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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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북쪽, 러시아의 남쪽에 위치한 동아시아의 내륙국이다. 중앙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한다. 정식 국명은 몽골국(Монгол Улс, 몽골 울스). 수도는 울란바토르. 공용어는 몽골어. 화폐 단위는 투그륵.
2. 국가 상징
2.1. 국명
정식 국명은 '''Монгол улс'''으로, 로마자 표기로 하면 '''Mongol uls'''이며 이는 '몽골국(國)'이라는 의미다. 몽골이라는 국가명은 물론 민족명 몽골에서 유래했는데 '용감한'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몽골이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로, 실위 부족 중 하나인 몽올(蒙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이때는 아무르 강 상류(아르군 강 하반)의 초원 지대에 있었던 군소부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북송 시절부터 강성해지며 이 때부터 중국에서는 몽고(蒙古)란 명칭으로 불렀다. 몽골이 가장 잘나갔던 원나라 시절 공식 문서에도 몽골을 한문으로 표기할 일이 있으면 중국인만 아니라 몽골인도 '몽고'라는 표기를 썼으며 오늘날 중국에서도 몽골을 이렇게 표기한다. 그러나 '몽(蒙)' 자가 어리석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고(古)' 자도 낡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이 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단순한 음차에 불과하지만[3] 중국에서 오랑캐니까 일부러 안 좋은 뜻의 글자를 썼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몽고라고 해왔지만 1991년에 외래어 심의를 통해 '몽골'도 표준으로 올렸으며 이후 현대의 몽골(나라이든 민족이든)을 대부분 '몽골'로 표기한다. 하지만 예전부터 워낙 몽고라고 많이 써 왔기 때문에 몽골 제국, 몽고 반점 등 역사적 의미로서의 '몽골'은 지금도 몽고라고 많이 표기하는데, '몽고'에 비하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차츰 역사적 의미로도 몽골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일례로 2007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이전까지 몽고 제국이라 표현했던 것을 몽골 제국으로 수정했다.
2.2. 국기
2.3. 국가
3. 자연
3.1.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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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가 꽤나 크다. 세계 17위이며 한반도의 7배가 넘고,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 다만 하필 인접 국가가 땅덩어리 크다고 소문난 중국과 러시아인지라 크기에 비해 체감이 작다.
내륙국이다. 바다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띤다. 또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지형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다. 서쪽 끝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과의 접경지역에 매우 높은 알타이 산맥이 존재하며, 중부에는 비교적 낮은 항가이 산맥이 존재한다. 그보다 더 동쪽엔 항가이 산맥보다 낮은 헹티 산맥이 있다.참고 남동부는 낮고 평평하지만 거의 전 지역이 사막으로 덮여 있는데 그 유명한 고비 사막이다. 사막 외곽엔 초원이 있으며 북부 지역엔 시베리아 비슷한 타이가 숲지대도 있다.
큰 호수도 몇 개 존재하는데 서북부 옵스 호(Увс нуур) 는 염호로 제주도 2배 크기 정도이며 몽골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사람은 잘 안간다), 옵스 호보단 약간 작은 훕스굴 호(Хөвсгөл нуур)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1990년대 이래로 사막화로 고심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3.2. 기후
기후는 몽골 전 지역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건조하고 연교차가 극단적으로 크며 겨울이 추운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연교차가 커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건조해진다. 몽골 서부 올랑검은 1월(-32.1℃)과 7월(18.9℃) 평균 기온의 차이가 51℃에 이르며, 동부 처이발상도 1월(-20.5℃)과 7월(19.8℃) 기온 차이가 40℃에 달한다. 강수량은 다르항(357mm)이나 므릉(207mm) 등 북부 지방이 사잉샹드(111mm)나 달랑자드가드(126mm) 등 남부 지방보단 많은 편이다. 열대야는 없지만 일교차를 고려했을 경우 여름철 낮 최고기온은 한국과 별 차이 없거나 더 더울 수도 있다.
