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근
[clearfix]
1. 개요
당나라의 장군으로 능연각훈신 중 한 명이다. 자는 홍신(弘愼).
2. 생애
위주(魏州) 번수현(繁水縣) 출신으로, 처음에는 왕세충 휘하에서 유주(洧州) 자사를 지냈다. 무덕 원년(618년)에 최추와 함께 당나라로 귀순하여, 추주(鄒州) 별가(別駕)로 제수되었으며 거듭 우무후장사(右武候長史)로 제수되었다. 장공근의 명성은 아직 당나라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공근은 이세적과 울지경덕의 추천으로 진왕부에 입성하였다.
당시 당나라의 내부는 진왕 이세민 일파와 태자인 이건성 일파가 서로 대립하였다. 진왕 이세민은 장공근을 불러 이건성 일파를 제거할 시기를 언제로 정할지를 논의하였지만 선뜻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세민은 쿠데타에 앞서 점쟁이에게 점을 보게 하였는데, 장공근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점을 볼 때 사용하는 거북이 등껍질을 땅에 팽개치고, 이세민에게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한다. 이세민은 장공근의 말을 듣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현무문의 변에서 장공근은 이건성 일파가 공격해오자, 성문을 닫고 항거하여 이들을 물리친다.
진왕 이세민이 당태종이 즉위한 뒤, 장공근은 현무문의 변에서 세운 공적을 통해, 좌무후장군으로 제수되었고 정원군공(定遠郡公)의 작위를 받았다. 이후 627년에는 대주(代州) 도독으로 임명되었고, 이세적이 돌궐을 정벌할 때는 돌궐 정벌의 부사령관으로 활약하였다. 장공근은 돌궐 정벌의 공적으로 추국공(鄒國公)으로 진봉되었고, 양주(襄州) 도독으로 전임되었으며 선정을 펼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632년에 세상을 떠난다.
사후에는 좌효위대장군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양(襄)이었으며, 작위가 다시 담국공(郯國公)으로 바뀌었다. 이후 당고종 시기에는 다시 형주 도독으로 추증된다.
3. 기타
당태종은 장공근을 매우 신임하였는데, 장공근이 세상을 떠나고, 태종이 장공근의 조문을 하려고 했을 때, 관리가 오늘이 진일이니 곡을 하는 것이 금기라고 아뢰었다. 그럼에도 태종은 장공근을 잃은 슬픔에 장공근의 조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