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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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외교통상부 기준 자료)[5]
1. 개요
'''조선족'''(朝鲜族; 챠오센주)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공인한 한족 외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한반도(조선반도) 혈통을 가진 중국인이다. 중국조선족(中国朝鲜族)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정식명칭이 아니고, 중국어 회화, 중국 본토 정부 공식 문서 등에서의 공식명칭은 중국조선족이 아닌 조선족(朝鲜族)이다. 굳이 중국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아도 한자문화권에서 조선족은 인구 약200만의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소수민족을 특정하는 단어이다. 한편 한국인, 북한인과 함께 한민족(조선민족) 혈통의 구성원인 조선족은 한국문화와 중국문화 양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정체성 충돌현상이 잦은 집단 중 하나이다. 시진핑 주석 집권 후, 중화민족의 단결이 강조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조부모 세대가 한국출신이거나 어릴적부터 한국어 방언을 사용하며 한국 드라마, K-POP등 한류문화를 주로 소비하면서 성장한 것 등의 이유로 한국과의 유대감이 강해 타 중국인들과 별개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조선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 조선족은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 한국인을 포함하는 '한민족(조선민족)'과는 구별해서 써야
매일신문 위키백과 중문판 조선족 관련기사
'김연아가 조선족?'…도 넘은 '中 우기기'
中 북방민족대학학보 논문 - 조선족의 한국사회와 한국인과의 접촉 교류 과정중에서
中 최대앱 비리비리 영상 - "나는 조선족이다. 나를 중국인으로 불러줘! 조선족과 한국인의 차이는?"
中 왕이신문 조선족작자- 조선족과 한국인은 달라[6]
조선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간도 및 중국 각지로 이주해 정착한 한민족의 후손을 이르는 말로, 한국 국내 기관 및 언론 등지에서는 중국동포(中國同胞)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최근 중국어 원어를 직역한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다시 사용 증가 추세에 있다.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 최초의 조선족 권순기 매일경제 조선족 관련 기사
'''조선족의 총 인구는 192만여명'''으로, 중국조선족[7] 은 약150만명이다. 조선족 인구는 이미 약 50만명(4분의1)이상 해외 유출되었고, 수시로 한국을 왕래하는 것으로 보인다.중공중앙통일전선공작부 - 중국의 소수민족소개 - 조선족
원래 한국인, 북한인, 조선족 3개 집단 모두 조선왕조나 일제치하의 '''조선인(朝鮮人)'''이었으나, 정치체제나 국적의 차이로 1949년 이후 각 집단이 구분된 것이다. 국적이 가장 중요한 3개 집단의 구별요소이다.
한편 대한민국에 귀화한 친한파 조선족도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한중수교 직후 넘어온 조선족들이다. 다만 한국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는, 한국인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한국에서 이방인 대우를 받을일이 없다. 중국말을 하지 않으면 조선족 출신이라는 것을 알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선족은 개혁개방 이후 한족 등 중국 주류민족과 혼혈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약 200만 명 중 50만여 명, 많을 때는 80만명에서 100만명은 한국에 와 있다. '''조선족 총인구 4분의 1~2 이상이 한국에 와있는 셈'''이다. 대략 한국 상주인구의 1,000명중 1~2명정도이다.
조선족은 한국과 약50년간 이상 단절되었었기 때문에 당연히 문화 차이가 존재하지만, 한류 등에 편승하고자 하는 적지않은 조선족은 중국이나 일본(조선족 약10만명 거주)에서 본인을 한국인이라 칭하거나 한국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화민족 단결을 요구하면서 이러한 행동은 다른 중국인들에게 비판받기에 줄어드는 추세이다. 실제로 중국은 동북 지방 일부 조선족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2020년 9월 신학기부터 한글 설명이 덧붙여진 연변교육출판의 교과서 대신 중국어로만 기술되어 있는 인민교육출판사의 '어문(語文)' 교과서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15억 중국인구의 약95%를 차지하는 완벽한 한족 주도의 중국을 만드려는 의도는 조선족자치주에 남아있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없애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연결성을 절단하여 조선족을 온전한 "중화민족"으로 만드려는 데 있다. 백몇십만에 불과한 조선족의 한족화(Sinicization/漢化)를 통한 흡수는 시간문제로 사료된다. 연합뉴스 "중국 내 조선족학교 20년 만에 1천→225개 78%↓…민족교육 위기" 중국공산당의 조선족 통합 정책
조선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교육과 문화 수준이 높은 편이다. 더불어 소수민족이라서 중국 대학 입시에 가산점이 있어왔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률은 비교적 높다.[8]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이틀만 조선족이고 부모 중 한 명은 한족이라던지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점점 민족 정체성은 사라져가는 추세이다. 한국일보에 의하면, 1945년 조선족의 인구는 216만명이었으며, 이중 75만명이 대한민국에 이주나 귀화하고, 20만명이 해외로 빠져나가서 현재 인구수가 백몇십만명대로 급감하고 있고, 조선족 총인구 백만명도 위태롭다. 1992년 한중수교때만 해도 조선족의 76%가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한국 중심으로 인구 해외 유출이 가속화 된것이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자치주 지위를 부여 받는 등 중국 정부로부터 나름의 대접을 받아왔지만 가까운 시일 내 이런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조선족 청년층은 한국어, 중국어 2개국어를 다 잘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 중장년이나 노년층은 한국어, 중국어를 두 개 다 완벽하게 구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한국에서 유년시절부터 자란 조선족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국에서 계속 성장한 조선족은 아예 한국어를 할 줄 모르거나 한국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특유의 억양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 명칭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민족사무위원회 - 중화 각 민족 - 조선족
중국 외교부 대사관 - 조선족: Korean ethnic minority group
중국공산당신문망 - 당의 각항 공작 - 소수민족 - 조선족
'''조선족'''이란,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 55개 집단 가운데 인구 약 200만의 '조선'족 1개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조선족(中國朝鮮族)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와 절대다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 정식명칭은 조선족(朝鲜族, 차오셴쭈)이다. 청나라는 자국 영토내 조선인들을 한민(韓民)이라고 불렀고, 국민당은 당시 중화민국 내 조선인들을 한교(韓僑)라고 불렀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1950년 중국공산당의 민족식별공작(民族识别工作) 제1단계를 통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어에서 조선족이라는 말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부터 1990년대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한민족과 동의어였다. 중국에서는 200만명 조선족 중 해외에 나가있는 40여만명 조선족과 구분하기 위해 '중국조선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현재 중국어 회화나 작문에서 그냥 조선족이라고만 불러도 중국국적의 조선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1990년 이전 중화인민공화국 본토 중국어에서 조선족은 한민족 전체를 가르키는 말로 쓸 수는 있었지만 한중수교 이후부터는 이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개혁개방과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과의 교류가 대폭 증가하여 중국에서도 일상회화와 공식석상에 있어서 조선족이라는 표현은 중국국적의 조선족을 특정하는 말로만 쓰인다.
국가가 아닌 지역, 민족, 문화권으로서의 'Korea'를 중국에서는 '조선'이라고 불러왔다. 태조 이성계 이후로 500년간 조선이었기 때문이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992년까지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해왔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자 문제가 발생했다. 과거 폐쇄적이었던 시절에는 8,000여만명 인구의 한민족 전체(한국, 북한, 조선족, 고려인 인구 등)를 모두 조선족으로 표기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개혁개방과 한중수교 이후 중국의 대외 교류가 늘어나자 대한민국의 한민족이나 대한민국 편에 선 해외 한민족 공동체에 대해서 조선족으로 일컫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된 것이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중국 언론사와 논문 그리고 일상에서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 대부분 조선민족이나 한민족으로 표기한다. 중화인민공화국 본토 최대의 위키위키 사이트인 바이두 백과에 '조선족'이라고 검색 하면 아래와 같이 사용자들이 달아놓은 설명이 나온다. 바이두백과는 중국에서조차 일반적으로 참고자료로 사용하지 않지만 이 문서에서는 보편적 명칭을 알아보기 위해서 볼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중국, 그리고 한국의 표준 언어 사전에서는 이 '조선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조선족(차오셴쭈)
朝鲜族人口为1830929人(2010年),主要分布在吉林、黑龙江、辽宁东北三省 - 조선족의 인구는 183만929명(2010년)이고 주요분포지역은 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둥베이 세군데 성이다.
다음은 중국의 <현대한어규범사전>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이다.1. 중국내 소수민족의 하나. 2. 조선반도[9]
의 주체민족
중국에서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이란 단어가 중국어에 정착하면서 한중 모두 조선족이란 말은 앞에 '중국'이 없어도 대부분 통상적으로 중국 조선족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현재 중국 대학교의 대부분 논문은 한민족 관련 내용을 적을때 조선민족(朝鲜民族•차오셴민쭈)이나 한민족(韩民族•한민쭈)으로 표기한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어 회화에서 조선족(朝鲜族•차오셴쭈) 같은 표현을 하면 십중팔구 중국 조선족을 의미한다. 1990년대부터 한중교류가 늘어나면서 한국인은 그대로 한국인(韩国人•한궈런)으로 부르고 북한 사람은 조선인(朝鲜人•차오셴런)으로 부르며 조선족은 조선족(朝鲜族•차오셴쭈)으로 부르기 때문이다.1.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 2. ‘한족(韓族)’의 북한어
한국 정부나 언론에서 '재중교포', '재중동포'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동포(同胞)'는 외국에 사는 한민족 전체, '교포(僑胞)'는 그 중 한국 국적자를 뜻하기 때문에 둘은 좀 다르다. 그러므로 동포이되 외국국적자인 중국 조선족은 재중교포가 아닌 재중동포에 속한다.
한국 언론에서 조선족을 '중국동포(中國同胞)'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한국인 대부분이 '저들을 동포가 아닌 조선족으로 불러야 한다.' 하는 반응을 보인다.