겨울엔 조드(ᠵᠤᠳ, зуд/Zud)라 하는 혹한이 찾아와 큰 피해를 준다. 조드가 일어날 때마다 가축이 죽는데, 1944년엔 700만 마리의 가축이 죽는 극심한 혹한이 있었고, 최근 2010년에도 서북부 옵스 지역에서 50일 동안이나 기온이 -55℃ 밑으로 떨어지는 등의 혹한으로 전국 가축의 17%인 20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역대 최저 기온은 앞에 말한 옵스 지역에서 기록된 -58℃라고. 이런 혹한과 눈보라 때문에 인명피해도 발생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몽골인들을 괴롭히던 자연재해로 이런 몽골 속담도 있을 정도다. '''"전사는 화살 한 발에 죽고 부자는 조드(зуд) 한 번에 망한다."''' 의미는 역시 자만하다 재수 없으면 한 방에 훅 가니 조심하라는 것.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다.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 1월 평균 최저 온도가 영하 27도라 한다. 이쯤 되면 그냥 대놓고 시베리아 수준인 걸 넘어서 이르쿠츠크나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남시베리아보다도 추운 수준이다. 실제로 나라 자체가 시베리아 남쪽에 바로 붙어 있고 수도도 시베리아에서 가깝다.
울란바토르는 파리와 비슷한 위도이지만 기온차는 울란바토르와 파리가 비슷한 위도인지 인식하기 힘들 정도다.[6]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빼면 거의 극지방까지 올라가도 이런 날씨 보기 힘들다. 참고로 스웨덴 키루나(북위 67도)의 겨울 평균 기온도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다. 사실 몽골의 추운 기후의 원인을 찾아보면 대륙 한가운데란 위치 외에도 해발고도가 높은 편인 것도 원인. 수도 울란바토르도 해발 1,350m의 고지대이다.
훕스굴 주 터성쳉겔(Тосонцэнгэл)이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압이 기록되기도 했다. 1,085.6hPa.
3.3. 생물
고생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땅만 파면 공룡 화석이 나오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프로토케라톱스나 오비랍토르, 벨로키랍토르, 피나코사우루스, 사우로르니토이데스, 사이카니아, 타르키아, 테리지노사우루스, 타르보사우루스, 사우롤로푸스, 갈리미무스, 모노니쿠스 같은 공룡들이 몽골 고비사막에서 발견, 보고되었다.
게다가 몽골의 몇몇 지층은 백악기 때부터 사막이어서 간단한 손도구만으로도 지층이 쉽게 제거된다. 대신 그 유명한 타르보사우루스가 산출된 백악기 지층인 네메그토 지층은 예외적으로 사막 지층이 아니라 범람원 지층이었다.
공룡 이외에도 히아에노돈이나 엔텔로돈, 곰포테리움, 파라케라테리움 같은 흐산다골 지층의 신생대 포유류의 화석도 꽤 유명한 편이다. 또한 몽골의 동물 화석들은 갓 죽은 동물 뼈처럼 하얀색을 띠고 있어서 이들의 유해가 그리폰과 같은 중앙아시아 신화 속 환상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몽골에 서식하는 포유류는 대륙에 중심으로 사는 종이며 마못이나 땅다람쥐 등 설치류와 토끼가 많다. 초원에는 몽골가젤이나 사이가 영양 등 우제류가 있으며 몽골야생마와 야생 당나귀도 서식한다. 털이 길고 혹이 두 개인 쌍봉낙타도 많이 사는데, 중동의 단봉낙타가 야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이 키우는 개체만 남은 것과 달리 쌍봉낙타는 야생에도 존재한다.[7] 맹수로는 주로 늑대가 많은데 약 1만 마리 수준이다. 그 밖에 눈표범이나 불곰, 여우도 존재한다.
