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송나라)

 


<colbgcolor=#2e8b57> '''북송의 대신
張美 | 장미
'''

'''시호'''
공혜(恭惠)
'''성씨'''
장(張)
'''이름'''
미(美)
''''''
현규(玄珪)
'''생몰'''
918년 ~ 985년
'''출생'''
패주(貝州) 청하현(清河縣)
'''주군'''
주태조
주세종
주공제
송태조
송태종
'''국적'''
후주(後周) → 북송(北宋)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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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대십국시대 후주, 북송의 대신으로 자는 현규(玄珪). 패주(貝州) 청하현(清河縣) 출신.

2. 생애


장미는 918년 패주 청하현에서 태어났다. 장미는 회계에 뛰어나 좌장(左藏)의 아전을 맡았다가, 삼사의 추천을 받아 전주(澶州) 양료사(糧料使)로 충임되었고, 이때 곽위의 신임을 얻던 시영과 교류하였다. 시영이 전주에 진수할 때, 매양 식량이 부족해져서 장미에게 식량 보급을 독촉하였고, 장미는 시영에게 비밀리에 식량을 공급하였다. 이 사실을 안 곽위는 장미를 견책하려고 하였지만, 시영에게 준 신임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복주(濮州) 마보군도우후로 좌천시켰다.
954년, 곽위가 세상을 떠나고, 시영이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후주의 명군인 세종이다. 장미는 세종의 신임을 받았기에 추밀승지(樞密承旨)로 임명되었다. 장미는 후주에서 판삼사와 우영군위대장군(右領軍衛大將軍)를 역임하였으며, 세종이 회남을 정벌할 때 개봉에 남아 대내부서가 되었다. 뒤에 세종이 다시 회남을 정벌하면서 대내도점검이 되었고, 북한 정벌 때는, 다시 대내도부서가 되었다. 정벌 이후에는 좌감문위상장군(左監門衛上將軍)이 되고 선휘북원사(宣徽北院使)로 충임되면서 세종의 정벌을 위해 후방을 책임지고 맡았다.
960년, 조광윤이 공제의 선위를 받아 북송을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북송의 초대 황제인 태조이다. 장미는 이때 검교태위가 되었다. 북송이 건국되자, 후주의 구신이었던 이균은 조광윤에게 불만을 품고, 비밀리에 망명객들을 모아 송나라에 대한 반란을 준비한다. 장미는 이균의 배반을 예측하고 비밀리에 양곡을 쌓아, 이균의 반란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이균이 오대십국시대의 황제인 유승균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태조가 직접 출병하여 이균을 토벌하였는데, 이때 비용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이균을 토벌하였다. 장미는 이때의 공적으로 정국군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967년에는 창주 절도사가 되었다. 976년 태종이 즉위하자, 장미는 입조하여 좌효위대장군(左驍衛上將軍)으로 전임되었다. 장미는 983년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여 관직에서 물러났고, 985년에 사망하였다. 사후 시호는 공혜(恭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