'조선민족이 아닌 조선족은 비하'라는 얘기가 있다. 그렇지만 중국어에서는 절대다수인 한민족(漢民族)도 한족(漢族)이라 부르며 만족, 장족 등에서 보듯이 모든 민족이 다 민족명 뒤에 족(族)자만 붙인다. 그런데 일본의 민족(야마토 민족)은 '대화민족(大和民族)'으로 불러주고 있고 가끔씩만 화족(和族)이라고 부른다. 조선족들은 그들의 명칭을 조선족으로 부르지 않고 중국인이나 한국사람으로 칭해주길 원하거나 조선사람이라고 하기도 한다. 5천만 한국인이던 2백만 조선족이던 국적에 따라서 호칭을 명확히 해야할 것이다. 중국국적이면 중국인, 한국국적이면 한국인. 한편 한국인을 중국국적 한국/조선계 중국인을 특정하는 조선족(朝鮮族)이라고 부르는건 확실히 문제가 있고, 중립적으로 보면 한국인, 조선족을 통틀어 한국의 민족을 뜻하는 한민족(韓民族)이나 한족(韓族) 대신 조선민족(朝鮮民族)이라고 부르는건 가능하다.
1948년 8월 중국 연변 지구당위원회에서 연변 등 동북 3개성에 거주하는 조선민족 중 호적을 가진 자는 모두 중국 공민이고, 호적 없이 잠시 거주하는 자는 모두 조선교민이라고 규정하여 조선족과 조선 교민의 차이를 구분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적[10] 을 취득하지 아니한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식 합법공민이므로 중국인으로 정의된다.
3. 역사
과거 사료들을 살펴보면 요동에 살던 고구려와 발해 유민, 고려 말 요동에 가서 살던 사람들(동녕부), 병자호란 때 끌려가서 그냥 중국에 정착한 사람들도 넓게는 재중동포의 기원이라 할 수 있고[11] (대표적으로 광해군 시절인 1619년 후금(後金)을 정벌하기 위해 명나라와 연합전선을 펼쳤던 조선시대 강홍립(姜弘立.1560-1627년) 장군을 따라 압록강을 넘어와서 그대로 만주에 정착한 '번시 박씨 가문'이 있다. 中서 400년 혈통 지켜온 '번시 朴씨' 조선족 시조 ‘번시 朴씨’…400년 혈통 지켜낸 비결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청나라에 살던 조선인들의 후예들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그 사람들은 동화된지 수백년이 흘러 사실상 중국화되어 본국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이는 명나라가 망하자 조선에 귀화한 중국 한족들, 청나라가 망하자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친 몇몇 만주족과도 비슷한 입지다.
이 외에도 1860년대 조선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자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간도 개척에 나선 조선인들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조선족의 중국 이민사는 길게 잡을 경우 약 150년 이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적인 재중동포인 조선족의 시초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살기가 점차 힘들어지자 중국 국경지대 지역이 막연하게 더 나을 것이라 여겨서 이주한 사람들이 그 시초이다. 간도의 조선인 거주지역은 독립군의 은신처 및 보급 역할을 하였고 봉오동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에 의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간도 참변 참조). 독립운동가 중 일부가 중국에 눌러앉아 조선족으로 남은 경우도 있으나(김학철 참조) 극소수에 속한다.
독립운동 중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일대를 장악하자 일본이 주도한 "만주개척운동"에 의해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이 갑자기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대 이후 중국 내 조선인 우파 대부분은 상해, 중경 등으로 떠났다. 그 뒤로 중국 내 조선인 무장세력은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만 남게 되었고 좌파 단체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나 동북항일연군에 편입되었고 우파 단체는 광복군에 편입되었다.[12]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소련 군정과 중공에 의해 중국과 한반도의 경계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정되었다.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으나, 일부는 한반도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령이 된 만주에 남았다.
한편 팔로군에 편입된 조선의용군은 광복 뒤에도 중국에 남아 국공내전에 참여하였고, 6.25 전쟁 전에 북한으로 귀국하여 조선인민군의 근간이 되고 6.25 전쟁의 선봉이 되어 대부분 전사하게 된다. 6.25 전쟁 당시 연변자치주의 전신인 간도 지역에서도 북한의 징집이 이루어져 조선인 상당수가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었고 전쟁에 참여하였다. 조선족 사회와 교육기관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정책에 따라 6.25 전쟁 참전을 항미원조라고 부르며 미제의 침략에 맞서 승리했다고 자평하고 기념식을 치른다.
6.25 전쟁의 휴전이 확실시 된 1952년에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내 잔류한 조선인에 대해 시민권을 부여하고 중국 내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만들었으나 1955년에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중국에서 자치구는 성과 동급[13][14] 이나 자치주는 성에 예속된 행정구역이다. 그때 당시에만 해도 조선족들은 북한으로 가면 즉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어, 문화대혁명 전 까지 수십만 명의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귀국했다. 지금이야 무슨 미친짓이냐고 그러겠지만, 사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살았다.(...)[15][16]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중국은 북한으로 가려는 조선족들을 "조선간첩"으로 몰아 감옥에 집어 넣었기에, 사정이 있어 북한으로 가지 못한 조선족들은 중국에 쭉 눌러 앉게 되었다.''' 물론 중국에 눌러앉은 사람들은 오히려 후손들이 이득을 보게 되었다. 지금 북한상황을 보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과 북한 사이에도 이산가족이 많으며, 1990년도 전에는 조선족들이 친척방문 목적으로 북한에 자주 다녔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지역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날벼락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연변 지역의 조선족들도 그들의 출신을 한반도 지역으로 기록한 족보가 훼손되거나 소각되었다. 단순히 족보가 소실되었다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그때까지만 "중국에 살고 있지만 내 고향은 한반도"[17] ,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조선인들이 중국의 항일전쟁에 피흘려 싸운 급부"라는 민족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연변 지역의 조선인들의 머릿속 조국관, 민족관 자체가 문화대혁명으로 뿌리채 갈려나가다시피 해서 지금과 같은 "우리는 중국내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중국조선족" "우리의 조국은 중국" 하는 식으로 사상개조되었다. 4인방의 한 명인 장칭의 사주를 받아 연변에 온 마오위안신(毛遠新)[18] 과 그 일당은 “'''조선족은 믿을 수 없다'''”, "조선어의 수명은 기껏해야 10년 내지 15년이다", "연변 문화대혁명이 외국(북한)이 손을 뻗쳤다", "연변에서는 다시 한번 대동란과 대분화가 일어나야 한다", "조국의 동북변방 연길에 몸서리치는 반혁명 반란사건이 일어났다"며 민족의식이 뚜렷한 이들을 반혁명분자, 조선(북한) 또는 일본의 특무(간첩), 지식분자로 몰아 집중적으로 박해했는데, 당장 북한의 특무로 몰려 실각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 주덕해(주더하이)를 시작으로, 분리주의자로 몰려 자치주의 조선인 주장과 서기들은 물론 학교에서 조선의 역사와 말글을 가르치던 교사들이 홍위병들에게 끌려나와 조리돌림당하며 자아비판을 강요당하고 구타당해 죽는 것은 물론[19][20] 조선인 공동체였던 용정의 명동촌에 위치한 명동학교[21] 와 명동교회의 설립자인 독립운동가 김약연의 칭송비도 문화대혁명 때에 파괴되어 파묻혔다가 나중에 가서야 다시 파내서 세웠다. # 길거리에 '평양냉면', '함흥냉면', '인천백반점' 등 한국 관련 지명이 붙은 음식점 간판까지도 홍위병들에게 박살이 났다. 집에서 한글로 된 편지나 한복 입은 사진만 발견되어도 홍위병들에게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연변 지역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족보는 물론 한글로 쓴 책, 편지나 한복 입고 찍은 사진 등 '한국적(조선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 물건들은 모두 불태워 없앴다. 이때 '''항일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상당수 멸실'''되어[22]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에도 증명할 자료가 없어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인물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한국 학계에서 만주 지역의 항일무장투쟁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심각한 자료 부족을 겪고 있다.[23] 또 박해를 피해 수없이 이사를 다녔으며 심지어 성씨까지 한국과 관련이 없는 중국식 성씨로 바꾸기도 했다. 문화대혁명을 피해 북한으로 달아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북한 정권으로부터 '중국의 간첩' 내지 '수정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중국조선족(재중동포)들이 극성스럽게 그들의 한민족 문화를 중국과 연계시키며 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의 문화로 소개하려고 드는[24] 편집증적인 태도 역시 문화대혁명을 겪은 PTSD라고 할 수 있다. 그걸로 인해서 한국인들이 중국조선족들에게 곱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되었으니, 문화대혁명의 여파는 당대 중국 안에서만 그치지 않고 후대 한중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한 문화대혁명으로 조선족 지식인들이 숙청된 경우도 많았다.(이는 중국 전역이 그러하였지만)
조선족들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겪었던 고초나 당시의 상황을 사진으로 찍은 사진집이 2010년에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제목은 <연변 문화대혁명 - 10년의 약속>[25] . 관심있는 사람은 일독을 권한다. ## 단 2020년 현재는 절판되어 구할수 없으므로 도서관을 이용할 것.
1990년대부터는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두만강 근처에 판문점 비슷한 검문소에서 짧은 시간동안 이산가족 면회를 허용한다( ). 조선족들의 말에 의하면,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깔끔한 한복을 입혀 내보낸다고 한다. 면회시 옆에 군인이 감시하고 있으며 안부를 전하면 무조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물건이나 돈을 건네는 게 가능하여 조선족들이 달러 돈을 챙겨주지만, 본인한테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조선족과 한국(남한) 사이의 이산가족은, 없는 건 아니지만 북한에 비해 상당히 소수다. 중국으로 넘어간 조선인 대부분이 중국과 인접한 함경도/평안도 출신과 경상도 출신이 많다. 그래서 조선족 거주지에 조선족들의 말투를 보면, 경상도 말투를 포함한 한반도 동부 방언과 비교적 유사한 경우가 대부분인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상도 출신 조선족 1세대는 대부분 한반도를 떠난 지 거의 1백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이산가족이 남아있지 않다.
4. 중국 내의 위상
조선족은 중국 내부에서 대우가 나은 편에 속하는 소수민족이고, 생활수준은 상류층이며, 조선족자치주도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자치주이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한국어를 교육과정에서 배우고, 대학입시인 까오카오도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며[26] , 입시과정에 10점에 달하는 가산점도 있다. 연변대학교는 중국의 유일한 소수민족 중 조선족을 대표하는 연길시의 종합대학교이다.
