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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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李好義
(? ~ 1207년)
중국 남송시대의 인물.
2. 생애
이호의는 화주(華州) 하규현(下邽縣) 출신의 인물로, 이사중(李師中)의 손자이자 이정일(李定一)의 아들이었다. 이호의는 젊은 나이에 종군하여 기마와 활쏘기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남송의 재상이었던 한탁주가 금나라에 대한 북벌을 준비하며, 오희가 서쪽의 주력군을 맡았는데, 이호의는 오희의 휘하에 있었다. 이호의는 오희에게 정병을 내어 금나라 군대를 습격하자고 건의했지만, 오희는 이미 다른 마음을 품으며, 이호의의 주청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개희북벌이 시작되는 가운데 오희가 촉왕을 참칭하고 금나라에 칭신하자, 이호의는 오희에 대한 불만이 쌓여 결국 오희를 죽일 것을 모의하였다.
이호의는 오희의 부하였던 이귀(李貴)가 오희의 명령[1] 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귀에게 오희를 같이 제거할 것을 제안하여, 이귀는 이호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또한 이호의는 자신 이외에 안병과 양거원이 충의로운 이들을 모아 오희를 제거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도 연합하였다.
그리고 1207년 2월, 이호의는 안병, 양거원, 이귀와 함께 오희의 치소로 침입하여 오희를 죽이고 오희에 의해 함락된 4주를 취하는 데 성공한다. 더불어 금나라에 의해 함락된 서화주를 취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호의는 오희를 주벌한 공적을 인정받아 중군통제와 지서화주를 지내다가 죽었다. 오희가 주벌된 뒤, 오희의 옛 부하였던 왕희(王僖)가 이호의를 원망하여 꾸민 일로, 왕희가 자신의 친구인 유창국을 시켜 이호의를 독살한 것이었다. 이호의가 죽자, 이호의가 진수하던 서화주의 백성들은 마치 자신의 부모를 잃은 마냥 통곡했다고 한다.
사후 이호의와 함께 오희를 제거하는 음모에 참가했던 안병은 조정에 이호의의 공적을 칭찬하였고, 조정에 의해 검교소보(檢校少保)로 추증되었고, 충장(忠壯)의 시호가 내려졌다.
[1] 오희는 이귀에게 선무사 정송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