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함
1. 李咸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원탁(元卓)[1] 또는 부탁(符卓)[2] .
여남 서평현 사람으로 주, 군의 장관을 지냈고 일하는 것이 청렴하고 유능했으며, 권세를 지낸 신하들은 이함을 꺼렸다. 태복을 지내다가 171년에 태위가 되었으며, 두태후의 어머니가 비경에서 붕어하자 이를 근심하고 생각하다가 병이 들은 두태후가 붕어하자 환관들이 두씨에게 원한을 가진 터라 그 시신을 성 남쪽 시장에 있는 관사에 뒀다가 황후가 아닌 귀인의 예로써 장사지내려고 했다.
영제는 자신을 세워준 것으로 인해 귀인의 예로써 장사지내려 하지 않았으며, 조절 등이 두태후를 풍귀인을 선제(환제)의 능에 배향하려 했다. 이함은 이 때 병 중이라 수레에 의지해 산초나무[3] 를 찧어서 몸에 지낸 채로 처에게 황태후가 환제와 나란히 배향되지 못한다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진구가 두태후의 위패를 환제의 능에 배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자 이함은 자신이 마땅히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 뜻과 합치된다고 찬성했다. 결국 공경 이하 모든 사람들이 진구의 의견을 따라 두태후는 환제와 함께 묻힐 수 있게 되었다.
2. 李含
(? ~ 303)
서진의 인물. 자는 세용(世容).
농서 적도 사람으로 시평에 이주해 살았고 젊을 때부터 재간이 있어 농서군, 시평군에서 효렴에 천거되었으며, 이함보다 연하인 호족 황보상이 이함이 낮은 신분이었기에 연민을 느껴 교류하려 했다가 이함이 거절했다. 황보상이 이를 원망해 격문을 보내 이함에 대한 악평을 이야기해 문정장이라는 낮은 벼슬을 지냈으며, 이후 옹주자사 곽혁의 부름을 받은 것으로 보아 이 시기는 함녕 이전 또는 함녕 연간의 일로 보인다.
옹주자사 곽혁이 이전부터 이함의 평판을 들으면서 만나 본 사람들 중에 뛰어나다고 여겨 별가로 삼았고 수재로 천거되었다.
낙양으로 가 공부에 초대되었고 처음에는 태보연을 지내다가 진국의 낭중령으로 옮겼으며, 사도로 인해 영시평중정으로 옮겼다가 291년에 진왕 사마간이 사망하자 이함은 장례를 치루는 임무를 맡다가 상서 조준이 이함의 관직이 중한 것을 질투해 이함이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탄핵했다.
그러자 어사중승 부함이 이함은 청렴하고 공정하면서 충성이 있어 세상을 다스리는 재주를 지녔으며, 사어[4] 에 견준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혜제가 이를 따르지 않아 이함은 5품으로 강등되었고 장안으로 돌아갔으며, 광록으로 파견되어 저각독을 지켰고 왕융이 벼슬을 깎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고 하자 조정에서는 조서를 내렸고 후에 시평령이 되었다. 301년에 사마륜이 제위를 찬탈하고 국정을 장악하자 그의 총신인 손수가 이함은 문무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동무양의 현령이 되었다가 사마옹의 요청으로 정서사마가 되었으며, 사마옹의 신임을 받아 사마옹의 장사가 되었다.
사마경이 사마륜을 주살하기 위해 거병하면서 안서참군 하후석이 시어사를 자칭하고 시평군에서 군사를 모아 사마경에 호응하자 하후석이 사마옹에게도 협조하도록 사자를 파견했는데, 이함은 사마륜과 결탁해 하후석을 물리치도록 권유해서 군사를 파견해 하후석을 물리쳤다. 그러나 사마경과 사마영의 세력이 우세한 것을 알고 사마옹이 이함을 용양장군에 임명해 영독 석원 등을 통솔해 장방과 합류하게 했으며, 혜제가 복위하자 이함은 동관으로 돌아갔다.
황보상을 사마륜이 양주자사로 임명했고 황보상은 사마륜이 패할 것을 두려워해 장안까지 물러날 것을 사마옹에게 청원했다가 사마옹이 이를 위로하고 우대하면서 황보상이 낙양으로 돌아갈 때 주연을 열어 송별했다.
이함은 사마옹에게 황보상이 옛날의 원한으로 인해 사마륜의 신하이지만 죄를 두려워해서 여기로 온 것이라면서 황보상을 만나면 안된다고 간했다. 이로 인해 황보상이 이함을 크게 원망했으며, 사마옹은 이함과 황보상 사이의 분쟁을 알고도 너그럽게 보고 나무라지 않았다.
302년에 이함이 조정의 초빙을 받아 익군교위로 임명되어 낙양으로 들어갔으며, 당시 황보상이 사마경의 참군사를 지냈다. 과거 이함의 책략에 사망한 하후석의 형도 사마경을 섬겨 이함이 크게 불안했다. 또 사마경의 우사마인 조양과도 대립해 사마경이 경계했으며, 이함은 혼자 나가서 장안으로 돌아갔다.
이 때 이함은 사마경을 토벌하는 조칙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속여 이를 사마옹에게 보여줬으며, 큰 공을 가진 사마영을 대신해 사마경이 조정에서 집권하는 것을 들어 사마예를 시켜 사마경을 물리치도록 권유했다. 또한 사마예가 세력이 약해 사마경에게 살해당하면 그 이유를 들어 사마영과 함께 사마경을 공격해 사직을 안정시키면 큰 공이 될 것이라 하자 사마옹이 이를 따랐다.
12월에 사마옹은 사마경의 토벌을 알리는 격문을 공표하자 이함은 도독에 임명되어 장방과 함께 낙양으로 향하기 위해 군사를 통솔했는데, 이함은 음반을 지나 낙양에서 120리까지 다가갔다. 사마예가 사마옹에게 호응하고 사마경을 격파해서 주살하자 군사를 돌려보냈다.
이함은 본래 사마경이 사마예를 죽인 것을 빌미로 사마경의 토벌로 천하에 알리면서 그렇게 되면 혜제를 폐위하고 사마영을 황제로 옹립하며, 사마옹을 재상이 되도록 해서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을 계획했지만 사마예가 사마경을 격파하고 사마영, 사마옹이 번국을 지키게 되자 불만을 품었다.
303년에 사마예가 보정이 되자 황보상이 사마예의 참군, 황보상의 형인 황보중은 진주자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함이 이를 우려해서 사마옹에게 황보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황보중을 내직으로 옮기고 황보상이 장안을 지나가는 것을 이용해 붙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황보중이 이를 알고 격문을 상서성에 올리고 농상의 군사를 발동해 이함을 토벌하려 했는데, 사마예가 조서를 통해 이함을 하남윤에 임명하고 황보중에게 군사 행동을 철폐하도록 했다. 이함이 부름에 응했지만 황보중은 이에 응하지 않아 사마옹이 금성태수 유해, 농서태수 한치 등을 파견해서 네 군의 군사를 합해 공격하게 했다.
이함은 사마옹의 지시로 비밀리 풍손, 변수 등과 함께 사마예를 죽이려 모의했는데, 이 사실을 황보상이 사마예에게 알리자 이함은 풍손, 변수 등과 함께 체포되어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