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적

 


<colbgcolor=#a48252><colcolor=#ece5b6> '''능연각훈신
영정무공(英貞武公)
李世勣 | 이세적
'''

병부상서 영국공 이세적
'''본명'''
서세적(徐世勣)[1]
'''이름'''
이세적(李世勣)[2] → 이적(李勣)
'''출생'''
594년 중국 산동성
'''사망'''
669년 12월 31일
'''자'''
무공(懋功)
'''작위'''
영국공(英國公)
'''시호'''
정무(貞武)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에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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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의 장수이자 능연각 공신 중 한 명이다.

2. 생애


원래의 이름은 서세적(徐世勣)으로, 당 왕조 초기를 대표하는 이름 높은 명장들 중 하나이다. 선배였던 이정이, 죽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병법서들을 넘겨주었을 정도. 봉호는 영국공(英國公)으로 '''영공(英公)'''이라고도 불린다.
이호 사람으로 집이 위남에 있었고, 수양제가 무리하게 여러 차례 고구려 대규모 원정을 계획하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17세에 적양의 장수가 되었다가 이후에 합류한 이밀의 장수가 되어 두각을 나타냈다. 후에 이연에게 귀순해 당나라 건국에 공을 세워 사성정책에 의해 이씨 성을 받았으며, 이렇게 이세적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후에 이연의 아들인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한 후에는 피휘(避諱) 제도로 인해 황제의 휘를 피하였으므로 결국 이름 가운데의 '세'자를 빼고 '이적'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안습. 따라서 이적으로 기록된 책들도 많다.
당고조 이연의 황위를 계승한 당태종 이세민 밑에서 여러 차례 싸워, 630년에는 이정과 함께 힐리가한을 공격해 돌궐을 멸망시키고 병주 도독 장사가 되었으며, 641년에 병부 상서가 되었다가 삭주도 행군 총관이 되어 설연타를 격파했다. 643년에는 능연각 공신이 되어 영공에 봉해졌으며, 3월에 9개의 주의 군사를 징발해 당 태종의 5남인 이우의 반란을 진압했다.
645년 고구려 원정에서 요동도 행군 대총관이 되어 보병, 기병 6만, 난주, 하주에서 항복한 호족들을 인솔하여 4월에 요하를 건너 신성, 건안성을 공격했다가 함락시키지 못하자 이도종과 함께 개모성을 공격해 11일 만에 함락시키고 요동성을 포위했지만 이후 고구려 원정이 실패하면서 당나라로 돌아갔다.
649년에 이세민에게 의심받아 첩주 도독으로 좌천되었으나 당고종 이치가 즉위하자 복위해 재상이 되었다. 고종이 원래 있던 황후를 폐하고, 후실이었던 무조를 대신 황후로 삼으려 했을 때 다른 신하가 반대하는 가운데 이세적은 진언을 피해 사실상 용인해주었다. 이윽고 무조가 무측천(측천무후)으로서 정권을 빼앗자 많은 신하가 실각하는 가운데 이세적은 그대로 중용되었다. 실제로 이세적은 측천무후가 대신들과 정권 투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늘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3]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했는데 비록 당태종이 주도한 고구려-당 전쟁 당시에는 번번히 실패하였으나[4] 당고종연개소문이 죽은 후인 668년, 고구려의 도읍인 평양성함락시키는 공을 세웠다. 당시의 나이가 무려 74세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669년에 사망한다.
이세적이 평양성 함락 후 소국 주제에 책이 너무 많다면서 이 책들을 그대로 놔두면 반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하고는 궁궐과 함께 대부분 불태워버렸다는 일화가 황현매천야록,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려있다.
말년까지 공신으로 인정받아 나라로부터 높은 대우를 받으며 천수를 다하였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손자인 이경업(서경업)이 측천무후에 대항하여 모반을 꾸미던 것이 진압되자 그 가문이 초토화되었고 결국 그 시신도 무덤에서 끌려나와 산산히 분쇄되어 바람에 날려 버리는 형벌을 받았다.[5]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토번 등지로 달아났는데, 당 현종 때의 승려가 토번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토번군에 있던 어느 한족 출신 장군의 도움으로 풀려났는데, 그가 스스로 "나는 이세적의 5대 손"이라고 자기를 소개했었다고.
생김새가 한족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인지 기록에서는 그의 외모를 호인(胡人)에 빗댄 일화가 좀 된다. 가가은이 일곱 살 때 신동이라고 소문이 나서 궁정에 불려왔는데, 이세적이 그를 보고 "너는 생긴 것도 남만인처럼 생긴 놈이 어떻게, 머리는 또 좋구나?"하고 놀리자 가가은이 "뭘요, 오랑캐(胡)같이 생겼어도 버젓이 재상 노릇 하시는 분도 있는데요 뭐."라고 받아쳤다고.

