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1. 개요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紀全女子高等學校)는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2. 개교
1900년 4월 24일 전주기전중학교를 시작으로 1955년에 학교를 확장하여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3. 연혁
3.1. 전주기전여자중학교 연혁
- 1900. 04. 24 -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여학생 6명으로 전주여학교 시작
- 1909. 07. 29 - 교명을 젼목사긔렴녀즁학교(Junkin Memorial School for Girls)로 정함
- 1910. 10. 03 - 현재, 예수병원 자리에 서양식 2층 홍벽돌집을 지어서 이전
- 1919. 03. 13 - 전주 3.1운동 주도 및 참여
- 1930. 01. 24 - 광주학생항일운동 주도 및 참여
- 1937. 09. 23 - 신흥학교와 연합하여 기전여학교 폐교식 진행
- 1937. 10. 05 -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
- 1946. 11. 26 - 광복과 더불어, 4년제 학교인 전주기전여자중학교 인문과만 복교
- 1949. 03. 30 - 기전국민학교 복교
- 1951. 03. 30 - 기전여자고등기술학교 설립[1]
3.2.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연혁
- 1955. 04. 15 -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 설립 및 개교
- 1956. 05. 26 - 화산동 1가 187 에 교사 신축 이전
- 1962. 10. 04 -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으로 개편
- 2005. 03. 03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유연로 133로 신축 이전
- 2020. 05. 01 - 기전학교 운동장 소유권 변경 [2]
4. 교훈
교훈: 경천(敬天), 순결(純潔), 애인(愛人)
5. 교가
- 리메이크 준비 중
6. 학교 상징
교목: 히말라야시다
교화: 아카시아
7. 역사
1900년 미국 남장로교 최마태(Mattie Tate) 선교사가 여학생 6명을 교육하기 시작한 것이 학교의 모태이다.
1907년 9월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설립과 더불어 전주기전여자중학교로 개칭되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 등 반제국주의 및 민족주의적 교풍을 이어왔다.그 결과, 결국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일제가 학교를 폐교하려 하자 자진 폐교신청을 하고 동년 10월 5일 학교를 자진 폐교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중학교만을 다시 열었고, 이 후 학교를 확장시켜 전주기전여자고등학교를 개교시켰다. 본래 지금의 예수병원 자리에 위치하였으나 1956년 전주신흥고등학교 옆으로 이전하였으며 다시 2005년 전주 서부 신시가지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 졸업생
- 박은지(1988): 前 나인뮤지스 멤버.
- 박혜진[3] : 前 MBC 아나운서.
- 이은정: 대한민국 배우이다. 천추태후, 자이언트에 출연.
- 임영신: 초대 상공부 장관, 중앙대학교 설립자
- 조수진: 제21대 국회의원.
- 진미정 : 前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농구선수.
- 최명희: 소설 혼불의 작가
- : 前 판사, 변호사.
9. 기타
9.1. 학교위치
학교 위치가 3번 변했다. 1954년에는 홍벽돌집에서 개교식을 하여 학교를 운영하였으나, 반이 부족하여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공부 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었다. 당시 기전여자중고등학교 교장들은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1956년 5월 26일에 학교 건물을 세워 이 점을 보완하였다. 시간이 지나, 노후 건물이 되어 비가 새고 벽이 갈라지자, 기전대학과 땅을 맞바꾸어 2005년에 서부신시가지로 학교를 이전하였다. 2005년 서부 신시가지로 학교가 이전하면서 이러한 모습은 추억으로 사라졌다. 대신이전 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이는 기전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전주 서부 신시가지 전체의 문제였다. 10년 넘게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불편함은 많이 사라졌으나 여전히 학교를 바로 연결하는 대중교통 수단은 조금 부족한 편이다.
9.2. 학교 이전 문제
1999년부터 학교 이전이 논의 되었다. 2000년까지 학교 이전을 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전학교가 위치한 곳이 장소가 협소한데다 전주기전대학[4] , 전주기전중와 전주기전여고가 건물을 같이 썼으며, 건물 대부분이 중학교 건물이어서 공간이 부족했다. 시설을 개선하고 늘리고 싶어도 1974년에 전주기전대학이 설립이 되버려, 학교를 위로 높이 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기전학교가 이전 한 후의 일이지만 결국 전주기전대학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숙사를 전주천 건너에 지어야 했을 정도다. 이로 인해 기숙사에 사는 전주기전대학 학생들은 지금도 전주천을 건너서 등교해야 한다. 이 처럼 협소한 부지 탓에 문제가 심각해지자 기전학교를 서부신시가지로 옮기고, 기전대가 남아있는 부지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잡혔다.
구체적으로는 기전대학이 소유 하고 있는 서부신시가지 내 3만평의 땅과 기전여중·고가 중화산동에 당시 소유하고 있던 건물과 부지를 맞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전주기전여중·고는 전주기전대학과 맞바꾼 3만평의 땅에 정문 둘레길과 제2의 홍벽돌집을 건축하여, 전주 내에서 가장 좋고 넓으며 쾌적한 학교를 만드려고 하였다. 하지만, 전주기전대학 학장은 건물을 지어주겠다는 내용과 다르게 땅을 바꾸자 건물 건축비를 대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학교가 언제 이전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졌고, 이에 따라 학생들과 학부모의 혼란이 가중 되었는데 근린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갑자기 이전되면 통학거리가 늘어나서 문제였고 이전부지 쪽에 사는 학생들은 언제 이전할지 모르는데 계속 장거리 통학을 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주기전대학에서 빨리 학교를 비워주라고 독촉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나, 초기에 계약한 내용으로 인하여 건물 건축이 될 때까지 전주기전중고가 쓰기로 하였다.
학교가 전주기전대학으로 넘어가버려서 유지 보수마저 하지 못하여서 학교에 비가 새고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얼마 후, 교육청에서 의무교육인 중학교만 서둘러 이전하라고 압박을 하여서 결국 건축사인 새한건설과 기전학교 선생님들이 전주기전대학 앞에서 시위를 하였고, 대학 설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기전학교 선생님들이 운동장을 막아버리자 취소되었다.
얼마 후, 전주기전대학은 "사용하지 않는 땅인 2천 5백평을 팔고 건축하라"라는 형식으로 대답을 하였다. 결국, 2천 5백평을 팔아[5] 전주기전중학교만을 건축하여 2004년 우여곡절 끝에 기전중이 이전하였다. 총 3만평의 땅 중, 2만 2천 5백평을 내놓았으며, 기전여고 건축이 다시 진행되었다. 얼마 후, 2005년 전주기전여고가 이전한 후, 사태는 일단락 되었으나 당시 학교를 다니던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