조류로는 검독수리, 독수리 등의 맹금류는 물론 우리나라나 인도 등지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이 번식을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4. 행정구역
5. 역사
몽골 제국의 역사를 제외하면 부족들 간 대립의 역사였다.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후 복드 칸을 옹립했고,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몽골에 들어와 남은 중국 세력을 몰아냈으며 이 운게른을 격퇴한 담딘 수흐바타르의 지도하에 독립 및 공산화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식민지급 간섭기를 거치고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여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 비롯한 친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지배가 한동안 계속된 뒤 자체적으로 민주화되었다.
6. 정치
7. 군사
8. 경제
9. 사회
휴대 전화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초원과 사막이 중심인 국토 지형과 소수지만 존재하는 유목민들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닐 듯. 대신 공업기술과 생산력이 부족해서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그 넓은 국토 전역에서 최소 전화는 다 터진다. 초원 한가운데에서도 3G/최소 2G는 터지는편. 몽골에서 몽골어는 키릴 문자로 표기하지만[8] 불편하다 보니 핸드폰으로 문자나 페이스북 등을 이용할 때는 그냥 로마자로 쓴다. 유목민의 경우 발전기나 무전기를 이따끔식 사용하곤 한다. 장거리 운전시에도 차량간 연락을 무전기로 한다. 사실 인구밀도도 낮은데, 통신마저 끊긴다면 당연히 바로 고립될 수 밖에 없으니 통신에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긴 하다.
유목민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말을 타기 때문에 말을 잘 모는 편이다. 어린이들도 등자나 안장없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는 편. (어디까지나 유목민 한정) 그러나 이들도 좀 되는 거리를 이동할땐 차량과 오토바이 타고다닌다. 트럭에 게르 해체한것과 말들을 싣고 다니는게 압권.
몽골은 비엔나 협약국으로 비엔나 협약국에서 발급되는 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하다. 한국인은 90일 이하의 단기 여행 비자로 몽골을 방문할 경우, 주 몽골 한국대사관에서 수수료 4달러를 내고 공증을 받으면 된다. 공증은 바로 발급되며, 이것만 있으면 운전기사나 가이드가 없어도 렌트카 및 자가용 운전이 가능하다. 장기비자인 경우에는 2015년부터 법이 바뀌어 몽골 면허를 취득해야만 한다. 물론 시험은 몽골어(...)로 본다.
휴일의 개수가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몽골에 휴일이 없는 달은 4월, 5월, 8월, 9월, 10월로 다섯 개나 되며 2월은 해에 따라 다르다. 대체휴일제는 없다.
9.1. 언어
몽골어가 공용어이다. 몽골 서부의 카자흐족들은 카자흐어만 사용하며, 몽골어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족은 자신들을 몽골인이라고 칭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대다수가 사용하며, 몽골어는 문법이나 발음을 틀리는 경우가 꽤 된다고 한다.
옛날엔 구 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다. 몽골어가 키릴 문자를 쓰고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국가가 된 점도 크다. 그러다 소련 붕괴 이후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등 주요국가의 언어도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2007년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러시아어도 학교에선 필수 외국어로 지정되었다.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다 온 사람이 많고 유학생들도 많으며[9] 몽골 자체가 1990년대 후반 이래로 한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이 많다. 애초에 영어 통역보다 한국어 통역을 구하기가 더 쉽다.
9.2. 인구
세계적으로 땅은 넓은데 인구가 너무 적은 경우로 언급된다. 대한민국 면적의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인구가 32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부산광역시와 비슷한 인구다.[10] 320만 인구조차 그나마 이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2009년의 몽골의 인구 밀도를 대한민국에 적용하자면, 남한 땅 전체에 인구가 16~17만 정도로 환산한 것과 동일한 밀도이다. 1 제곱킬로미터당 1.7명이란 인구 밀도로 인해 독립 국가로서는 세계 최고로 밀도가 낮은 지역에 속한다.[11] (국가별 인구 밀도 순위 문서 참고) 참고로 몽골의 가축의 수는 도합 7천 5백만 마리가 넘는다. 그리고 몽골내에서 사는 몽골인보다 내몽골(중국 자치구)에서 사는 몽골인(중국 국적)이 훨씬 많다. 내몽골에 사는 몽골인은 500만명을 넘는 정도.
