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남송)

 


'''남송의 반란자
吳曦 | 오희
'''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작위'''
촉왕(蜀王)
''''''
오(吳)
''''''
희(曦)
'''연호'''
없음[1]
'''생몰기간'''
1162년 ~ 1207년
'''재위기간'''
1207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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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송시대의 무장으로, 개희북벌 당시의 반란 행적으로 인해 『송사(宋史)』 반신전(叛臣傳)에 등재된 인물이다.

2. 생애


오희는 남송의 명장인 오린(吳璘)의 손자로 태어났으며, 절도사 오정(吳挺)의 아들이었다. 초기에 할아버지인 오린의 공적을 통해 우승봉랑으로 보임되었고, 효종 순희 5년(1178년)에 무덕랑으로 임명되었으며, 중랑장, 무익랑, 고주 자사를 역임하였다. 광종 소희 4년(1193년)에는 아버지 오정이 세상을 떠나고 호주 단련사를 맡았으며, 영종 경원 원년(1195년)에는 건강군마도통제를 거쳐 지흥주(知興州)[2] 겸 이서로 안무사로 제수되었다. 경원 6년(1200년)에는 태위로 임명되었다.
당시 남송에서는 권신이었던 한탁주조여우를 쫓아내고 주희와 유학자 여러 명을 탄압하는 경원의 당금을 일으키며 남송 조정 안팎에서 많은 신료들의 불만을 샀다. 게다가 한탁주의 뒤를 보호하던 헌성자열황후 오씨공숙황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탁주는 자신의 위신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이를 만회할 방법으로 금나라에 대한 북벌을 강구한다. 오희는 여기서 한탁주의 북벌에 참가하여 다른 뜻을 품기 시작한다. 오희는 한탁주에 의해 흥주 주찰어전제군도통제로 임명되어 섬서 지역에서 금나라를 공격할 부대를 맡는다.
북벌 준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오희는 부도통제를 참소하여 파직시켰고 부원수도 임명하지 않은 채 흥주의 병권을 장악하였고, 얼마 뒤에는 부세를 수취하는 권한도 장악하였다. 그리고 북벌이 계속되던 중 오희는 종제 오현과 서경망, 조부, 미수지, 동진과 함께 흥주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금나라에 부하를 보내 자신을 촉왕(蜀王)으로 책봉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탁주는 오희의 전력을 기대하였지만, 오희는 한탁주의 기대를 존중하는 척하면서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고 금나라와 지속적으로 내통하면서 송나라 군대를 교란시켰다. 이 때문에 한탁주는 오희의 반란을 눈치채지 못한다.
금나라에서 오희를 촉왕으로 책봉한다는 조서가 도착하자, 오희는 이 조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희는 다음날 부하들을 소집하여 남동쪽이 이미 함락되고 황제가 사명으로 피난하였으니 기회를 보아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여기에 왕익(王翼)과 양규지(楊騤之)라는 인물이 “당신이 촉왕을 칭하면 오린 장군으로부터 3대를 이어온 충효의 집안은 하루 아침에 무너질 것이다.”라고 항의하였지만, 오희는 “내 뜻은 이미 정해졌다.”라며 왕익과 양규지의 항의를 일축하고 금나라에서 내린 촉왕의 인수를 받고 금나라 군대를 끌어들인다.
오희는 1207년 촉왕에 참위하였는데, 오희의 반란을 들은 오희의 큰어머니 조씨는 오희와의 관계를 끊었고, 오희의 숙모는 오희에게 욕을 퍼부었다. 오희 집안의 오선(吳僎)이 흥원통제로 있었는데, 오희의 거짓 격문을 보고는 표정이 매우 평온하지 않았다. 한편 오희의 반란은 한탁주에게도 전해져 한탁주는 오희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오희는 촉의 명사들을 불러 그들의 인심을 사로잡고자 하였지만, 촉의 인심은 오희의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독을 먹고 자살하거나, 자신의 머리를 자르거나, 관직을 버리고 떠나거나 하는 방식으로 오희에게서 돌아선다.
결국 양거원(楊巨源)이라는 인물이 안병(安丙)과 의병을 일으켜 오희를 몰아내고자 하였는데, 이들은 오희의 부하였던 이호의가 형인 이호고, 이귀와 함께 오희를 없애려고 모의한다는 이야기[3]를 듣고 그들과 연합하여 오희를 몰아낼 작전을 세운다. 이에 2월의 어느 밤, 양거원과 이호의가 오희의 방에 침입하였고, 이귀가 오희의 목을 베어 그의 시신을 찢어버린다. 오희의 가족들과 부하들은 양거원과 이호의에게 붙잡혔다.
오희의 목은 상자에 담겨 남송 조정으로 보내졌고, 오희의 처자는 사형되었다. 결국 오린의 집안은 손자인 오희의 배반 하나로 인해 완전히 몰락해버리고, 오린의 제사는 오린의 형인 오개의 집안에서 맡게 된다.

[1] 원년만 칭하였다.[2] 흥주는 오늘날 산시성 뤠양 지역이다.[3] 이호의는 자신이 칠방관에서 금나라 군대를 몰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희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아서 내심 오희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