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라브리에

 


'''James LaBrie'''
왼쪽이 라브리에. 젊었을 때는 그래도 제법 샤프했다! [1]
[image]
로드러너로 들어가는 DT 9집 시점부터 수염을 길렀다.

1. 개요
2. 가창력
2.1. 솔로 활동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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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evin James LaBrie'''[2]
드림 시어터의 보컬리스트.
1집 'When dream and day unite' 를 녹음했던 보컬리스트 찰리 도미니시의 역량에 만족하지 못했던[3] 페트루치, 명, 무어, 포트노이가 보컬리스트 교체를 결심하자, 제임스는 그들의 앞으로 자신이 녹음한 <윈터 로즈> 앨범을 보내고 뉴욕으로 날아와 밴드에 합류한다. 밴드 내에서 유일한 캐나다인이며, 고학력자가 득실대는 밴드의 프론트맨인데 유일한 고졸이다. (밴드의 출발 자체가 버클리 음대 동문들이 합주하다가 만들었다. 후에 합류한 조단 루데스는 줄리아드 음대 출신. 마지막에 합류한 마이크 맨지니는 엉뚱하게도 컴공과를 졸업했는데, 음악인으로 성공하고 버클리에서 드럼을 가르친다)
본명은 "케빈 제임스 라브리에"이지만, 안 그래도 존 명존 페트루치, 두 명의 존이 있는데 케빈까지 두 명(케빈 무어)이 될 수는 없는지라, 활동명은 '제임스 라브리에'로 하기로 정한다.
전 드러머 였던 마이크 포트노이에 의하면, 한참 보컬리스트를 찾던 1991~1992년에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 직전에 그의 오디션 테이프가 도착했는데, 그의 기량에 매료 되었으며, 테이프에 동봉됐던 그의 사진을 보며 "노래 잘부르는데 인물도 훤칠한걸 보니 참 재수없는 친구겠다." 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뉴욕에 도착해서 직접 이야기 해보니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죽이 잘맞아 그자리에서 계약했다고 한다.

2. 가창력


전성기 시절에는 그야말로 예스존 앤더슨에 맞먹는 우주구 급의 보이스를 자랑했다. 두 말이 필요없고, Learning To Live 중반의 '''워어어- 워어어- 워어아아아-'''를 들어보라.7분 부터 보면된다.[4][5] 영상 말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오디션 당시의 녹음 자료가 있는데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없는 목소리를 자랑한다. 그리고 밴드 역사상 최고음을 자랑하는 3집의 Innocence Faded도 들어볼 만하다. 라이브 앨범인 Live at the Marquee에선 스튜디오 버전을 뛰어넘는[6] 전성기 시절 라브리에의 보컬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음역 자체의 리즈 시절은 드림 시어터 재적 당시보다는 오히려 1989년 발표한 윈터 로즈의 유일한 앨범에서 확 나타나는데, 라브리에의 당시 보컬을 '''득음의 경지'''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맑고 높은 음역만이 라브리에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다채로운 분위기 변화를 소화해내는 감정 표현력이 특히 인정 받았다. 곡의 테마와 소재, 심상이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맞춰가며 청자를 잡아끄는 라브리에의 보컬은 자칫 기교 넘치는 음악 탓에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일 수도 있을 드림 시어터의 음악에 대중성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허나, 이 탁월한 목소리는 1994년 그가 식중독에 걸리며 위기를 맞는다. 원래부터 라이브에서 피치 브레이크가 잦고 불안정하던 보컬이었는데 멕시코 음식을 잘못 먹고 계속 구토를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과다한 투어로 인해 갈라지던 목이 완전히 상해버린 것[7]. 일단 1년 만에 정상적으로 복귀해 콘서트까지 뛰었지만, 그뒤로 목소리가 적잖이 변하고 공연중 삑사리 횟수(...)도 늘었다.
Six Degree Of Inner Turbulence 앨범 발매 시기까지 가서야 어느 정도 목소리가 회복이 되는데, 이제 스튜디오 사운드에서는 괜찮지만 콘서트 삑사리가 엄청나게 늘어버렸다. 구토 사건 이후로는 7집 투어 때 즈음이 라브리에의 보컬이 가장 안정적이고 출력이 좋다고 평가받는다.[8] [9][10]
9집, 10집 들어서부터는 아무래도 나이 탓인지 애써 바꾼 창법에도 불구하고 예전 같지가 않다.
그런데 최근 Breaking The Fourth Wall 라이브를 보면 어려운 곡들을 굉장히 잘 소화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오 회춘.
그러나, 이후로 목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만 갔고 2017년 진행된 Images And Words 25주년 투어에서는 Pull Me Under부터 Learning to Live까지 모두 한 키 내려 공연했다. 나이와 체력을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었으나, 2019년부터 진행하는 Metropolis Pt.2의 20주년 투어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아래 영상을 보고 비교해보자.