그래도 출산율이 2명대 중반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보니 인구 증가율 자체는 상당한 편이고 고령화 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게 위안. 2015년 1월에는 300만 명을 드디어 돌파했다. 전체 인구수는 매우 적지만,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21세기 후반에는 4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최고 전성기인 몽골 제국 시절에도 몽골인 인구는 굉장히 적었는데, 원나라 시절 몽골인은 지배계급이면서도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다. 덕분에 한족의 반란을 우려해서 부엌칼도 10가구당 한 자루만 허락하는 등 가혹한 억압을 시행해야 했다.
출산율을 감안하면 앞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지만, 오늘날의 몽골 지방은 한랭 건조한 기후에 영토도 초원과 사막이 대부분이고 큰 하천이 없어 농경에 불리한 지리적 조건 탓에 인구 부양 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영토가 아직도 남아돌지만, 주력 산업인 목축업 자체가 원래 광대한 방목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 밀도를 넘어서면 다른 나라보다 한계점이 일찍 찾아올지도 모르는 환경이다.
몽골인 중에는 몽골족이 주류지만 서쪽엔 카자흐족이 많이 산다. 몽골 서부 바잉을기 아이막의 경우 주민의 90% 이상이 카자흐족이다. 그 외에도 투바인, 어웡키족, 러시아인, 중국인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 굉장히 심각하다. 수도 인구가 전 인구의 2분의 1이다. 최대도시 울란바토르는 인구가 150만명에 가까운데, 제2도시 에르데네트의 인구는 고작 10만 명. 나머지 지방도시들은 1, 2만 명이면 큰 도시에 속한다. 한국이었다면 울란바토르는 광역시 정도 인구는 되는 정도로, 한국에 있었어도 대도시 중 하나 정도는 되겠지만, 제2도시 에르데네트의 10만 명은 한국에서는 간신히 시 취급 받을 수 있는 수준. 게다가 몽골의 모든 기간시설이 울란바토르에 집중되어 있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보니 백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감당하기에는 여러 모로 굉장히 버겁다.[12]
9.3. 교육
소련이 존재하던 시기에 몽골에서는 소련의 막대한 지원에 따라 국토 전역에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몽골 특유의 유목생활로 인해 취학률은 70%를 넘지 못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초등학교에 기숙사를 설치해서 학생들을 취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등교육은 거점(각 주에 2~4개교)에 설치하여 기숙학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통해 입학생을 받는다.
몽골의 대학들은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만 있으며, 전부 국립대학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소재한 대학에는 1942년 소련 당국에 의해 설립된 국립종합대학(National University)이 있다. 의학부, 수리과학부, 인문학부, 어문학부, 외국어문학부, 경제학부, 외무학부, 경영학부, 법학부, 사회학부, 언론정보학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외국어문학부에 한국어학과가 설치되어 있고 의학부 부설 병원이 설치되어 있다.
1925년 몽골 공산정부 수립 직후 설립된 중앙사범대학(Central Education College)도 있다. 이외에도 90년대 초반 몽골 교육부의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국립과학기술대학(National College of Science and Technology)은 1950년에 별도로 설립된 과학기술대학이 있었지만, 대학 다양화 정책에 따라 국립종합대학의 이공학부를 떼어 내어 기존의 과학기술대학과 통폐합하였다.
그 밖에도 국립농경대학(National Agriculture College), 국립보건대학(Health Science University) 등이 있다. 이 국립보건대학은 국립종합대학 내의 의학부와는 별개의 학교로 기존의 한 곳이던 의료 인력 양성 기관을 다양화 하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다. 국립종합대학의 의학부는 말 그대로 의사만을 양성하지만, 이 곳에서는 간호인력과 의료행정 인력도 함께 양성한다.
