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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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태봉은 1893년 5월 20일 전라도 동복현 읍내면 동정리(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칠정리 동정마을)에서 아버지 정기열과 어머니 밀양 손씨 사이의 세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했고, 1920년 10월 재무총장 이시영으로부터 군자금 모집 요청서를 전달받고 국내로 돌아와 대구에 사는 동지 김두환(金斗煥) 등 여러 명의 동지와 함께 군자금 모집방안에 관해 협의했다.
그 결과 1920년 11월 25일부터 1921년 2월까지 무기구입 자금으로 6만 8천원을 모금하기로 목표액을 정하고 동지들에게 각기 2백원씩 책임액을 배당하여 모금토록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군자금 모집의 취지문 수십통을 작성하여 지방의 부호들에게 배포하고 모금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도중에 발각되어 일경에 붙잡혔고, 1921년 10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 공갈 및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신간회 대구지회의 서무와 총무간사를 맡았다.
1928년 4월 하순, 그는 노차갑, 장택원(張澤遠), 문상직(文相直) 등 5명과 함께 달성공원(達城公園) 뒷산 송림에 모여 유사시 거사할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기로 합의, 'ㄱ당'을 창당했다. 이들이 조직의 명칭을 'ㄱ당'이라 한 것은 'ㄱ'이 한글의 처음 글자로 조선의 기원(起源)을 촉구하고자 붙인 것이었다.
이들의 활동 목표는 한국인의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고, 실력양성의 방법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만주에서 농경지를 매수하여 그곳에 농민을 이주시켜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은 적당한 인물을 발굴하여 중국 광둥성에 설치된 군사학교에 파견, 정규 과정을 이수케 함으로써 무력양성의 계획도 구상했다.
그런데 노차갑이 동지 곽동영(郭東英)과 함께 1928년 6월 11일 달성군의 부호인 김교식(金敎式)에게 잡지 발행의 명목으로 5천원의 자금을 요구하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조직이 발각되고 말았고, 이로 인해 그 역시 체포되었다.
1928년 12월 2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공갈 및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으나 곧 칙령 제10호에 의거 징역 2년 7월 11일형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화순군으로 귀환하여 조용히 지내다 1942년 8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태봉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