'''2014년 Breaking the Fourth Wall 라이브 당시 Strange Deja Vu'''

'''2020년 1월, Metropolis Pt.2 20주년 공연 중의 Strange Deja Vu'''
2019년 발매한 스튜디오 앨범 Distance over Time에서는 대놓고 피치조절을 해야 할 정도였다. 2020년 11월 27일 발매되는 라이브앨범 Distant Memories에서 프로듀싱을 거친 결과물을 현장에서 팬이 녹화한 영상과 비교하면 할 말을 잃을 것이다...
숨쉴 틈 없이 일하던 밴드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정말 오랜만에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라브리에도 컨디션을 회복할 기회를 얻었다. 최근에는 cameo.com이라는 동영상공유 사이트를 통해 팬들이 요청한 곡을 짤막하게 불러주는 영상들을 공개하고 있다. 음정을 맞추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조금씩이나마 상태가 호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끔씩 무식한 인간들 중에 '''드림 시어터는 보컬이 검열삭제던데 보컬이 하는게 훨씬 나을듯 ㅎㅎ''', '''키넌이 신임 라브리에 껒여'''식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간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메이나드 제임스 키넌의 보컬 스타일과 제임스의 스타일부터가 다른데다가, 메이나드도 라이브에선 삑사리 제법 낸다.

2.1. 솔로 활동


1집 - Keep It to Yourself (1999)[11]
2집 - Mullmuzzler 2 (2001)
3집 - Elements of Persuasion (2005)
4집 - Static Impulse (2010)
5집 - Impermanent Resonance (2013)