이들 대학의 입시에서 특이한 점은 중앙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학교 격인 국립종합대학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국가 공무원으로의 취직이 보장된 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이 그 나라의 수위(首位)대학의 입시 성적을 압도하는 현상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 케냐, 미얀마 등과 같이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으로 ,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고 사회적으로 직업이 다양하지 않은 국가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그 학력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자로 전락하는 상황의 하나다. 동아시아권에 대학 시스템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양산되는 고학력실업자(룸펜)와 마찬가지. 이러한 현상에는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도 일정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몽골 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교사가 수십 년간 1위를 독점해 오고 있다.
그래서 몽골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중등학교 졸업자들은 직장을 구하거나 사범대학에 지원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9.4. 교통
10. 관광
11.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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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몽골 하면 떠오르는 초원과 전통 가옥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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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과는 대조적인 울란바토르 시의 모습들. 참고로 위의 2번째의 사진(가장 큰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곡선을 띤 파란 건물은 몽골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이름은 블루 스카이로, 한국에서는 초고층이라고 하기 힘든 105m 높이.
12. 대외 관계
13. 이외 주요 몽골계 민족 거주 지역
13.1.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
내(內) 자는 중국 입장에서 중국 안쪽의 몽골이므로 '''내몽골''' 혹은 ''중국령 몽골'', ''남몽골''이라고 일컫는다. 중국 입장에서 이 지역과 대비해서 1번 문서의 독립국 몽골을 말할 때는 바깥 외(外) 자를 써서 '''외몽골''' 혹은 '''외몽고''' 혹은 ''북몽골''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몽골국"이라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오늘날에 "몽골인"이란 단어는 주로 독립국인 몽골국의 국민을 뜻하며, 내몽골인은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몽골족" 또는 "내몽골인"으로 구분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몽골인은 국적상 중국인으로 구분된다.
이 지역 때문에 몽골도 분단국가로 보기도 하는데, 가능성을 떠나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유목민족은 부족이 다르면 남남이나 마찬가지라 애초에 내외몽골인들끼리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따로 논 기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좀 애매하다. 외몽골은 할하 몽골 및 오이라트인이 주로 살아왔고 내몽골자치구에는 칭기즈 칸의 진짜 후손인 보르지긴 혈통이 다스린 차하르부가 자리잡아 왔으며 이 차하르부가 원나라의 옥새를 가졌었다가 후금의 칸에게 넘겨 주었다. 할하, 차하르라는 부족 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청나라 때 차하르는 빨리 복속되었고 외몽골의 민족들은 끝까지 항전하였는데, 청나라는 당연히 내몽골의 차하르를 밀어주고 외몽골을 핍박하여 차하르는 다시금 내몽골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자랑하게 된다. 그리고 차하르 몽골인들은 자연스럽게 청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외몽골 부족들을 탄압하기도 했다. 사실 외몽골인의 다수는 할하 부족 출신이거나 그에 지배받던 몽골인인데 이들은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인은 물론 부랴티아의 부랴트 인 그리고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우즈베크족, 위구르 족, 타타르 족 등과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일단 몇몇 부족은 이슬람교를 믿고 터키어계의 언어를 써서 몽골인과는 이질적이고 역시 감정이 서로 안 좋아 서로 차별한다.[13] 만주족과 비슷한 에벤키인들도 미개인 취급을 당하는 중이다.
