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시

 



'''자이시'''
嘉義市 | Chiayi City

[image]

'''시정부 소재지'''
둥구
'''면적'''
60.0256㎢
'''하위 행정구역'''
2구
'''시간대'''
UTC+8
'''인구'''
268,579명
'''인구 밀도'''
4,474.41명/㎢
'''시장'''
황민후이

'''시의회'''
6석

4석

1석

11석

'''입법위원'''
1석

'''상징'''
시화
바우히니아 블라케나
시목
홍콩오키드나무
'''ISO 3166-2'''
'''TW-CYI'''
1. 소개
2. 교통
3. 산하 행정구역


1. 소개


[image]
대만 중남부에 위치한 성할시. 면적은 60.03km²이며 인구는 약 27만 명(2015년). 자이현에 둘러싸여 있다. 시 경계 바로 남쪽에 북회귀선이 지나가고, 이 곳에 북회귀선표지석과 태양관이 위치해 있다.
옛 이름은 주뤄산(諸羅山)이었는데 이는 대만 토착언어인 찌로센(Tsirosen)에서 나왔다고 한다. 중국 대륙에서 도래한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발전한 도시였고, 네덜란드대만 섬을 점유하면서 처음에 타이난 지역에서 서서히 주뤄산 지역을 개발하였다.
하지만 정성공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축출하고 대만 섬에 1부 2현을 설치하면서 주뤄산이 톈싱(天興)현에 속했다가 청나라 소유가 되면서 주뤄산 지역은 주뤄(諸羅)현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뤄현 정부가 주뤄시로 오게 되면서 시 주변에 목책이 축성되었다. 임상문(林爽文)이 명나라 재건을 목표로 반란을 일으켜 주뤄성을 10개월간 포위했으나 주민들은 청나라에 협력하여 항복하지 않았고, 반란 평정 이후 청나라는 주민들을 치하하면서 1786년에 '성을 사수한 충의를 치하한다'(嘉其死守城池之忠義)를 줄인 '嘉義'(자이)로 지역명을 바꿨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대만 섬을 넘겨받은 일본제국대만총독부를 설치, 대대적인 개발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1906년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청나라 때 지은 목책 현성이 동문만 남기고 모두 파괴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대만총독부는 새로운 도시개발에 착수, 자이 시를 근대도시로 바꿔놓게 된다. 일제시대 때는 타이난주에 속했는데 일본어 발음도 타이난으로 동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제시대 주할시가 성할시로 전부 전환이 되면서 중화민국 정부[1]에 의해 타이완 성의 성할시로 지정되었다. 1950년 행정구역 개편 시 너무 많은 성할시 숫자를 줄이면서 자이현의 현할시로 격하되었다가 1982년 다시 성할시로 승격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0년에 행정구역을 갈아엎을 때에도 자이 현과 합치지는 않았다.

2. 교통


자이역이나 시외버스를 이용해서 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첩운이라는 이름의 BRT 노선이 운행중이다. 자이 BRT 항목 참고. 고속철도역은 자이시가 아닌 자이(현)에 위치해 있는데 BRT를 이용해 고속철도역까지 갈 수 있다. 참고로 국립고궁박물원 남부분원도 이 근처에 위치해 있다. 자이공항도 있긴 한데 펑후와 진먼가는 국내선이 전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공항이 자이현에 있지만 실제로는 시 남쪽 경계에 붙어있다.
인구가 27만명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시내버스 노선이 3개 뿐이다. 원래는 10개가 있었으나 배차간격이 안 좋아 모두 폐선되었다. 그런데 남은 3개 노선도 60~120분 간격이다. 인구밀도 전국 2위에 도로가 좁긴 하지만 도로망도 잘 되어 있음에도 시내버스 노선이 전무하다. 인구 44만의 신주시가 30개에 가까운 노선을 운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3. 산하 행정구역


  • 자이시는 산하에 2개의 시할구를 관할한다.
[image]
시구(西區)
'''둥구'''(東區)[2]
[1] 당시 난징소재[2] 시청 소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