그러나 중국이 70년대 이후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연길을 비롯한 조선족자치주는 고도발전에서 소외되었다. 애당초 개혁개방의 모토가 "일부가 먼저 잘 살고 일부가 나머지를 잘 살게끔 이끈다(선부론)"이다. 물론 그 일부는 바다에 인접한 동남 지역을 말하는것이고 조선족들이 사는 동북 지역은 "나머지"에 속한다. 북한과 인접해 있어서 북한의 경제상황이 그런대로 괜찮았다면 연변의 공업도 발전될 여지가 있지만, 북한의 경제가 너무 안 좋은데다가 라선항이나 청진항을 쓰기에는 제한이 너무 많고, 러시아의 극동지역 인구도 그리 많지 않기에, 공업이 발달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는 연길의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으며 조선족의 혼란상을 부추기고 있다. '''그래도 외국에서 돈을 벌어다 온 노동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소득수준은 여전히 상위권이긴 하다.''' 빈부격차가 워낙에 심하다보니 문제긴 하지만.
5. 지역과 혈통
주로 지린성(吉林省)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분포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의 도시화 건설에 맞춰 경제가 발달한 북경, 상해 및 연해주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대한민국에도 많다.
한국, 북한과 대체로 동일한 문화뿌리와 혈통을 공유하지만, 한국의 서구화와 북한의 쇄국화, 그리고 조선족의 중국화 이렇게 완전히 다른 발전분기 때문에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 같은 차이점은 중국 중앙정부의 동북공정[27] 과 남북한의 조선족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한편 같은 조선족이라도 중국 내 거주 지역에 따라 한국어(조선어)의 방언 차이가 있고, 자기들끼리 지역감정[28] 도 존재한다. 연변 지역 출신자거나 북한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북도치, 연변 외 지역 출신자들은 남한 지역 나아가 한국에서 온 사람들까지 싸잡아 남도치라고 부른다고.
6. 문화
6.1. 생활상
조선족은 집성지구, 집성촌을 이루면서 조선족끼리 오랜 시간을 생활해 왔기 때문에 한민족의 전통과 민족성을 중요시해왔다. 타 민족과의 결혼, 특히 한족과의 통혼은 원래 기본적으로 금물이었다. 과학소년 1997년 3월호에 소개된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 중에, 이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가 있다. 툭하면 부부싸움을 밥 먹듯이 하는 조선족 부부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럴 거면 도대체 왜 결혼한 거냐"고 묻자 "100km 이내에 조선족 남녀가 우리 둘밖에 없어서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나마 조선족 남자가 한족 여자와 결혼하면 그나마 탐탁치는 않지만 그대로 봐주는 반면, 조선족 여자가 한족 남자와 결혼한다면 집안망신이라고 부모님이 속을 썩이고, 주변에서 비웃기도 했다. 이런 혈통의식은 고려인 사회도 마찬가지인 듯. 하지만 90년대 말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족이 취업 등 문제로 뿔뿔이 전국으로 흩어졌기에 마음에 맞는 동족과 결혼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 그래서 이젠 쉬쉬하며 한족과의 결혼도 용인하는 분위기지만, 기성세대에서는 가급적이면 동족 결혼을 바라고 있다.
이런 이유로만은 아니지만 연변지역 사람(함경도 출신 다수)들은 다른 지역(특히 흑룡강성)의 조선족들 사이에서 나쁜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조선족들끼리의 지역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연변과 하얼빈이 있는 흑룡강성 서부 사이의 지역감정이 심하다. 심양이나 흑룡강성 사람들은 연변 사람을 가리켜 '교활하고 돈만 알고 깍쟁이에 정이 없으며 타 지역 조선 사람을 무시한다'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29] 욕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여담으로 "연변 조선족과 한족이 길거리에서 싸우면, 흑룡강성 조선족들은 차라리 한족 편을 든다"고 농담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
사실 흑룡강성 조선족들은 학창 시절 한족 학생들과 많이 싸우면서 큰다고 한다. 하지만 연변 조선족들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이주된 경상도 출신들이 많은 심양과 흑룡강성의 조선족은 '속을 알 수 없고 같은 편인 척하면서 사기치는 사기꾼들' 또는 '한국인들 앞에선 경상도 말투를 쓰고 중국인들 앞에선 중국인인 척하는 줏대 없는 사람들'이라는 평이 있으나, 솔직히 중국 내 조선족들은 서로 잘 지내는 편이다. 인천 영종도[30] 만 해도 조선족이나 한국인과 결혼하여 2년 지나면 나오는 한국 국적으로 사는 조선족들이 많은데, 서로 심양이냐 연변이냐 물어보며 중국어도 쓰면서 잘 지낸다.
그런데 정작 연변 조선족들이 그나마 정체성을 제일 잘 지키고 있다. 흑룡강성이나 중국 대도시에 사는 조선족들은 한족과 통혼하거나 다른 중국 대도시들이나 한국으로 떠나는 인구들이 많아서 흑룡강성 조선족들의 언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중국어와 많이 섞였으나 연변 조선족들은 자기들의 말을 지키고 있는 편이다.
연변의 수부 연길은 조선족이 군집한 지역이기에, 중국의 타 지방과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도시의 산업은 매우 기형적인데, 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조선족의 적성에 맞춰서 음식점과 노래방, 사우나, 바 등이 주된 경제산업이다. 집집마다 위성TV로 한국방송을 시청하고, 한국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에 친숙하다. 나이 드신 조선족 중엔 맨날 한국TV로 드라마와 뉴스만 보느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새로 당선된 건 알아도 중국 주석이 바뀐 줄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옥수수, 콩 등의 밭작물이 주를 이루는 만주지역에서 쌀농사를 고집하고 있다. 만주지역의 도로에서 몇 시간 동안 옥수수밭만 보다가 논이 나오면, 십중팔구는 조선족 농가가 그 주변에 있다[31] .
6.2. 언어
조선족들은 지명 및 인명을 중국어 발음이 아닌 한국어의 한자 독음으로 읽는다. 이 때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원래 발음을 고수하므로 얼핏 보면 북한말처럼 보인다. 단, 소수민족 언어를 한자로 음차한 지명은 한자 독음보다는 해당 민족 언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외에도 평소 쓰는 어휘도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조선족들은 전화를 건다[33] 는 표현을 전화를 친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어의 打电话에서 나온 표현. 打는 때리다=치다. 그리고 외래어는 편의 상 중국어의 음차를 차용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TV는 뎬스(电视), 이런 식으로. 다만 이런 호칭은 정식용어가 아니며, TV는 텔레비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당황해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들이 조선말로 부르는 지명을 한국에서 보통화 표기를 한다는 것. 자신들은 북경이라고 하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표준중국어 발음인 베이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들은 평소에 쓰는 표현일 뿐 학교에서는 이런 표현을 가르치지 않으며, 서적에서도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조선족의 한국어 방언은 지역마다 하술한 방언에 기반한다.
- 동북 방언(함경도) 기반 지역: 길림성 연변지구, 흑룡강성 동북부, 동남부, 두만강 연안지구 동북 6진 방언
- 서북 방언(평안도) 지역: 요령성 다수지역(심양-안산-무순-본계), 요령성과 접한 길림성 남부 지역
- 동남 방언(경상도) 지역: 요령성 중부(심양), 연변지구를 제외한 길림성 기타 지방, 흑룡강성 서북부, 서남부
- 서남 방언(전라도) 지역: 요령성 중부(심양-안산) 교차적 분포, 연변 왕청현
- 중부 방언(경기도, 충청도 등) 지역: 길림성 유하현, 연변 도문시, 기타 지역 교차적 분포
대체적으로 함경도 사투리(육진 방언 포함)는 연길이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나 길림성과 흑룡강성 동부에서 많이 쓰이고, 평안도 사투리는 요령성이나 길림성 서남부에서 쓰이고, 경상도 사투리는 요령성 일부[35] 와 길림성 서북부, 흑룡강성 서부에서 쓰인다. 그 외의 사투리들은 마을 단위로 쓰인다.
연변 조선족의 조선말이 중국어와 섞일 경우는 대부분 명사만 악센트를 순화하여 사용하기에 기본적인 조선말과 중국어만 해도 알아들을 수 있지만[36] , 흑룡강성이나 요령성의 조선족은 한족과 접촉이 잦아서 중국어가 섞이는 빈도가 상당히 높다. 특히 흑룡강성은 위치상 러시아어나 몽골어 어휘가 사용되는 일도 많아서 일반적인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물론 한국어와 중국어 양쪽에 능한 사람도 이 동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 쉽지 않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조선말은 우리가 아는 한국어 문법과는 뭔가 많이 달라서 분명 같은 언어인데 토종 한국사람은 잘 알아들을 수 없다. 구어도 그렇지만 문어도 상당히 달라서 읽을 수는 있는데 이게 도통 뭔소린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반대로 조선족도 어휘가 다르고 한자가 많이 포함된 한국 서적을 읽을 때는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출간된 조선말 관련 서적을 보면 어휘는 북한말과 많이 흡사한데,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북한이랑 딱 붙어있고 지금까지 쭉 교류하는 반면 대한민국과 중국의 수교는 1992년으로 한참 늦다 보니 정서법이라든지 표준문법 등은 북한의 문화어에 가까운 게 당연하다.
남한에서는 연변 말투를 듣기가 힘든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개그 콘서트나 댄서의 순정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조선족들을 흉내낸답시고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는데, 이게 진짜 조선말인줄 알고 조선족과 대화할 때 썼다가 상대방이 당황하곤 한다. 외국인이 미드나 일드 같은데서 나오는 어설픈 한국어를 보고 우리한테 진짜 한국어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함경북도와 인접해서 대체적으로 동북 방언, 육진 방언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 "~ㅂ니다"를 "~ㅂ꾸마"[37] 라고 말하고 "~ㅂ니까"를 "~ㅁ둥"[38] 이라고 말한다. "~ㅂ시다"를 "~깁:소", "~겝소"[39] 라고 말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 이하에서는 ~슴다체를 많이 사용한다. "~ㅂ니까"를 "~ㅁ까"라고 말하며 "~시오"를 "~쇼", "ㅂ시다"를 "~기쇼"라고 말한다.
젊은 세대, 특히 대학을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타지에 나와 있거나 하여 한국인(과 한국 문화, 미디어 매체)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경우에는 '''서울말'''을 따로 할 줄 안다. 자신들도 사용하는 말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연습하기도 한다고. 또한 한국어의 영향으로 연변지역 TV나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들이 상당히 '서울말화'된 우리말을 쓰며, 연변TV에서 방영하는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예 한국 인터넷 상에서 사용하는 유행어 등이 나오기도 한다.