'''외몽골 인구보다 내몽골 인구가 더 많고 심지어 몽골족 인구도 외몽골보다 내몽골이 더 많다. 그럼에도 그 내몽골에는 한족 인구가 훨씬 더 많다.''' 외몽골은 전세계에서 인구 최저밀도 국가인데 내몽골은 나름 그 세계 최대 인구 깡패로 유명한 중국의 성급 행정구역이니까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셈. 한국으로 치자면 한반도의 남북한보다 중국 조선족 자치구 조선족의 인구가 더 많은데 그 조선족의 인구보다 한족이 훨씬 더 많은 꼴이다.[14][15] 거기다 외몽골인과 내몽골인의 사이는 영 좋지 않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차하르 몽골족은 스스로는 몽골인인 동시에 중국인으로 인식하며 부족부터가 내몽골과 외몽골은 다르다. 물론, 자기 자신을 중국인으로 인식하는 것과 친중과는 다르다. 또한 차하르 몽골족에서도 역사적으로 몽골족 통합을 시도하려고 했던 인물이 근대에도 있었다! 비록 일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지만 데므치그돈로브는 몽골민족 통합의 꿈을 위해 일본에 협력했던 것이며, 내, 외몽골과 나아가 소련령 부랴티아까지 통합하겠다고 했었다. 부족적 차이로 내, 외몽골이 적대하고 있는 것이지 자신이 몽골족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내몽골 독립 시에 과연 외몽골과 합체를 할 것인가는 속단하기 어렵다. 의외로 꽤 오래 전부터 내몽골과 외몽골은 독립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 더구나 몽골 역시 공산당이 집권할 때 귀족들을 잡아죽인 역사가 있어 내몽골 귀족 후예들부터가 외몽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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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내몽골의 몽골족이 외몽골의 몽골족과 대립하고 있는 사실이랑은 별개로 내몽골의 몽골족들도 한족들과 사이는 영 좋지 않으며 엄연히 한족과는 다른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
중국의 내몽골은 내몽골자치구이며 내몽골인들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주고 있는 편이다.
내몽골 외에도 랴오닝 성과 허베이 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중국 북부 지역 곳곳에 몽골족 자치 지역이 존재한다.
13.2. 러시아의 부랴티아
러시아의 부랴티아도 러시아령 몽골 내지는 부랴트 몽골, 동북 몽골이라고 불린다. 부랴티아인들은 몽골인의 일파로 칭기즈 칸 당시부터 존재했으며 이들의 언어인 부랴트 몽골어는 몽골어의 방언에 속한다. 외몽골의 할하 몽골어 및 오이라트 몽골어, 내몽골의 차하르 몽골어와는 방언 정도의 약간의 차이가 있다(발음 및 억양 등). 많은 사람들이 깜빡하는데 부랴티아도 엄연히 "몽골"에 속한다! 즉 몽골은 독립국 외몽골, 중국령 몽골인 내몽골, 러시아령 몽골인 부랴트의 3개가 있는 셈. 부족 간의 구분이 그대로 굳어졌다고 보면 된다.
단 외몽골의 몽골인들은 이 부랴트인을 아주 싫어해 자국 내 부랴트인들에게 엄청난 차별을 가한다. 그래도 동족은 동족이라 그런지 교류는 꽤 많은 편으로, 부랴티야의 중심도시 울란우데에서는 몽골과 오가는 철도와 버스가 하루에도 수 편씩 다닌다. 또한 이르쿠츠크나 치타에서도 부랴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13.3. 러시아의 칼미키야
뜬금없게도 러시아의 유럽 지역에도 몽골계 민족인 칼미크인들이 거주하는 칼미키야 공화국이 있다. 러시아의 칼미크인들도 몽골 계통의 민족으로 러시아의 유럽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불교 위주의 지역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에는 몽골의 지원으로 불교 사원이 지어지는 등 몽골도 칼미크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13.4. 러시아의 투바
여태껏 수세기 동안 외몽골의 일부로 여겨지고 현 몽골지역과 역사를 함께했지만 1912년 신해혁명중에 러시아 제국이 투바를 합병하면서 결별하고 러시아 내전중에도 되찾지 못하여 투바는 미승인국이였던 독립국 투바 인민 공화국과 러시아 합병 이후 투바 자치령, 투바 ASSR 그리고 현 투바 공화국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위에 소개된 부랴트나 내몽골의 몽골인들보다는 비교적으로 사이가 좋다곤 하지만 합쳐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0에 가깝다. 무엇보다 애초에 투바어 자체가 몽골어족이 아니라 튀르크어족이기 때문에 언어학적으로는 몽골 문화권이 아니라 튀르크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곳이다.[17]
14. 창작물에서
-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서 몽골의 여행기를 다루었다.
