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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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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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Jack Dempsey 1895.06.24~1983.05.31 본명은 윌리엄 해리슨 뎀시William Harrison Dempsey. 성인 Dempsey의 철자 중 p는 거의 묵음
1919 ~ 1926 년도 권투 헤비급 세계챔피언
총 전적은 62승 8무 7패 6무효
1920년대에 활약했던 선수. 기량도 기량이지만 당시 매스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잘생긴 외모와 체격 덕에 미 전역의 스타가 되었다. 엄청난 인기 덕에 영화계에도 진출했고 숱한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공백 기간과 더불어 현대 복싱의 발전과 함께 도태된 선수가 되었고 복귀했을땐 이미 퇴물이 된 채로 은퇴하였다.
한국엔 더 화이팅 때문에 뎀프시롤의 원조로나 알려진 선수지만 아니다. 1920년대는 복싱의 태동기였고 기술체계도 거의 없었고 당연히 체중 이동이나 잽, 스트레이트 같은 현대엔 당연시 되는 테크닉도 없었다. 경기내용은 주먹을 휘둘러대고 맞으면 맞는데로 버티는 술집 싸움에 가까웠다(...). 통합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 대부분 지역 내에서 맞붙었고 심지어는 서커스 공연의 일부로 행해지기도 했다.
유튜브에 1920년대 당시(!) 경기 동영상이 올라와 있어서 확인도 가능하다. 뎀프시는 위빙과 좌우 훅을 구사하였는데, 현대 복싱 기준으로는 기본기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간 테크닉이었다. 참고로 유튜브에조차 연관 검색어로 뎀프시 롤이 뜬다.
무엇보다 뎀프시가 저평가 되는 이유는 복싱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반칙을 다 저질렀다는 점. 현역 당시에도 퀸즈베리 룰을 지키지 않고 래빗 펀치를 비로한 온갖 반칙성 펀치를 자주 휘둘러 문제가 되기도 했고, 석고 밴디지를 썼다는 루머까지 있다.[1] 백인에 인기스타라는 후광이 없었다면 진작에 매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인기는 엄청나 1920년대 당시 이미 대전료가 무려 100만 달러에 육박했다. 영화 대부에도 뎀프시의 경기 포스터가 배경에 등장할 정도로 시대의 아이콘.
미국에선 백인 올드 복서 광빠들이 추종하는 복서 중 한명으로 한국이든 미국이든 잭 뎀프시 이야기를 하며 복싱 지식을 자랑하는 인간이 있다면 현대 복싱은 안 보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1983년에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복서 자체가 원체 잔부상에 많이 시달릴뿐더러, 체계적인 룰도 거의 잡혀 있지 않던 시기에 거친 경기를 많이 치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장수한 셈.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1년 정신병자 존 힝클리 주니어의 총에 맞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아내 낸시 레이건에게 "여보, 피하는 것을 까먹었어(Honey, I forgot to duck)."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이 말은 뎀프시가 1926년 진 터니에게 패한 후 자신의 아내에게 한 유명한 유머를 적절하게 리바이벌한 것.
아일랜드계 미국인 복서이던 진 터니와 잭 뎀시의 대결은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라고 할 만했다. 이 경기는 당시 갓 황금기를 누리던 신 미디어인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심지어 경기 중 진 타니가 잠시 다운되었을 때, 미국 전역에서 이 경기중계를 듣던 청취자 중 5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정도.(...) 참고로 이 경기는 잭 뎀프시가 1919년 제시 윌러드로부터 헤비급 타이틀을 빼앗아 온 이후 최초의 패배였다.[2]
조지 벨로스(George Wesley Bellows)라는 화가의 대표작으로 Dempsey and Firpo(뎀시와 퍼포)라는 그림이 있다. 경기 자체는 뎀시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림에 묘사된 것은 뎀시가 퍼포(Luis Ángel Firpo)에게 다운당하는 장면이다.
