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그레미용
1. 개요
프랑스의 영화 감독. 1920년대 프랑스의 시네클럽 운동에서 시작해 전위예술과 형식주의, 그리고 1930년대 시적 리얼리즘 운동의 기수이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장을 역임하였다.[인용]
시적 리얼리즘을 이끈 감독답게, 기계적인 자연주의를 거부하고 "인간의 눈이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하지만 사물과 존재 사이의 조화, 미지의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보여져야 하는 그 미묘한 점의 발견.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생생하고 무한한 이미지의 원천이다."라는 의견을 남기며, 사실주의에 기반하면서도 이미지와 심리 묘사 간의 결합을 추구했다. 출처
당시 시적 리얼리즘으로 활동했던 프랑스 감독 중에서는 대중적인 성공을 누렸고 [1] , 누벨바그 세대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반대로 해외 인지도는 상당히 미묘한 축에 속한다. 당시 기준으로도 이른 나이에 타계한데다 대부분의 장편 영화들이 한동안 유실되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2] 그나마 최근에서야 디지털 복원 등으로 보기 쉬워지면서 재발굴 되는 추세.
스트로브-위예 중 스트로브가 그레미용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마구치 류스케가 아사코(영화)에 대해서 장 그레미용의 폭풍우와 닮은 점이 있다고 카예 뒤 시네마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출처
2. 필모그래피
[인용] 서울아트시네마 "여름의 빛" 프로그램 설명[1] 창공은 당신의 것은 비시 정부 시절 히트작이었다고 한다. 다만 히트와 별개로 그레미용 본인은 반파시스트에 가까웠는지 전쟁 이후 프랑스 파리 코뮌, 스페인 전쟁에 대한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2] 다른 영화들은 1970년대 중반 복원되었으나 등대지기 같은 영화는 프랑스에도 필름이 남아있지 않아 일본에서 필름을 공수해서 상영해야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