- 문명 5에서는 공짜 DLC로 나온다. 문명 5/등장 문명/몽골 참조. 특성은 도시국가 공격 시 보너스. AI가 상당히 호전적이다. 문명 6에서는 흥망성쇠 확장팩으로 나온다.
- 2007년에 몽골이라는 제목의 러시아 영화가 개봉했다.
- 레인저스에 등장하는 세력인 테무자이의 모티브다.
- Warhammer 40,000에서는 스페이스 마린의 챕터 중 하나인 화이트 스카와 임페리얼 가드의 연대인 아틸란 러프 라이더의 모티브다.
- 마기에 등장하는 민족인 황아 일족의 모티브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칼림도어에 사는 종족중 켄타우로스의 모티브다.
- 파이널 판타지 14의 플레이어블 종족인 아우라 젤라의 모티브다.
-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의 주인공 세력이다.
-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는 프로빈스가 꽤 넓은쪽에 속하는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주가 달랑 1개밖에 되지 않는다.
- 김선영의 장편소설 《열흘간의 낯선바람》에서 주인공은 몽골로 떠나게 된다.
- 몽골의 공포게임인 Fragile이 몽골 도시에서 일어나는 아동 유괴사건을 다룬다.
[결함있는민주주의] 6.48점[1] 몽골국의 경우 몽골족의 절대다수가 할하 몽골인이다.[2] 불교 대부분은 티베트 불교이다.[3] 원래 음차는 웬만하면 좋은 뜻의 한자를 사용한다. 미국도 아름다울 미(美)를 쓰고 영국도 꽃부리 영(英)을 쓰지 않는가? 특히 현대 중화권에서는 마케팅 측면에서 브랜드를 음차할 때 한자로 풀면 좋은 뜻이 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콜라를 가능할 가(可)에 즐거울 락(樂)으로 쓴다거나 하는 것이 그 예이다.[4] 당시의 정식 국기는 위의 프릴이 달려있는 인민 공화국 수립 초기의 국기다.[5] 비공식적인 깃발이었기 때문에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한 국기(아래)에는 이 요소가 채택되지 않았다.
[image][6] 기온의 경우 위도뿐만이 아니라 격해도나 해류, 해발고도 등 다양한 기후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온차가 위도와 상관 없는 경우는 많다.[7] 그러나 그마저도 개체수가 1천 마리가 채 안된다.[8] 허나 2020년에 2025년까지 몽골 문자로 완전히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였다.[9] 특히 몽골인 유학생이 타 국적 유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경우,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베트남인 유학생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외모도 한국인과 유사하여 한국인 학생들조차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 몽골인 유학생을 한국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부지기수.[10] 여담으로 아주 넓은 땅에 인구가 적은 몽골도 있는데 이스라엘이 인구가 적지만 시나이 반도를 가지지 못 할 이유가 있느냐라면서 1970년대 말에 이스라엘 극우들이나 하레디들이 몽골을 예로 들며 중동전쟁에서 이집트로부터 강탈한 시나이 반도를 유지하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예를 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1981년에 이집트에게 반환했다.[11] 몽골보다 더한 경우로는 포클랜드 제도, 그린란드를 들 수 있으나, 포클랜드의 경우 영국의 속령이고 그린란드의 경우 덴마크의 자치령이라 독립국이 아니다. 참고로 2위는 나미브 사막을 끼고 있는 나미비아.[12] 시내에는 도시로써 필요한건 전부 갖추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게르촌이다. 어느정도 냐면 울란바토르 내 에 게르촌이 있을정도. 시내 게르촌은 어느정도 공급이 되지만, 외부는 수도, 배관, 난방시설도 없어서, 물을 길어쓰고 추우면 난로에 타이어라도 때서 쓴다. 