3. 창작물에서


중국 고전소설인 수당연의 등에서는 서모공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장군이었던 역사와는 다르게 순수 지략가 타입으로 나온다. 원래 신분은 도사.
삼국지 시리즈고대무장으로 삼국지 9, 삼국지 10삼국지 11에서 출연했다. 산전수전 겪은 인물이고 장군의 이미지가 더 강한 인물인데 어쩐지 일러스트는 젊은 문관의 이미지. 소설의 캐릭터성을 따랐다고 보기도 뭣한 것이, 소설에서의 서모공은 제갈량처럼 나이를 먹은 지략가 이미지이기도 하고, 후술할 능력치 배분도 맞지 않는다. 능력치는 딱히 떨어지는 능력치가 없는 만능형 무장으로 통솔과 지력, 정치가 90대이며 무력이나 매력도 70대.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95 / 무력 79 / 지력 88 / 정치력 85. 특기로 분전, 돌진, 주사, 제사, 교사, 혼란, 덫, 배반, 매도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93 / 무력 73 / 지력 95 / 정치력 88 / 매력 80, 특기 19개. 당연히 문무겸비답게 군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항변, 논파가 있음에도 명사 특기가 없는 게 약간 흠이다.
삼국지 11에서는 통솔력 92 / 무력 70 / 지력 94 / 정치력 90 / 매력 74. 병종적성은 오기처럼 하나 빼고 올 A이다.[6] 특기는 묘계. 삼국 무장 중에서 원술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특기이다. 이세적의 지력을 봐도 원술과 비교하면 이하생략.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이적이라는 이름으로 연개소문당태종과 친구 관계였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서토에 미쳐있는 고구려 무장들과 맞먹을 정도로 고구려 공격에 대한 집착이 병적 수준으로 묘사된다. 배우는 정상철.[7][8]
서유요원전에서는 위징과 함께 그나마 명장 노릇하는 인물로, 손오공의 라이벌 중 하나로 등장.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드라마 한정으로 손자인 이문과 함께 한족 우월주의자로 묘사되었으며 평양성이 함락됐을 때는 대놓고 "고구려의 왕실과 역사를 없애러 왔다"며 고구려인들을 학살하고 평양성을 불태웠다(...). 배우는 선동혁. [9]
영화 평양성에서는 배우 이대연이 맡았다. 나름대로 김유신과 머리 싸움을 하긴 하지만, 중국어 발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망가지는 개그씬[10]들이 나와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작의 소정방을 중국 베테랑 배우를 섭외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준 걸 생각하면 안습. 두 장수의 실제 평가가 급이 다른 걸 생각하면 더 아쉬운 부분.

4. 둘러보기




'''당 제국''' '''상서좌복야'''
전임 방현령

'''이세적'''
649년~650년



후임 우지녕
'''당 제국''' '''사도'''
전임 이각

'''이세적'''
653년~669년



후임 이원명
[1] 당 고조 이연에게 성을 하사받고 이세적으로 개명했다.[2] 나중에 당 태종이 즉위하자 피휘하기 위해 이적으로 개명했다.[3] 실제로 측천무후가 당고종의 후궁이던 시절에 장손무기 등이 그녀의 황후 옹립을 반대할 때도 '이는 폐하의 집안 일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답변함으로서 은근슬쩍 무미랑(측천무후)을 황후로 삼고 싶어 했던 당고종의 편을 든 적이 있었다.[4]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보급이 끊길 가능성을 우려해 안시성을 공략을 건의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 되었다. 하지만 안시성 공략이 지나치게 어렵기 때문에 원정에 실패한 것이지 당태종의 처음 생각대로 안시성을 피해 다른 성들을 먼저 쳤다가는 안시성의 고구려군이 당군의 후방을 교란할 것은 명약관화였고, 최악의 경우 앞뒤 모두에 적을 두게 될 위험마저 있었다. 당태종 또한 이런 이세적의 판단이 옳다 여겼기에 안시성 공략을 최종 결정한 것이기에 원정 실패의 책임이 이세적에게만 있다고는 볼 수 없다.[5] 여담으로 이경업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참전했던 장군 가운데 흑치상지가 있었다.[6] 오기는 기병 적성이 B, 이세적은 수군 적성 B라는 차이점이 있다.[7] 고구려 멸망까지도 병부상서(3품)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 되지만 실제로 고구려 멸망 당시에는 이미 재상 직위에 있었다.[8] 제국의 아침에서 박수경, 화정에서 유영경 등을 맡은 배우이다.[9] 하지만 선동혁은 그 드라마에선 방효태를 맡았다.[10] 정상회담 씬 스크립트 이세적: 신라군이 선봉군으로 선다면 대동강 이남을 주겠다. 문무왕:''"니는 주디 닥치라! 어디 왕들이 얘기해쌓는데 어딜 쳐 늙은게 이씨..."'''라고 욕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