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 장막
人의 帳幕
사람으로 장막을 쳐서 막아놓은 형국.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후, 1946년에 윈스턴 처칠이 미국을 방문해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 연설에서 종전 후에 찾아온 양극단 체제로 인한 냉전시대를 철의 장막(鐵의 帳幕, Iron Curtain)이라고 비유했다. 인의 장막은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이 처음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실체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 두 가지 맥락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체적 의미는 사람들의 물리적인 침입이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실제로 사람들이 장막을 만들었을 경우에 사용하며, 비유적 의미는 어떤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특정 인물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대화통로를 두거나, 하달통로를 두는 경우 등에 사용한다. 두 의미 모두 언론을 통해 처음 사용되었다.
사람으로 장막을 쳐서 막아놓은 형국.
1. 유래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후, 1946년에 윈스턴 처칠이 미국을 방문해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 연설에서 종전 후에 찾아온 양극단 체제로 인한 냉전시대를 철의 장막(鐵의 帳幕, Iron Curtain)이라고 비유했다. 인의 장막은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언론이 처음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2. 실제 의미
이 단어는 실체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 두 가지 맥락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체적 의미는 사람들의 물리적인 침입이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실제로 사람들이 장막을 만들었을 경우에 사용하며, 비유적 의미는 어떤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특정 인물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대화통로를 두거나, 하달통로를 두는 경우 등에 사용한다. 두 의미 모두 언론을 통해 처음 사용되었다.
2.1. 실체적 의미의 사례
- 2004년,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었을 때,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탄핵안의 가결을 막기 위해 실제로 장막을 쳐놓듯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언론에서 인의 장막이라고 표현했다.
- 의경이나 전경이 둘러싸는 대부분의 집회
- 2009년 국회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미디어법이 발의되었을 때, 민주당 의원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인의 장막을 만들었다.
- :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사실상 인의 장막은 국회에서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인의 장막이 하던 기능을 대신할 필리버스터가 다시 등장하게 된 것.
2.2. 비유적 의미의 사례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 탄핵심판 당시 박근혜는 심판 당일까지도 변호인단과 청와대 직원으로부터 "탄핵은 기각될 것이다"라는,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본인이 듣기 좋은 소리만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결국 셀프 인의 장막으로 인해 적절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부메랑을 맞은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