화자 수도 200만여 명으로 적지 않지만 조선어를 꾸준히 써온 배경에는, 중국 조선족 사회가 농촌 공동체를 위주로 지속되어 온 이유도 있다. 물론 연길 등 도시에서도 거주해 왔지만 기본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조선사람들은 농업이 기본이었고, 조선 땅에서 하던 벼농사를 마을/친족 단위 그대로 만주 땅에 옮겨 가는 식이었다. 즉 국가는 이국 중국이되 지역은 여전히 조선사람 마을인 이중적인 형태가 수십년간 지속되어 왔다. 전통적인 중국 조선족 사회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농사를 짓는 수많은 조선족 마을의 연합이라고 봐도 될 정도. 그런데 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젊은이들이 몽골인과 한족이 많은 만주 쪽 대도시나 중국 내륙도시로 혹은 싱가포르나 호주 등 외국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농촌의 조선족 공동체가 조금씩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그 빈자리를 압도적 다수인 한족 혹은 딴 민족으로 채우는 경우도 흔하게 되었다.
(2002년 동아일보 기사. 중국 조선족의 이촌향도를 잘 보여준다.)
조선족 사회 붕괴나 조선족 화자가 줄어 드는 것은 중국 정부의 한족위주 정책의 영향이기도 하다. 상술하듯 개혁개방이후 조선족 사회의 기반인 조선족 마을 공동체는 한족 사회로의 이촌향도와 외부 한족의 유입으로 인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2020년 9월의 일부 한글 교과서 퇴출과 2022년의 가오카오 소수민족 가산점 철폐 등 한족화 정책을 펼치는 바, 앞으로 조선어 화자가 지속적으로 줄어 들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조선족들이 쓰는 한국어는 엄연한 피진 겸 한국어의 한 거대한 방언군이다. 미국식 영어, 영국식 영어의 차이, 브라질식 포르투갈어와 포르투갈식 포르투갈어의 차이처럼 한 개의 상이한 방언군을 형성하는 것. 차이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 브라질 포어와 유럽 포어 혹은 스페인 스페인어와 중남미 스페인어의 차이보단 좀 적은 정도다. 조선족들이 쓰는 연변식 한국어도 한국식 한국어와 어느 정도 상이한 게 사실이다.
7. 정체성
7.1. 귀속
조선족은 국적상으로 중국인이고, 스스로도 '중국인'이라고 말한다. 조선족이 "나는 중국인인데요"라고 말하면 이를 한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실 이는 중국이 다민족국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민족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조선족은 한족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고 같은 곳에서 일해도 어색한 경우가 많다.
다만 조선족이 국내에서 중국인으로 평가받고 이따금 차별받는 이유는 국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반중 혹은 혐중 감정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수많은 소수민족들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힘없이 귀속되어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중국 정부의 반민주-반서방 행적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는 조선족에 대해서 또한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옮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중국인"은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선족들은 한국인과 자신들이 민족적으로 동족이라는 것을 당연히 부인하지 않는다.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지만, 자신들은 "중국 국적자"[40]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민족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받는 외국인 등록증에 자신들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여권에는 한글 표기가 안 되어 있지만, 중국 주민증에는 한글 표기가 되어있기 때문. 게다가 없어지는 추세이지만 조선족 학교에서는 한글 발음이 공식 표기이기 때문이다.[41] 다만 현재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조선족의 외국인등록증에 한글로 이름이 표기되도록 개정되었다.[42]
당연히 이들은 한국인과 국적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체주의적인 중국의 교육하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교육받으며 자란다. 한국어를 한다고 해서 이들에게 한국과 똑같은 국적 의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게다가 '''중국은 다민족국가이지만 미국처럼 소수민족이 스스로 동화를 바라는 것[43] 이 아니고, 소수민족의 독립을 허용하는 순간 국가가 분열되는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을 말하는 게 자유롭지 않다. 중국에서는 미국에서 하듯이 "나는 모국 한국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하면 당장 정부기관의 요주의 인물이 되는 것이 현실이며,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에 근무하고 있다면 당장 실업자'''가 될 것이다.[44] 게다가 현재 독립의식이 강해 강도높은 탄압을 받고 있는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이 뻔히 존재하기도 하고. 이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는 대부분 풀린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민족의식과 국적의식을 동일시하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민족(ethnicity) 의식이지 국적(nationality) 의식이 아니다. 한국계 미국인 2, 3세들이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말하며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알면,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조선족의 사고방식은 자연스레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인 앞에서 조선족이 중국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매우 부자연스럽고 한심하게 보이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재미동포들 2, 3세도 마찬가지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다민족국가의 소수민족들의 행태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메수트 외질같은 터키계 독일인 축구선수들이 이중국적을 허용함에도 대부분 독일 국가대표를 택하고 있다.[45][46] 즉, '''조선족이 특별히 줏대없고 민족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국가귀속의식과 민족귀속의식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도 한국인들은 민족과 국가가 하나인 '본토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 반면 해외동포들은 자신이 속한 민족과 국가가 당연히 다르며 거기서 몇 대를 살면 그 국가가 자신의 국가가 될 수 밖에 없다. 해외동포들은 이러한 존재의 이중성을 갖고 태어나 자란다. 다만 한국 여권을 갖고 외국에 잠시 머무는 한국국적자는 물론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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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소수지만 한국인 못지않은 민족의식을 보여주는 조선족들도 있으며, 스스로 중국인을 자처하는 조선족이라도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중국 한족들은 "조선족은 한류나 한국을 자랑하니 아니꼽다"고 불평'''하기도 하니, 모든 조선족이 민족의식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다. 그 외에 일부 조선족들은 스스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한국인보다 더 강한 순혈 의식을 보여주기도 하며 노총각/노처녀로 남는 한이 있어도 한족과는 결혼도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 1970년대까지 조선족 내에서도 남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천시를 받는 분위기였고, 대체로 북부 지역 출신들이 더 우대받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뭐, 중국에서 정책적으로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을 갈라놓았다니 지역감정을 조장한 정책을 편 건 아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남한은 중국의 적대국이었던 데 반해 북한은 중국의 우방국이면서도 가까웠기도 했고, 교류도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졌으니까.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북한이 급속히 빈곤화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남부 지역 출신자들은 남한에 친척이 있는 경우가 많아 도움을 받을 수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일자리를 상당히 수월하게 구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던 데 반해 북부 지역 출신자들은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에 있는 친척들에게 먹을 걸 부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불리했다고. 그래서 당시에[48] "남조선에 친척이 있으면 부자가 되고, 북조선에 친척이 있으면 거지가 된다"라는 말이 나왔다나.
7.2. 정체성의 혼란
많은 조선족은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혼란은 사실 재미동포든, 재일동포든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고, 타국에서 사는 이민자 2세대 3세대에게는 공통적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한국계라고 다른 사람과 같게 보지 않고,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왔다고 다르게 보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에 있을 때는 친한국적으로 보이고, 한국에서는 친중적으로 보인다. 하여 많은 한국인들은 조선족이 필요에 따라 한국인과 중국인의 정체성을 오가는 기회주의자로 오해하기도 한다.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49] 이나 중공군 소속이었다는 점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선족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고, 조선족들은 대부분 북한과 중국의 사실상 이중국적 상태였으므로 이를 현재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건 좀 무리다. 다만 6.25 전쟁 관련해서 몇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들이 현재 중국에 소속되어 있는 관계로 조선족들의 6.25 전쟁 회고담은 상당히 편향된 점이 많다는 점이다. 세균전 증언이나 남한의 북침 같은 것은 물론이고, 독립운동가 출신 포함 남한의 고위인사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같은 건 걸러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한때 이들의 증언들이 사실처럼 기술되는 바람에, 조선족들을 도매금으로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자식을 한족 학교에 보내는 일이 많아져서, 젊은 조선족 중 조선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한족 학교에서도 남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한족 학교에서 교육시키는 이유는 부분적으론 기성세대가 중국어를 잘 할 줄 몰라서 다른 중국인들과 교류할 때 많은 애로사항을 겪은 트라우마에서부터 출발, 한족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음으로 중국사회에 더 잘 융화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 등이 완전 한족이 되어버린 자식을 보며 급후회하기도 한다. 이는 사실 조선족뿐만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재미교포들은 오히려 더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 선진국이기 때문으로, 1980년대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아이들이 한국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혼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니 조선족을 이런 걸로 비난하지는 말자. 외국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게 되는 문제다.
또한 조선족은 1870년대부터 중국에 살면서 중국인의 친척이 있는 경우도 많으며 모계가 중국인 혼혈인 경우도 매우 많다. 중국은 신분증에 민족명을 표시하고 있어서 신분증에는 한족, 조선족등이 쓰여 있다. 조선족 여자가 한족과 결혼하는 경우는 한족으로 변경하지만 조선족 남자가 한족 여자랑 결혼하는 경우에는 조선족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일부 조선족은 중국인 혼혈 일 수도 있다.
중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은 대부분이 초, 중, 고를 중국 학교에서 한족들과 공부하였으며 이 교육 과정은 한국인과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유이다.
조선족의 경우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반중국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어느 정도 들어서 아는 경우도 있기만 실제 재외동포 비자를 받고 대한민국에서 거주하는 조선족들은 대한민국의 의외로 매우 심한 반중 성향에 놀라면서 불안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이것은 조선족이 대한민국에서 중국인의 정체성에 더 반응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즉 조선족의 악순환 사이클 조선족은 한족과 친척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 국민 소득이 높은 대한민국으로 재외동포 비자를 받고 취직이나 사업을 한다 → 북한과는 달리 대한민국에 매우 반중성향이 강하다는 것에 놀라고 분노를 느낀다 → 나무위키등과 같은 역사 관련 글 사이트나 커뮤니티에서 한국을 비하하며 자존감 회복을 노린다. 또는 네이버 댓글에 일본과 비교하며 조센징이라고 욕하는 경우가 있다.[50] [51] → 한국인들의 반중감정과 조선족에 대한 혐오는 더 심각해진다.
