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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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張律/张律, Zhāng Lǜ, 장뤼) 1962~
1. 인물 소개
2. 필모그래피
3. 수상 내역
4. 외부 링크


1. 인물 소개


중국영화감독이자 소설가다. 연변대학교 중국문화과 졸업, 조선족출신이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화 전공 교수로 2018년 6월까지 강의한 바 있으며, 2019년 3월부터 다시 연세대학교 글로벌인재대학 소속 교수로 강의 중이다. 현재 연구실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이 사용하는 건물인 성암관에 위치하고 있다. 그의 강의로는 영화연출론, 영화연기론, 문학과 영화, 영상작가론(대만 3인3색) 등이 있다.
감독 데뷔과정이 좀 재미있다. 원래 딱히 영화하고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본디 소설가로 인지도가 있었던 사람이다.[1] 그러다가 영화 찍던 친구랑 술 마시고 싸우다가 홧김에 영화는 아무나 찍을수 있다라고 말을 던졌고 결국 말을 지키기 위해 단편 '11세'를 찍었는데 그만 베니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초청받아 호평을 들었다. 이에 자신감이 붙고 같은 소설가 출신 감독인 이창동의 지지에 힘입어 디지털 카메라로 데뷔작 '당시'를 찍고 로카르노 영화제에 가게 되면서 감독업을 시작하게 됐다.
국내에서는 '망종'이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서 수상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재중동포출신인지라 주인공들이나 영화의 배경이 대부분 경계와 관련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 역시도 외국인 노동자를 다룬 필름이다.
건조한 스타일로 꿈도 희망도 없는 한국/중국/조선족 자치구 하층민들의 암울한 삶이 주이지만 의외로 코미디에도 관심이 많고 재능이 있는 편. 좋아하는 한국 영화도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그래서인지 2014년에는 '경주'라는 로맨스 코미디(?)를 만들었는데 그의 코미디 본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실제로도 직접 만나보면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이후로는 중산층 한국 지식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교적 영화 색채가 밝아진 편이며, 홍상수 영화와 닮아간다는 평이 많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상당히 빨리 찍는 축에 속한다. 2009년 발표한 '두만강' 이후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이라 할 수 있는 '풍경'부터 매해 한 편 이상의 영화를 공개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후쿠오카' 이후 공개 될 '야나가와'는 후쿠오카를 찍고 남는 시간에 해변에서 최소한의 스탭만 꾸려 찍었다는 후문...
여담으로, 두만강을 제외하면 모두 제목이 두 글자로 이뤄져 있다.
캐릭터 이름 짓는데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이름이 많다. 심지어 이리에서는 배우 이름에서 캐릭터 이름을 따오기도.
인터뷰에 따르면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그 현장에서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있었던 참혹한 광경들이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하며 언급을 꺼리는 편. 또 중국 영화계의 폐쇄성과 폐단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신은 그런 체제 바깥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실제로 초창기부터 한국 자본의 투자를 받았고,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아예 한국으로 넘어와서 영화를 찍고 있다. 중국 정부에게 호되게 탄압당한 일화랑 중국 영화계에 대한 강한 비판을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아웃사이더적인 고립감을 느끼다가 한국행을 택한듯 하다. 때문인지 장률 영화는 중국에서 한 편도 개봉하질 못했다.[2] 하지만 2021년 개봉예정인 야나가와는 간만에 본국으로 돌아가 중국 출신 배우들과 작업을 한 영화다. 진링의 13소녀천성장가로 유명한 니니가 주연을 맡았다.
정성일 평론가가 관심을 가지는 감독 중 하나. 인터뷰 혹은 대담도 자주했다.

2. 필모그래피


년도는 네이버 영화를 기초로 함.
  • 2001년 11세
  • 2004년 당시
  • 2005년 망종
  • 2007년 중경
  • 2007년 경계
  • 2008년 이리
  • 2009년 두만강
  • 2013년 풍경
  • 2013년 이방인들: 디지털삼인삼색2013
  • 2014년 경주(영화)
  • 2015년 필름시대사랑
  • 2016년 춘몽
  • 2018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 2019년 후쿠오카
  • 2021년 야나가와[3]

3. 수상 내역


  •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상위원회상
  •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대상
  • 2005년 제58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 프랑스독립영화배급협회상
  • 2005년 제41회 페사로국제영화제 뉴시네마 부문 대상
  • 2006년 제32회 시애틀국제영화제 신인감독 심사위원특별상
  • 2006년 제12회 프랑스브졸아시아영화제 대상
  • 2006년 벨기에 시네마노보영화제 대상
  •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 2010년 제3회 이스트웨스트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 2014년 제1회 들꽃영화상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2014년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 2014년 제1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대상

4. 외부 링크


[1] 연변 대학 중국 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의 중문학 교수까지 되었고 이후 베이징에서 소설을 쓰며 1986년 등단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서양 작가 중에는 카프카를 좋아했다고. 이후 1989년 이후에는 소설 쓰는 것을 그만 두었다. 실제 인터뷰에서 한 말로 보르헤스의 작품을 보고 든 느낌이라고 한다. 다만 이건 대외적인 이유고 정성일이 밝히길, 천안문 사태 당시 민주화에 관한 기고를 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교수직도 짤리고 창작활동은 금지 당했던 것도 크다고 한다. 거의 십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2] 사실 2009년만 해도 중국 영화계의 주목받는 신예로 꼽혔다. 하지만 2019년부터는 한국 영화 중심으로 활동하는 감독이 되었다. 영화의 국적에 대한 담론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3] 후쿠오카에서 약 45분 남짓 떨어져있는 작은 도시. 그리고 그동안 한국에서만 오랫동안 활동하던 장률 감독이 본국인 중국 출신 배우들과 작업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