3. 여담


  • 어렸을 때 교회의 성가대 단원이었다고 한다.
  • 최근 메탈코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어거스트 번즈 레드, 브링 미 더 호라이즌 등의 밴드에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링크 [12] 그의 솔로 앨범에도 메탈코어나 멜로딕 데스메탈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
  • 아들인 Chance Labrie는 밴드에서 드럼을 하고 있으며, 2020년 10월에 데뷔한다고 한다.
  • 마이크 포트노이의 밴드 탈퇴 후 가진 인터뷰에서 "포트노이가 떠났는데 슬프지 않나?"라는 질문에 "아니, 나 하나도 안 슬퍼. 그러고 싶지도 않고. 포트노이가 떠났어도 드림 시어터엔 네 명이 남아있음. 우리 창작욕 뻗침.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만 가득함. 님들도 기대하삼."이라는 경쾌한 반응을 보였고, 포트노이가 밴드 홈페이지에서 자기 페이지가 썩둑 잘려나간 것도 있고 해서 "거 되게 섭섭하다. 상처받았다."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라브리에는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라고 대응했고, 포트노이는 "나도 오해한 것 같긴 해. 그런데 왜 내가 보낸 멜 안 읽음? ㅜㅜ"라며 답답해했다... 이와 더불어 포럼에서는 "포트노이 당신 나갔으면 자꾸 찌질하게 매달리지 마라. 관심 끊어."라는 친DT파와 "야 그래도 DT 이름도 포트노이 아빠[13]가 지어준 거고, 포트노이한테는 DT의 의미가 남다른데 그렇게 안면몰수하면 그게 사람이냐?"라는 친MP파 식으로 싸움판이 벌어지고... 지금은 당사자들이 더 이상의 관련글을 쓰지 않고 멈춘 상태라서 직접적인 싸움판은 그쳐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벽은 점점 두터워지는 듯. 2020년에 공개된 인터뷰에 의하면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탈퇴 이후로 단 한번도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거나 연락을 한적이 없다고 한다.
  • 그 내성적이기로 유명한 존 명에게 공격(?)받은 인물. 존 명과 제임스가 몇백불이 걸린 내기를 했었고, 이에 명이 지자 순간 빡돌아서 명이 제임스에게 라이브 도중 어깨빵을 시전해버렸다.
[1] 오른쪽은 윈터 로즈의 리더이자 현재는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는 리차드 칙키. 참고로 칙키는 13번째 스튜디오 앨범 Dream theater에서 엔지니어로 참여하며 라브리에와 재회했다.[2] 실제 발음은 라브리에가 아니라 '라브리' 라고 발음한다. 참고로, brie는 브리 치즈와 같은 철자다(...)[3] 이 부분은 사실 명확하진 않다. 분명 인터뷰등에서 도미니시의 보컬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뛰어나지만 프로그래시브 밴드와 어울리지 않는다." 라던가 나이차에서 오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정도로 정리가 된다. 드림 씨어터의 다큐를 보면 심지어 도미니시가 인터뷰에 응해 꽤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밴드와 안 좋은 관계로 퇴출 된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랬다면 다큐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4] 여담이지만 이 부분에서 보컬 라브리에 뒤에서 카메라에 같이 잡힌 마이크 포트노이의 연주도 놀랍다. 라브리에를 보고 난 뒤에 포트노이의 쌩쇼를 보고 있으면 대체 저게 무슨 놈의 박자 쪼개기인지 신기해서 다시 돌려보게 된다.[5] 임팩트가 어찌나 컸는지 농담 삼아 팬들이 Learning to F#(퍄샵)이라는 드립을 친다. 반대로 F# 컨디션이 안 좋을 땐 F#를 눌러 조의를 표하십시오 드립이 나온다(...).[6] 모든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할 뿐 아니라 깔끔하게 올리는 앨범 버전과 다르게 파워까지 겸비했다. 특히 최절정은 5번 트랙인 Another Hand-The Killing Hand로 (라브리에가 참여하지 않은) 1집의 The Killing Hand를 부르는데, 앨범을 녹음한 1집의 원보컬인 찰리 도미니치를 그야말로 관광 태우는 미친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절정으로 넘어가는 '''I'm in the valley'''부분부터는 고음으로 올라가면서 오히려 더 파워가 붙는 말도 안되는 보컬이 나온다.[7] 항상 성대를 혹사해야 하는 보컬리스트들에겐 목에 조금만 무리가 가도 치명적이다. 게다가 평소 라브리에 스타일을 생각해보라![8] 위에서 언급된 "Learning to Live"의 "워어어~ 워어어~ 워어어~"를 무리없이 보여준다.[9] 참고로 5집과 6집 사이에 가진 뉴욕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에서는 이 3단 고음 부분이 도저히 소화가 불가능했는지 첫 두 단계만 올리고 가장 높은 세번째 단계는 음을 확 낮춰서 부른다.[10] 7집 발매이후 2004년 4월 있었던 서울 내한공연에서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힘들었지만 Another Day, Metropolis - Part I 등, 보컬 역량 시험하는 곡들을 마구 불러재끼는 등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었다. 그 덕에 서울 내한공연 이후 라이브 앨범으로 나온 도쿄 공연은 셋리스트부터 라브리에 컨디션까지 아무래도 쳐져보인단 평가가 나왔었다(...)[11] 레코드사에서 본명으로 솔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2005년 3집 이전까진 Mullmuzzler라는 예명을 사용했다고 한다.[12] 라브리에가 메탈코어 밴드 이름들을 대고 있는데 존 페트루치는 옆에서 "그거 지어낸거지?"하고있다... 잘 모르는 밴드인가 보다.[13] 10집 제작 시점에서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를 추모하는 곡(The Best of Times)이 앨범에 실리기까지 했는데...