이러한 악순환 사이클이 반복되며 이는 꽤 큰 사회문제이고 조선족 사회에서도 우려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조선족 마을에서 자라 옆 마을 한족 애들과 싸웠던 무용담(!)을 펼치는 조선족도 있는데, 이럴 때 '중국 애들과 싸웠다'고도 표현한다. 자신들도 중국공민에 속하지만 사회의 주류인 한족과 구분할 때는 한족 중국인 vs 우리 조선족이란 구분의식이 있는 것. 한족을 비롯한 타 민족과 비교해서 조선족의 우월감을 표현할 때 '중국인들은 조선족보다 문명하지 못해 ㅉㅉㅉ'[52] 라고 말할 때도 있다. 중국인이면서 한민족인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대국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백청강이 한국에서 출세하자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조선족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왜 자신들이 소속된 국가인 중국의 주석이 아니고 한국 대통령일까? 이건 중국 조선족의 의식 속에 역사, 민족, 국가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유가 부적절하다. 조선족에서 한국 대통령이 나오는 것에 맞는 비유는, 버락 오바마가 케냐 대통령이 되는 것. 아니면 리셴룽이 중국 주석이 되는 것.
연평도 포격 사태 직후 중국 입장에서 한국을 무시하는 조선족이 발견되는 반면에, 한국식 민족주의로 무장하여 고구려의 기상을 외치는 젊은 조선족도 발견할 수 있다. 서버가 중국밖에 없는 듯한 어느 조선족 커뮤니티에서는 이들끼리 역사, 민족, 국가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국 한족 애들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 있냐', '아니 그럼 한국인들은 우리한테 잘해주냐?' 등. 특히 거주 지역이 지역이니 만큼 한국 어디선가 퍼온 듯한 고구려와 발해에 관한 게시물이 종종 올라오는데, 한국의 환빠(!)의 영향을 받은 주장을 올리기도 한다.
즉, 태어날 때부터 민족과 국가가 같아서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한국인과, 태어날 때부터 민족과 국가가 다른 채로[53] 중국의 조선족으로 자라다가 이후 고국의 존재를 체감하게 되는 조선족의 민족의식 및 국가의식은 다를수밖에 없다. 위협적인 이민족이 없는 한국인은 국내에서 타 민족으로부터 차별당하거나 구분될 수가 없다. 하지만 조선족은 자신들과 엮인 국가가 중국이며 변경의 소수민족이라, 그 정체성에서 당연히 한국인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민족의식이란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주변 '국가'에 비교하고 대항하는 사실상의 '''국민의식'''이다. 그러나 조선족에게 민족의식이란, 절대다수킹왕짱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를 경계하는 소수민족 조선족으로서의 '''민족의식'''이다. 애초에 '민족의식'이란 단어조차 한국인, 조선족에겐 의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조선족이 중국땅에서 살면서 굳이 조선어를 배우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스스로 완전 중국인이라 자칭한다면 중국어만 배우면 될 걸 왜 어렵게 하나의 언어를 더 배워 머리를 싸쥐겠는가? 자신들은 조선민족이고 그 아이덴티티를 잊혀 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소위 한국인이 한민족으로 승인하든 부인하든 조선족은 조선민족으로 살아 왔고 살아 갈 것이다.
이른바 친한/친중이라는 것도 사실은 한국을 싫어하는 중국인/중국을 싫어하는 한국인만큼 반한/반중 정서를 보이지 않는 상대적인 것에 가깝다. 한국인들이나 중국인들이나, 다른 나라 국민들을 알아갈 때 실제 접촉보다 인터넷을 통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인데, 인터넷 정보는 언론사 뉴스를 포함해서 왜곡되었거나 편향적인 시각이 많고, 팩트체크도 자신의 확증편향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여기에 한중양국의 이런저런 갈등으로 진영논리까지 개입되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되기가 십상이다. 가령 중국에서 무슨 흉악범죄가 벌어졌다고 하면 한국인들은 중국이 무슨 사람이 살지 못할 인외마경이고 중국인들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인 것처럼 반응하지만 한국에서 같은 타입의 범죄가 일어나면 그러지 않는다. 한국이란 땅에서 살아가며 그러한 모습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며, 한국의 멀쩡한 모습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들 역시 중국에서 살아가며 실제로 겪어보았기 때문에 흉악범죄 뉴스가 떴다고 해서 중국과 중국인을 무작정 악마화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자국의 위인들과 문화를 도둑질하려는 줄 알지만 조선족들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교제한 한국인, 그리고 TV 등에서 보이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모든 한국인들이 환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조선족들 사이에는 이런 말도 있다고 한다. 조선족들이 한국을 욕하다가도 한족들이 한국을 욕하는 걸 들으면 괜히 기분나빠지고, 한족을 욕하다가도 한국인들이 중국을 욕하는 걸 들으면 괜히 기분나빠진다고. 많진 않으나 조선족들 중에서도 역시 현재 중국의 정치적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눈치를 챈 사람들은 중국의 행태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으며, 심지어 드물게 한국으로 망명하는 조선족들도 있다.
이 또한 재일동포나 재미동포들의 한국인/조선인으로 자신을 자칭하는것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중국이란 정치통제가 강한 독재국가에서 외국국적으로 살아 가긴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혁명과 같은 험란한 시기에는 외국에 연고가 있다고 간첩으로나 반역자로 몰리는 사건이 부지기수고(현재 북한과 별다름이 없을 것이다.), 중국국적을 가져야만 한족과 똑같이 땅을 분배받고 농사를 할 자격이 있다. 벼농사로 간도에 자리 잡은 조선족에 있어서 중국국적이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았을까.
7.3. 동화
예전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이주해갈 때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끼리 집단으로 이주해 마을을 이루고 살아와서 언어, 풍습에서 민족성을 보호하기 쉬웠다. 마을을 벗어날 일이 별로 없는 노인들은 미국 LA 코리아타운에서만 사는 한인 노인들처럼 평생 중국땅에 살면서도 중국어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국의 적극적인 개혁개방 이후로 조선족은 조선족 자치주와 동북3성을 벗어나 중국 내륙지역과 해안지역으로 이주해가면서 조선족 자체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한족에 동화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자치주가 아닌 중국 '''내지의 도시지역에 사는 조선족 청소년은 조선어(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족 부모들은 중국어를 못해서 자기들이 주류사회에 편입 못하고 한국 회사나 다닌다고 생각하여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54]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크게 변할 가능성이 없으며 더욱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 내륙지역으로 이주해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조선족은 일부 한국과의 관계가 극히 긴밀한 개인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중국사회에 동화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조선족의 동화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55] . 재미교포의 예를 들어봐도 그렇지만, 이민자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해당 사회에 동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인구학적으로도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절대적인 인구가 줄고 있는 것은 물론, 조선족 여성의 1인당 합계출산율은 0.98명(201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중국 정부의 2010년 인구 센서스는 0.622명을 합계 출산율로, 2000년 센서스에서도 0.699로 합계출산율을 계산하고 있다. 중국어 자료 그래서 그런지 자치주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다. 중국에서 자치를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법률상 인구 기준이 있는데 조선족 같은 경우는 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을 조선족이라 생각하지 않는 조선족들이 증가하여 인구 비율이 30% 이하로 떨어질 확률이 꽤 높다.[56]
20년만에 조선족학교가 78%가 줄어들었다.#
8. 중국 조선족 현황
한중수교 초기, 한국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사기가 아직도 연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정도인 것도 있다. 도문시의 도시 재개발 사기사건에 시민의 반 가량이 연루되었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서 상당히 익숙한 지명인 산둥성 칭다오 시의 경우 한국인의 상습적인 임금체납, 사업장 부도와 그에 따른 경영진의 잠적 때문에 '''한족'''이 조선족에게 한국인 조심하라고 일러줄 정도로 분위기가 나쁘다. 또한 한족 및 조선족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인 사장들이 중국에서 작업장이나 보이스피싱 사업장을 운영하며 현지인들을 고용해 동포의 신상을 털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사기는 한국사회 구조를 잘 알아야 칠 수 있으니, 간부급에 한국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족들 사이에 한국인을 '동족을 대우할 줄 모르는 야박한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는 말이 있다. 캐나다, 미국, 일본, 독일 출신 한인들은 한국에서 외국인이라서 받는 특혜와 재외동포라는 보호를 동시에 누리지만[57] 자신들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대한민국에서 재외동포들의 법적인 지위에는 국적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없으며[58] , 오히려 방문취업 비자[59] 등에서 특혜를 받는 면도 있다. 단지 대한민국 입장에서 조선족의 모국인 중국은 잠재적 적성국인데다 그 흔한 무비자협정조차 없는 개발도상국이지만, 미국 및 기타 서방국가들은 동맹국 내지는 우호국인데다 선진국의 일원으로써 민간 교류를 위한 각종 협약들이 체결되어 있다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60]
9. 국내 조선족 현황
한국 내의 조선족 인구는 2019년 12월 기준 약 70만 명 정도로 집계된다.[61] 외국국적자 중에서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국내 사회에서는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좋지 않다. 특히 일부 조선족에 의한 보이스 피싱, 몸캠 피싱,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등의 원격 범죄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대중의 인식을 나쁘게 하는데 일조했다.
여기에 오원춘 사건과 박춘풍 사건이라는 강력 범죄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으며, 조선족 관련 뉴스 기사나 영상의 댓글은 조선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또 재미교포나 재일교포들과 달리 오랜 기간 동안 한국과 단절되었고, 상이한 체제 아래에서 살면서 역사, 체제 등에 대한 인식 차가 커졌다는 점도 갈등을 일으킨다.[62]
9.1. 법적 지위
재외동포법에 의해 특정 조건을 만족한 국내 조선족에게는 재외동포 자격이 부여된다.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는 대한민국 국민에 준하는 것으로, 선거권·피선거권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누리며, 무제한 체류가 가능하고, "외국인 등록증"이 아닌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증"을 부여받는다. 본래 재외동포(F-4) 비자는 재미동포에 한정되었었으나[63] , 2004년에 헌법재판소에서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받고 재일동포, 재중동포, 고려인에게까지 범위를 넓혀 적용하고 있다.[64]
또한 귀화 자격을 심사할 때도 특혜가 부여되는데, 재외동포로서 2년동안 국민평균소득의 2배(약 5천만원)에 달하는 연봉 기준으로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면 바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일용직노동자들은 5,000만원 연봉이라는 조건을 갖추기 힘들기에[65] 귀화자들은 대부분 조선족 중 상위 1%에 해당하는 유학와서 한국에 정착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이다. 병역의 경우 연령에 상관없이 현역에 가지 않고 바로 민방위로 편입된다. 단, 이는 조선족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모든 귀화자들에 대한 특혜이다.
