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치즈
Imsil cheese(영어)
임실 치즈는 대표적인 한국산 치즈로, 전라북도 임실군을 원산지로 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임실군이라 하면 치즈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유명하다.
덕분에 임실군의 치즈 산업은 그 규모에서 한국 제일로 성장했으며, 공정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첨단을 달리고 있다. 주로 생산되는 치즈는 이탈리아풍의 모짜렐라 치즈. 임실군의 기반 산업은 '''낙농업'''이지만 치즈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한 3차 산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
임실 치즈는 임실치즈농협에서 생산되는 치즈를 통틀어 부르는 '브랜드' 명칭이며 딱히 '특정 치즈 종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임실치즈농협의 치즈몰 페이지에선 모차렐라, 스트링, 체다, 라클렛, 가우다(하우다) 등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판매중이며 요구르트 등 다른 유제품도 팔고 있다.
참고로 임실 치즈 관련 브랜드들이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임실군 및 임실농협에서 인증받은 업체는 임실치즈피자(임실낙농업협동조합 브랜드. 반원형로고)와 임실N치즈피자(임실군 합동브랜드) 두 곳뿐이다. 지정환 신부와는 정작 '''아무 관련이 없는''' 지정환임실치즈피자는 한때 임실치즈를 사용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1] 고 하며, 이외의 브랜드 역시 임실치즈 이름만 걸어놓고 다른 종류를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1958년 벨기에에서 선교사로 파견 온 천주교 전주교구 지정환(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신부가 산양유를 이용해서 치즈를 만든 것이 시초다. 한국에서 낯선 산양유가 잘 팔리지 않자 공장을 세운 후 산양유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제조기술이 떨어져 품질좋은 치즈가 생산되지 않았다.
이에 지정환 신부는 산양유가 아닌 우유로 치즈 생산에 들어가고, 3년간의 고생 끝에 해외에서 기술을 배워와 비로소 1969년 카망베르 치즈 생산에 성공하였다. 이는 미군부대에서 빼돌려져 불법유통되는 치즈가 전부였던 시절 한국 최초로 치즈 생산에 성공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에서 사업을 벌이기 위해 직접 농림부 차관을 만나 허가를 요청했으나, 농림부 차관은 치즈 사업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지정환 신부는 허가 없이 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른다.
1970년 저장 기간이 짧고 보관이 힘든 카망베르 치즈 대신 체다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만든 체다 치즈가 조선호텔[2] 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대량 납품 계약을 맺으면서 임실치즈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중반, 명동의 유네스코 회관에서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피자[3] 가게에서 모차렐라 치즈의 국내 생산을 주문하면서 1976년, 한국 최초로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하게 된다. 이후 임실치즈공장은 주민 협동조합인 임실치즈농협으로 변경하였으며, 창립자인 지정환 신부는 운영권·소유권 등 그 동안 일구었던 임실치즈의 모든것을 임실치즈농협에 전부 넘겼다.
1. 개요
임실 치즈는 대표적인 한국산 치즈로, 전라북도 임실군을 원산지로 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임실군이라 하면 치즈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유명하다.
덕분에 임실군의 치즈 산업은 그 규모에서 한국 제일로 성장했으며, 공정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첨단을 달리고 있다. 주로 생산되는 치즈는 이탈리아풍의 모짜렐라 치즈. 임실군의 기반 산업은 '''낙농업'''이지만 치즈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한 3차 산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
임실 치즈는 임실치즈농협에서 생산되는 치즈를 통틀어 부르는 '브랜드' 명칭이며 딱히 '특정 치즈 종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임실치즈농협의 치즈몰 페이지에선 모차렐라, 스트링, 체다, 라클렛, 가우다(하우다) 등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판매중이며 요구르트 등 다른 유제품도 팔고 있다.
참고로 임실 치즈 관련 브랜드들이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임실군 및 임실농협에서 인증받은 업체는 임실치즈피자(임실낙농업협동조합 브랜드. 반원형로고)와 임실N치즈피자(임실군 합동브랜드) 두 곳뿐이다. 지정환 신부와는 정작 '''아무 관련이 없는''' 지정환임실치즈피자는 한때 임실치즈를 사용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1] 고 하며, 이외의 브랜드 역시 임실치즈 이름만 걸어놓고 다른 종류를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2. 역사
1958년 벨기에에서 선교사로 파견 온 천주교 전주교구 지정환(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신부가 산양유를 이용해서 치즈를 만든 것이 시초다. 한국에서 낯선 산양유가 잘 팔리지 않자 공장을 세운 후 산양유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제조기술이 떨어져 품질좋은 치즈가 생산되지 않았다.
이에 지정환 신부는 산양유가 아닌 우유로 치즈 생산에 들어가고, 3년간의 고생 끝에 해외에서 기술을 배워와 비로소 1969년 카망베르 치즈 생산에 성공하였다. 이는 미군부대에서 빼돌려져 불법유통되는 치즈가 전부였던 시절 한국 최초로 치즈 생산에 성공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에서 사업을 벌이기 위해 직접 농림부 차관을 만나 허가를 요청했으나, 농림부 차관은 치즈 사업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지정환 신부는 허가 없이 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른다.
1970년 저장 기간이 짧고 보관이 힘든 카망베르 치즈 대신 체다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만든 체다 치즈가 조선호텔[2] 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대량 납품 계약을 맺으면서 임실치즈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중반, 명동의 유네스코 회관에서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피자[3] 가게에서 모차렐라 치즈의 국내 생산을 주문하면서 1976년, 한국 최초로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하게 된다. 이후 임실치즈공장은 주민 협동조합인 임실치즈농협으로 변경하였으며, 창립자인 지정환 신부는 운영권·소유권 등 그 동안 일구었던 임실치즈의 모든것을 임실치즈농협에 전부 넘겼다.
[1] 지정환임실치즈피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사기로 만든 기업이다. 한국에 대하여 잘 몰랐던 지정환 신부에게 거짓말로 이름 특허권을 낸 자가 멋대로 상표 등록해버렸는데, 덕분에 임실치즈피자와 서로 갈등이 심했고 애꿎은 지정환 신부가 별별 악성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작은 인과응보라면 상표등록 한 자가 법정 싸움이라든지 여러가지로 시달렸다가 지정환 임실치즈피자 상표를 팔아 버렸는데(2005년경) 판매 수익 대부분을 주식투자로 날려 버리고 빚쟁이에게 시달렸고 결국 잠적했다고 한다. 《치즈로 만든 무지개-지정환 신부의 아름다운 도전-》 참조.[2] 현재는 웨스틴조선호텔로 알려져있다.[3] 당시엔 피자파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