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계
張松溪
생몰년도 미상.
명나라 때 무인이다.
절강성 영파 사람으로 호주국립대학의 류춘렌 교수의 고증에 따르면 장삼봉에게서 시작된 내가권의 고수로 소림사의 무승 여럿과 승부를 벌여 그들을 제압하여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엽계미가 있고 옷차람이 남루하고 서생처럼 단아했다고 하며, 청나라 때 저서인 영파부지에 따르면 그의 권법은 매우 뛰어나고 그 권법은 장삼봉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했다.
범천려총부라는 책에 소림사의 무승과 싸운 일화가 있는데, 절강성에 나타난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소림의 무승들이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절강성으로 가서 사전 정보를 통해 장송계가 대단한 고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술을 겨룰 것을 신청하지만 장송계는 왜구를 소탕하러 나선 이들과 싸우는 것이 내키지 않아 목숨을 잃어도 서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승부에 응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무승들이 누구를 겁주려고 하냐면서 오히려 장송계가 있는 곳으로 갔으며, 장송계는 세 번의 초식을 양보하면서 병장기와 손, 발을 사용해도 좋다면서 세 번 동안 방어하겠다고 했다. 무승이 철사장을 날렸지만 왼손을 들어 옆으로 살짝 비틀면서 막았으며, 발차기와 주먹을 날렸지만 장송계는 모두 공격을 옆으로 흘렸고 세 번의 초식이 끝나자 장을 날려 무승을 쓰러뜨렸다. 이에 무승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서 왜구를 공격하러 갔으며, 이 때부터 장송계의 이름이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장삼봉의 제자로 무당칠협의 넷째다. 무당칠협 중 가장 지모가 뛰어나다고 한다.
도대금과 유대암이 폐인이 된 사연을 추리하여 사건의 원인이 도룡도일 것이라고 추리해낸다. 송원교, 은리정과 함께 소림사로 찾아가서 유대암을 부상시킨 대력금강지력에 대해서 문의하러 간다.
용문표국의 도대금 일가가 몰살당한 일로, 후일 장취산이 추궁을 받을 것이라 생각해 용문표국과 친했던 호거표국(虎踞)의 기천표(祁天彪), 진양표국(晉陽)의 운학(雲鶴), 연운표국(燕雲)의 궁구가(宮九佳)에게 몰래 은혜를 베풀게 된다.
운학은 섬서성 일대에 명망이 높은 인물로 항몽 세력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기로 한 호걸이었다. 그는 여러 호걸들과 혈맹(血盟)을 맺고 약정한 날짜에 봉기를 하여 몽골군의 진영을 공격하려 했는데, 그만 혈맹의 반역자가 연판장과 격문, 거사계획서를 훔쳐 몽골의 태원지부(太原知府)에 밀고하게 된다.
하지만 마침 그때 장송계가 지부를 처단하기 위해 왔다가, 지부와 반역도가 의병타도의 계획을 짜는 것을 보고 즉시 방에 뛰어들어서 그들을 살해한 다음 연판장과 격문, 거사계획서를 가지고 가버렸다. 운학은 언제 계획이 누설되어 모두 살해될까 두려워서 벌벌 떨었지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게 되었다.
궁구가는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의 큰 보석상으로부터 위탁받아 은화 육십만냥 어치의 진주보석을 운송하게 되었는데, 파양호의 협객인 파양사의(四義)에게 습격받아 화물을 모두 털렸다. 전 재산을 팔아도 화물을 보상할 도리가 없었던 궁구가는 큰 곤경에 처했는데, 장송계는 이 딱한 소식을 듣고 파양사의를 찾아갔다가 파양사의의 맏이가 몽골인 관원을 잘못 건드려 사형수가 되었다는 사연을 알게 된다. 파양사의는 연운표국의 화물을 훔쳐 그것으로 뇌물을 써서 맏이의 죄목을 유배형으로 낮춘 다음 탈출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장송계는 계략을 써서 파양사의의 맏이를 탈옥시켰고, 파양사의는 궁구가에게 화물을 되돌려주어 궁구가는 화물을 되찾게 되었다. 장송계는 이 때의 증표로 진주를 포장했던 비단보자기를 맡아두었다.