과거 재외동포의 기준이 "한국인의 3세대 이내의 직계비속"인데 조선족과 고려인의 경우 대한민국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에 한국을 떠났기에 이들은 재외동포로 인정을 받기 위해 특별한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조선족의 경우 처음에는 중국 신분증 상에 조선족으로 표기가 되어 있어야 하고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는 중국 4년제 대학을 졸업해야 받을수 있었다. 그러다 점차 1948년 (정부수립) 이전에 태어난 고령동포까지 확대되었고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건설분야를 제외한 기능사 이상의 국가기술자격을 따면 받을 수 있게 크게 완화되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경우에는 단순노동직(3D, 알바, 식당 종업원 등)에 종사할 수 없으며 전문기술직의 경우 해당 자격증 외의 일체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따라서 공사판에서 일당을 뛰는 조선족들은 재외동포신분이 아닌 취업비자 H-3비자를 받은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H-3비자가 절대다수였지만, 요즘엔 자격증을 따고 전문기술직 자격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
과거에는 조선족 4세부터는 재외동포법상 동포가 아닌 외국인으로 분류되며 이에 국내 장기 체류가 어려웠다. 그러나 2019년 7월에 기존의 동포 3세대까지만 재외동포로 인정하던 법률이 개정되어 '''전체비속'''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조선족 4세, 5세, 6세도 법적으로 재외동포로 인정되어 한국 거주가 가능해졌다.''' 해당 뉴스
한편, 2005년 8월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공직선거법 제15조 및 출입국관리법 제10조에 의거하여 '''영주권을 취득한 후 3년이 경과한 외국인 주민에게 지방자치단체장,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시도교육감, 시도의원, 시군구의원 선거권이 부여'''됐다. 물론 이는 조선족이나 여타 특정 인구집단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조건을 만족하는 모든 영주권자에게 부여되는 권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국적동포 현황#에서 조선족의 인구비율이 타 국가 출신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며, 때문에 과거 중공군 출신으로 한국을 겨냥한 침략전쟁에 가담하고 오늘날까지도 그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66] 에게 한국 정치의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논란도 존재한다.
9.2. 범죄율
90년대부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조선족들이 '''오원춘 사건'''과 '''박춘풍 사건''' 등 강력범죄를 연이어 일으키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 조선족들을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인식이 생겨났다.
이를 해소하고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언론의 인권보도준칙을 신설하고 이주민과 외국인 인권에 대한 보도준칙을 제작하였다. 인권보도준칙에 따르면,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들이 활동하는 신문사 및 잡지사, 방송사에서는 조선족이 범죄자라는 이미지에 연관될 수 있는 어떠한 표현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인권위는 주기적으로 실태 조사를 통해 조선족들에 대한 인권보도준칙 위반 사례를 공표함으로서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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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데이터에선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범죄자가 63,889명으로 전체 외국인 범죄자의 58.5%를 차지하였으며 베트남인이 9,085명으로 8.3%, 미국인이 6,526명으로 6.0%, 몽골인 6,370명으로 5.8% 순으로 나타났다. # 2013년 데이터에서도 중국인이 6,354명으로 전체 외국인 범죄자의 59.3%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베트남인 775명으로 7.2%, 미국인 642명으로 6.0% 순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앞서 인용했듯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중 중국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번외의 이야기지만, 해당 통계에서는 인구 대비로 보면 의외로 미국인의 강력범죄율이 낮지 않은 편인데, 형사정책원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 군무원 및 그 가족들은 외국인 등록을 하지 않으므로 분모가 실제보다 작게 선정되어 있어 좀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
인구 요인을 배제하려면, 국적별 '''국내 체류 외국인 수 대비 범죄자 수'''를 비교해야 한다. 경찰청이 펴낸 '외국인 밀집 지역의 범죄와 치안 실태 연구'를 보면, 2016년 기준 외국인 등록자 기준 10만 명 당 외국인 범죄자 국적별 검거 인원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으로 보면, 살인의 경우 중국인 범죄자 비율이 다소 높았다. 지난해 국내에서 검거된 살인범(미수 포함) 995명 가운데 외국인은 108명으로 11%였으며, 이는 우리나라 외국인 인구 비율(3%)의 세 배가 넘는다. 이 가운데 중국인은 65%로 전체 외국인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율(52.8%)보다 높았다. 그러나 살인과 강도를 제외한 강간·강제추행·절도·폭력·사기 등 다른 중범죄 유형에서 중국인 비율은 총인구 대비 중국인 비율(2%)보다 낮았다. 또한 중국인 집단과 조선족 집단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참고로 동일 조사에서 내국인의 10만명당 범죄자 수는 3,495명으로 나타났으나, '예비군 소집 불이행'처럼 외국인에게 해당사항이 없는 죄목도 많이 존재하니 천편일률적인 비교는 어렵다.
2020년에 중국 국적 불법체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서는, 10만명 당 범죄자 검거 인원은 1,217명으로, 외국인 평균(833명)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69]
9.3. 한국 사회로의 동화
이민자 집단의 주류사회로의 동화로 둘러싼 논쟁은 결국 동화주의 대 다문화주의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유서깊은 주제이다.
조선족 이민자들의 한국 사회로의 동화에 있어서 두가지 현상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데 하나는 조선족 이민자들이 중국어를 쓰고 중국에서의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문화적인''' 특수성이고 또 하나는 중국의 전체주의적인 가치관을 옹호하는 '''정치적인''' 특수성인데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이므로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화 및 언어적인 특수성에 있어서는, 본토의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대한민국 사회와 동화되지 않는 것은 서구권 이민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며, 그렇다고 예컨대 재한 미국인이나 프랑스인들을 폐쇄적인 집단이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또한 재외 한국인들 역시 해외에 장기간 거류하면서도 그 나라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한국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미국처럼 한인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코리아타운 같은 이민자 사회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오히려 재한 중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중국 조선어로 된 방송을 하거나 시청할 수 있고, 교육도 조선어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한 외국인 중에서는 한국어 구사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조선족 이민자들이 중국어를 쓴다거나 중국문화를 누린다고 해서 비난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공적이 아닌 사적인 생활에서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문화를 향유할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민자들이 본토 문화에 혼합되도록 장려할 수도 있고 (동화주의) 이민자들의 문화를 유지하도록 장려할 수도 있다 (다문화주의).
그러나 문화적 다문화, 동화를 떠나서 중국에서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한국 사회에 투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어를 쓰거나 중국 문화를 즐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며 중국어를 쓰되 중국식 전체주의적 이념은 옹호하지 않거나 한국어에 유창해도 중국식 전체주의적 이념을 옹호하는 등 개개인에 따라 문화적 편향과 정치적 편향은 다를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이라는 집단을 집단 단위의 문화적 정체성과 개개인의 정치사회적 가치관을 동일시하여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옹호하는 이슬람계 이민자가 있다면 그 개인을 비판해야지 그 이슬람계 이민자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민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전체주의식 사고관이다.
9.4. 외국인 노동자로서
이 조선족들이 많이 진출한 분야는 건축, 토목으로, 흔히 3D 직종으로 불리는 업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율이 높다.
국내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비판의 의견을 표하는 사람이 늘게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서 가장 조선족이 많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70] 실질적으로 입국한 조선족의 절대 다수는 한국인이 취직을 꺼리는 3D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주요 일자리 파이를 크게 가져간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다른 측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저렴한 노동력에 한국인의 임금 처우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로 인해 일당이 인테리어 기준 1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3~4만원 정도가 올랐고, 조선족이 담당자인 경우 같은 조선족만 쓰려는 경향이 강해 같은 업종 한국인 노동자가 타격이 크며, 결국 인건비경쟁이 안 되는 조선족들로 인하여 단순노동직 임금이 오르지않아 유입되는 한국인이 적어지고 조선족은 더 많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일자리와 임금에 관련하여, 이 부분은 국내 이민정책에 대한 찬반논란과 연결될 수 있기도 하다.
9.5. 입국 심사
2019년 대한민국내 체류 외국인이 250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4.9%가 된 상황에서, 통상 학계에서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고 보는 5%를 2020년에는 확실하게 넘을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
이에 발맞추어 한국은 체류비자, 차이나타운 등과 같이 조선족 정착에 총력에 가까운 지원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것들이 제도적으로 정착화된다 하더라도, 조선족과 다문화가정의 낮은 학력과 기술력, 제대로 된 윤리교육의 부재, 부모 대에서부터 지속되는 빈곤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의 빈민화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특히 조선족들은 중국 본토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밀입국하거나, 중국 본토에서조차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여 한국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들이 빈곤에서 탈출하여 한국의 주류사회로 무사히 녹아들기란 요원하다. 앞서 예시로 든 미국만 하더라도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나름 잘 되어 있지만, 그들의 빈민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체류비자 상 조선족은 여타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 상당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10. 조선족 캐릭터
2010년대 들어서 조선족들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진 여파인지 창작물에서는 범죄자 포지션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주로 대림동 등지의 마구잡이 조폭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세계나 베테랑에서처럼 히트맨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2010년 영화 황해, 2017년 청년경찰, 범죄도시 같이 조선족 범죄 세력들이 주적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제법 나오고 있다.
- 나쁜 녀석들 - 리만학
- 댄서의 순정 - 장채린
- 박씨유대기 - 강첸
- 범죄도시 - 흑룡파 (장첸, 위성락, 양태), 이수파 (장이수), 독사파 (독사, 도승우)
- 베테랑 - 조선족 칼잡이
- 복학왕 - 진성락[71]
- 봉숭아 학당(개그콘서트) - 연변총각
- 신세계 - 연변 거지들[72]
- 알파 베스티어리 - 아세코 리[73]
- 외모지상주의 - 왕오춘, 팽진양, 곽청호[74]
- 이대로 멈출 순 없다 - 류수빈, 마성진
- 차이나타운 - 엄마
- 청년경찰 - 조선족 난자 매매단(영춘)
- 황해 - 김구남, 면정학
11. 조선족의 분포 지역
12. 유명 인물
12.1. 국내
- 강미순: 탁구선수, 대우증권 소속이다. 현재는 한국으로 귀화.
- 김동학: 조선족출신 프로 장기기사. 현재 장기연맹 랭킹 1위
- 김용국: 프로듀스 101 시즌2의 참가자, JBJ 멤버
- 난쑹: 前 부천 FC 1995 소속 축구선수. 등록명은 남송이었다.
- 런쥔: NCT 멤버
- 백청강: MBC 위대한 탄생 시즌1 우승자, 한국 솔로 가수
- 오원춘: 수원 토막 살인 사건 참고
- 이영: 前 대전 KGC인삼공사 소속 배구선수. 현재 귀화.
