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모주

 



[image]
'''正見母主像'''
<colbgcolor=#87CEEB> '''칭호'''
'''정견모주(正見母主)'''
'''별호'''
가야산신(伽倻山神) / 정견천왕(正見天王)
'''남편'''
이비가(夷毗訶) / 이비가지(夷毗訶支)
'''아들'''
뇌질주일(惱窒朱日), 뇌질청예(惱窒靑裔)
'''생몰연도'''
? ~ ?
가야지역에서 여신으로 숭배되던 인물.
조선시대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최치원의 저서 석리정전(釋利貞傳)을 인용한 부분에서 보인다.[1]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야의 산신(山神) 정견모주는 천신(天神) 이비가(夷毗訶)[2]와의 사이에서 뇌질주일(대가야이진아시)과 뇌질청예(금관가야수로왕)를 낳았다. 정견(正見)은 불가에서 말하는 팔정도 중 한 가지로, 대구화상, 허황후 남매 전설에서 보듯 가야 신화가 전반적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아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마을 뒷편에 가면 정견모주의 제단과 정견모주가 하늘신 이비가를 맞이할 때 탄 꽃가마가 변했다고 전해지는 가마바위[3]가 존재한다.
유독 한국의 여러 시조탄생신화 중에서도 산신이 중심이 된다는 점은 좀 특이한데, 대가야지산동 고분군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릉급 무덤들이 평지나 산능선자락 정도에 있는 것과 달리 산꼭대기 능선에 만들어졌던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런 점들에서 가야권에 다른 나라에는 없었던 특유의 산악신앙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해인사 입구에 들어 가다 보면 한국의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산신각을 볼 수 있는데 해인사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산신의 그림이 바로 정견모주이다. 이 그림도 원래는 남자로 그려져 있었는데 나중에 바뀐 것.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여성 산신의 신격이 남성으로 바뀌어 모셔지는 일이 허다했고, 정견모주 역시 정견천왕(正見天王)이라는 이름의 수염 덥수룩한 남자 산신으로 신격의 성별이 바뀌어 산신각에 모셔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1] 현재 최치원의 석리정전은 전해지지 않는다.[2] 이비가지 라고 적힌 사료, 번역서가 다수 있는데 여기서 지(支)는 현대 한국어 '님'에 해당하는 경칭으로 비정된다.[3] 상아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