론을 비판하기 전에 왜 삼국 중에 촉한이 가장 민중에게 사랑 받아왔는지에 대한 고찰은 없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단순히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인해 민중들이 세뇌당했다고 볼 수 없다.역사는 원래 이렇다. 항상 자신의 원래 모습을 똑똑히 드러내지 못한다. 역사의 형상은 늘 문학의 형상이나 민간의 형상만큼 강력하지 못해 우매한 군중의 우상이 절대적인 것처럼 굳어지곤 한다.
또, 이중톈은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구하면서 그 시간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조조가 환관 집안 출신이라 뒷배경이 좋지 않았다는 소리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인데, 10대 초반부터 평판 갈고 닦은 원소와 양아치짓 하고 돌아다는 조조가 몇 년 차이로 비슷한 관직 루트 밟았던건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원소는 환관 집안 출신 조조를 낮잡아 보았다는 류의 이야기 일 뿐이다. 한 마디로 실제 원소가 가진 거대한 존재감을 이중톈은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3. 저서
국내에 번역된 저서들 순서로 작성함.
- 2007년
- 삼국지강의 1, 2 (김영사)
- 초한지 강의 (에버리치홀딩스)
- 제국의 슬픔 (에버리치홀딩스)
- 품인록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 이중톈 교수의 중국 남녀 엿보기 (에버리치홀딩스)
-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은행나무)
-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 이중톈의 미학강의 (김영사)
- 2010년
- 백가쟁명 (에버리치홀딩스)
- 독성기 (에버리치홀딩스)
- 2013년
-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 (중앙북스)
-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 (중앙북스)
- 이중톈 중국사 1, 2, 3 (글항아리)
- 2015년
- 이중톈 중국사 6-백가쟁명 (글항아리)
[1] 가끔씩 두음법칙을 적용한 중국인 이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李씨가 아니다. 중국음 자체가 '이'인 것.[2] 당시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이었다.[3] 영문 위키백과에서도 그가 가진 학위는 'Master of Arts(문학 석사)' 이외에 다른 어떤 학위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바이두 백과, 중문 위키백과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록하고 있다.[4] 원제는 '品三國'(품삼국)이며 한국에도 '삼국지강의'라는 제목으로 김영사에서 번역 출판했다.[5] 출처: 김진우 (2008년 5월 14일), 국제도서전 中 이중톈, 경향신문.[6] 포브스 선정 중국 갑부 47위에 선정 [7] 정사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정사라는 명목으로 연의와 반대되게 인물들을 평가하는게 좀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부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