기천표는 화물을 운송하다가 양주(凉州)일대의 호족 오일맹(吳日氓)의 제자를 잘못 건드려, 낙양 부근에서 그와 결투를 하게 되었다. 오일맹은 단혼오공표(斷魂蜈蚣)라는 지네 몸뚱이 처럼 생긴 강철 표창에 극독을 먹여 살갗만 스쳐도 목숨을 잃게 하는 병기를 쓰고 있었다. 기천표는 지난날 자신이 강남 일대에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교씨(喬氏) 형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좋은 말만 해놓고 당일날에 사라져버렸다. 할 수 없이 기천표는 결투에 나서게 되었지만 단혼오공표에 당해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맞고 죽기를 각오했다.
하지만 그때 거지로 변장하고 있던 장송계가 나서서 아홉자루의 단혼오공표를 모두 막아내 기천표를 살려주었다.
나중에 세 표국의 우두머리들이 무당파에 와서 장취산을 내놓으라 했을 때, 장송계는 그들을 도와주었던 증표를 꺼내 보여주어 은혜로서 그들의 원한을 무마시킨다. 또 오봉도의 무리가 장취산을 습격하려 했을때, 역시 그들에게도 몰래 은혜를 베풀어 오히려 무당파의 아군으로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 세 표국의 우두머리는 나중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여, 은원은 있지만 원한도 깊으니 넘어갈 수 없다고 여겨 개봉부(開封府)의 신창진팔방(神槍震八方) 담서래(譚瑞來) 데려오다가 장취산과 따져보려 했다. 그러나 천응교의 은무복(殷無福)·은무록(殷無祿)·은무수(殷無壽) 형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감히 자신들 교주의 사위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건방지다고, 결투를 신청하고 패배시킨 다음 각각 팔 하나씩 끊고 표국의 깃발을 바치고 다시는 무당산에 얼씬도 못하도록 약속하게 했다.
오해하여 장무기와 싸우게 되었을 때도, 아픈 척하며 쓰러지는 지략을 발휘하여 장무기가 가까이 오게 한 다음 복면을 벗겨서 장무기의 정체를 밝히기도 했다.
도사 영웅대회에도 나가기는 했는데, 출전 제한이 각 문파당 2명으로 돼버려서 무술대회에서 싸우는건 유연주와 은리정에게 맡겼고 나중에 몽골군과 싸울때 나서서 활약했다.
2019년 판에서는 배경인물 수준의 비중이 되어버렸다. 광명정에서 은천정과 대결하는 부분이 그나마 멋있게 나온다.
생몰년도 미상.
명나라 때 무인이다.
1. 실존 인물
절강성 영파 사람으로 호주국립대학의 류춘렌 교수의 고증에 따르면 장삼봉에게서 시작된 내가권의 고수로 소림사의 무승 여럿과 승부를 벌여 그들을 제압하여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그의 제자로는 엽계미가 있고 옷차람이 남루하고 서생처럼 단아했다고 하며, 청나라 때 저서인 영파부지에 따르면 그의 권법은 매우 뛰어나고 그 권법은 장삼봉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했다.
범천려총부라는 책에 소림사의 무승과 싸운 일화가 있는데, 절강성에 나타난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소림의 무승들이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절강성으로 가서 사전 정보를 통해 장송계가 대단한 고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술을 겨룰 것을 신청하지만 장송계는 왜구를 소탕하러 나선 이들과 싸우는 것이 내키지 않아 목숨을 잃어도 서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승부에 응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무승들이 누구를 겁주려고 하냐면서 오히려 장송계가 있는 곳으로 갔으며, 장송계는 세 번의 초식을 양보하면서 병장기와 손, 발을 사용해도 좋다면서 세 번 동안 방어하겠다고 했다. 무승이 철사장을 날렸지만 왼손을 들어 옆으로 살짝 비틀면서 막았으며, 발차기와 주먹을 날렸지만 장송계는 모두 공격을 옆으로 흘렸고 세 번의 초식이 끝나자 장을 날려 무승을 쓰러뜨렸다. 이에 무승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서 왜구를 공격하러 갔으며, 이 때부터 장송계의 이름이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2. 의천도룡기의 장송계
장삼봉의 제자로 무당칠협의 넷째다. 무당칠협 중 가장 지모가 뛰어나다고 한다.
도대금과 유대암이 폐인이 된 사연을 추리하여 사건의 원인이 도룡도일 것이라고 추리해낸다. 송원교, 은리정과 함께 소림사로 찾아가서 유대암을 부상시킨 대력금강지력에 대해서 문의하러 간다.
용문표국의 도대금 일가가 몰살당한 일로, 후일 장취산이 추궁을 받을 것이라 생각해 용문표국과 친했던 호거표국(虎踞)의 기천표(祁天彪), 진양표국(晉陽)의 운학(雲鶴), 연운표국(燕雲)의 궁구가(宮九佳)에게 몰래 은혜를 베풀게 된다.