리즈시절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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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1. 개요
Jack Dempsey 1895.06.24~1983.05.31 본명은 윌리엄 해리슨 뎀시William Harrison Dempsey. 성인 Dempsey의 철자 중 p는 거의 묵음
1919 ~ 1926 년도 권투 헤비급 세계챔피언
총 전적은 62승 8무 7패 6무효
2. 생애
1920년대에 활약했던 선수. 기량도 기량이지만 당시 매스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잘생긴 외모와 체격 덕에 미 전역의 스타가 되었다. 엄청난 인기 덕에 영화계에도 진출했고 숱한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공백 기간과 더불어 현대 복싱의 발전과 함께 도태된 선수가 되었고 복귀했을땐 이미 퇴물이 된 채로 은퇴하였다.
한국엔 더 화이팅 때문에 뎀프시롤의 원조로나 알려진 선수지만 아니다. 1920년대는 복싱의 태동기였고 기술체계도 거의 없었고 당연히 체중 이동이나 잽, 스트레이트 같은 현대엔 당연시 되는 테크닉도 없었다. 경기내용은 주먹을 휘둘러대고 맞으면 맞는데로 버티는 술집 싸움에 가까웠다(...). 통합 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 대부분 지역 내에서 맞붙었고 심지어는 서커스 공연의 일부로 행해지기도 했다.
유튜브에 1920년대 당시(!) 경기 동영상이 올라와 있어서 확인도 가능하다. 뎀프시는 위빙과 좌우 훅을 구사하였는데, 현대 복싱 기준으로는 기본기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간 테크닉이었다. 참고로 유튜브에조차 연관 검색어로 뎀프시 롤이 뜬다.
무엇보다 뎀프시가 저평가 되는 이유는 복싱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반칙을 다 저질렀다는 점. 현역 당시에도 퀸즈베리 룰을 지키지 않고 래빗 펀치를 비로한 온갖 반칙성 펀치를 자주 휘둘러 문제가 되기도 했고, 석고 밴디지를 썼다는 루머까지 있다.[1] 백인에 인기스타라는 후광이 없었다면 진작에 매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인기는 엄청나 1920년대 당시 이미 대전료가 무려 100만 달러에 육박했다. 영화 대부에도 뎀프시의 경기 포스터가 배경에 등장할 정도로 시대의 아이콘.
미국에선 백인 올드 복서 광빠들이 추종하는 복서 중 한명으로 한국이든 미국이든 잭 뎀프시 이야기를 하며 복싱 지식을 자랑하는 인간이 있다면 현대 복싱은 안 보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1983년에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복서 자체가 원체 잔부상에 많이 시달릴뿐더러, 체계적인 룰도 거의 잡혀 있지 않던 시기에 거친 경기를 많이 치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장수한 셈.
3. 여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1년 정신병자 존 힝클리 주니어의 총에 맞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아내 낸시 레이건에게 "여보, 피하는 것을 까먹었어(Honey, I forgot to duck)."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이 말은 뎀프시가 1926년 진 터니에게 패한 후 자신의 아내에게 한 유명한 유머를 적절하게 리바이벌한 것.
아일랜드계 미국인 복서이던 진 터니와 잭 뎀시의 대결은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라고 할 만했다. 이 경기는 당시 갓 황금기를 누리던 신 미디어인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심지어 경기 중 진 타니가 잠시 다운되었을 때, 미국 전역에서 이 경기중계를 듣던 청취자 중 5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정도.(...) 참고로 이 경기는 잭 뎀프시가 1919년 제시 윌러드로부터 헤비급 타이틀을 빼앗아 온 이후 최초의 패배였다.[2]
조지 벨로스(George Wesley Bellows)라는 화가의 대표작으로 Dempsey and Firpo(뎀시와 퍼포)라는 그림이 있다. 경기 자체는 뎀시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림에 묘사된 것은 뎀시가 퍼포(Luis Ángel Firpo)에게 다운당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