- 장률: 영화감독. 2016년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 감독.
- 정수일: 前 남파간첩, 現 대한민국 대학교수.
- 주권: kt wiz소속 야구선수. 현재는 대한민국으로 귀화.[75][76]
- 테이스티: 2인조 쌍둥이 아이돌 듀오
- D.Ark: SHOW ME THE MONEY 777, SHOW ME THE MONEY 9에 참가한 래퍼.
12.2. 중국·해외
- 김경도: 축구선수, 현재 산동 루넝 소속
- 김무정: 중국 홍군 포병의 창시자, 제 팔로군 제일지포병단단장
- 김문학: 작가이자 일본에 귀화한 대학교수
- 김염: 20세기 초중반의 중화권 배우이다.
- 김성: 현대무용가이자 트랜스젠더, MC이다. 2017년 현재 东方卫视-金星脱口秀 MC
- 김학철: 독립운동가 출신 작가
- 다이옌니: 중국의 여가수, 서바이벌 프로그램 《청춘유니 2》의 참가자
- 리소테츠: 일본으로 귀화한 대학 교수
- 리셴위: 중국 인민해방군 소장
- 리취안저: 우상연습생 참가자
- 주덕해: 최초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지사, 중공 제8차 중앙후보위원, 제1/3차 전국인대대표, 제1차 전국정협위원
- 조남기: 중국 인민해방군 상장(최고위급이며 한국의 대장에 해당)
- 최건: 가수. 중국 록의 황제로 불린다.
- 쿵쉬안유
- RED HIDDEN, BJ성성 등 유명BJ들: 특히 RED HIDDEN은 쉬샤오둥의 채널을 전문적으로 번역을 해주는 채널이기도 하다.
- 기타 개별문서가 없는 유명 인물
- 강경산: 중국공정원 아카데미회원, 중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 담당 수석 설계자, 863 항공 우주 전문가 자문위원회
- 김인섭: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 전 중국인민해방군 무경총부참모장, 성도군구참모장, 제9차 전국인대대표, 제10차 전국정협위원
- 김일광: 북경화공대학 교수, 첫 번째 통계역학 그룹이론 설립자
- 김저일: 중국공정원 아카데미회원, 973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 863프로그램 주제전문가
- 김현댁: 중국 종양의학의 아버지
- 이상송: Long March 4B[77] 로켓설계 총지휘자
- 한대원: 중국인민대학 법학원 원장, 교수, 중국법학원 헌법학연구회 회장
- 한경청: 전문가 시스템 및 제어 이론과 응용의 초기 개척자
- 임현욱: 전 중국 국가통계국 부국장, 수석 통계학자, 제11차 중국정협의원
- 이영태: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 전 공군 부사령관
- 정순주: 중공 제13차 대표대회대표, 제8차 전국인민대대표, 제9/10차 전국정협위원
- 전철수: 중앙통전부 부부장, 전국공상련당조서기, 상무부주석, 중국민간상회부회장, 중공 제15/16/17차 중앙후보위원, 18차 중앙위원, 제8차 전국인대대표, 제11차전국정협상
- 라치환: 중국 최초의 세계 스피드 스케이팅 챔피언
- 박문요: 중국 장기 프로바둑 9단
- 송용혜: 중국 장기 프로바둑 9단
- 고종훈: 전 중국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고준익: 축구선수, 현재 광저우 헝다 소속, 고종훈의 아들
- 박성: 축구선수, 현재 베이징 궈안 소속
- 백악봉: 축구선수, 미드 필더, 현재 톈진 터다 소속
- 고만국: 축구선수, 현재 선양 둥진 소속
- 장천일: 작곡가, 총정치부가무단단장, 국가일급작곡가, 정협위원, 중국음악가협회리사, 중국음악가협회 청년음악가분회 부회장
- 금봉호: 작곡가, 국가일급작곡가
- 황서: 코미디언, 화학공학자
- 석산린: 창닝그룹 회장, 제 7/8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위원,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상무위원
- 라영호: Bullog과 Smartisan의 창시자 겸 회장
- 문일환: 교수, 중앙민족대학 소수민족언어문학학원원장, 중국 소수민족언어연구소 소장
- 정준화: 배우.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의 사마의(레전드히어로 삼국전)으로 출연
- 변영화: 가수.
- 정소제: 음악가. 작곡가 정율성의 딸
- 김미아: 가수.
13. 관련 자료와 문서
(PDF)조선족의 공간집적과 지역정체성의 정치:구로구 가리봉동
(중립적인 시각)재한 중국인범죄 그 불편한 시선
(PDF)중국 조선족 농촌 집거구 해체위기와 '집중촌' 건설 - 평화문제연구소
(PDF)가. 중국 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현황
(한양대학교)중국의 조선족 인식과 연변조선족자치주 관광정책
14. 같이 보기
- 살인
- 한민족
- 만주, 동북삼성 간도
-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
- 제7호 태창호 사건
- 오원춘 사건
- 박춘풍
- 보이스피싱
- 범죄도시
- 제노포비아
- 민족말살정책: 2020년 9월, 중공이 소수민족(내몽골, 위구르, 티베트, 조선족) 자치구에 소수민족 문화(전통의상), 언어(몽골어, 한국어 등), 역사 등의 사용·교육을 금지·탄압하여 과거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 차이나 게이트
- 연변대학
- 연변인민방송
- 연변일보
- 길림신문
- 흑룡강신문
- 연변통보
- 연변통신
- 월드아리랑
- 모이자
- 무우의 북경 라이프
[1] 중국조선족(中国朝鲜族)으로 불릴 때도 있지만 정식명칭은 조선족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정부 - 민족소개 - 조선족[2] 중국 한정[3] 한국 한정[4] 북한 한정[5] 자세히 보면 지도 중간에 있는 후베이성이 허베이성으로 잘못 표기되었다. 허베이성은 북경, 톈진 등을 둘러싼 경기도 정도의 지위이고, 후베이성은 중국의 대전이라 할 수 있는 코로나19로 유명해진 모 도시를 끼고 있는 충청남도 정도의 지위이다.[6] 한자문화권에서 중국조선족이라는 단어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의 소속(국가)을 강조하는 경우 넣는 단어인 걱이 지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박경휘,《중국 조선족의 의식주 생활 풍습》 1994. 강순화, 《중국 조선족 문화와 여성 문제 연구》 2005.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 1990년 이후를 중심으로》 등 참조. 이것은 200여만명의 조선족 앞에 중국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며 따로 명사화 된 것은 아니다. 조선족 자체는 분명히 중국 소수민족만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마치 조선족과 중국조선족이 다른 개념인양 오판하는 사례가 있다. 이것은 한국이 중국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세력의 소망이라 볼 수 있다. 당장 중국 본토, 대만, 홍콩사람에게 조선족(챠오센주)라고 말하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10명중 1명도 안될만큼 극소수에 불과하다. 조선족과 중국조선족이 다른 개념이라는건 위키피디아 중문판의 반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해외 거주 중국 본토 출신 편집자 등이 애용하는 논리다. 애초에 한국인이 5천만명이 넘는데 2백만 조선족에게 명칭에 있어서 포함되는 개념으로 잡아먹힌다는게 이치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한국, 일본에서도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100% 중국인중 한국 혈통을 가진 소수민족을 의미하는데 자꾸 조선이라는 명칭가지고 논점을 흐리는 사람이 있다. 모든 국가에서 조선민족(한민족)과 조선족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중국민족망(중문) 조선족은 조선민족(한민족)의 약칭이 아니다.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민족(한민족)을 특정하는 단어이다.[7] 중국에 상주하고 있는 중국 소수민족의 구성원인 조선족을 의미하는 단어로, 조선족이 해외에 있다고 해서 한국인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한국 국적이 있어야만 한국인이다. 반면 중국국적이 없는 한민족, 즉 조선민족(한국인, 북한인, 고려인 등)은 조선족이라고 부를 수 없다. 따라서 조선족과 중국조선족이 별도의 개념이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말이다.[8] 가오카오 소수민족 가산점은 한족에 대한 역차별 논란으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9] 중국에서는 한반도를 조선반도라고 한다. 하지만 한중수교 이후에 한반도라고 적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10] 미수복지역 북한의 국적인 조선족도 있지만 극소수이며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11] 이들 중 병자호란 때 끌려간 이들은 만주족에 동화되었다가 훗날 만주족 전체가 한족에 거의 동화됨에 따라 자신들도 한족에 동화되었다.[12]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는 한국광복군에 참여한다.[13] 한국의 도에 해당[14] 신장 위구르 자치구, 시짱 티베트 자치구은 현재도 성급취급을 받는다.[15] 당장 1인당 GDP가 중국이 북한을 추월한 것이 1994년도의 일이다.(...)[16] 사실 북한이 잘 살았다기 보다는 중국이 워낙 커다란 병크들을 연속해서 터뜨리는 바람에...[17] 문화대혁명 이전의 연변 지역 조선인들은 국적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향은 남쪽의 어디요", "내 고향은 북쪽의 어디요"라고 대답했다고.[18] 마오쩌둥의 조카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신강 위구르인한테 살해당했고, 마오쩌둥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 ‘동북의 태상황’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자랑했다고 한다. 마오위안신이 연변에 왔던 사실은 중국 정부의 기록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고, 후술할 연변의 조선족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통해 공개되었다.[19] 남한이나 북한에 친척이 있으면 조선특무(간첩), 공산당을 위해 소련에 갔다 온 사람은 소련특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일본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서 일본특무, 교사들은 노동자와 대립된다 해서 지식부자라는 누명을 썼고, 자본주의의 길로 나가는 자들이라 하여 일삼은 감금과 폭행을 당했다.[20] 이때 고초를 겪은 이들 가운데는 조선인 출신으로 중국에서 '영화 황제'라 불리던 배우 김염, 조선인 출신의 음악가로 중국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로 유명한 정율성,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 조선의용대로도 활약했던 여류 독립운동가 이화림도 있었다. 특히 정율성의 경우는 1956년 북한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연안파가 숙청되는 것을 보고 북한을 떠나 중국 국적을 얻어 정착했던 인물이었다. 북한을 피해서 중국으로 왔는데 중국에서조차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한 셈.[21] 윤동주 시인의 모교다.[22] 당연히 '조선 독립'이니 '대한 독립'이니 하는 구절이 들어있는 문서를 홍위병들이 그냥 놔둘 리가 없다.[23] 한국 항일무장투쟁사에서 봉오동 전투나 청산리 대첩과 함께 '3대 대첩'으로 꼽히는 대전자령 전투의 경우, 박창욱 등 연변 지역의 조선족 학자들 가운데는 '''중국측 항일투쟁 집단이 주도한 전투를 한국 독립군들이 자신들의 행적으로 부풀려 과장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기도 한다.[24] 대표적으로 윤동주 시인을 중국조선족의 대표시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현지 안내문 등이 있다. #[25] 제목에 '10년의 약속'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에는 사연이 있는데, 저자인 한국인 류은규가 조선족 사료를 수집하면서 문화대혁명 때의 공백을 백방으로 찾던 중 1999년 용정(룽징)의 조선족 사진가로 문화대혁명 당시 연길현문화관에서 근무하면서 연변에서 벌어졌던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사진으로 찍었던 황영림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류은규는 그를 찾아가 몇 차례나 설득한 끝에 그가 당시 촬영한 사진을 얻어 <잊혀진 흔적-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2000년)를 엮을 수 있었다. 