운학은 섬서성 일대에 명망이 높은 인물로 항몽 세력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기로 한 호걸이었다. 그는 여러 호걸들과 혈맹(血盟)을 맺고 약정한 날짜에 봉기를 하여 몽골군의 진영을 공격하려 했는데, 그만 혈맹의 반역자가 연판장과 격문, 거사계획서를 훔쳐 몽골의 태원지부(太原知府)에 밀고하게 된다.
하지만 마침 그때 장송계가 지부를 처단하기 위해 왔다가, 지부와 반역도가 의병타도의 계획을 짜는 것을 보고 즉시 방에 뛰어들어서 그들을 살해한 다음 연판장과 격문, 거사계획서를 가지고 가버렸다. 운학은 언제 계획이 누설되어 모두 살해될까 두려워서 벌벌 떨었지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게 되었다.
궁구가는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의 큰 보석상으로부터 위탁받아 은화 육십만냥 어치의 진주보석을 운송하게 되었는데, 파양호의 협객인 파양사의(四義)에게 습격받아 화물을 모두 털렸다. 전 재산을 팔아도 화물을 보상할 도리가 없었던 궁구가는 큰 곤경에 처했는데, 장송계는 이 딱한 소식을 듣고 파양사의를 찾아갔다가 파양사의의 맏이가 몽골인 관원을 잘못 건드려 사형수가 되었다는 사연을 알게 된다. 파양사의는 연운표국의 화물을 훔쳐 그것으로 뇌물을 써서 맏이의 죄목을 유배형으로 낮춘 다음 탈출시킬 계획이었던 것이다.
장송계는 계략을 써서 파양사의의 맏이를 탈옥시켰고, 파양사의는 궁구가에게 화물을 되돌려주어 궁구가는 화물을 되찾게 되었다. 장송계는 이 때의 증표로 진주를 포장했던 비단보자기를 맡아두었다.
기천표는 화물을 운송하다가 양주(凉州)일대의 호족 오일맹(吳日氓)의 제자를 잘못 건드려, 낙양 부근에서 그와 결투를 하게 되었다. 오일맹은 단혼오공표(斷魂蜈蚣)라는 지네 몸뚱이 처럼 생긴 강철 표창에 극독을 먹여 살갗만 스쳐도 목숨을 잃게 하는 병기를 쓰고 있었다. 기천표는 지난날 자신이 강남 일대에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교씨(喬氏) 형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좋은 말만 해놓고 당일날에 사라져버렸다. 할 수 없이 기천표는 결투에 나서게 되었지만 단혼오공표에 당해낼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맞고 죽기를 각오했다.
하지만 그때 거지로 변장하고 있던 장송계가 나서서 아홉자루의 단혼오공표를 모두 막아내 기천표를 살려주었다.
나중에 세 표국의 우두머리들이 무당파에 와서 장취산을 내놓으라 했을 때, 장송계는 그들을 도와주었던 증표를 꺼내 보여주어 은혜로서 그들의 원한을 무마시킨다. 또 오봉도의 무리가 장취산을 습격하려 했을때, 역시 그들에게도 몰래 은혜를 베풀어 오히려 무당파의 아군으로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 세 표국의 우두머리는 나중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여, 은원은 있지만 원한도 깊으니 넘어갈 수 없다고 여겨 개봉부(開封府)의 신창진팔방(神槍震八方) 담서래(譚瑞來) 데려오다가 장취산과 따져보려 했다. 그러나 천응교의 은무복(殷無福)·은무록(殷無祿)·은무수(殷無壽) 형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감히 자신들 교주의 사위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건방지다고, 결투를 신청하고 패배시킨 다음 각각 팔 하나씩 끊고 표국의 깃발을 바치고 다시는 무당산에 얼씬도 못하도록 약속하게 했다.
오해하여 장무기와 싸우게 되었을 때도, 아픈 척하며 쓰러지는 지략을 발휘하여 장무기가 가까이 오게 한 다음 복면을 벗겨서 장무기의 정체를 밝히기도 했다.
도사 영웅대회에도 나가기는 했는데, 출전 제한이 각 문파당 2명으로 돼버려서 무술대회에서 싸우는건 유연주와 은리정에게 맡겼고 나중에 몽골군과 싸울때 나서서 활약했다.
2019년 판에서는 배경인물 수준의 비중이 되어버렸다. 광명정에서 은천정과 대결하는 부분이 그나마 멋있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