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왕후

 

慈儀王后
(? ~ ?)
1. 개요
2. 내용


1. 개요


신라 문무왕의 왕비로 신문왕의 어머니. 자눌왕후(慈訥王后)라고도 하며 파진찬 김선품(金善品)[1]의 딸이다.

2. 내용


부친의 관직이 해양 업무를 관장하는 파진찬인 것으로 볼 때, 아마도 태종 무열왕이 해양세력과 연대하기 위해서 선품 집안의 딸을 며느리로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문무왕은 바다와 관련된 업적을 다수 남겼으며 여기에 처가의 지원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하는 것.
삼국시대 군주들 중에서 가장 기록이 많은 남편 문무왕과 달리 자의왕후 본인의 기록은 거의 없는 편. 특히 전임 왕비인 문명왕후는 김춘추와의 연애결혼이 역사 기록으로 남을 정도였고, 후임인 신목왕후 역시 최초의 중국식, 유교식 혼인과 태후로서 섭정한 기록이 남은 것을 보면 자의왕후는 그냥 왕비로써 무난하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문무왕과 자의왕후는 신라 중대 왕실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혼과 재혼을 거치지 않은 부부다. 중대 왕들은 대다수가 이혼과 재혼을 했는데[2] 16살, 어린 나이에 죽어서 아예 결혼을 하지 않은 효소왕을 제외하고는 신문왕을 시작으로 줄줄이 이혼과 재혼을 반복한다(...). 신라는 일부다처제인 고구려, 백제와는 달리 일부일처제가 원칙[3]이기 때문에 왕비 자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주 변동했기 때문이다.
울산 대왕암이 문무왕비, 즉 자의왕후의 무덤이라는 설화가 있지만 말 그대로 설화일 뿐이다. 단, 경주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은 문무왕의 무덤이 맞고 정식 명칭도 문무대왕릉이다.
[1]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품은 진흥왕의 셋째 아들인 구륜의 아들이라고 나온다.[2] 신라 중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 이를 신라 중대의 특징이라고 보는 학자들까지 있을 정도다.[3] 정확히는 일부일처다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