얼마 뒤 황영림은 “'''사진을 당신에게 주겠으나, 바로 공개하면 절대로 안 된다. 꼭 내가 사망 후 공개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찍은 사진 6천 장을 모두 류은규한테 넘겼고, 황영림이 2006년에 타계한 뒤에 류은규는 그와의 약속대로 그 사진을 공개했던 것이다. 이것이 부제 ‘10년의 약속’이 붙은 연유다.[26] 이 때문에 까오카오 외국어 과목에 한국어가 없다.[27] 중국에서 말하는 공정이란 단순히 알려진 것처럼 역사만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모든 인문, 환경, 경제를 조작하는 것이다.[28] 식당에서 연변 조선족들이 식사를 하는 도중 흑룡강성 조선족의 억양이 들리면 식사도중 나가면서 흑룡강성 조선족 방향으로 침을 뱉고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29] 두메산골 출신이 대도시 서울 사람을 "정은 없고 계산만 철저한 깍쟁이"로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30] 지리적으로 특히 조선족이 많이 산다. 보통 경상도 말씨를 쓰며, 진짜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과 구별 차이점은, 조선족은 경상도 사투리는 잘 쓰는데 표준어 발음을 거의 못한다는 것.[31] 구한말~일제강점기 초기에 만주나 연해주 등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경우, 쌀농사(벼농사이면서 논농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 집착으로까지 받아들여질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 열대~아열대 지방에서 널리 재배하는 작물로써 춥고 겨울이 긴 만주나 연해주에서는 재배하기 불리한 작물인데도 굳이 벼를 재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소련령 연해주에서는 조선인들이 중심이 된 집단농장이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할 정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기 전 이야기다.)[32] 만주어 "하르빈"의 중국식 음차다. 한국 독음으로 적어봤자 무의미하니 참고용으로만 보면 된다.[33] 이쪽은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다.(電話をかける)[34] 특히 을축년 대홍수 이후에 터전을 잃은 낙동강 유역의 주민들이 많이 이주했다.[35] 심양, 철령 등[36] 한국 국적의 젊은 화교들도 한국어 문장에 단어나 관용구는 중국어를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양쪽 나라 말을 같이 쓰는 케이스가 있다. 이런 경우는 집에서 중국어를 쓰고 학교는 한국 원주민과 같이 다녀 양쪽이 섞인 경우다.[37] 예를 들면 "밥을 먹습니다"를 "밥으 먹습꾸마"[38] 예를 들면 "~입니까"를 "~임둥", "합니까"를 "~함둥"[39] 예를 들면 "일을 합시다"를 "일으 하깁:소"[40] 중국어 표현에서는 중국공민. 대만/홍콩을 포함하는 중화공민과는 좀 다르다.[41] 물론 조선족 학교는 조선족들의 북경이나 상해 등으로 상경 및 한국 귀국, 그리고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이민으로 없어지는 추세다.[42] 해당 영상에 등장한 여경래 셰프는 조선족이 아니지만 이 정책에는 중국 조선족도 포함된다.[43] 그마저도 화교나 히스패닉 같은 예외도 존재한다.[44] 미국의 LA 한인 타운에서 한인 축제가 열렸는데 현지에서 태어난 교포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걸어놓은 장면을 보고 중국 조선족이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지만 중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행동을 하는 즉시 요주의 인물이 되고 끌려갈 것이라고 한다.[45] 다만 외질은 독일 국가대표로는 활동할지언정 터키계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편에 속한다. 이런 외질의 행태에 독일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46] 사실 외질이 특히 독일에서 까이는 것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지지자임을 숨기지 않고 자주 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반민주적 지도자를 옹호하고 친분을 과시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다른 이중국적 선수들이나 이민자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은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강하게 비판받은 바는 없다. 일례로 루카스 포돌스키 역시 국적이 독일이고 독일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 있으니 최선을 다한다 말할 뿐 폴란드계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편이지만 이 이유로 비판 대상이 되진 않는다.[47] 유연한 필체로 "금천구"를 간체로 적은 점, 현대 한국어의 격식체인 해요체와 어미를 혼동하는 점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문구를 적은 사람은 조선족일 가능성이 높다.[48] 정확하게는 90년대 초반부터 나온 말이기는 하다. 남한이 북한을 완전히 찍어누른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북한의 경제는 70년대부터 둔화 기미가 보이다 80년대 삽질을 거쳐 완전히 무너졌고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역전을 확정지었다.[49] 6.25 전쟁 직전에 중국으로 부터 귀국한 조선족으로 편성된 인민군. 6.25전쟁 당시 상당한 전투력을 자랑했다.[50] 중국인의 경우 중국 사서에 의한 중국위주 교육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중국 역사에서 왜곡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51] 지금은 댓글들이 사라졌으나 예전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족" 문서에 댓글을 달 수 있었는데 그때 많은 추천 수를 받은 글 중에서 조선족이 한국인을 "역시 조센징"이라고 비하하는 글이 있었다.[52] 여기서 문명(文明)이란 현대적인 시민의식, 개화 정도를 의미.[53] 게다가 고국인 대한민국과 북한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54] 이는 재일조선인들도 마찬가지이다.[55] 비단 조선족뿐만 아니라, 중국 내 여러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미명 하에 한족에 강제로 동화시키려하여, 티베트와 같은 독립운동이 벌어지는 지역은 물론, 친중 성향이 강한 대부분의 소수민족에게까지 극심한 반발을 사는 상황이다.[56] 현재는 35% 정도의 비율이다. [57] 더군다나 혈통만 한국인이고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미국 시민권자가 꾸준히 한국으로부터 지원 받는 일도 있다.[58] 1998년 처음으로 재외동포법이 생겼을 때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국 국적을 명시적으로 확인받은 자와 그 직계비속에 한하여 재외동포로 인정한다는 부속조항을 두었으며, 사실상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의 고려인, 일본의 조선적 등을 겨냥한 조항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이후 2003년에 헌법 제11조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59] 외국인이지만 동포임을 배려하여서 일단 한국내에 들어와서 알아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 H-2(방문취업)비자는 오직 고려인과 조선족을 위한 비자이다. 이 비자는 중국인(한족), 동남아시아인을 위한 취업비자인 E-9 비자와 달리 농업, 제조업, 건설업, 식당, 가사보조인 등 노동부에서 외국인고용이 허가되는 모든 업종에 취업이 가능하다. E-9비자와 가장 큰 차이는 취업을 하든 안 하든 정해진 비자기간 동안은 한국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다.[60] 쉽게 말해 한국에서 조선족과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대우의 차이는 중국인과 미국인에 대한 대우의 차이, 나아가 한중관계와 한미관계의 차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국민에 대한 대우는 국가가 책임지는 영역이다. 조선족 입장에서 그게 싫으면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하여 한국인으로서 대우받든가, 중국인으로서 중국의 정치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여 한중관계를 더 우호적으로 만들든가 할 문제이지, (같은 민족이 좀 많이 모여살 뿐) 그네들 입장에서 남의 나라인 한국이 중국을 판단하는 방식에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는 셈이다.[61] 모두 장기체류자는 아니고, 단기체류자도 포함한 값이다.[62] 같은 혈통이라도 서로 대립하는 사례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본토출신 한족과 싱가포르의 한족 이주민 후손인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갈등. 그리고 같은 중국 영토라도 홍콩인들은 중국인과 사이가 매우 나빠 아찬 즉 촌뜨기라고 부르며 영어도 못 하고 위생관념도 질서의식도 없는 미개인이라고 욕하고 대륙인은 홍콩인을 미국의 개, 돼지라며 욕한다. 같은 한문을 쓰는 한족임에도 사이가 아주 안 좋은 게 현재 한국인과 조선족의 갈등과 양상이 같고, 일부 홍콩인의 증오 발언도 한국인의 대 조선족 증오 발언과 비슷하다.[63] 소위 높으신 분 자녀들이 미국 국적을 가지고도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든 편법이 아니냐는 논란이 많았다.[64] 하지만 눈가리고 아웅인게 OECD국가에 영주할 자격이 있어야만 F-4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고 나머지 국가들은 자격증등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65] 이들은 애당초 일반적으로 재외동포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66] 항일투쟁 함께 했으니 6.25 때 총부리 겨눴어도 동지라고? 한국전쟁 시기 중국인민지원군·연변 조선인 사회의 후방지원 활동과 북중 혈맹관계의 강화[67]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주요 언론의 인권보도준칙 준수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pp.142, 2013.[68] 조선족 포함. 개중 조선족 비율은 70%정도.[69] 다만 조사가 쉽지 않은 불법체류자들이 대상이라, 통계가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과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70] 외국인 노동자 문제 문서를 참조.[71] 모티브 인물은 범죄도시의 위성락이다. 배우 진선규 + 위성락[72] 조선족인지 탈북한 인민군인지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일단 관객들은 조선족으로 받아들이므로 여기에 서술.[73] 조선족 출신의 중국계 탄자니아인으로 등장한다.[74] 이들은 한국 거주 중국인으로 중국에서 흔한 성씨로 설정했기 때문에 화교에 가깝다.[75] 아버지는 중국 한족(추정)이며, 어머니가 조선족이다.[76] 국적규정이 느슨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뛴다.[77] 중국어명 : 长征四号乙运载火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