덕분에 겨울에 매연이 엄청나다.[13] 물론 할하 몽골인들이 주류라 당하는 쪽이다. [14] 연변의 조선족 인구는 70만명 정도로, 한반도의 100분의 1도 안 된다.[15] 거기다가 내몽골은 성급 행정구역인데 연변은 그보다 1단계 낮은 지급 행정구역이기도 하니 어찌 보면 연변에 더 적은건 당연한셈. 조금 더 비슷하게 대입하면 연변이 아니라 그 상위 행정구역인 길림성 전역에 조선족들이 몰려 사는 경우가 되겠다.[16] 외몽골에도 귀족들의 성씨가 있으나 이것은 몽골인들이 성씨를 복구시킬 때 몽골인들이 보르지긴처럼 귀족들 성씨를 많이 선택해서 그렇다.[17] 유럽으로 치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오랫동안 한 나라였고 현재까지도 양국의 문화가 매우 비슷하지만 두 나라가 다시 합쳐질 가능성이 0%인 것과 같다. 물론 폴란드어와 리투아니아어의 관계는 몽골어와 투바어의 관계보다 더 가깝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image][6] 기온의 경우 위도뿐만이 아니라 격해도나 해류, 해발고도 등 다양한 기후 요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온차가 위도와 상관 없는 경우는 많다.[7] 그러나 그마저도 개체수가 1천 마리가 채 안된다.[8] 허나 2020년에 2025년까지 몽골 문자로 완전히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였다.[9] 특히 몽골인 유학생이 타 국적 유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경우,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베트남인 유학생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외모도 한국인과 유사하여 한국인 학생들조차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 몽골인 유학생을 한국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부지기수.[10] 여담으로 아주 넓은 땅에 인구가 적은 몽골도 있는데 이스라엘이 인구가 적지만 시나이 반도를 가지지 못 할 이유가 있느냐라면서 1970년대 말에 이스라엘 극우들이나 하레디들이 몽골을 예로 들며 중동전쟁에서 이집트로부터 강탈한 시나이 반도를 유지하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예를 들며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1981년에 이집트에게 반환했다.[11] 몽골보다 더한 경우로는 포클랜드 제도, 그린란드를 들 수 있으나, 포클랜드의 경우 영국의 속령이고 그린란드의 경우 덴마크의 자치령이라 독립국이 아니다. 참고로 2위는 나미브 사막을 끼고 있는 나미비아.[12] 시내에는 도시로써 필요한건 전부 갖추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게르촌이다. 어느정도 냐면 울란바토르 내 에 게르촌이 있을정도. 시내 게르촌은 어느정도 공급이 되지만, 외부는 수도, 배관, 난방시설도 없어서, 물을 길어쓰고 추우면 난로에 타이어라도 때서 쓴다. 덕분에 겨울에 매연이 엄청나다.[13] 물론 할하 몽골인들이 주류라 당하는 쪽이다. [14] 연변의 조선족 인구는 70만명 정도로, 한반도의 100분의 1도 안 된다.[15] 거기다가 내몽골은 성급 행정구역인데 연변은 그보다 1단계 낮은 지급 행정구역이기도 하니 어찌 보면 연변에 더 적은건 당연한셈. 조금 더 비슷하게 대입하면 연변이 아니라 그 상위 행정구역인 길림성 전역에 조선족들이 몰려 사는 경우가 되겠다.[16] 외몽골에도 귀족들의 성씨가 있으나 이것은 몽골인들이 성씨를 복구시킬 때 몽골인들이 보르지긴처럼 귀족들 성씨를 많이 선택해서 그렇다.[17] 유럽으로 치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오랫동안 한 나라였고 현재까지도 양국의 문화가 매우 비슷하지만 두 나라가 다시 합쳐질 가능성이 0%인 것과 같다. 물론 폴란드어와 리투아니아어의 관계는 몽골어와 투바어의 관계보다 더 가깝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